시편 101편은 통치자의 삶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다고 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겠다고 말한다. 성도는 항상 주님만을 따라가야 한다.
완전한 길에 주목함(시편 101:1-8)
[1-2절]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송의 노래를 부르리이다”(원문)라고 말한다. ‘인자’(仁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공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이다. 인자(仁慈)와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도덕적 성품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회개하는 죄인들을 향해 인자하시고 항상 의로우시고 또 그는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의인에게는 기쁨과 위로가 되지만, 악인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고 또 그 성품을 귀중히 여기고 사모하며 그 덕성을 소유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한,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완전한’이라는 원어(탐)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앞절에서 말한 인자(仁慈)와 공의를 겸비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시편 저자는 개인적으로 완전한 길에 주의하겠다고 고백한다. 또 그는 가정적으로도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도덕적인 삶은 개인적인 삶인 동시에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실천되는 삶이어야 한다.
성경은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증거한다. 창세기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완전한’(탐밈)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이다(복수형). 성경은 또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증거한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여기에 ‘순전하다’는 말(탐)도 같은 단어이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은 같은 개념이다. 도덕적 완전은 우리의 성화(聖化)의 목표 곧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우리는 노아처럼, 욥처럼 완전한 삶을 힘써야 한다.
시편 저자가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평안과 위로, 능력과 환경적 회복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오시기를 사모할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를 만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고 피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시면 의인들에게는 복을 주실 것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완전을 구하는 삶은 경건한 삶과 함께 간다. 참된 도덕성은 참된 경건에서 나온다.
[3-5절] 나는 비루한 것(벨리야알)[무가치한 것, 악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사특한(익케쉬)[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나는 비루한 것[무가치한 것, 악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背道者)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배도자(背道者)’는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버린 자를 가리킨다. 성도는 도덕적으로 악하고 무가치한 것을 용납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버린 자들의 행위를 책망하고 미워하며 멀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사특한[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사특한 마음은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마음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또 오해하기 잘 하는 마음이다. 또 이런 마음에서 악한 일이 나온다. 성도는 사특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고 또 악한 일을 멀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윽히 헌다’는 말은 ‘은밀히 비난한다’는 뜻이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것은 앞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뒤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또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이웃을 멸시하고 욕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남의 명예와 신임성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은 악한 일이다. 성도는 남의 유익을 위해 힘써야 하고 남을 그윽히 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그런 자를 물리쳐야 한다.
[6-8절]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시편 저자는,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충성된 자’는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쾌락을 따라가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그런 자와 함께 거해야 한다. 또 시편 저자는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고 말한다. ‘완전한 길’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길이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는 신앙 사상이 바르고 성경말씀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런 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행복이다. 같은 생각과 뜻,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함께 일할 만한 자들이다.
시편 저자는 또,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거짓이나 거짓말은 마귀의 속성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하는 악이다(잠 6:16-19). 요한계시록 21:8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거짓된 마음과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 곧 위선을 다 버려야 한다.
또 시편 저자는,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남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이 악이다. 악은 하나님의 속성과 의지와 반대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마귀는 악하여 세상과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교회를 속화시켜 지옥에 떨어지게 하려 한다. 거짓되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합당치 않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그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경건하게 생활하면서 그의 평안과 위로, 그의 능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실히 찾는 모든 자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완전한 길에 주목하고 가정에서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고 또 완전한 길에 행하는 충성된 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소원하자. 도덕적 완전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도덕적 완전을 실천하는 충성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한 것들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우리는 악하고 무가치한 것들, 비뚤어진 마음, 이웃을 은밀히 비난함, 교만한 마음, 거짓말 등을 다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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