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3장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꿈에서도 신랑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도 꿈에서 조차도 신랑이신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과 동행하면서 세상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신부의 사모함(아 3:1-11)
[1절]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신부는 밤에 침상에서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으나 발견치 못했다. 보통 남편이 낮에는 일하러 나가고 밤에는 집에 있는데, 남편이 있어야 할 시간에 그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신 것이 정상인데 그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음을 나타낼 것이다. 혹은 고난과 환난의 때에 주께서 함께 계시지 않음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주께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까닭은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죄와 불경건과 돈 사랑, 쾌락 사랑에 빠질 때 그가 우리를 떠나신다. 또는 때때로 단순히 우리의 신앙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해 그가 우리를 잠시 떠나신 듯한 때도 있다.
[2절]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신부는 일어나 성중에 돌아다니며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 찾으려 하였다. 성은 예루살렘 성, 곧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또 거리나 큰 길은 교회 안에서의 생활 즉 교제나 활동들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가 거기에서 신랑을 만날 수 없었듯이, 성도는 때때로 교회 안에서의 교제나 활동들을 통해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이나 교회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으나 또한 성도 자신의 부족이나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성도는 때때로 주님과 밀접히 교제하지 못하고 그를 잃어버린 것같은 때가 있다. 특히 환난의 때에 그러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죄 때문이거나 단순히 신앙인격의 훈련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주를 의지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3-4절]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행순하는 자들’ 혹은 국한문 성경에 ‘순행(巡行)하는 자들’이라는 원어(쇼메림)는 ‘지키는 자들, 경비하는 자들, 파수꾼들’이라는 뜻이다.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은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는 그들에게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보았느냐고 물었으나 그들에게서 시원한 대답을 들은 것 같지 않다. 때때로 교회의 지도자들도 주님에 대해 잘 알려주지 못한다. 아마 그들의 불경건과 불충성과 부족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신부는 그들을 떠나자마자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났다. 성도가 주를 사모하며 그를 애타게 찾았고 금방 만나지 못했지만, 주께서는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아니었고 그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는 그를 사모하며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죄악된 것을 버리고 그만 의지하는 자들에게 만나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다(렘 29:12-13). 또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
신부는 신랑을 꼭 붙들고 그의 어머니 집, 그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집’은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성도는 주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때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또 주님을 찾고 그를 만나는 것이 힘든 과정임을 체험하였으므로 이제는 그를 꼭 붙들고 그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오늘날도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성도는 그를 만날 것이다. 그는 멀리 계시지 않다. 또 주님을 만난 자마다 이제는 그를 꼭 붙잡고 놓지 말자.
[5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2:7에도 같은 말씀이 있었다. 본문은 신부가 평화로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신부는 신랑 곁에서 평안히 잠을 잠으로 휴식하고 있다. 신랑은 신부가 잠을 깰까봐 조심하고 있다. 사람이 잠을 자는 것은 평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단잠을 주신다(시 127:2).
신랑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노루와 들사슴으로 부탁한다고 표현한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교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랑이 그들에게 노루와 들사슴으로 부탁한다고 표현한 것은 신부가 깰까봐 조심하는 뜻에서 한 말일 것이다. 노루와 들사슴은 아름답지만 예민해서 조금만 시끄러우면 놀라서 피할 것이다.
그의 사랑하는 자는 신부이다. 신랑은 예루살렘 여자들, 즉 형식적 교인들에게 신부가 원하기 전에는 그를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그들이 참된 신자들에게 무례하게 하거나 시끄럽게 하거나 그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형식적 교인들의 죄와 교만과 세속주의와 분쟁 등은 참된 신자들의 평안을 빼앗으려는 요소들이다. 주께서는 참된 성도들에게 교회 안의 악한 자들이나 위선자들로 인해 평안을 잃지 않도록 섭리하신다.
신부는 지금 신랑 곁에서 평안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성도는 주님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성도는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 곁에 거하고 그와 동행할 때 행복하다. 주께서는 그가 누리는 그 아름다운 교통과 동행을 빼앗기지 않고 보존되도록 섭리하실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교회의 주인이시며 참된 교회 즉 속죄의 구주를 참으로 믿고 의지하며 그의 명령대로 모든 죄를 버리고 그의 뜻만 순종하며 사는 자들과 항상 함께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평안 안에서 살고 결코 그를 노엽게 하지 않기를 원하며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
[6절]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본절은 친구들의 말로 생각된다(NAS). 이 친구들은 예루살렘의 딸들이든지 신랑의 친구들일 것이다. 본절에 묘사된 자는 신부로 생각된다. 원문은 “이것이 누구인가?”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거기에 ‘이것’ (조스)은 여성 지시대명사 즉 ‘이 여자’이다.
신부는 거친 들에서 오는 자로 묘사된다. 거친 들은 고난의 세상을 상징한 듯하다.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많고 어려운 일들과 혼란한 일들이 많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자이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다(행 2:40).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했다(갈 1:4). 성도는 거친 들에서 나오는 자들과 같다.
본문은 신부를 ‘연기 기둥’ 같다고 묘사한다. 광야에서의 구름 기둥같이 그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은 천사가 든 금향로의 향연이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려지는 것을 보았다(계 8:3-4).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날마다 성소에서 올려지는 분향같이 하나님께 상달되며, 그가 은혜로 구원하신 성도들도 날마다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
또 본문은 신부를 몰약과 유향과 여러 가지 향품으로 단장된 자로 묘사한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드리심으로(엡 5:2) 중생하고 성화되어 아름다운 인격이 되고 향기로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이다(호 14:5-7; 갈 5:22-23). 그들이 참 성도다.
성도는 거친 들 같은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들로서 항상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대속 사역으로 구원을 얻었으므로 이제 아름다운 인격과 삶으로 자신을 단장해야 할 것이다.
[7-8절]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본절은 신부의 말이라고 생각된다(NIV). 원문은 “보라, 솔로몬의 연이로다”라고 시작한다. 신부는 친구들이 자신을 칭찬하려는 말을 가로막고 신랑을 바라보라고 말한다고 생각된다. ‘연’(輦)은 임금이 타는 가마를 가리키는 말인데, 원어(밋타)는 ‘침상, 소파’라는 뜻이다. 가마는 왕이 편안히 이동할 수 있는 침상이다. 본절은 솔로몬왕이 가마에 신부를 태우고 혼인식장으로 가는 것을 묘사한 것 같다.
솔로몬의 침상은 이스라엘 용사 60인이 옹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을 수행하고 경호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자들이며 밤의 두려움 때문에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고 묘사되어 있다.
솔로몬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의 연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태우시고 밤 같은 세상을 통과하여 천국에 이르려 하신다. 주를 수행하는 자들은 능력의 천사들이며 또 사람들 중에서는 주의 충성된 종들과 헌신된 성도들이다. 세상은 악하며 악령들의 역사가 많은 두려운 밤과 같다. 그러나 왕과 교회를 호위하는 무리는 전쟁에 능한 용사들이다. 교회는 능력의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고 또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이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밤 같은 세상에서도 안전하다.
성경은 주의 충성된 종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하며(딤후 2:3; 몬 2), 주 안에서 강건하여 마귀와 악령들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하라고 교훈한다(엡 6:10-13).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계17:14)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시다(골3:4; 딛 2:13). 또 우리는 주 안에서 강건하여 마귀와 악령들과 싸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가 되자.
[9-10절] 솔로몬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본문은 신부의 말(NIV)이든지 친구들의 말(NASB)일 것이다. 묘사된 내용은 솔로몬왕의 연이다. ‘연’이라는 원어(압피레욘)는 ‘가마 혹은 마차’라는 뜻이다. 예전에 공주나 옹주(서녀)의 가마는 ‘덩’이라고 하고, 임금님의 가마는 ‘연’이라고 하였다.
솔로몬왕은 자기의 연을 레바논 나무 곧 백향목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고급 목재이었다. 그 연의 기둥은 은이었고, 그것의 바닥 혹은 밑받침 또는 등받이는 금이었고 그것의 자리 곧 좌석은 자색 담 즉 자색 천이었다. 또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 아마 그들의 장식품들이 입혀져 있다고 묘사된다.
솔로몬과 신부가 탄 연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주님과 성도들이 거하는 집이다. 교회는 레바논 백향목 같은 향기나는 성도들로 구성된다. 교회의 기둥은 순은 같은 순수한 진리의 말씀(딤전 3:15)과 그 말씀을 전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기둥같이 충성된 종들이다(갈 2:9). 교회의 밑받침은 보배롭고 불변적인 언약의 말씀이다(행 20:28). 교회의 좌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만들어진 좌석이다. 그 안에는 성도들의 풍성한 사랑이 입혀져 있다.
[11절]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신랑은 혼인 날에, 모두들의 마음이 기쁜 날에 머리에 면류관을 쓸 것이다. 성경은 ‘어린양의 혼인 기약’에 대해 말한다(계 19:7). 그 날에 교회는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께서 만드신 교회의 영광을 보자(엡 5:26-27). 또 그 날에 면류관을 쓰실 주의 영광을 보자. 우리도 그 날의 그 영광을 사모하며 기뻐하자.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교훈한다(롬 12:12).
[전도서 9장 성경 좋은 말씀] 사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전 9:1-18)
'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35편 주일설교말씀]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소서(시 35:1-28) (0) | 2022.04.28 |
---|---|
[느헤미야 7장 성경 좋은 말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의 수(느 7:1-73) (0) | 2022.04.28 |
[출애굽기 새벽예배 기도 설교] 마라의 기적(출 15:22-26) (0) | 2022.04.27 |
[이사야 20장 성경 좋은 말씀] 애굽과 구스가 사로 잡힐 것(사 20:1-6) (0) | 2022.04.22 |
[전도서 9장 성경 좋은 말씀] 사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전 9:1-18) (0) | 2022.04.22 |
[구약성경인물 설교말씀] 압살롬-도피 생활 (0) | 2022.04.17 |
[신명기 성경지명 설교말씀] 골란-도피성과 그리스도(신 4:43) (0) | 2022.04.17 |
[예레미야 10장 하나님 말씀] 인생의 길(렘 10:23-25) (0) | 202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