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4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구속사의 준비 다윗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구속사 족보에 올라가는 위대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고 마태복음 족보에 올라가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룻은 성도의 모형이요 보아는 주님의 모형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족보에 올라갔다는 것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부터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님과 영원히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속사의 준비 다윗
룻 4:18-22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 명제 :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시작하는 왕이다.
● 목적 : 다윗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룻기는 사사 시대의 말기로서 왕이 없음으로 자신의 소견대로 살았던 시대입니다. 자신이 판단한 것이 옳고 여호와 하나님은 온데간데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엘리멜렉으로부터 룻기는 시작됩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어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자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세상을 상징하는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했던 엘리멜렉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룻기의 초반부에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의 ‘떡집’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복음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면 영혼이 죽게 됩니다. 모압 땅에서 모든 것을 잃고 10년이 지난 후에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떡집과 같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양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집나갔던 성도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룻기의 시작은 암흑과 같은 환경과 복음이 사라진 것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베레스의 계보를 통해서 다윗이 탄생됨으로 구속의 시작을 알리는 빛으로 끝나게 됩니다. 다윗의 계보를 베레스부터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유다 지파에서 구속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된다고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나온 자입니다. 룻기의 계보도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오벳이 나오고 이새를 낳아 다윗을 낳게 됩니다. 구속의 대가 끊어질 것만 같았던 것을 고엘을 통해서 구속의 대를 이어주는 것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창세전에 선택받은 나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원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룻4: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룻기는 베레스의 계보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고 있는 족보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면서 성도들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베레스’ פרץ(페레츠 6557) 베레스이며, פרץ(파라츠 6555) 터뜨리다, 번성하다, 뚫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베레스는 세라보다 먼저 나온 사람입니다. 세라는 손이 먼저 나왔지만 베레스는 태속에서 터뜨리고 나왔으므로 베레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베레스는 원죄 가운데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터뜨리고 나온 자를 의미합니다. 태속에서 빨리 나오기 위해서 세라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은 흑암에서 빛으로 어둠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나와 영혼이 번성되어 많은 생명들을 주님 앞으로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죄 가운데서 터뜨리고 나오지 않으면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양식을 먹고 주님 앞으로 나와 영혼이 살아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어둠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헤스론’ חצרון(헤츠론 2696) 헤스론이며, חצר(하체르 2691) 궁정, 뜰 안,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습니다. 베레스처럼 원죄에서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나온 사람은 주님의 궁정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시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는 주님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이 세상의 천 날보다 좋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입으면서 산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새 예루살렘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더 고귀하고 좋습니다. 이렇게 악한 세상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기쁩니다. 헤스론은 주님의 보호함을 받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4: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습니다. 헤스론은 주님의 궁정을 사모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자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람’ רם(람 7410) 람,이며 רום(룸 7311) 올리다, 높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면서 찬양을 올려드리는 자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람과 같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고 난 후에 주님을 높이는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입술에서 주님께 올려드리는 찬송이 끊어지지 않는 자들입니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는데 직접적인 아들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람은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에 초기의 인물이라면 암미나답은 애굽 생활의 마지막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했던 시절을 족보에서 빼내고 있습니다.
‘암미나답’ עמינדב(암미나다브 5992) 암미나답, 이며 עם(암 5971) 백성,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עמם(아맘 6004) 합치다, 감추다, 깨닫지 못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아미나답은 נדב(나다브 5068) 기쁘다, 드리다, 헌신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암미나답은 만세전에 감추어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기쁨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감추었던 비밀의 만나를 깨닫고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서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암미나답처럼 거룩한 성도가 되어 주님께 헌신하면서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룻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습니다. 암미나답은 애굽 생활의 마지막 인물입니다. 나손은 출애굽 한 인물로 광야에서 유다 지파를 인솔하던 인물입니다.
‘나손’ נחשון(나흐숀 5177) 나손,이며 נחש(나하쉬 5172) 경험으로 알다, 깨닫다, 점을 치다, 예언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נחש(나하쉬 5175) 뱀, 이라는 뜻입니다. 나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으로 알아서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경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구원은 온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직접 체험함으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상징하지만 놋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함으로 믿는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몸소 체험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살몬’ שלמה(살마 8009) 살몽,이며 שלמה(살마 8008) 의복, 덮개, 옷,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살몬은 원죄 가운데 살았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죄인은 자신의 힘으로 절대 수치를 덮을 수 없습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입었습니다. 이것으로는 수치를 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아담을 위해 가죽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이 아니면 원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율법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몬이 보아스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몬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라합과 결혼한 인물입니다. 사사시대 초기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는 사사시대 말기의 인물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적 갭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람과 암미나답 사이도 시간적 갭을 두어서 애굽에서 수치스럽게 살았던 시간을 빼낸 것처럼 사사시대는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개인적으로 살았던 수치의 시간을 빼내게 됩니다.
룻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몬과 보아스는 시간적 갭이 있습니다. 고엘을 통해서 구속의 대를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살았던 세상의 시간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받고 나면 원죄 가운데 있었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히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애굽의 노예생활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 족보에서 빼내버리는 것처럼 구원받은 자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원죄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
‘보아스’ בעז(보아즈 1162) 보아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에는 민첩하고 활동성이 뛰어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힘 있고 능력 있는 유력한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부지런하고 활동성이 좋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직분에 감사하고 열심히 활동성 있게 일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직분을 맡겨 교회를 섬기려고 하면 함흥차사와 같이 느릿느릿하는 이런 신앙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민첩하고 활력 있게 일을 해야 합니다.
‘오벳’ עובד(오베드 5744) 오벳,이며 עבד(아바드 5647) 섬기다, 봉사하다, 종을 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벳은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나오미는 오벳을 자신의 아들처럼 신앙교육을 시켜 하나님께 구속의 대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오벳과 같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봉사하여 교회를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예배도 봉사입니다. 오벳과 같은 성도들은 예배에 늦게 오지 않고 미리 준비하여 예배를 준비합니다. 영육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배를 기쁨으로 알고 교회에 헌신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벳은 육적으로는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아들이 되었고 영적으로는 보아스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고 이 세상에서는 육적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영육의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룻4: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구속의 기초가 되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하십니다.
‘이새’ ישי(이샤이 3448) 이새,이며 יש(예쉬 3426) 뜻하다, 계시다, 보내다, 거하다, 감추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숨겨있는 인물입니다.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는데 다윗을 낳게 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새와 같은 자들은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 안에 거주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열리게 됩니다.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새는 심령에 주님의 계시를 품고 사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됨으로 구속의 대를 계시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윗’ דוד(다비드 1732) 다윗,이며 דוד(도드 1730) 연애하다, 끓이다, 가장 사랑하는 자,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자였습니다. 다윗과 같은 자는 주님과 연애하여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부부의 관계로 사는 사람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 같지만 각방을 쓰고 사랑이 식어서 냉랭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신앙은 주님과의 사랑이 뜨거워야 합니다.
룻기는 마지막 다윗을 낳았더라고 말씀하면서 끝맺음을 합니다. 다윗은 마태복음 족보가 시작될 때에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시작할 때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적 이스라엘의 구속의 시작을 말한다면 다윗은 영적 이스라엘의 구속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창세전에 선택받은 영적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기초를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구속의 기초를 변개하거나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될 때까지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룻기의 마지막은 새로운 빛의 소망으로 끝이 납니다. 이제 다윗의 왕국이 시작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왕국이 시작될 것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메시아의 왕국에서 왕 노릇하면서 살게 됩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거주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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