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것을 선택하시는 하나님(고전 1:26-31)
하나님은 미련한 자들을 선택하셔서 사용한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선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성 경: [고전1:26]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 바울은 앞에서 논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고린도 교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 한다. '부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신'은 하나님의 주체적이고 동적인 모습이 강조된 말로서 (롬 11:29;엡 1:18) 고린도 교회의 부르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시사한다. 한편 '보라'의 헬라어 '블레페테'는 문법상 직설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본절에서는 명령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Morris, Alford, Meyer).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능한 자가...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카타 사르카'는 '육체를 표준으로 삼아'라고 해석되는데, 대개 '육체'는 인성(人性)을 뜻하므로, 세속적인 관점으로 분별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문구는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에 모두 적용된다. '지혜 있는 자'(소포이)는 헬라의 철학자들처럼 높은 교육을 받은 지적인 사람들을 가리키고 '능한 자'(뒤나토이)는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자를 의미하며, '문벌 좋은 자'(유게네이스)는 사회적으로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바울은 이 세 용어를 사용해서 지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유력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상류 계급에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러한 외적인 조건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성 경: [고전1:27]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 '택하사'의 헬라어 '엑셀렉사토'는 '뽑아내다', '선택하다'라는 뜻의 '에클레고'의 부정과거 중간태형으로 혼자서 스스로 선택한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28절까지 반복적으로 제시되어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선택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어리석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선택하신 사실은 외적인 조건들이 일시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구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성 경: [고전1:28]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 '천한 것들'의 헬라어 '아게네'와 '멸시받는 것들'의 헬라어 '엑수데네메나'는 낮은 계급에 처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선택이 적용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 고린도에 노예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이 처한 특별한 상황에 적합한 것이었다. 또한 바울은 '없는 것들'(타 메 온타, the things that are not)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회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고 필요가 없는 자들까지도 선택의 대상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있는 것들을 폐하려 - '있는 것들'의 헬라어 '타 온타'는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는 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유력한 자일지라도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을 '선택하심'과 '폐하심'의 주체자로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이 대조법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은 구원을 얻기 위해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Mare).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 경: [고전1:29]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이는 아무 육체라도 - '아무 육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사 사륵스'는 문자적으로 '모든 육체'를 가리키며 비유적으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성 경: [고전1:30]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 '하나님께로부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스 아우투'에서 전치사 '엑스'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있게 하시는 궁극적인 동인(動因)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헬라어 원문에 나와 있는 반의적인 접속사 '데'('그러나')와 강조형 주격 대명사 '너희'(휘메이스)는 본절이 앞절과 강한 대조를 이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음을 묘사한다.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 '하나님께로서 나와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 데우'('하나님께로부터')는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지시한다.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 바울은 그의 편지를 읽을 독자들에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었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본절 초두에 언급한 바 있는 '너희'를 '우리에게'(헤민)라고 바꿔 쓰고 있다. 본절에서 '지혜'라는 개념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의 개념이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오히려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지혜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속죄(贖罪)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가 '의, 거룩, 구속'의 개념으로 표현되는 것이다(Alford, Mare, Morris, Meyer). 위에서 '의로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의롭다함'을 입은 것, 곧 '칭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거룩함'이란 그리스도와의 영적 고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자들은 부정과 불법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는 것이다(롬 6:19). 마지막으로 '구속함'이란 적당한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자유롭게 한다는 뜻에서 전용(轉用)된 말로(출 21:8),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가로 인간을 죄의 속박에서 풀어놓으셨다는 뜻이다(엡 1:7;골 1:14;히 9:15).
고전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성 경: [고전1:31]
주제1: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주제2: [하나님의 선택]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 바울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렘 9:24를 인용함으로써 구약의 권위를 빌어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유래한다. 모든 선(善)은 하나님께만 있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을 자랑해야 한다. 결국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속받은 백성임을 인식시킨 후 그의 백성에 합당하게 주님의 영역 안에서 자랑할 것을 권고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사사기 성경공부] 사사기의 기본 이해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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