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식물 하나님 말씀 중에서 뽕나무인 돌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와있는 식물을 연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뽕나무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것을 나타내는 나무입니다. 우리도 뽕나무처럼 이 땅에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구원받아 생명의 부활이 되어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살게 됩니다. 이 시간 뽕나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 부활의 소망을 발견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뽕(돌 무화과) 나무’ שקם(샤캄 8256) συκομορεα(쉬코모레아 4809)
♣명제: 뽕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것을 상징한다.
♣목적: 뽕나무는 구원받은 백성들도 부활의 소망을 가질 것을 상징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뽕나무라고 하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뽕나무로 인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개역한글판에는 번역이 되어 있고 개역개정에는 돌 무화과나무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식물인 뽕나무를 통해서 영적인 하나님의 의도를 구속사 관점으로 말씀을 깨달아 보겠습니다.
눅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을 때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져라 하여도 심겨졌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뽕나무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뽕나무와 여리고에 있는 뽕나무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말씀하고 있는 뽕나무의 단어는 συκαμινος(쉬카미노스 4807) 뽕나무, 라는 뜻입니다. 이 뽕나무는 한국에 있는 오디의 열매를 맺는 뽕나무와 같은 종류입니다. 그래서 누에의 먹이로 주는 뽕나무를 말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져라 하여도 심겨지는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뽕나무’ שקמה(시크마) 뽕나무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뽕나무에게 명령하여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겨져라 하여도 심겨진다고 말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런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적 의미를 통해서 깨달아 보겠습니다.
‘시크마’의 히브리적 의미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영적으로 열린 자들은 세상과 단절하고 진리의 말씀을 완전히 믿어 운명이 전환되어 주님을 바라보고 죽음에서 숨을 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뽕나무는 육적인 것을 죽이고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명령하는 자들은 주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뽕나무도 뽑혀서 바다에 심기는 순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뽕나무처럼 절대 뽑히지 않을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면 뽑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다는 세상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물두멍을 만들 때에 놋 바다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면 죄악으로 깊이 뿌리 박혔던 심령일지라도 반드시 뽑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도할 때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믿고 선포할 때에 내가 뽕나무처럼 원죄에 깊이 뿌리를 박아 죽었던 인생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원죄에서 뿌리가 뽑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뿌리를 박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원죄에 뿌리를 박고 있는 영혼들에게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면 뿌리가 뽑히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닫고 열심히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눅19:1-4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실 때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관원의 장으로서 또한 부자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여하고 물품에도 세금을 부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에 속국이기 때문에 세관원들은 로마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세금을 많이 부과했습니다. 로마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고 또한 자신의 몫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허가 낸 도둑’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동족들의 돈을 빨아먹고 사는 파렴치한 자들이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이지만 부정한 자로 생각했고 상종도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접근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라는 인물은 세관원의 대장이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로마인들에게 잘 보였기 때문에 세관원의 장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삭개오는 동족에게는 많은 고통과 고난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삭개오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삭개오에 대하여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데 키가 작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남들이 볼 때에 볼품없는 자가 세리 장까지 올라갔을 때에는 로마에 많은 돈을 갖다 주고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는 욕을 먹고 부정하다고 낙인이 찍힌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왜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을까요? 여리고는 원래 종려나무가 많은 장소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34: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리고는 원래 종려나무의 성읍입니다. 종려나무는 키가 크고 대추야자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식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영광을 나타내면서 다산과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추야자 열매가 많이 열리기 때문에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열매는 꿀처럼 달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여리고에 예수님이 들어가실 때에 삭개오는 그렇게 많은 종려나무에는 올라가지 않고 뽕나무에 올라가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깊은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삭개오’ זכי(자카이 2140) 삭개오입니다. 이 단어는 זכך(자카크 2141) 빛나다, 순결하다, 깨끗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깨끗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한 사람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로마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삭개오를 만나러 여리고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하여 빛나고 죄가 깨끗하게 사라져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삭개오처럼 원죄에 빠져 죽었던 사람은 아닙니까? 내 힘으로는 절대 주님을 만날 수가 없고 부정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했던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삭개오를 찾아오듯이 나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만나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이 누구신가 궁금하여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방해물 때문에 도저히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돌 무화과나무입니다. 여기에서 삭개오의 키가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키가 작고’ שפל(샤팔 8217) 비천한, 미약한,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שפל(샤펠 8213) 낮아지다, 낮추다, 내려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실제로 키가 작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려는 의도는 삭개오는 육신적으로는 돈도 많고 권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비참하고 미약하여 천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예수님을 만나 영적으로 낮아지고 겸손하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세전에 선택받은 삭개오는 육적으로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비천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회개함으로 자신의 육적인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니 세상의 물질과 권세가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의 물질이 최고였고 권력이 최고였습니다. 이것을 놓으면 죽는 줄 알고 살았던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으니 영적인 진리의 말씀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최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이름처럼 영혼이 빛나고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깨끗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삭개오처럼 세상에 눈이 멀어 돈과 명예만 쫓아다니면서 한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롯처럼 욕심부리면서 세상을 누비고 다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삶이 비천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갔다가 비천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세상의 돈과 명예는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으니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만난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돌 무화과나무’ συκομορεα(쉬코모레아 4809) 돌 무화과나무입니다. 이 뽕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오디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의 종류로서 작은 가지를 꺾어서 땅에 심어도 다시 싹이 나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돌 무화과나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자라기 때문에 ‘회생과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이 나무를 집의 지붕을 만들 때에 건축 재료로 사용하던 나무입니다. 또한 이 나무의 특징은 내구성이 좋고 잘 자라기 때문에 서민들이 집을 건축하거나 이집트에서는 장례식의 관으로 많이 사용되던 나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삭개오는 종려나무에 올라가지 않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나무는 가지를 꺾어서 땅에 심어도 뿌리가 나와 나무가 되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현재 부정한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은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었던 영혼이 다시 회복되어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지 않으면 평생 천박한 인생을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말하고 모욕하면서 비천한 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니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롬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우리들은 돌 감람나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지가 꺾여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뿌리의 진액을 받아먹음으로 참 감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으면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서 연합이 되었다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나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삭개오처럼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눅19: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을 수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시키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정한 자로 삭개오처럼 원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았던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연합이 되었고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의 기업을 받을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나의 돌 무화과나무는 어디입니까? 주님과 생명이 연합된 곳이 어디입니까?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삭개오가 올라갔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주님과 부활의 연합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뽕나무는 하나님의 공격신호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삼하5:22-24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다윗 시대에 블레셋 민족들이 다윗을 치기 위하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했습니다. 이럴 때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 때가 아니니 올라가지 말라는 신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주신 것이 블레셋 뒤로 돌아가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때나 공격하지 말고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면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블레셋 민족들을 쳐부수겠다는 것입니다.
‘뽕나무’ בכא(바카 1057) 뽕나무, 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בכה(바카 1058) 통곡하다, 애곡 하다, 애통하다, 슬퍼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응답을 주고 있습니다.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뽕나무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걸음소리가 들리면 싸우러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먼저 나가셔서 블레셋 민족들을 쳐부수어서 그들에게 통곡하고 애곡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먼저 나가면 블레셋 민족에게 당하여 다윗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바른 곳은 모든 저주가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았던 자들은 피를 바르지 않았는데 장자들이 모두 죽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응답 없이 나가는 영적 싸움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을 먼저 받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붙잡고 응답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면 승리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뽕나무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죄에 빠져 죽었던 우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났다면 항상 부활의 회복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주님과 연합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매일 같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마지막 날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내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면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현재 내가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주님과 연합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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