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욥기 4장 히브리어 강해] 죄인 멸망에 대한 엘리바스 환상(욥 4:12-21)

기혼샘 2021. 8. 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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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4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죄인 멸망에 대한 엘리바스 환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세 친구들이 왔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잘못하여 환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죄인이 멸망당할 것을 환상을 통해서 깨닫고 욥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에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은 억울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왔는데 이런 환난을 당하여 고통스러운 상황인데 친구들이 와서 자신을 죄인 취급하면서 멸망당할 것에 대해서 말하니 화가 났습니다.

죄인 멸망에 대한 엘리바스 환상(욥 4:12-21)

 

12절 베엘라이 다바르 예구나브 바티카흐 오즈니 세메츠 메느후

성 경: [욥4:12]

욥4: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가는 소리 - '세미한 음성' 또는 '속삭임'(NIV, RSV, whisper)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처럼 신탁이 주어지는 전초 단계에 사람의 청각이 감지할 듯 말 듯한 세미한 음성이 주어지는 것은 '엘리야'(왕상 19:11,12), '사무엘'(삼상 3:3-9)등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13절 비세이핌 메헤즈요노트 라옐라 비느폴 타르데마 알 아나쉼

성 경: [욥4:13]

욥4: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깊이 잠들 때 - 여기서 '깊은 잠'(KJV, NIV, RSV, deep sleep)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2:21), 어떤 것에 압도되어 정신()이 빠진 상태(29:10), 아브라함의 잠(15:12), 사울 일행의 잠(삼상 26:12)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무의식 상태가 인간의 의도적 능력이나 방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 간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간섭)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 빠짐으로써 계시를 받을 준비를 위했던 것이다. 한편, 어떤 학자는 대부분의 구약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중에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 있었다는 실례(1:2; 1:1; 1:1 )를 들어 엘리바스의 계시받는 행위가 이방 선지자 발람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 선지자 중 엘리바스와 흡사한 상태에서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이 여럿 있으며(7:1 ), 이러한 실례가 신약에서도 발견된다(사도 바울:16:9, 사도 요한:1:17)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이 주장은 별 신빙성이 없다고 하겠다.

󰃨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 단순히 '생각 중에'(KJV, Inthoughts)로 번역하는 것보다 '동요하는 중에', 또는 '불안해하는 중에'(NIV, Amid disquieting)로 번역하는 것이 14,15절과 조화를 이룬다. 이 말은 본서에서도 이곳과 20:2등 단 두 번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초급함이니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초월적 존재(하나님 또는 그의 사자)의 임재로 인해 인간의 심령이 크게 동요(당혹)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다니엘(단8:27;10:15-17), 느부갓네살(단 2:1) 등에게도 이와 흡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14절 파하드 케라아니 우레아다 베로브 아체모타이 히프히드

성 경: [욥4:14]

욥4: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 '골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쳄'은'뼈'(bone), '생명', ''을 의미한다. 이 용어가 잠 3:8에서는 '골수'로 번역되었다. 성경, 특히 시가 문학에서 보면 ''는 심령의 처소 또는 그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죄로 인하여 내 뼈로 평안함이 없나이다'(38:3), '저주가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109:18),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잠 17:22) 등이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이 뼈를 인격의 실체(實體)와 동일시한 것은 그것이 인간 신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마음'과 마찬가지로 지. 정. 의의 깊은 처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에 접한 엘리바스가 그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인해 온몸(전존재)에 전율을 느꼈음을 가리킨다(23:9; 3:16).

15절 베루아흐 알 파나이 야할로프 테사메르 사아라트 베사리

성 경: [욥4:15]

욥4: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바람'(41:16; 8:1; 사7:2;41:16), '광풍'(1:19;30:15; 27:8;32:2), '생명'(전 3:21;8:8;12:7), '의지'(대상 5:26;대하 21:16;36:22;1:14), '기질'(전10:4)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나 하나님과 관련하여서는 주로 그분의 ''(26:13;33:4;11:7,25;9:20; 시104:30;사 48:16;겔 11:19;36:26,27), 사물을 소생시키거나 진멸하는 그분의 '능력'(4:9;18:15;33:6;겔 10:17;슥 5:9)을 뜻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에 대해서는 단순한 '바람'(wind), '천사'(angel), '초자연적인 숨결'(uncanny breath) 등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본절 하반절에 근거하여 이것은 인간의 몸을 오싹 떨게 만드는 '찬 바람'(a cold breath of air)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owley).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Anderson, 삼하 5:24).

16절 야아모드 베로 아키르 마르에후 테무나 레네게드 에나이 데마마 바콜 에쉐마

성 경: [욥4:16]

욥4: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 '형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무나'는 하나님의 얼굴, 영광(12:8; 17:15)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독특한 용어이다. 따라서 본절은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얼굴(형상)을 보기는 보았으나 그것을 분변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느냐 하는 질문에는 많은 난점이 따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순수한 ''이신 까닭에 결코 물질적 형상을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12:8), 다윗(17:14,15)등이 직접 대면(對面)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엄스럽고 영광에 찬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와 동일하게 칼빈도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은 인간에게 결코 보이지 않는다'(Bavink, Gereformeerde Dogmatier, p.179)고 하였다. 따라서 본절에 뒤이어 나오는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으니라'는 말은 엘리바스가 직접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 종용한 중에 목소리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조용함 그리고 한 목소리'(astill, small voice; 개역 성경. '세미한 소리')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NIV 번역처럼 '한 조용한 목소리'(a hushed voice)로 옮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명사와 그것을 형용하는 형용사 대신에 두 명사를 접속사 and로 연결하여 표현하는 것. 예를 들면 '아름다운 소녀'(beautiful girl)'아름다움 그리고 소녀'(beauty and girl)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문학 기법상 이사 일의(二詞一意)라고 한다. 한편 엘리바스가 본 환상은 목소리(음성)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을 맺는다(21), 이는 엘리야가 받은 환상과 흡사하다(왕상 19:9-14).

17절 하에노쉬 메엘로아흐 이츠다크 임 메오세후 이트하르 가베르

성 경: [욥4:17]

욥4: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 '하나님보다'에 쓰인 전치사 ''은 비교급인 '...보다', '...더'의 뜻으로 보기보다 '...로부터', '...앞에서'(before)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river, Gray, Delitzsch). 한편 '인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노쉬''깨어지기 쉽다', '약하다', '병들다' 등을 뜻하는 동사 '아나쉬'(*)에서 유래하여 연약한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KJV, NIV, RSV, mortal man)을 가리킨다(6:4; 9:28;16:27; 삼하 2:29; 대하 24:24; 2:2 ). 따라서 본절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분(시90:2;102:26)이신 하나님 앞에서 절대 의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다.

󰃨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 그 창조하신 이 앞에 성결하겠는가'로 옮겨질 수 있다. 앞에 나온 절이 시간의 카테고리(, 인간=유일;하나님=무한(영원))에 견주어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음을 설파한 것이라면, 본절은 존재성(存在性)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의가 하나님 수준에 이를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의 주체요 동력인(動力因)인 하나님 앞에서 결코 성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로 본문 전체는 인간의 유한성과 부패성(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이 죄성은 단순히 윤리가 도덕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파악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요컨대 인간은 특정한 죄악을 범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있어 초월성을 지닌 하나님과 비견될 수 없고, 또한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의()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4:13; 벧후 1:4). 한편 욥은 본문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절대적 의()의 수준에 이를 수 없다든지, 아니면 인간이 전적으로 죄성을 지닌 부패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회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그 자신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차후에 욥이 스스로 인정한 진리이기도 하다(9:2). 고로 본문의 계시는 명확한 진리이기는 하나 그 당시 욥에게 있어서는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욥의 머릿속에는 왜 하필 자신에게 그토록 엄청난 환난이 닥쳤는지에 관한 의문과 탄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18절 헨 바아바다이브 로 야아민 우베말아카이브 야심 토홀라

성 경: [욥4:18]

욥4: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그 종 - 하늘에서 하난님을 수종드는 (his heavenly attendants)를 가리킨다.

󰃨 그 사자 - 이것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의 무리를 가리킨다(KJV, NIV, angels) 천사들은 인간보다 성결하여 하나님 가까이에서 수종드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믿지 않고 미련하다고 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나타내 준다. 한편 어떤 학자는 본문의 천사를 타락한 천사로 보기도 하나 그 타당성 여부는 아직도 논란 중에 있다.

19절 아프 쇼케네 바테 호메르 아쎄르 베아파르 예소담 예다케움 리프네 아쉬

성 경: [욥4:19]

욥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흙 집에 살며 - 이는 흙으로 만든 집에 사는 인간의 거주 상태(KJV, RSV, dwell(live) in (the) house of clay)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흙처럼 연약하여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육체를 가리킨다(LB, men made of dust).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10:9),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33:6) 등이 있다. 인간은 원래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사후(死後)에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성경적 사상에 비추어 볼 때(2:7;3:19; 고전 15:47) 이는 인간의 기원과 그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탁월한 표현이다.

󰃨 티끌로 터를 삼고 - 인간은 흙에서 왔으며(2:7) 그 흙()에 삶의 기반을 두고 살아간다. 이는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3:19)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 입증된다. 본문은 이처럼 인간의 생존 터전인 땅을 '티끌'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의지하는 대상(물질, 명예 등)의 허무성과 유한함을 피력하고 있다. 나아가 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면 불안과 허무의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다(22:16; 10:25).

󰃨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 '하루살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각다귀)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가 쓰였다. KJV는 본 구절을 이끄는 관계 대명사로 which를 사용함으로써 선행사 houses()를 수식하게 했다. 원래 좀은 의복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캄(Hakam) 같은 학자는, 여기서'이쉬'가 좀벌레와 유사하게 생긴 벌레로서 블록의 짚을 갉아먹어 진흙 집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Hartley). 하지만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이쉬''하루살이'로 옮겨도 무방하겠다. 성경에서 하루살이는 그 생명의 짧음과 연약성(하루살이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죽는다)으로 알려졌다(51:6). 이것에 근거하여 본문은(하루살이처럼 쉽게 멸망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을 설파하고 있다.

20절 미보케르 라에레브 유카투 미벨리 메심 라네차흐 요베두

성 경: [욥4:20]

욥4: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19절에서 인간의 연약성을 논증한 엘리바스는 여기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논증하고 있다. 특히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라는 표현은 마치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 것 같은 인간 생명의 덧없음과 짧음을 과장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일생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 순간만을 사는 찰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짧은 인생이 어떻게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이 본문 속에 내포되어 있다.

󰃨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 이는 인간의 존재가 너무나 하찮은 고로 아무도 그의 운명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이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을 정도로 짧은 인생을 사는 까닭에 자신의 장래 운명이가 처지를 인식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맛본다(KJV, RSV, they perish for ever without any regarding it)는 뜻도 된다.

21절 하로 니사 이트람 밤 야무투 베로 베호크마

성 경: [욥4:21]

욥4: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 장막줄 - 여기서 '장막'은 인간의 육체를 상징하며(고후 5:1,4; 벧후 1:13), 줄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장막을 지탱하고 있는 줄을 뽑을 때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6:9;사38:12).

󰃨 지혜가 없느니라 - 17-19절에서 엘리바스는 인간 육체의 유한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한 바 있으며 여기서는 인간의 지적 도덕적 불완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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