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누가복음 2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눅 2:1-52)

기혼샘 2021. 11. 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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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하기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는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 경배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성장하면서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눅 2:1-52)

 

1-7, 예수님의 탄생

[1-5]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 . .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온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한 때이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역사상 옥타비아누스라는 인물이며 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하였다. 총독 구레뇨는 두 번 수리아 총독직을 맡았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주전 10-7년경이고, 두 번째는 주후 6-9년이다. 가이사 황제의 칙령은 구레뇨가 처음 총독이었을 때 내려졌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고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1:16, 20)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해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약혼]한 [아내](전통본문)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갔다. 마태복음은, 요셉을 그 여자의 남편’(1:19), 마리아를 그의 아내’(1:20, 24)라고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임신한 지 여러 달이었다. 그의 태 안에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1:18; 눅 1:35).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구약성경의 예언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6-7]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 . . .

그들이 베들레헴에 있었을 때(2:1, 8, 16) 마리아는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포대기]로 싸서 구유[소나 말의 먹이통]에 뉘었다.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문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표현한다. ‘맏아들이라는 원어(톤 휘온 아우테스 톤 프로토토콘)는 ‘그 여자의 맏아들이라는 말로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 후에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나타낸다. 전통사본 마태복음 1:25에도 맏아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가복음 6:3의 증거대로, 예수님께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등의 남동생들과 또 여동생들이 있었다. 마리아가 평생 처녀이었다는 천주교회의 주장은 마리아를 부당하게 높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천주교회는 이 외에도 마리아가 평생 죄가 없었고 승천하였고 죄인들의 중보자요 기도를 들으시는 자라고 가르치는데 이것들은 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교리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은 심히 비천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구주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영광을 받기 위해 탄생하지 않으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대속제물로 죽임을 당하기 위해 탄생하신 것이었다. 여기에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1:14)의 깊은 뜻이 있었다.

8-14, 천사의 증거와 찬송

[8-10]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 . . .

예수께서 탄생하신 그 날 밤, 그 지경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은 주의 천사를 보았다. 하나님의 천사는 역사상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을 전달할 때 종종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가 천사를 볼 수 없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날 밤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곁에 섰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 목자들은 그 천사를 보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주의 천사는 그들에게 말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과연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해야 할 좋은 소식이다. 그 천사는 목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다.

[11-12]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 . . .

천사는 말하였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천사가 전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구주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 주이시다. ‘라는 말은 그의 신성(神性)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곧 메시아라는 말은 그가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심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죄와 불행과 죽음에서 건져낼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으로 오셨다. 목자들은 가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표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를 통해 구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주셨고 또 표까지 주셔서 그 소식을 믿게 하셨다. 기독교는 많은 표적들로 확증된 진리이다.

[13-14]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 . . .

홀연히 하늘의 천사들의 큰 무리가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말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땅 위에는 평화, 사람들 가운데서는 은혜로다](전통본문).” ‘지극히 높은 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을 가리킨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셋째 하늘이나 낙원과 동일하다(고후 12:2-4). 그곳은 태양계와 은하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자기의 특별한 영광을 나타내신 곳이다. 구주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또 땅 위에서는 평화와, 사람들 가운데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은혜와 평화는 구원의 원인과 그 결과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죄로 인해 심령의 고통과 육신의 질병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평안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 참된 평안을 얻는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충만한 복과 평안을 누릴 것이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도 상당한 평안과 기쁨의 삶을 누린다.

15-20, 목자들의 확인

[15-20]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 . . .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그들은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았다. 그들은 주의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증거를 확인하였다. 또 그들은 이 아기에 대해 들은 것을 다 알려주었다. 듣는 자들은 다 목자들의 말하는 것을 기이히 여겼으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 밤에는 이와 같이 찬송이 있었다. 천사들의 찬송이 있었고 목자들의 찬송도 있었다.

1-20절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께서는 다윗의 동네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을 약속하셨었다. 본문은 요셉과 마리아가 다윗의 동네로 호적하러 올라갔다고 말하며(5) 또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다윗의 동네에서 구주가 나셨다고 말하였다(11)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로 오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약속을 지키신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강보로 싸여 구유에 누이셨다.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12, “너희는 가서 강보에 사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16, “[목자들은]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께서 외양간에서 탄생하셨고 포대기에 싸여 짐승의 먹이통에 누이셨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신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그것도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그는 탄생 때부터 그러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했다(2:5-8).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20:28). 사도 바울은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였다(고후 8:9).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의 낮아지심이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모든 죄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주의 천사는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하였다(10-11). 구주께서는 우리를 죄와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자이시다.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기쁘고 복된 일은 없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는 구주이시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 .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20:28). 또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3:16).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하였다(1:4). 또 그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하였다(딤전 1:15).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땅에 사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는 일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 사람들 가운데는 은혜로다라고 말하였다(14).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를 통해 주신 구원의 결과는 평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안이 없는 세상에 평안을 주셨다. 사도 바울은 죄인들은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했다(3:16-17). 그런데 구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11:28). 또 그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셨다(14:27). 그러므로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다(살후 3:16).

우리를 죄와 불행과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러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그를 믿고 구원을 받자. 또 세상이 줄 수 없고 오직 그 분만 주실 수 있는 참 평안을 누리자. 또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자. 또 그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감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21, 할례를 받으심

[21] 할례할 8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 . . .

할례할 8일이 되자,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 그것은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이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로서(17:10-11) 죄로부터의 정결을 상징한다. 또 할례받은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다(5:3). 예수께서는 죄 없으신 자이시며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시지만,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또 하나님의 택함 받은 언약 백성의 대표자로서 친히 할례를 받으셨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자로 세상에 오셨다.

22-24, 마리아가 결례의 제사를 드림

[22-23]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 . . .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율법을 따라 결례(潔禮)의 날이 찼을 때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결례의 날이란, 레위기 12장의 규정대로, 남자아이의 경우 출산 후 7일과 33, 합하여 40일이 지난날을 가리킨다. 그들이 아기 예수를 함께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은 율법대로 첫 남자아이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기 위해서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고자 했던 경건한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경건하고 복된 가정에서 출생케 하셨다. 오늘날도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가정이 될 것이다.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 . . .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斑鳩)[산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하였다. 그들이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하려 한 것을 보면,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었다. 여인의 자녀 출산 후 정결 의식의 일반적 제물은 번제물로 어린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비둘기 한 마리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비둘기 두 마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가정에 출생하셨다. 부요하신 자가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였다(고후 8:9). 우리는 가난해지신 그를 통해 천국의 상속과 하나님 자녀 됨의 회복과 영생의 복을 얻었다.

25-35, 시므온의 찬송과 예언

[25-27]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 . . .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의 부패된 종교 환경 속에서도 의롭고 경건한 자가 있었다. 사람이 항상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진실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

시므온은 또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이었다.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말은 당시에 우선 로마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할지 모르나, 그것은 그런 육신적인 의미뿐 아니라, 또한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임함을 의미할 것이다. 천국만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 위로가 될 것이다.

시므온은 또한 하나님과 함께한 사람이었다. 성령께서는 그 위에 계셨고 또 그에게 죽기 전에 주의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는 특별한 지시를 주셨다. ‘주의 그리스도주께서 보내 주시는 그리스도라는 뜻이라고 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보내 주시는 참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그리스도이시며 시므온은 그를 보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결 의식을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와 아기 예수를 만났다.

[28-33]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 . . .

그때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하나님께 찬송하였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요셉과 그의 모친(전통본문)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겼다.

시므온의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놀라운 증거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의 구원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이시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와 그 결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은 죄사함이며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이다.

그 구원은 만민 앞에 예비된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지지 않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실 것이다(1:29). 그는 세상 모든 족속의 구주가 되실 것이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예언된 바이었다(42:6; 49:6).

[34-35]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 . . .

시므온은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말했다.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고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패하고 흥함을 위하고라는 말은 넘어지고 일어섬을 위하고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떤 이들은 그를 믿어 구원을 받고 어떤 이들은 그를 믿지 않아 멸망을 당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이 되신다.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라는 말과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는 말은 예수께서 당하실 고난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을 때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의 십자가 곁에 있었던 모친 마리아의 마음은 칼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의 심히 악함이 잘 드러날 것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의 극치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한 존재이면, 저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그토록 처참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 있는가! 인간은 참으로 심히 죄악되고 악한 존재이다!

36-38, 여선지자 안나의 감사

[36-38]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 . . .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나이가 매우 많았다. 그는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84년이었다. 결혼을 15세쯤 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당시 아마 106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마침 이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예루살렘에서](전통본문) 구속(救贖)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종교적으로 부패했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는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39, 나사렛으로 돌아가심

[39]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 . . .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들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도착했다.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 관련하여,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증거된 두 가지 사실들이 생략되어 있다. 첫째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고, 둘째는 애굽으로의 피난 생활이다. 이 두 사건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정결 예식을 행한 지 얼마 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 시간상으로는 본절(39)의 중간 즈음에 해당된다고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누가는 그 두 사건을 생략하였다. 복음서 기자들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독자적으로 자료들을 선택하고 저술하며 증거하였다고 보인다.

21-39절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구주이시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의지함으로 다 구원을 받자. 또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자.

둘째로, 우리는 죄사함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자. 하나님의 구원은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은 죄사함이며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이다. 우리는 죄사함받은 사실을 감사하며 이제는 죄를 멀리하고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며 경건한 성도들처럼 이 세상의 것들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가치를 두고 살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자. 그는 영광의 천국을 떠나 이 낮고 비천한 세상에 오셨다. 그는 마구간에서 출생하셨고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출생하셨고 또 친히 할례를 받으셨다. 부요하신 그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지셨다(고후 8:9). 우리는 그의 겸비하심을 본받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항상 겸손하자.

40-52, 예수님의 어린 시절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 . . .

본문은 예수님의 유아 시절의 모습에 대해 아기가 자라며 [심령이](전통본문)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증거한다. 그것은 네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로, 아기 예수님은 자라셨다. 그것은 몸의 성장을 가리킨다. 연약한 아기의 몸은 점점 소년의 몸으로 튼튼하게 자라셨다. 인간 예수님의 몸은 우리와 같이 자라셨다.

둘째로, 아기 예수님은 심령으로 강하여지셨다. 아기 예수님은 몸 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도 강하고 튼튼해지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셨다. 아기 예수님의 심령은 우리와 같이 연약한 상태에서 점점 강해지셨다.

셋째로, 아기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셨다. 이것은 그의 신성(神性)의 증거라고 보인다. 요한복음의 증거대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로고스)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1:14).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특히 지혜와 능력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아기 예수께서는 그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충만하셨던 것 같다.

넷째로, 아기 예수님 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셨다. 인간적 측면에서, 그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실 만한 자이셨다. 그에게는 원죄의 죄성과 연약성이 전혀 없으셨다. 그는 어린 아기들에게도 있는 불만과 저항심 같은 것이 없으셨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확실히 그 위에 계셨다.

[41-47]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 . . .

그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갔다.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등 1년에 3차례씩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했다(23:17). 요셉과 마리아는 경건한 유대인이었다. 예수께서는 아기 때부터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혹은 조금 자라서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을 것이다. 그는 아기 때부터 경건 훈련을 받으신 셈이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셨다. 그 부모[요셉과 그 모친](전통본문)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들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를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으며 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소년 예수께서는 선생[랍비]들 중에 앉아서 그들에게 듣기도 하며 묻기도 하고 계셨고 듣는 자들은 다 그의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 확실히 예수님의 신성(神性)의 지혜는 어릴 때부터 그에게서 엿보였다.

소년 예수께서 그 삼일 동안 어디에 계셨는지 그가 어디에서 음식을 드셨고 어디에서 밤에 주무셨는지 알 수 없으나, 본문은 삼일 후 요셉과 그 모친이 소년 예수를 발견한 것이 그가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는 때이었고 선생들이 다 소년 예수의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다. 47절의 지혜라는 원어(쉬네시스)총명이라는 뜻이며 40절과 52절의 지혜라는 말(소피아)과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아기 때에도 지혜가 충만하셨고 소년 시절에도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셨다. 그것은 다 그의 감추인 신성(神性)을 나타내며, 그의 인성은 그의 신성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였다.

[48-50]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 . .

그 부모는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말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아이야라는 원어(테크논)는 부모가 자식을 부르는 보통의 말이다. 또 마리아는 예수께 네 아버지와 내가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누구이신가?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신가?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니까 법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으셨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이지만, 요셉은 예수님의 부친이 아니었다.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의미심장하였다. 그는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내 아버지 집에라는 원문(엔 토이스 투 파트로스 무)에는 이라는 말(오이코스)은 없고 남성 혹은 중성 복수정관사(토이스)만 있다. 생략된 명사는 단수명사인 성전이나 보다 복수명사인 ‘일들’(에르고이스)이 더 가능하여 보인다. 이 구절은 옛날 영어성경(KJV)의 번역대로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에 관계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내 아버지의 집이든지 내 아버지의 일이든지 간에 내 아버지의라는 말이 요셉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이것은 예수의 신성(神性)에 대한 소년 예수의 증거이다. 소년 예수께서 12살 때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특이한 사실이다. 또 그는 12살 때에 벌써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다. 그 후 30세가 되시기까지 그는 성경 연구와 기도로 그의 사명을 준비하셨을 것이다. 그의 인성(人性)에 감추인 그의 신성(神性)의 신비, 즉 그의 인성과 그의 신성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 결합될 수 있으신지의 신비는 참으로 크다. 그러나 소년 예수는 단지 한 인간이 아니시고 단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소년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 . . .

본문은 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들을 마음에 두니라”고 증거하였다. ‘한가지로’라는 말(메트 아우톤)그들과 함께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다. 그는 어린 시절을 나사렛에서 보내시며 인간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섬기셨다.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라는 원어는 그가 계속하여 그들에게 순종하셨음을 보인다.

소년 예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친히 지키셨다. 십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명하였다(20:12). 조물주이신 그가 피조물에게 순종하셨다. 그러나 물론 인성에 있어서 그러하셨다. 소년 예수의 순종은 도덕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오늘 시대를 위한 좋은 모범이 된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마음이 드는 자녀들은 예수님의 순종을 기억해야 하며, 부모들도 자녀들을 예수님처럼 계명을 순종하는 자로 키워야 한다.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본문은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증거한다. 본절은 예수님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모습에 대한 증거이다. 그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예수님은 그 지혜가 자라셨다. 인간의 지정의(知情意)는 영혼의 활동들이다. 예수님의 신성은 본래부터 지식과 지혜가 충만하시지만(40), 그의 인성의 지혜는 자라셨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의 인성의 기능들의 성장과 더불어 그의 지혜도 자라셨던 것 같다. 그의 인성은 그의 신성의 영향 속에서 자라셨던 것 같다.

둘째로, 예수님은 그 키가 자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人性, 인간 본질)을 가지셨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계셨다. 그의 몸은 어린아이에서 십대의 소년으로, 20대의 청년으로, 그리고 30세의 성인이 되도록 자라셨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다. 성경이 여러 곳에서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은 죄 없는 인격, 흠과 결함이 없는 인격, 곧 이상적 인격이셨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이셨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요한일서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셨고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였다.

40-52절의 본문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증거한다. 첫째로, 그의 신성에 관해, 예수님은 아기 때부터 지혜가 충족하셨다. 또 그는 열두 살 되셨을 때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는 모친 마리아의 말에 대해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에 관계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대답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시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친히 증거하셨다. 그러나 요셉도 그 모친 마리아도 소년 예수님의 말을 깨닫지 못했었다. 단지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간직해두었다.

둘째로, 그의 인성에 관하여, 예수님은 몸과 키가 자라셨고, 심령이 강해지셨고 지혜도 자라셨다. 또 그의 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그는 성장하실수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 또한 그는 계명대로 육신의 부모님에게 순종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확신하자.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예수님이 단순히 사람에 불과하다면, 그는 우리의 구주가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죄인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속죄제물이 될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는 신약성경과 특히 사복음서를 통해 그를 믿고 확신하고 구원을 얻기를 바란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을 본받고 우리 자녀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자. 우리는 예수님처럼 심령이 강해져야 한다. 특히 경건과 도덕성에 있어서 그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과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과 실천함을 통해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머리 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사랑스러운 자들이 되기를 기도하자. 또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고 성경말씀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모범대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흠과 점이 없는 온전한 인격이 되어야 한다.

[역대상 5장 설교말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대상 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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