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요한복음 헬라어 성경강해] 예수님의 성전 정화와 부활 예언(요 2:13-25)

기혼샘 2022. 9. 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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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전 정화와 부활 예언(요 2:13-25)

 

예수님은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 예루살렘에 방문하셨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동물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렸다. 그러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꾸짖으셨다.

성 경: [요2:13]

13절 카이 엥귀스 엔 토 파스카 톤 이우다이온 카이 아네베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호 이에수스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 이 구절부터 22절까지에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을 보여준다. 성전 청결 사건은 두 번 있었는데, 여기 그 첫 번 것이 기록되었고, 두 번째 것은 성역 말기에 된 일이다. 이 사건이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것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속화되었을 때에 그것을 방임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슐라텔(Schlatter)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이 곧바로 그 시대의 제사장들을 위한 복음(Das Evangelium fur die Priester)이라고 하였다(Der Evangelist Johannes, P.74). 여기 "유월절"이란 말에 "유대인의"란 설명을 붙인 것은, 사도 요한의 상대한 독자들이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구원을 기념하면서 지킨 것이었다. 그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받다가 해방될 임시에,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여호와의 형벌이 내렸다. 그때에 이스라엘 집만을 그 재앙에 들지 않게 하려고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던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순종한 규례였다(12:12-20, 13:2, 12). 그런데, 이 명절은 아빕월(3,4월 사이에 있었음) 14일에 지키고, 거기 이어서 1주간 누룩 없는 떡 먹는 절기를 지킨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각처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온 것이다(16:1-8).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시려는 것이었다.

성 경: [요2:14]

14절 카이 휴렌 엔 토 히에로 투스 폴룬타스 보아스 카이 프로바타 카이 페리스테라스 카이 투스 케르마티스타스 카데메누스

󰃨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 멀리 이방에서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오는 순례자(巡禮者)들에게는,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편리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편리를 위하여 고요히 예배드릴 장소에 혼잡을 가져오는 것은 도리어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인간은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당연하나, 영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것을 취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돈을 바꾸는 것은, 이방에 살던 유대인들이 가지고 온 로마 돈을 성전에 바치기 위하여 유대의 세겔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30:13). 그들이 그때에 성전에서 이런 매매 행동을 통하여 부당한 수입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잘못이었다(56:7; 7:11).

성 경: [요2:15]

15절 카이 포이에사스 프라겔리온 에크 스코이니온 판타스 엑세발렌 에크 투 히에루 타 테 프로바타 카이 투스 보아스 카이 톤 콜뤼비스톤 엑세케엔 토 케르마 카이 타스 트라페자스 아네트렙센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이 말씀을 보면, 이때에 예수님의 의분(義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이 의분인 만큼, 질서 있게 움직였다. 예를 들면, 그가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셨을 뿐이고 그것을 뿌리지 않으셨다.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은, 그 소유자들로 하여금 돈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심이었다. 만일 그가 그 돈을 뿌리셨다면, 돈 임자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 경: [요2:16]

16절 카이 토이스 타스 페리스테라스 폴루신 에이펜 아라테 타우타 엔튜덴 메 포이에이테 톤 오이콘 투 파트로스 무 오이콘 엠포리우

󰃨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이 구절에도 예수님의 의분이 질서(秩序) 있게 나타난 것이 드러난다. 그는, 그저 말씀으로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라고 하셨을 뿐이고, 그것을 날려 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남의 소유물을 이렇게 존중히 여기셨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것은 상업을 정죄하는 의미가 아니고, 성별 된 기관을 세속(世俗)과 혼동시키지 않아야 할 것을 가리키신 것이다. 공관 복음에서 취급된 둘째 번 성전 청결 기사(21:12-13; 11:15-17; 눅 19:45-46)에 있어서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정직하지 않은 것을 꾸짖은 말씀이다. 물론 이 말씀에는 성전 안에서 그런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성 경: [요2:17]

17절 엠네스데산 데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호티 게그람메논 에스틴 호 젤로스 투 오이쿠 수 카테파겐 메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이것은, 69:9의 인용인데, 다윗이 그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핍박받은 사실을 가리킨 말씀이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의 날카로운 행사를 보고 그가 유대인들 앞에 핍박받으시게 될 것을 예측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 죽으실 수밖에 없었다.

성 경: [요2:18,19]

18절 아페크리데산 운 호이 이우다이오이 카이 에이폰 아우토 티 세메이온 데이크튀에이스 헤민 호티 타우타 포이에이스

19절 아페크리데 호 이에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류사테 톤 나온 투톤 카이 엔 트리신 헤메라이스 에게로 아우톤

󰃨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불신앙 하는 태도로 이렇게 표적을 구하였다. 인간은 이렇게 그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나타내신 권위를 알아볼 줄 모르고 자기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기이한 일을 요구하는 법이다. 이렇게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요구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여기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예언을 주신 것뿐이다. 곧,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을 오해한 그들이 후일에 이 말씀을 책잡아 예수님을 송사한 일도 있다(26:61). 그들은 여기서도 저의 무식을 폭로하였다(20). 이런 수수께끼 예언은, 그것이 성취될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며, 그 깨닫는 때에 믿음이 굳세어지는 법이다.

성 경: [요2:20]

20절 에이폰 운 호이 이우다이오이 텟세라콘타 카이 헥스 에테신 오코도메데 호 나오스 후토스 카이 쉬 엔 트리신 헤메라이스 에게레이스 아우톤

󰃨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 요세보 사기(史記)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건축은 주전 20년에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말한 이때는 주후 27년경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예언(19)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기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영적(靈的)으로 어두운 자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해석하다가 저렇게 오해한다.

성 경: [요2:21]

21절 에케이노스 데 엘레겐 페리 투 나우 투 소마토스 아우투

󰃨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그의 육체를 비유하신 이유는, 구약 성전이 신약 교회와 같기 때문이었다. 신약에는 교회가 예수님의 몸으로 비유되었다. 이 구절의 뜻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신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이다.

성 경: [요2:22]

22절 호테 운 에게르데 에크 네크론 엠네스데산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호티 투토 엘레겐 아우토이스 카이 에피스튜산 테 그라페 카이 토 로고 호 에이펜 호 이에수스

󰃨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여기 이른바 "성경"이란 말은, 구약에 있는 부활 예언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시 16:10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음에 있어서 점진적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인간의 많은 경험과 체험을 경유하기 전에는 깨닫기 어려운 까닭이다.

성 경: [요2:23]

23절 호스 데 엔 엔 히에로솔뤼모이스 엔 토 파스카 엔 테 헤오르테 폴로이 에피스튜산 에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데오룬테스 아우투 타 세메이아 하 에포이에이

󰃨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 이적(異蹟)을 제일로 알고 믿는 믿음은 변동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기적보다 하나님 자신 때문에 생긴 믿음은 전진성(前進性)과 지속성(持續性)을 가진다.

성 경: [요2:24,25]

24절 아우토스 데 호 이에수스 우크 에피스튜엔 헤아우톤 아우토이스 디아 토 아우톤 기노스케인 판타스

25절 카이 호티 우 크레이안 에이켄 히나 티스 마르튀레세 페리 투 안드로푸 아우토스 가르 에기노스켄 티 엔 엔 토 안드로포

󰃨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 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참으로 알기 어렵다. 속담에 말하기를, "물은 건너가 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나 보아야 안다"는 말도 있다. 또 혹은, "사람의 마음은 죽을 때까지도 다 모른다"(人死不知其心)라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밝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지혜를 가지셨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도 사람의 마음을 드려다 보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안다고 하는 것을 끝까지 시험해 보아야 된다(요일 4:1). 만일 그들이 무엇을 알아 마친다는 일에 조작스럽고 번잡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드려다 보시고, 그것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지적하신다. 그것은 심판자의 정당한 지식이다. 그 이유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다(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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