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에서 헤롯은 동방박사가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애굽으로 피신한 후입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나타나 나사렛으로 갈 것을 지시합니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가서 살게 됩니다. 이것도 구약에서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헤롯의 유아 학살과 나사렛 귀향(마 2:16-23)
16절 토테 헤로데스 이돈 호티 에네파이크데 휘포 톤 마곤 에뒤모데 리안 카이 아포스테일라스 아네일렌 판타스 투스 파이다스 투스 엔 베들레엠 카이 엔 파신 토이스 호리오이스 아우테스 아포 디에투스 카이 카토테로 카타 톤 크로논 혼 에크리보센 파라 톤 마곤
성 경: [마2:16]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유아 학살]
이에 헤롯이...속은 줄을 알고 - 여기서 '속다'는 뜻의 '에네파이크'는 단순히 속다는 뜻 이상의 의미로서 '희롱(조롱)하다'는 강렬한 뉘앙스(nuance)를 담고 있다(Calvin). 따라서 박사들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헤롯은 박사들의 태도를 기만(欺瞞) 이상인 자신을 희롱한 사실로 여겼을 것이다. 박사들이 자신의 교활한 음모를 꿰뚫어 보고 몰래 달아남으로 자기를 앉아서 '바보처럼' 기다리게 했다는 생각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헤롯을(1절) 못 견디게 했을 것이다.
심히 노하여 - 여기서 '노하다'는 뜻의 헬라어 '뒤모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분노하다는 뜻으로서 그 당시 헤롯의 활화산같이 꿇어 오르는 극렬한 분노를 예감케 해준다.
사람을 보내어...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 헤롯의 칼날 같은 명령이 실행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는 약 8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베들레헴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지경에'는 베들레헴뿐 아니라 베들레헴 근교의 한적한 오두막까지를 포함한다(Meyer).
사내 아이를...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헤롯은 자기가 찾는 아이의 나이를 정확히 몰랐다. 따라서 그는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를 모조리 살해하기 위해 살해 범위를 '2살 이하의 사내아이'로 한정시켰다. 여기서 '두 살부터'는 '별이 나타난 때'(7절)에 근거하는 바, 이에 대한 견해는 (1) 아이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충분한 여유를 둔 것이다. (2)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근 2년 동안이나 걸려 도착했다. (3) 박사들의 귀국 후 2년 만에 살해했다 등이 있는데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2살 이하'란 말이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의적(懷疑的)이다. 대신 15개월 내지 20개월까지로(A.T. Robertson) 보기도 하며 좀 더 넓게 6개월에서 20개월 사이까지로 보기도 한다(D.A. Carson) 당시의 분노에 찬 상황으로 보아 후자의 견해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 당시 살해된 유아의 수효에 대해 대단히 많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도(Alford) 있고 심지어 14,000명 정도로 추산(calculation)하는 전승도 있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조그마한 도시요 당시 주민이 1,2천 명 정도였다는 점을 들어 단지 수십 명 안팎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Farrar, Carr). 그런데 헤롯의 이러한 잔인한 살상극은 '유대인의 왕'에 대한 영적 무지의 결과이다. 즉 예수의 진상 도래는 로마 정복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 키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헤롯은 살인마의 탈을 또 한 번 쓰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다루지 않고 있어 진위(眞僞)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마크로비우스(Macrobius)의 저서 '축제'(Saturaalia)에 보면 아구스도(Augustus)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 하면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권능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손에서 예수를 거뜬히 건져내셨고, 세상의 왕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서 가소로이 비웃고 계셨을 것이다(시 2:1-6).
17절 토테 에플레로데 토 레덴 휘포 히에레미우 투 프로페투 레곤토스
성 경: [마2:17]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유아 학살]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 마태복음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이 세 번 나오며(16:14;27:9), 그 밖에는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18절 포네 엔 라마 에쿠스데 드레노스 카이 클라우드모스 카이 오뒤르모스 폴뤼스 라켈 클라이우사 타 테크나 아우테스 카이 우크 에델렌 파라클레데나이 호티 우크 에이신
성 경: [마2:18]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헤롯의 유아 학살]
라마에서 슬퍼하며...라헬이...애곡하는 - 예레미야가 이 예언(렘 31:15)을 선포한 시기(여호야김 통치 초기)를 고려해 볼 때(렘 30:1-33:26) 주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와 베냐민의 포로 장면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으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라마(Ramah)는 베냐민 지파 성읍이며(수 18:25)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가까우며 벧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는 곳이다. 바로 이 부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는 셀사(Zelzah)가 있었다(삼상 10:2). 이러한 정황들을 익히 알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를 바라보며 라헬이 그녀의 무덤 속에서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포로가 된 자손들, 즉 '그 자식'들이 끌려가는 모습(렘 40:1, 2)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이 구절은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당시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로 가는 도중에 자식이 없어 슬퍼했었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産苦)로 인해 죽은 사실(창 35:19,20)을 포로 됨에 비유하여 예레미야가 시적(詩的)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마태가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에다 관련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마태가 여기에서 바벨론 포로 장면을 연결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사건들의 초점은 베들레헴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들(라헬)이 흘리는 '눈물'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바벨론 유수 때에는 다윗의 혈통에서 이어지던 왕권이 물러나고 이방의 속박으로 인하여 흘리던 탄식의 '눈물'이, 또 다른 이방인(헤롯은 에돔인이었음)의 학정으로 살해된 베들레헴(다윗성이라고 불리는, 삼상 16:1) 아이들이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그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림으로 오랜 포로 생활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언약해 주신 새 언약(26:28;렘 31:31-34)이 온 이스라엘에 선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절 텔류테산토스 데 투 헤로두 이두 앙겔로스 퀴리우 카트 오나르 파이네타이 토 이오세프 엔 아이귀프토
성 경: [마2:19]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나사렛에 정착]
헤롯이 죽은 후에 - 헤롯은 그의 통치 38년, 즉 로마 기원 750년(B.C.4년)에 7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다. 한편 그의 최후를 기술한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에 따르면 그는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아 백약이 무효하여 죽으니 그 모습은 잔인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의 죽음이었다 한다.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현몽하여 - 이는 요셉에게 나타난 세 번째 현몽(現夢)인데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심과 역사가 아기 예수의 생명에 집중되어 있음이 엿보인다. 한편 마태는 요셉이 3차 현몽 당시에도 여전히 애굽에 머물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애굽 체류 기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외경 '예수 유년기의 복음'(Gospel of the Infancy)에는 약 3년간 애굽에서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이때 예수께서 고용 일꾼으로 일하셨고, 각종 이적을 베푸셨다고 전한다(Origen). 여하튼 예수의 가족이 애굽에 머무른 기간이 그리 오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20절 레곤 에게르데이스 파랄라베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카이 포류우 에이스 겐 이스라엘 테드네카신 가르 호이 제툰테스 텐 프쉬켄 투 파이디우
성 경: [마2:20]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나사렛에 정착]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요셉에게 복귀 명령을 내리시고 계신다. 여기서 이스라엘 '땅'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오직 20, 21절에서만 나오는 것으로서 6절의 '유대 땅'과 동일한 의미이다.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 여기서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란 단순히 헤롯을 지칭하는 막연한 묘사이다. 그런데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호이제툰테스)이라는 복수 형태에 대하여 여러 견해들이 있다. (1) 출 4:19를 인용한 것이다(Hill). (2) 헤롯이 죽기 5일 전에 죽었던 그의 아들 안티파터(Antipater)가 이 학살에 가담하였다(Meyer, Clarke). (3) '그들'이라는 복수 대명사는 막연한 지칭일 수도 있고, 3인칭의 범주에 속하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Turner). 그중에서 마태가 바로 앞 구절에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한 호 11:1을 인용하면서부터 이미 그의 머릿속에, 생애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모세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출 4:19를 인용하였을 것이다.
21절 호 데 에게르데이스 파렐라벤 토 파이디온 카이 텐 메테라 아우투 카이 엘덴 에이스 겐 이스라엘
성 경: [마2:21]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나사렛에 정착]
요셉이 일어나...들어오니라 - 여기서도 요셉의 절대 순종이 돋보인다. 아마 이때는 어둠을 틈타 행동해야 할 아무런 장애 요소가 없었기에 해가 있는 낮에 본국(本國)으로의 입국을 결행했을 것이다. 실로 '밤에' 떠났던(14절) 그들이 낮에 돌아오게 된 것이야말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절대 의지를 일견(一見) 나타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2절 아쿠사스 데 호티 아르켈라오스 바실류에이 에피 테스 이우다이아스 안티 헤로데스 투 파트로스 아우투 에포베데 에케이 아펠데인 크레마티스데이스 데 카트 오나르 아네코레센 에이스 타 메레 테스 갈릴라이아스
성 경: [마2:22]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나사렛에 정착]
아켈라오 - 헤롯 사후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63-A.D.14)가 헤롯이 관할했던 영토를 셋으로 분할하여 아켈라오(Archelaus)에게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주었고, 헤롯 빌립 1세(Herod Philip I)에게는 바타네아(Batanea)와 트라코니티스(Trachonitis)를,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각각 주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편 아켈라오는 그의 부친과 다름없이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로마에서 성장하여(Josephus) 로마 황제에게서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임명받았다. 그리고 만약 통치만 잘하면 '왕'의 칭호까지 부여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는 무능한 통치자로 평가되어 A.D. 6년에 폐위당하고 축출되었다. 그런 관계로 유대지방은 로마에서 직접 파견된 총독에 의해 다스려졌다. 바로 그 무렵에 요셉은 식구들을 인솔하여 이스라엘 경내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켈라오는 시이저로부터 분봉왕으로 임명받기 전부터 잔혹한 살상을 저질렀다 한다. 그 한 예로 그의 부친 헤롯이 죽기 전 자신이 성전에 세워 놓았던 금 독수리상을 훼손시켰던 유다와 맛디아라는 열렬한 애국자 둘을 살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켈라오가 아직 즉위하기 전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이 두 순교자들을 위하여 애도(哀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기 부하들로 하여금 성전을 에워싸도록 하고서 3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무차별 학살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요셉이 들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 아마도 그때 마태의 생각에는 요셉이 헤롯의 음모가 아니었다면 애굽으로 도피하기 직전에 머물렀던 베들레헴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했으며,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도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어린 메시아가 성장하기에 알맞은 곳은 예루살렘 성도(聖徒) 주변이지 '이방의 갈릴리'(4:15;사 9:1)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누가는 이곳 나사렛이 원래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눅 1:26;2:4, 39) 그들의 나사렛 정착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하튼 이 현몽(現夢)은 그가 받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현몽으로 이때 받은 '지시'(크레마티조)는 두려움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의미이다.
23절 카이 엘돈 카토케센 에이스 폴린 레고메넨 나자레트 호포스 플레로데 토 레덴 디아 톤 프로페톤 호티 나자라이오스 클레데세타이
성 경: [마2:23]
주제1: [메시야 탄생에 대한 반응과 유년시절]
주제2: [나사렛에 정착]
나사렛 - 히브리어 '네체르'에서 유래한 말인데 '싹, 어린순'이라는 뜻이다. 갈릴리의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9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비옥하지 못한 모래 땅, 주위의 산들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빈약한 성읍이었다. 이곳은 구약성경에도 외경(外經)에도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에도 나오지 않고 여기에 새로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실로 나사렛은 경멸받던(요 1:46) 성읍의 하나였으나 주후 4세기 이후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 이루려 함이러라 - 본절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구절은 정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랜 세월을 두고 다음과 같은 여러 논쟁을 야기시켜왔다. 즉 (1) 구약 이외에 구전되어 오던 구절이거나 분실된 부분이다(Chrysostom, Zigabenus, Theophylact). (2) 나사렛의 뜻이 '싹'이므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사 11:1)을 가리킨다(Jerome, De Wette, Vincent). (3) 나사렛의 어근은 나사르로서 '구별'을 뜻하므로 '나실인'(민 6:2, 8)에 관련된다(Tertullian, Erasmus, Wetstein). 위와 같은 견해들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보다 타당한 해석은 다음 경우이다. (4) '선지자'(프로페톤)란 용어가 복수 형태인 것은 한 특정한 선지자가 '메시아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리라'라고 예언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시 22:6-8, 13;69:8, 20, 21;사 11:1;49:7;53:2, 3, 8;단 9:6, Michaelis, Paulus, Rosenmuller, Kuinoel, ol-Shausen). 실제로 나사렛은 멸시당하던 곳이었으며(요 7:41, 52), 심지어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조차 경멸당하던 곳이었다(요 1:46).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는 놀림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이단'(행 24:5)으로 취급되었을 때의 이 '나사렛'이란 단어는 비방과 모욕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다윗의 왕통에서 나온 줄기였고 조롱과 경멸을 받으며 비천한 환경에서 자란 왕이신 메시아였던 것이다.
[고린도후서 2장 강해설교말씀] 사랑과 승리의 직분(고후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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