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종말에 닥칠 연단의 시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성도에게 환난과 핍박이 온다고 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가 옵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되고 핍박을 받다 보니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초대교회 때도 로마에 의해서 핍박을 받으니 신앙을 포기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말세에 이런 일들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키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마지막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종말에 닥칠 연단의 시험(벧전 1:5-9)
5절 투스 엔 뒤나메이 데우 프루루메누스 디아 피스테오스 에이스 소테리안 헤토이멘 아포칼뤼프데나이 엔 카이로 에스카토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 '말세에'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파루시아를 가리킨다(롬 8:18-25; 빌 3:20,21; 골 3:4; 요일 3:2). 파루시아 때 성취되는 '구원'은 앞서 언급된 '산 소망'(3절), '기업'(4절)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얻어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실현 혹은 종말론적 차원의 완성을 의미한다(Stibbs, Blum)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보호하심을 입었나니'의 헬라어 '프루루메누스'는 '프루레오'의 수동태 분사 현재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프루루메누스'는 본래 군사 용어로써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사단을 막아주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낸다(Stibbs, Leighton). 종말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므로 믿음 안에 거하여야 하며,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누릴 수 있게 된다(Michaels, Stibbs).
6절 엔 호 아갈리아스데 올리곤 아르티 에이 데온 에스틴 귀페덴테스 엔 포이킬로이스 페이라스모이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 '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시험으로 상위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련(test)을 의미한다(약 1:2, Bigg, Michaels). 그런데 베드로가 언급한 '여러 가지 시험'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암시하는가에 대하여 혹자는 '포이킬로이스'('여러 가지')가 고전 헬라어에는 나타나지 않고 마카비 시대와 신약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마카비 시대에 일어났던 고난이나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멸망(A.D.70)을 예고한 듯하다고 주장한다(Selwyn, Hor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이 정확한 지는 분명하지 않다(Michaels).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개역성경에는 '엔 호'('이 가운데')가 생략되어 있다. '앤 호'는 '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5절, Michaels, Blum)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암시한다. 비록 현재에 고난을 당하여 근심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러한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며 그 후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는 파루시아 때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업이 기다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된다.
7절 히나 토 도키미온 휘몬 테스 피스테오스 폴뤼 티미오테론 크뤼시우 투 아폴뤼메누 디아 퓌로스 데 도키마조메누 휴레데 에이스 에파이논 카이 티멘 카이 독산 엔 아포칼륍세이 이에수 크리스투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7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본절은 약 1:3과 유사하여 혹자는 베드로가 야고보서를 참조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Robertson). 그러나 야고보와 베드로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기에 참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1)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배우는 '수단'으로 언급되는 반면 본문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목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2)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온전한 신앙에서 요구되는 한 요소에 불과하지만 본문에서 믿음의 시련은 신앙의 최고 요소로 취급되고 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 차이점과 같은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히나'로 인도되는 목적절로 믿음의 시련을 수식하고 있다(Michaels). 베드로가 시련을 통한 믿음과 금을 비교하여 강조하는 바는 (1)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 금이 불로 연단받듯이 믿음도 시련을 통해 연단받는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해 고난당하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Bigg, Leighton, Michaels).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금이 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이 참된 신앙이 온전히 밝혀지는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종말론적 보상 혹은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다리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롬 2:7,10; 빌 1:11; 히 2:7,9, Michaels).
8절 혼 우크 에이도테스 아가파테 에이스 혼 아르티 메 호론테스 피스튜온테스 데 아갈리아스데 카라 아네클랄레토 카이 데독사스메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네 - '보지 못하였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이돈테스'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돈테스'는 '호라오'('보다')의 제2부정 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분사의 부정으로는 '메'를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우크'가 쓰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양보적'인 의미보다 '사실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Robertson). 즉 본문은 '비록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가 아니라 '너희 가운데 아무도 예수를 보지 못했다'라는 의미로 '사실성'을 강조한다.
(2) 혹자는 베드로 자신이 예수를 친히 목격했음을 수신자들과 비교해 강조했다고 주장한다(Selwyn). (3) 혹자는 베드로를 포함해 수신자 전체가 현재 계시하시는 예수를 보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ichaels). 즉 본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는 수신자들을 칭찬하려고 했다.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수진자들이 비록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종말론적 보상으로 주어질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현재 볼 수 없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9절 코미조메노이 토 텔로스 테스 피스테오스 휘몬 소테리안 프쉬콘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받음이라'의 헬라어 '코미조메노이'는 '코미조'의 현재 중간태 분사로 구원이 지금도 실현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참된 믿음의 결과인 미래에 주어질 종말론적 보상은 영원하며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현재 믿음을 소유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어질 상급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온전히 완성되는 구원은 미래에 속해 있다(Stibbs, Blum). 한편 베드로는 이러한 구원에 대해 '영혼의 구원'(소테리안 프쉬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드로가 '영'과 '육'을 구별하는 헬라어 이분법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쉬우나(Dihle)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콘'은 히브리적 이해 속에서 '자아'나 '인격' 전체를 지칭하기 때문이다(2:25; 4:19, Dautzenberg, Selwyn). 비록 베드로가 '프쉬콘'을 신체적 생명으로 생각하였을지라도 그것은 육체적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이다(Micha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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