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장에서는 타락한 레위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첩을 두고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자기 소견대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할 레위인도 타락하여 첩을 두고 있습니다. 레위인과 첩이 기브아에 들어갔을 때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고 결국 죽게 만듭니다. 사사 시대는 이렇게 폭력과 음행이 난무하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싫어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복음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기브아의 죄악(삿 19:1-30)
본장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읍의 동성애와 집단 강간의 악행의 부끄러운 일을 그대로 기록하여 증거한다. 성경은 이런 심히 부끄러운 일도 사실 그대로 기록한다. 이것은 인간의 극악한 부패성과 구약교회의 심각한 부패상을 증거한다.
[1-3절]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 . .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라는 말은 사사 시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사건이 사사 시대의 언제쯤에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다. 구약시대에 일부다처(一夫多妻)가 일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지만, 창세기 2장의 인간 창조와 최초의 결혼사건에서 보듯이,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경건했어야 하는 이 레위인은 육신의 감정에 있어서 연약했고 절제심이 적었고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의 첩은 음행하였고 그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의 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이나 보내었다. 음행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重罪)이다. 이 첩은 행실이 단정치 못했을 뿐 아니라 아내의 의무에 성실치 않은 자이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그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기 위해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갔다. 그는 너그러운 용서심을 가진 자이었다. 여자는 그를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여 들였고 그 여자의 아버지는 그를 보고 환영하였다.
[4-15절]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 . . .
그 첩의 장인은 그를 삼일 동안 머물게 하였고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였고, 나흘째 날에도 그를 머물게 하였고 다섯째 날에도 그렇게 하려 하였으나, 그 레위인은 해가 기울어가는 때에 일어나 떠났고, 해가 지려 하는 때에 여부스 곧 예루살렘 맞은편에 이르렀다.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하였다.
종이 주인에게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라고 청하였으나, 주인은 그에게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고 말하며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고 하였다. 그들이 다 앞으로 가서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자 해가 졌다. 그들은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다. 경건과 이웃 사랑은 같이 간다. 악한 자는 불경건할 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없어서 이웃에게 불친절하고 나그네를 대접할 줄도 모른다.
[16-21절]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 . . .
이미 저물어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왔다.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었다. 노인은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그가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으며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노인은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내가 처리하겠으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고 말하며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며 그들은 발을 씻고 먹고 마셨다. 그 노인은 선하고 인정이 있었다.
[22-26절]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 . . .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 그 성읍의 비류들 즉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했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상관하다’는 원어는 ‘안다’는 뜻으로 ‘성관계를 가지다’는 뜻이다. 그 불량배들은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나 나그네에 대한 친절이나 예절이 없었고 폭력적이었고 음란하였다. 특히 그들은 동성애적 음란 행위를 원하였다. 그것은 마치 소돔 고모라 시대의 상황과 비슷하였다(창 19:5).
집 주인인 그 노인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했다.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망령된 일’이라는 원어(니발라)는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악행’이라는 뜻이다. 그는 두 번 “이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고 말했다. 두 번째의 원어는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노인은 경건하고 도덕성이 있었다. 그의 딸이 ‘처녀’이었던 것도 그 사실을 증거한다.
무리가 노인의 말을 듣지 않자,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었고 그들은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며 새벽 미명에 그를 놓아 보내었다. 집단 강간을 한 것이다. 동틀 때에 그 여인은 그 주인의 우거한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누웠고 마침내 죽었다.
[27-30절]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 . . .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였는데,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고 말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가서 자기 동네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그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었다. 그것을 보는 자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고 말했다.
사사시대의 두드러진 두 가지 죄악은 우상숭배와 음란이었다.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은 그 두 가지 죄악의 예들을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단 지파의 우상숭배이었고, 다른 하나는 베냐민 지파 중 기브아의 음란이었다. 기브아의 음란은 불량배들의 동성애의 요구와 집단적 강간으로 나타났다. 우상숭배와 음란은 모든 시대에 모든 인간 사회의 두드러진, 대표적인 두 가지 죄악이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이렇게 부패했을까? 그것은 작은 죄악의 포용이 한 지파 전체의 분위기를 부패시킨 예일 것이다. 작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는 성경 말씀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분위기가 중요하다. 경건한 분위기, 도덕적 분위기, 작은 죄도 용납지 않는 분위기, 작은 죄라도 통분히 여기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경건하고 도덕적인 분위기를 잘 유지하지 않고 사상적, 도덕적 작은 죄를 포용할 때 점차 영적 감각이 무디어져서 큰 죄를 포용하게 되고 마침내 온 교회, 온 사회의 심각한 사상적, 도덕적 부패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음행을 피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음행은 죄악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3-5에서 교훈하기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고 하였다. 또 히브리서 13:4는, 혼인은 모두에게 귀하며 잠자리는 더럽지 않은 것이지만,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또 인간편에서도 우리는 거룩하게 살려는 굳은 결심과 성실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방법인 좋은 부부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주신 이유 중 하나가 음행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고린도전서 7:2-3은,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 말한다. 좋은 부부관계의 유지를 통해 음행은 예방된다. 오늘날같이 심히 음란한 시대에, 성도들은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함으로 음행을 예방해야 한다.
또 우리의 교회, 우리의 공동체는 어떻게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베냐민 지파처럼 도덕적 해이와 부패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교회의 순결, 공동체의 순결은 권징의 성실한 시행으로만 가능하다. 권징이란 잘못한 이에 대해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회개치 않는 자가 있으면 그를 교회의 교제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말한다. 교회나 공동체는 경건하고 도덕적인 분위기를 보존해야 하고,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권면하고 책망하여 건전한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체의 순결성이 보존될 것이다. 교회에 권징이 성실히 시행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점차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해이해지고 마침내 심각한 부패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시편 50편 강해 설교말씀] 성도의 특권(시 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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