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식물 설교 중에서 버드나무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버드나무는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자라며 초막절에 유대인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다 성전 앞에 놓고 버드나무가 말라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영혼도 이렇게 말라가는 것을 빗대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ערב(아라브 6155)
♣명제: 버드나무는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목적: 원죄에 빠져 죽은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심으로 살아난다.
우리가 흔히 시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버드나무입니다. 버드나무는 물이 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냇가 근처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드나무와 시냇가는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버드나무는 예수그리스와 성도와의 관계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시냇가가 예수그리스도의 생수를 의미한다면 버드나무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버드나무가 시냇가를 떠나게 되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죽어야 합니다.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버드나무는 물을 많이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버드나무가 있는 곳은 우물가입니다. 우물가에 버드나무가 있는 것은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더럽혀진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자들을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속죄하시는 정화의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경의 버드나무를 통해서 깊은 영적 통찰력을 얻어야 합니다. 버드나무는 죄인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정화의 능력이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버드나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버드나무가 시냇가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말씀 곁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내 영혼은 메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버드나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늘 주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버드나무는 복 있는 사람과 연관이 있습니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을 말씀하시는데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버드나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시냇가’는 פלג(펠레그 6388) 시내, 강, 냇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לג(팔라그 6385) 나누다, 분할하다, 쪼개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아무나 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아무나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한 자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시냇가에 심겨진 자들은 세상과 분리되고 죄악에서 떨어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있던 선택받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뽑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시냇가에 심으신 것입니다.
그럼 이 시냇가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쪼개지시고 나 대신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분리되게 하시고 원죄에서 나누셔서 영원히 죽을 인생을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의 시냇가에 심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스스로 주님의 시냇가에 심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셨기 때문에 심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도 주님의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시냇가에 있으니 목마름이 없습니다. 영혼의 갈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심은’은 שתל(샤탈 8362 동사, 칼, 분사수동) 심다, 옮겨 심다, 라는 뜻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누군가가 옮겨 심은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나무를 자신의 정원에 옮겨 심은 것입니다. 이 나무에게는 주권이 없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정원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심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면서 시냇가에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나무가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세상의 원죄에 빠져 살면서 매일같이 고통스럽게 살았던 인생입니다. 힘 있는 자들에게 눌리고 권세 자들에게 착취를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면서 살았던 인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불쌍한 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정원에 심어주셨습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심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정원에 들어갈 수 있는 주권이 전혀 없습니다. 분사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뽑아서 옮겨 심어주시지 않으면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만세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심어주셨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44:1-4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성령의 영을 자손에게 복을 후손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버들같이’는 ערב(아라브 6155) 버드나무입니다. 이 단어는 ערב(아라브 6148) 보증물, 보증, 담보,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풀 가운데서 버드나무처럼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광야에서 메마른 상태에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옮겨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생활할 때는 애굽의 노예가 되어 메마른 상태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옮겨서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옮겨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니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런데 버드나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옮겨 심어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보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담보물이 없이는 은행에서 절대 대출을 해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 이렇게 이스라엘 후손들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 복 있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는 것은 버드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증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원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옮겨 심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담보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져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시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보증이 되셨다는 것을 믿는 즉시 죄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보증물이 되어주셔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이 아니었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할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들은 버드나무와 같아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세상의 뜨거운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의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버드나무는 초막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끝 날에 생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이 영혼의 생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명절 끝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때는 초막절 끝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깝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끝 날에 왜 목마른 자들은 주님께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주님께 오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생수이시고 구원의 능력자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과 칠칠절은 봄에 있는 절기라면 초막절은 가을에 있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기가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에 우물의 물도 마르고 시내나 강의 물도 말라서 마실 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을 기점으로 우기로 들어가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레23: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초막 절기에 시내 버들을 취하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자신의 집의 마당이나 베란다에 초막을 지어놓고 과거 조상들이 초막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하면서 절기를 지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초막절이 되면 성전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때에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마을인 מוצא(모차 4161)에서 버드나무를 베어와 사용했습니다. 샘물의 근원, 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버드나무들이 서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가까워서 사용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버드나무는 베어버리는 즉시 금방 말라버렸기 때문에 성전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초막절 내내 제단 남서쪽에 세워 놓고 제사장이 앞서서 제단 주위를 돌았습니다.
평소에는 제단 주위를 한 번만 돌게 되지만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제단 주위를 일곱 번을 돌게 됩니다. 이렇게 돌게 되는 이유는 시들어가는 버드나무를 보면서 자신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자신들도 이렇게 버드나무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하나님 앞에 비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절규했던 것입니다.
시118:25 여호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 마지막 날에 간절히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호산나입니다.
‘이제 구원하소서’는 הושיעה אנא(호쉬아나)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해 달라는 절규의 함성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호산나 찬송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럼 이들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제단을 돌았던 것을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인 여리고 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7일째에는 일곱 바퀴를 돌게 되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제단을 일곱 번을 돌게 됨으로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우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군대가 여리고 성을 일곱째 날에 일곱 번 돌게 되므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영혼의 생수 되시는 자가 여기에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현재 유대인들은 여리고 성처럼 영적으로 문이 굳게 닫혀있습니다. 문을 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난공불락과 같은 심령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들의 심령에 생수가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비를 기다리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영혼의 생수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도 세상에서 육신의 비만 기다리면서 있지는 않습니까? 여리고 성의 문을 굳게 닫은 것처럼 심령의 문을 굳게 닫고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생수를 퍼부어 주시므로 여리고 성과 같은 심령의 문을 무너뜨려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버드나무를 통해서 영적으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버드나무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보증을 서신 분입니다. 세상에서도 보증을 선 사람 때문에 대출을 해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왜 나 같은 죄인을 구원시켜 주셨겠습니까? 예수님이 보증이 되시고 담보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증인이나 담보물이 없이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 보십시오. 절대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증도 없이 구원해 달라고 해 보십시오. 심판과 진노만 받을 뿐입니다.
이제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버드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버드나무는 항상 물이 있어야 합니다. 시냇가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살고 있어도 항상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의 곁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매일같이 동행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이 시간 버드나무와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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