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식물 성경공부 중에서 우슬초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우슬초는 별명이 난쟁이로서 볼품이 없는 식물입니다. 담벼락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우슬초는 유월절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슬초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우슬초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식물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슬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우슬초’ אזוב(에조브 231), ύσσωπος(휫소포스 5301)
♣명제: 우슬초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슬초는 작고 미천한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영광과 교만을 상징할 때 사용하는 나무는 백향목 나무입니다. 자태가 아름답고 단단하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할 때도 백향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교만하고 자만한 사람을 나타낼 때도 사용합니다.
반면에 우슬초는 꽃과 잎과 줄기가 사람의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볼품없는 하나의 식물입니다. 이 풀이 자생하는 곳은 바위와 담장 밑 그늘같이 구석진 곳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우슬초는 겸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지만 우슬초처럼 초라하게 구석진 곳에서 자라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하나님이 인간이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슬초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도 주님의 삶을 따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슬초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고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섬겨주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슬초와 같으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우슬초를 통해서 영적으로 깨달을 진리가 무엇입니까?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속죄의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원래는 말을 타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말은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겸손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백향목과 같으신 분이면서도 우슬초와 같은 사역을 하셨고 말을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야 할 분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셔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백향목의 자리에 있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슬초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우슬초와 같이 형제를 섬기는 자리에 있다면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슬초를 통해서 깊은 겸손의 영성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슬초는 유월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출12:21-22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합니다. 마지막 장자 재앙을 남겨두고 하나님은 유월절 절기를 만들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날을 새해로 정해주셨습니다. 유월절은 달력을 바꾸어 주신 날입니다. 애굽의 세상 달력에서 안식일이 있는 하나님의 달력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때에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을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양을 잡고’는 שחט(샤하트 7819 동사, 칼, 명령, 남성, 2인칭, 복수) 결박하다, 죽이다, 도살(륙)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을 선택하여 결박하고 죽여서 도살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 양의 피 때문에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만 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세상의 달력에서 하나님의 달력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구원받지 못했던 상태에서는 애굽과 같은 세상의 달력에 따라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구원받고 나면 안식일이 있는 하나님의 달력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로부터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슬초’는 אזוב(에조브 231)입니다. 어근은 אזב(아자브) 난쟁이,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슬초는 담장 밑에서 자라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아주 볼품없는 난쟁이와 같은 식물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릴 때에 더 좋은 식물이 있을 것인데 볼품없는 난쟁이와 같은 우슬초를 사용하라고 한 것은 사람의 눈에 흠모할 만한 모양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우슬초와 같이 버림받은 분입니다. 거의 찾지 않았던 식물이며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외모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 저주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속죄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면 우슬초는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속죄의 피로 덮어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묶음’은 אגדה(아굿다 92) 띠, 무리, 묶음,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אגד(아가드) 묶다, 매다, 라는 듯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슬초 묶음을 묶어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묶이지 않고 연합되지 않는다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슬초에 묶여있을 때에 피가 묻혀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되지 않은 자는 절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죄가 씻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든 하나님의 진노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슬초는 죄지은 자를 한 번에 정결케 할 때에 사용했습니다.
민19:17-18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우슬초는 붉은 암송아지 제사를 드릴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물은 정결한 물이 되어 부정한 자를 한 번에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을 찍어서 사용했던 것이 우슬초입니다. 우슬초는 부정한 자를 위하여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물을 찍어 장막과 모든 기구와 부정한 자에게 뿌리면 금방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붉은 암송아지 제사는 아주 귀한 제사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상징합니다.
히9:19-20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붉은 암송아지 제사는 모세가 율법대로 계명을 선포하고 난 후에 우슬초를 취하여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 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합니다.
신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 근처에 왔다가 시체를 만지거나 죽은 사람의 뼈에 닿으면 부정해지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는 7일 동안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절기를 지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가면 이미 절기는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이때에 붉은 암송아지 잿물을 우슬초에 찍어 대제사장이 뿌리면 놀랍게도 순식간에 부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제사는 부정한 자들을 위한 구제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죄에 빠져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계속해서 동물의 피를 뿌려야 하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뿌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요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목이 마르다고 하셨을 때에 신 포도주가 담긴 그릇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우슬초에 포도주를 찍어 주었다는 것은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섬기시기 위하여 운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죄에서 살아났습니다.
우슬초는 다윗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에 고백하던 시입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전까지는 왕이기 때문에 밧세바와 동침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죄를 씻어 달라고 하는 것은 겸손한 자가 되겠다는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는 חטא(하타 2398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죄를 범하다, 깨끗하다, 빗나가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사실이며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상징하는 식물인 우슬초를 가지고 자신을 깨끗하게 죄를 씻겨달라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우슬초로 정결하게 해 달라는 것은 자신은 절대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가 전혀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속죄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자신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도록 해달라는 회개의 요청 기도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겨주시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깨끗해진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는 כבס(카바스 3526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밟아 뭉개다, 표백하다, 빨래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너무나 커서 하나님 앞에 죄를 씻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은 도저히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이 옷을 세탁할 때에 빨래 방망이로 때리고 밟아서 뭉개듯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뭉개서라도 깨끗하게 표백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윗이 죄를 깨끗하게 씻겨달라는 기도는 너무 괴롭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뭉개 뜨려 주셔서 교만했던 자신을 겸손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것도 앞으로 자신이 교만하게 왕으로서 행동할 수 있으니 절대 하나님 앞에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내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밧세바를 취한 것은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부정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슬초 식물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씻겨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교만했던 행동과 자만심을 꺾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피만이 가능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절대 자만과 오만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슬초를 통해서 깨달은 영적 진리가 무엇입니까? 겸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섬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를 섬겨주셨습니다. 우슬초는 초라한 바위틈에서 서식하거나 담장 밑에서 서식하는 보잘것없는 식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물이 유월절 날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고 난 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에 우슬초가 없었다면 문설주에 피를 바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우슬초처럼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피를 뿌리는 데 사용되는 우슬초로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슬초는 가지 하나로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묶여있을 때에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있어야 하고 교회끼리 연결이 되어야 하며 형제자매끼리 묶여있을 때에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우슬초처럼 연약한 식물을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큰일을 못합니다. 하지만 뭉치면 큰일을 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님과 연합이 되어 있고 성도끼리 연결이 되어서 큰 역사를 만들어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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