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영생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체가 영생의 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자신의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도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제 목: 영생의 말씀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요 6:66-71, 벧전 1:18-25
요 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요 6:68-69)
주 제: 영생의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책을 사랑하자
오늘은 구세주 강림절(Advent=coming) 둘째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주일은 희망(Hope)을 뜻하는 보라색 초를 켰습니다. 오늘은 평화(Peace)의 촛불(연보라색)을 켭니다. 다음 주일은 기쁨(Joy)의 촛불(분홍색), 강림절 넷째 주일(올해는 성탄절이브)은 사랑(Love)의 촛불(흰색), 그리고 성탄절 이브/성탄절에는 그리스도의 촛불(가운데 흰색)을 켭니다. 초의 색깔이 차츰 밝은 색으로 바뀌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상징합니다. 첫 번째 초는 초림 예언의 초(희망 Hope), 두 번째는 베들레헴의 초(평화 Peace의 초), 세 번째는 목자들의 초(기쁨 Joy의 초), 네 번째는 천사들의 초(사랑의 초)를 뜻합니다.
강림절의 상징이 된 ‘네 개의 초’는 독일교회에서 가정선교운동(Home Mission movement)의 창시자이며, 섬김과 봉사로 헌신하시며 디아코니아 운동(Diakonia Movement=Diakonisches Werk)을 하신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 목사님께서 어린이 보호시설 ‘라우에 하우스’(Rauhen Hauses in Hamburg)에서 첫 강림절 촛불을 밝힌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 되어 유럽과 미주에서는 하나의 문화적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 부모님은 “요즘 독일 학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창인데 그중 ‘초 만들기’에 대한 과제가 단연 화제”라며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문화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들 학교 과제를 준비하기 위해 근처 마켓에 가보니 초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어 깜짝 놀랐다”라고 말합니다. 강림절 촛불을 밝히는 것이 독일 교회에서 시작했지 결코 가톨릭의 전통이 아닙니다. 강림절 화환은 상록수를 이용하는데 상록수의 푸름은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화환의 동그란 모양은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화환에 꽂는 4개의 초는 세상을 밝히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합니다.
이사야 9: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약간의 압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요단 저편 열방의 갈릴리의 해변길을 더욱 극심하게 압제를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쳤도다” 오늘 평화의 촛불은 계약의 상징으로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통해 주신 이 말씀이 저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곧 오소서 임마누엘이시여!”
오늘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성경주일(The Bible Sunday)입니다. 성경 주일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한때는 ‘만국성경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성경주일은 성경반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헌금을 통해 성경반포사업에 기여하는 주일입니다. 영국에 메리 존스라는 시골 처녀가 있었습니다. 메리는 가정부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녀가 돈을 모은 목적은 한가지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 평생소원은 성경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기 위해 힘써 일하고 돈을 모으고 있답니다” 마침내 메리는 성경을 살 만큼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무려 40km를 달려가서 성경을 구입했습니다. 메리에게 성경을 판 사람은 그녀의 순수한 신앙,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성경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관 설립을 위해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대영국성경공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한 소녀의 작은 열정이 전 세계에 킹제임스성경을 보급하는 운동을 펴는 성경공회(Bible Society)를 탄생시켰고,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도 이 성경공회를 통해 한글 성경을 인쇄하고 보급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837년 6월, 18세 나이로 영국 여왕이 된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여왕은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가장 먼저 기도했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영국의 여왕이 되면 당신의 말씀대로 통치하게 해 주소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사오니 저의 연약함을 자비와 긍휼로 채워주소서. 또 나라를 이끌어 감에 있어 선한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빅토리아는 그 후 64년 동안이나 영국 여왕의 자리에 앉아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영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경제가 놀랍게 도약하게 되었고, 의회민주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도덕성과 예절이 강조되는 좋은 문화를 만들어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는 대영제국을 이루어 영국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인도의 한 왕자가 빅토리아 여왕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번성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러자 온화한 미소를 띤 여왕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킹제임스 성경을 집어 들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그 비결이지요.” 그녀가 집어든 성경은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손때가 시꺼멓게 묻어 있었고, 책장이 너덜너덜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나라들 다 포기한다고 해도 영생의 말씀이 적혀 있는 생명의 책 킹제임스 성경 한권을 택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성경주일이 지켜진 것은 오늘날과 같이 12월 둘째 주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성경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이란 이름으로 1899년 5월 성령강림주일에 처음 지켜졌습니다. 성경주일을 한국에서 처음 주창한 영국성경공회 조선지부 책임자 켄뮤어씨는 모금을 통해서 조선인 스스로 성경을 보급하길 바란 것보다는 서구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이웃에게 성경을 보급하고자 하는 정신을 한국성도들에게도 심어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주일은 한국교인들의 성경반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계속 발전해 갔고, ‘성경공회주일’은「신약젼셔」가 발간된 1900년을 기점으로 점차 정착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신학월보」 1920년 5월호에 실린 ‘셩경공회쥬일’이라는 글에는 성경공회주일에 모여 성경 번역하는 사람과 성경공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남녀 매서(賣暑)와 무지한 사람 가운데 서책(성경)을 파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듣고 배우고자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자는 내용과 필요한 성경 구절을 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하여지면서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국내에 성경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고 또한 전도지와 단편과 같은 전도용 성서를 많이 공급하여 기독교 성장에 큰 몫을 담당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또한 경제의 발전과 함께 해외에 성경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1979년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되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를 향한 문서선교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한국성서공회는 국내와 해외에 성경을 무상으로 공급하기도 하지만, 해마다 100여 개의 언어로 제작된 400-500만 부의 성경을 제작하여 140여 나라에 공급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우리의 과업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성경의 15%를 공급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제작하는 나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이런 좋은 사업을 하는 성서공회를 위해 선교비를 보내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다음 날 다시 모여든 군중들에게 가버나움 회당에서 영적인 오병이어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3-58)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사람의 아들 Son of man]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59~63)하셨습니다. 오늘은 육신의 빵 먹을 기회는 없구나 생각했던지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오직 열 두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고 물으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님, 영생의 말씀(the words of eternal life)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저희들은 당신께서 바로 그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확신합니다” (And we believe and are sure that thou art that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요 6:68-69)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way-yomer Elohim)이라는 말이 모두 10회 나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요한복음서는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계시되어 육신이 되신 사건이 성탄절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의 성육신이십니다. 만물이 말씀으로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요 1:3) 모든 인생도 말씀으로 지어졌기에 말씀으로 양육 받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책이 성경책입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며 말씀을 듣고 전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의 생생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개하게 되고 말씀을 순종하는 지혜를 얻습니다.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우리가 말씀을 대하면 내 자신의 온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내 인격 속에 말씀이 떨어지면 내 부족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서 곧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면서 용서와 긍휼(= 다함없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히 4:14-16). 그래서 성경책은 오늘날 내게 ‘은혜의 보좌’가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탄의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시면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라고 갈파하셨습니다. 40일간 육신의 양식을 굶어도 여전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떡을 먹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속사람 영혼은 영생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먹어야만 참된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1809-65)대통령은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손때 묻은 성경책을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14살 때 계모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 성경책을 어머니로 삼아 읽고 또 읽었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는 성경에서 모든 학문과 경건을 배웠습니다. 그 후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읽고 있던 낡아빠진 조그마한 성경책 위에 손을 얻고 대통령 취임 선서(1860년)를 했습니다. 평소 가장 좋아하던 구절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 34:4) 위에 손을 얹은 것입니다. 그는 남북전쟁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성경을 더 열심히 읽었답니다. 후에 간증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성경이다. 이 성경책으로 인해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내 생애를 바꾸어 놓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곧 성경입니다. 책 중의 책이요, 가장 오래된 책이요, 최후에 남을 마지막 한 권의 책은 성경책입니다. 1912년 4월 14일 당시 최대 호화 여객석 타이태닉 호가 빙산에 충돌하여 4시간 만에 침몰할 때 선실에 선 두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합니다. 한 여인은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여인은 은 보석함을 들고 있더랍니다. 여러분은 이런 급한 위기를 만날 때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변합니다. 세월도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환경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를 담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는 말씀(벧전 1:24-25)처럼 풀이나 꽃의 영광은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잠시만 화려하나 결국 시들고 사라지고 맙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일시적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말씀은 영원히 남습니다. 육체는 무상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영원합니다. 사람의 영광은 허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무궁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격을 온전케 하는 생명의 책입니다. 영생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주님의 따스한 온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터입니다. 샘물처럼 언제나 새롭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영생수가 솟아납니다. 목마른 영혼은 시원함을 얻고, 배고픈 영혼은 배불리 먹고, 외로운 영혼은 다정한 친구를 만납니다. 샘물처럼 언제나 흘러넘칩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해도 영원하신 말씀의 권위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샘물처럼 흐려놓아도 잠시 후에 맑아집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 성경말씀을 읽으면 새 소망과 용기가 넘쳐납니다.
다른 책도 읽어야 하지만 성경은 다독과 정독을 겸해야 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새 맛이 납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될 때까지 읽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말하기를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그리고 샘물이 날 때까지 파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좋아지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03) 에스겔은 소명받을 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하여 두루마리를 먹으니 그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1-3)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통계자료가 일간 신문 <The Times>에 기재된 적이 있습니다. “성경책: 존경은 하나 읽지는 않는 책” (The Bible: Revered and unread)라는 제목입니다. 최근 미국 캘럽 조사(Gallup Poll Survey)의 내용이 미국인 가운데 92%가 적어도 성경을 소유하고 있답니다. 가정에서 평균 3권의 성경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을 읽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첫 권 책이름이 창세기라는 것을 알아맞히는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이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1/3에 불과합니다 (빌리 그래함이 설교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는 대답도 많답니다). 1/4이 부활절이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한 날을 지키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1980년대는 그래도 73%가 성경을 이따금씩 읽는다고 대답했으나, 2000년에는 59%만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2000년 12월 10일 자, The Times, AA1)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죠지 뮐러(George Muller, 1805-1898, 3000명 이상의 고아를 돌봄)는 일생 5만 번 이상 기도응답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성경책도 열심히 읽고 실천한 분입니다. “나는 평생에 성경을 백 회나 통독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싫증이 난 일은 없습니다. 읽을 때마다 힘을 얻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54년간의 경험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어도 처음 3년간 성경을 읽지 아니했습니다. 그때 나는 신자로서의 기쁨도 사명도 느끼지 못한 죽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나는 그 2년 반을 ‘읽어버린 시간’(the lost time)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생활의 활력은 날마다 성경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정비례합니다. 성경 읽기를 일과로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책을 자꾸 읽으라고 권면하니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한 번 읽어보았다거나 다 아는데 무엇 때문에 더 읽느냐고 반문합니다. 소설처럼 기대하고 읽다가 재미없다고 두 번 다시 읽지 않습니다. 몇 해 전 북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어느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 말입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부터 비슷한 내용을 듣습니다. 물론 북한의 지하교회가 있음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귀순자는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70년 동안 예배를 비밀히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리 내서 찬송을 부르지 못합니다. 성경책도 깊이 감추어 두고 있답니다. 그것도 성경을 각 책별로 나누어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귀순할 때까지 이사야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성경을 많이 읽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되면 다른 책을 보관하는 집과 은밀히 만나 교환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기에도 대충 100여 가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나 칠곡교회는 북한이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외부에 보여 주기 위한 전시용으로 주로 공산당에 속해 있는 이들이 100-200여명 모여 예배드리며, 성경이나 찬송가를 절대로 교회당 밖으로 가져 나오지 못하게 한답니다. 당원이 아닌 일반 주민은 여기에 올 생각도 못한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책이 너무 귀하여 애지중지 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지하교회 실정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성경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는 십여 권의 성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책 한 권 한 권을 귀중하게 여기며 읽으십시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성경을 읽으면 그중에 제일 마음에 와닿은 성경 한 구절을 골라서, 적어도 50회 이상 (소의 되새김질은 40회 이상함) 묵상하며 하루를 사십시다.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여 힘차게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책을 읽고 이 말씀을 실천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쓰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들을 때 축복받는 방법으로 챨스 알렌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비평하며 읽지 맙시다. 우리가 바다를 처음 볼 때 그냥 봅니다. 그 속에 염분이 얼마며 수소와 산소의 비율이 어떻게 되고 잔물결과 파도의 차이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바다 전체를 보면서 시원하고 상쾌함을 느끼듯이 성경 속에서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사랑하고 동행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둘째는, 상상해 가며 나를 말씀 속에 넣어 읽어 봅시다. 과거 이스라엘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대입해서 내가 바로 그 현장과 그 시대에 있음을 상상하며 여기서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심정으로 읽자는 것입니다.
셋째로, 헌신적으로 읽으십시오. 성경 속에서 어떤 정보나 지식을 발견하는 측면이 아니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처럼 우리 몸을 던져 읽자는 것입니다. 사도 빌립이 주님께 부탁하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고 하자 주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9)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은 생에 있어서 가장 축복된 순간이 될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 가지로 구별합니다. 성육신 된 말씀 즉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는 기록된 말씀 성경입니다. 셋째로 선포된 말씀 설교입니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설교의 핵심은 항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는 한번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답니다. 자기가 큰 수레를 가지고 그 수레에 자기가 쓴 책 (교회 교의학을 비롯 다수)을 가득 싣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문 앞에 버티고 천국 열쇠를 가진 베드로가 ‘자네는 누구뇨?’하고 묻었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온 칼 바르트입니다’ ‘내가 너를 안다. 들어가라’ 그래서 수레를 끌고 들어가려 하니까 ‘안 된다. 이것을 가지고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랍니다. ‘이것은 내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쓴 책인데요’ ‘그래도 안 돼. 오직 말씀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만일 정 이 책을 가지고 들어가겠다면 너도 못 들어간다’ 여기서 그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 꿈으로 받은 충격을 일생동안 잊지 못하고 살았다고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영생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책을 더욱 사랑하시며 부지런히 듣고 읽고 쓰고 묵상하고 실천하여 매일 생명의 만나를 공급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강림절 계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강해설교말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딤후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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