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3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주셨고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둠들이 이 빛을 보고 숨어버렸습니다. 어둠에 있는 자들의 행위가 빛 가운데서 드러날까 두려워서 더 어둠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둠에 있다가 빛으로 나온 자들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 안에 예수님의 빛이 있습니다. 더 이상 어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하여 영원한 생명만 있습니다. 성도는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요 3:16-21)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서 론
하나님은 심판을 목적하고 역사할 때 인생은 자동적인 두 가지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두 가지 길로 갈라지지 않게 하고 심판을 한다면 심판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함으로써만 당신의 사랑의 뜻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심판의 법을 세우실 적에 택한 자로서의 살길을 열어 주고 심판하는 것을 의로운 심판이라고 한다. 이제 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길이 있다.
1 대지 : 빛이 세상에 왔어도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것은 자동적인 사망의 길이 될 것이다 (9)
왜냐하면 심판이라는 것은 억압적인 심판이 아니고 자기의 무엇을 사랑하는데 따라서 갚아 주기 때문이다.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더 사랑한 자는 자동적으로 어둠의 지옥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 자동적인 의로운 심판이 될 것이다. 만일 빛을 사랑하는 사람을 어두운 데로 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불의가 될 것이다. 심판을 받는 자는 자기가 어둠을 사랑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심판이 될 것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주님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독생자를 주셨는데 나탄이라는 동사이다. 칼 능동태 완료를 사용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완전히 주셨다는 의미다. 이런 독생자를 믿는 자는 멸망받지 않는다.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바드라는 동사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절대 멸망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절대 지옥의 심판이 없다는 뜻이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고 보내셨다. 그런데 어둠에 있는 자들은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구원을 받게 하신다고 했는데 야샤라는 동사이다. 닢알 수동태 미완료를 사용했다. 구원은 능동이 아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능동태로 받으려고 하는 자는 결국 지옥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적 주권이며 수동태이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한 번 구원받은 백성은 영원한 구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말씀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구원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심판을 받았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딘이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로라는 강한 부정 부사를 사용하여 절대 심판이 없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심판이 없다. 영원한 심판이 없다는 것을 미완료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이미 받았다고 했다. 믿지 않는다는 단어가 아만 동사이다. 히필 사역 능동 미완료이다. 주님을 계속해서 자신 스스로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다. 심판을 받은 것은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이미 그 사람은 수동태로 심판을 받고 있다. 단지 자신이 심판을 받고 있는지 깨닫지 못할 뿐이다.
2 대지 : 진리를 좇는 자는 빛을 따라오게 되니 결국은 빛의 광명한 나라를 가게 되는 것이 기독교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말한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했다. 만일 진리를 쫓지 않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해서 그를 구원해 준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의 심판이 될 것이다. 이 진리라는 것은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따라만 오면 살려주마라는 약속의 말씀이 선한 목자 예수님의 진리인 것이다. 진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사 어떻게 구원해 준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진리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언약의 말씀이니 그 말씀을 좇기만 하면 하나님은 진리대로 행하여 주실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악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싫어한다. 자신들의 악이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러날까라는 단어가 야카흐 동사이다. 징계하다, 꾸짖다는 뜻이다. 닢알 수동태 미완료이다. 빛 가운데 드러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꾸짖어 징계한다는 의미다. 모든 악인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도 빠짐없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수동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완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빛 가운데 나오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다. 구원받은 백성도 자범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모두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꺼려한다.
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런데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온다.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하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원죄가 사라졌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로 살아야 한다.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나타내려 한다고 했는데 갈라라는 동사이다. 덮개를 벗기다는 뜻이다. 닢알 수동태 미완료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선행이 모두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간 것들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제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면서 많은 상을 쌓아 놓아야 한다. 주님 안에서 행동한 모든 거룩한 행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 론
하나님은 빛도 어둠도 창조한 것은(사 45:7) 하나님의 공평한 공의의 사랑을 베풀기 위한 방침이다. 왜냐하면 선과 불의를 갈라놓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심판은 사람으로서의 자유를 주는 동시에 결말을 그들의 요구대로 이루어 주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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