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인생의 쾌락도 지혜도 수고도 헛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려보고 나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결국 인생에서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쾌락을 즐기면서 살았지만 허무하고 지혜를 추구하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녔지만 허무하고 열심히 수고스럽게 일하면서 살았지만 허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의 허무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복음을 만나야 하고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썩어질 것에 시간을 쓰면서 인생을 허무하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고 구원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쾌락도 지혜도 수고도 헛됨(전 2:1-26)
[1-11절]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 . . .
전도자는 그 마음에 말하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고 하였으나 보니 이것도 헛되었다. 그는 웃음을 논하여 말하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말하기를 그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다. 그는 그 마음에 연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좋은 것]인지 알까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사업을 크게 하였다. 그는 그를 위해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일나무를 심었으며 나무들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연못을 팠으며 남녀 종들은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다. 또 그는 그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다. 그는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다.
그는 이같이 창성하여 그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그의 지혜도 그에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그의 눈이 원하는 것을 그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그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그가 막지 아니하였다. 이는 그의 모든 수고를 그의 마음이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보니 그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었다.
우리는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살자. 시편 73:25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말한다.
[12-17절]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 . .
전도자는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다”고 말한다. ‘망령됨’이라는 원어(홀렐로스)는 ‘미친 것’이라는 뜻으로(madness)(KJV, NASB, NIV) 전도서에만 나온다(1:17; 2:12; 7:25; 9:3; 10:13). 그는 자신의 뒤에 오는 자도 오래 전의 일을 행한다고 말한다. 즉 자신이 경험하는 바는 후의 사람도 경험하는 바라는 뜻이다.
그는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같고 또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또 그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또 심중에 말하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가 하고 또 심중에 말하기를 이것도 헛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며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라고 말한다.
전도자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싫어하였나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라고 한다.
우리는 일시적인 것, 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에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 시편 90:4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말한다. 인간의 일생은 너무 덧없는 작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4:18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의 지혜를 자랑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지혜자도, 우매자도 다 죽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만 바라며 하나님의 뜻만 행하기를 힘쓰자.
[18-23절]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 . . .
전도자는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싫어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본문에 ‘수고’라는 말이 10번 나온다. 전도자는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를 헛되다고 말한다. 그 까닭은 그가 수고하여 이룬 모든 결과를 그의 뒤에 오는 사람이 누리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많이 수고하지만, 그 결과를 즐기는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라고 말한다. 그 모든 수고가 헛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실망했다는 뜻이다. 또 그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혹은 기술]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고 한다. 사람은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자기가 별로 쓰지 못하고 다음 사람에게 유업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것이 수고한 당사자에게 헛되고 큰 해가 되는 일이라고 한다.
전도자는 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모세의 고백처럼, 사람은 70, 80년의 일생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이다(시 90:10).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는 다 헛되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데 있다(전 12:13). 이것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요 6:27)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의와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
[24-26절]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 . . .
전도자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토브 ‘좋은 것,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쾌락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는 육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싹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가시덤불에 비유하셨고(눅 8:14), 어리석은 농부처럼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하셨다(눅 12:19). 또 사도 바울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생각을 정죄했고(고전 15:32), 또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한다”고 말했고(고전 6:13), 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색욕을 좇지 말라”고 말했고(살전 4: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다(갈 5:24).
본문이 말하는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즐거움이다(3:13; 5:18; 8:15). 그것은 절기 때에 레위인들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 즐거움이며(신 16:11)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우리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즐거움이다(딤전 6:17). 그것은 합법적 즐거움이다. 전도자는 이 즐거움을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선한]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착한 성도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복으로 주신다.
기독교는 쾌락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고 선하게 살면서 감사히 누릴 수 있다. 단지 너무 육신적 쾌락에 빠져서는 안 되며 물론 죄악 된 것은 안 된다.
[데살로니가전서 강해설교말씀] 모범적인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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