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39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요셉의 생애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셉의 생애(창 39:9-18)
전도서 7장 14절 말씀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라고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여정에는 순경의 때와 역경의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요셉의 일생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요셉의 일생에는 세 번에 걸친 위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광야에서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십일 년 동안 노예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며, 둘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집요하게 그를 유혹해 올 때 그녀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칠 년 동안 애굽에 임한 극심한 기근과 가난 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감당해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번의 역경 속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름 아닌 '유혹'이라는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환란과 고통 때문에 넘어지기보다는 유혹 때문에 이 세상에서 쓰러지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에 이끌려 먼저 광야로 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광야에서 사단은 세 가지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 사단은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라고 했으며 둘째,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사단은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네가 만일 내게 한 번만 경배하고 절을 하면 이 모든 세상의 것은 네게 줄 것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셨던 이 장면을 주목해 볼 때 우리는 마귀의 시험이 결단코 강압적인 음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의 음성은 부드럽고 달콤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유혹도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무서운 것입니다. 유혹은 은혜받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언젠가 "빛과 소금이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그리스도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첫 번째로 가장 많이 유혹받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는 물질적인 유혹으로 나타났으며 두 번째는 명예의 유혹, 세 번째는 주일성수, 네 번째는 이성에 대한 정욕에 문제, 다섯 번째는 음주와 흡연의 유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통계를 참고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유혹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받는 유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가장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힘든 까닭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는 사람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의 청년 요셉은 진실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생애에 있어 그가 총리대신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오랜 기근의 시련을 잘 극복한 것보다는 29세 나이에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집요하고도 끈질긴 유혹을 받았을 때 자기의 신앙과 윤리의 정조를 잘 지켜 유혹을 물리친 그 사건이 더 위대하고 훌륭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만약 이 유혹에 실패했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오랜 기근에서 구해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마귀는 본래의 뜻이 "유혹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보지 못할 정도로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창 37:2). 또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였습니다(창 39:2). 그러나 이렇게 성결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그 삶을 형통하게 한 사람에게도 유혹은 찾아왔습니다.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요셉에게 닥친 시험은 집요하고도 끊임없는 유혹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은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참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라고 하였으며, 12절 말씀은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참하지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라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많은 부분은 성문제를 통해서 오게 되는데 요셉과 같이 신앙생활 잘하고 정결한 사람도 이성문제에 직면해 넘어질 위기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으로 정욕의 유혹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유혹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요셉은 유혹을 거절하였습니다. (창 39:8). 둘째, 유혹의 자리에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 39:10). 세 번째로 요셉은 직면한 유혹에서 적극적으로 도망하였습니다. 환난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나에게 찾아올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서 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되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22절에서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유혹은 믿음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은 "믿음으로 요셉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시는 다음 세 가지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 있으면 자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에서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라는, '나'라는 자아의식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요셉이 말한 '내가'라는 고백 뒤에는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고 약속의 말씀을 받은 믿음의 아들이라는 자아의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창 25:23, 33:5, 37:7, 9).
여러분 이처럼 '내가 누구인가?'모태에서 택정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자아의식이 신앙으로 정립되면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의 선각자인 주기철 목사님은 "내가 넘어지면 한국교회가 무너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넘어지면 여러분이 속한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믿음이 있으면 죄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라는 말씀에서 이 '악'이라는 말은 '파멸시킨다'는 뜻의 '라아라'에서 왔는데 이것은 불법을 말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불법인 것입니다. 성경은 불법이 죄라고 단호히 말씀합니다. 칼빈은 죄를 짓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죄의식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대인의 문제는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죽어서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오면 쓰러집니다.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의식이 생깁니다.
본문 9절의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라는 말씀에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엘로힘'이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엘로힘'의 하나님을 부른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당면한 유혹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을 참 의지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며 엘로힘의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식'인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를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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