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호세아 4장 복음 성경말씀] 이스라엘의 죄악(호 4:1-5)

기혼샘 2022. 12. 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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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4장에서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선포한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했다. 하나님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성도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복음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멸망받지 않는 길은 예수님을 아는 길 밖에는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

 

이스라엘의 죄악(호 4:1-5)

 

본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진다.

Ⅰ. 법정이 개설되고 방청과 주의가 요구된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는 너희가 들으려고 하든지 않든지 간에 너희에게 이런 유죄 선고가 내려진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에게서 경고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실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이스라엘 자손 외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실 때 그들은 기꺼이 들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쟁변 하실 때 그들은 즐겨 들으려 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질책하시고 고발하실 때 그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여호와께서 이 땅 곧 이 거룩한 땅의 거민과 쟁변 하신다." 죄는 큰 이간꾼이란 점을 명심하자. 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불화를 심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서 죄를 발견하시고 그 때문에 그들을 고발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다 특수한 몇 가지 혐의 사실이 있다. 이것은 다른 죄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가 그들과 쟁변 하시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 수치를 돌려 드리고 그의 은총을 배은망덕하게 갚은 데 대해 변론하신다. 하나님의 쟁론은 그들이 하나님의 손의 심판으로 정죄되기 전에 그 입의 심판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행동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으시고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변론은 경청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의 쟁변은 조만간에 들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Ⅱ. 기소장이 낭독된다. 이 기소장으로 전 민족이 극악의 혐의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크게 노여워하신다.

1. 그들은 국가적으로 극히 중요한 의무를 태만히 하였다.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다. 그들에게는 자선도 정의도 없다." 이런 것들은 우리 구주께서 의와 신과 인이라고 표현하듯(마 23:23), 율법의 극히 중한 것이었다. 백성 전체가 소위 정직이라는 것 따위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과 행실이 아무리 진실에 위배되고 자기 이웃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하물며 자비에 대한 인식이나 빈자에게 대한 측은지심과 구제의 의무야 말해 무엇하랴! 그 땅에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진실과 인애가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는 곳에서 어떤 선을 기대할 수 있으랴?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알려지고 그의 이름이 그곳에서 크다는 것은 그 땅의 특권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시 76:1).

2. 여기에는 십계명에 대한 극악한 국민적 죄가 잇달아 나온다. 그들은 십계명의 두 율법판을 전혀 중시하지 않았다. 맹세(한글 개역 성서:저주)와 거짓말(사위)과 살인과 도둑질(2절)과 간음은 각각 3 계명, 9 계명, 6 계명, 8 계명, 7 계명의 위반이었고 이런 죄는 전국 방방곡곡과 온갖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죄였다(2절). 부패는 그 땅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은 없어지거나 숨기웠다. 또는 선량한 사람은 스스로 숨거나 했다. 그들은 이들 죄로써 파괴하였다(강포 했다). 즉 그들은 이성과 양심과 신적 법의 모든 영역을 범하였다. 그들은 심히 악했고 지나치게 악인이 되었다(전 7:17). 그들은 자기들의 부패가 밖으로 나오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자기 길에 걸리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파괴하며 돌파하고 물이 둑 위에 넘치듯 죄의 편력 가운데서 그들을 제지시키려고 했다. 죄는 격렬한 것이며 그 위세가 엄청나다는 데 주목하자. 인생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할 때(전 8:11) 무엇으로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하리요? (창 11:6) 그들이 이처럼 강포 할 때 피는 피를 따른다. 즉 전국 각처에서 끊임없이 늘 많은 살인이 자행된다. 살인이 살인을 뒤따른다. 그들 사이에는 심지어 왕국 간에도 유혈이 임리한다. 왕권을 장악하느라고 그토록 많은 유혈사태를 빚은 것도 이때였다. 살룸이 스가랴를 시해하고 므나헴은 살룸을, 베가는 브가야를, 호세아는 베가를 살해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유혈극은 아마 다른 분쟁자들 사이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땅은 피로 더러워졌다(시 106:38). 무죄한 자의 피는 예루살렘 이쪽 가에서 저쪽 가까지 가득하였다(왕하 21:16).

Ⅲ. 이 죄와 오염된 땅에 내려진 판결(3절). 그 땅은 완전히 멸망하여 황폐될 것이다. 전 국토는 죄에 감염되었다. 그러므로 온 땅이 하나님의 쓰라린 심판 아래서 슬퍼할 것이며 그 모든 재물과 아름다움을 박탈당하여 애곡 속에 앉게 될 것이다. 풍요와 평화가 있을 때는 골짜기가 기뻐 소리치며 노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전쟁과 기근으로 황량하게 되어 슬퍼한다고 한다. 율법에서 위협되었듯이(신 29:23)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불에 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어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들의 모든 위로를 빼앗아 버리겠다고 위협하신다. 소떼가 먹을 풀이 없고 사람에게 소용되는 식물이 없을 때 땅은 슬퍼한다. 그리고 무릇 거기 거하는 자가 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좋은 음식의 부족으로 쇠잔할 것이며 기쁨을 주는 맛난 음식의 결핍으로 안달이 날 것이다. 들짐승도 곤비할 것이다(렘 14:5, 6). 아니, 땅의 열매의 멸망이 너무나 커서 공중의 새도 주워 먹고살 것이 없을 정도이다. 조류는 사람이 함께 고난을 당할 것이어서 그들의 사멸이나 수척은 야생 조류로 식탁을 풍족히 꾸미던 자들에게는 형벌이 될 것이다. 아니,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거나 한 데 모일 것이다. 즉 고기가 떼를 지어 다른 해안으로 사라지며 따라서 어업은 극심한 흉어로 보잘것없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황폐는 노아의 홍수 때보다 더 전반적인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가 바다의 고기한테는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물고기를 죽이신 것은 애굽의 재앙 중 하나였다(시 105:29). 물이 마를 때 고기는 죽는다(사 50:2; 습 1:2, 3).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때 하등 동물이 인간에게 소용없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을 유의하자. 우리는 우리 땅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찬양할 만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 땅에서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이 그토록 많지만 우리 식탁에는 육류와 생선과 조류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Ⅳ. 정죄받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 어떤 수고도 하지 말라는 법정 명령이 내려진다. 이 명령에 대한 이유도 제시되고 있는데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명령 자체(4절).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그들을 환원시키거나 순화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의 의원으로 하여금 그들을 치료 불가능한 절망자로 포기케 하라." 이것은 역설적으로 희망이 있는 한 우리가 죄인의 죄에 대해 그들을 꾸짖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책망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이다. "너는 네 이웃을 반듯이 책선 하라" (레 19:17)는 것은 모세 율법 중 하나였다. 그것은 형제애의 한 본보기이다. 인간은 자기 죄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존재이므로 때로는 신랄하게 책망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툴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지도 말라" 고 하실 때에는 그 사람들을 멸망받도록 포기한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선지자에게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지 말라" 고 하시는 명령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런 명령을 내리신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그들이 죄 가운데서 너무나 완악해져서 멸망에 합당하게 무르익었으므로 그들과 관계하거나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진정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책망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 시대의 죄를 쳐서 증언해야 할 자들이 귀퉁이로 물러나 주장을 포기할 때는 그것이 백성들에게 흉한 징조가 된다(대하 25:16 참조).

2. 이 명령의 이유. 상호 책망 금지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죄 가운데 계속 행하기로 결심하고 있어서 어떤 책망도 그들의 죄를 치료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같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은 죄 중에서 너무나 뻔뻔스럽고 무례하게 되어 책망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이 조금만 제지해도 그의 특수성과 직분을 전혀 존중치 않고 그에게 덤벼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일반 개인에게서 책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기들에게 신실히 관계한다고 하여 목사들과 언쟁을 벌이는 죄인은 자기 마음을 악하고 강퍅케 한다. 목사의 책망은 교인을 개혁하기 위한 하나님의 규례이다. 이런 책망에 반발하는 자는 형제적 책망의 혜택도 상실한 자이다. 이것은 아마 유다 왕 요아스의 악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친 그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다(대하 24:21). 스가랴는 제사장이었다. 그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직분을 이행하던 때 그들은 그와 다투었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호세아가 피를 따르는 피 이야기(2절)를 할 때는 바로 스가랴의 경우를 지목한다고 생각한다. 제사드리는 자의 피가 제물의 피와 뒤섞였다는 것은 그들의 악의 절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다는 것이 그들을 고칠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듯이 그들의 파멸은 스가랴의 피까지 소급하는 것이었다(마 23:3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을 책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2) 하나님도 그들의 파멸을 진행시키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이다(5절). "그러므로, 즉 네가 어떤 책망도,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너는 거칠 것이다. 누가 그것을 방지하려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명령이 이미 발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낮에 거쳐서 넘어질 것이며 선지자 즉 네게 아첨하고 꾀던 선지자는 밤에 너와 함께 거치리라. 너와 네 선지자는 밤낮으로 넘어질 것이며 끊임없이 이런저런 재난에 빠질 것이다. 밤의 어두움도 너를 환난에서 엄폐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낮의 빛도 네가 곤란에서 도피하는 것을 도우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들은 눈먼 인도자들이며 백성은 눈먼 추종자들이다. 눈 먼 자에게는 낮과 밤이 마찬가지이다. 낮이든 밤이든 그들 두 부류는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너는 네 실족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무척 안심할 낮에 거치리라(원의:넘어지리라). 남들의 눈에 보이고 관찰되는 낮에 너는 엎어질 것이며 그것은 극히 큰 수치가 될 것이다. 선지자는 밤에 엎어질 것이다. 즉 그 자신에게는 실족이 극히 두려울 밤에 거칠 것이다." 타인의 파멸을 도운 자들은 파멸을 당할 것이며 그 파멸은 특별히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자녀들은 자기들이 넘어질 위험에 빠져 있을 때 그 어머니가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는가? 그런 기대는 무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 어미를 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어미 성이었고 완전한 나라였다. 그것은 각 지역에게 어머니 같았다. 그것은 모두 잠잠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죄에 연루될 때에는 모두가 멸망에 연루되는 것밖에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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