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인물 성경공부자료 중에서 심리학 관점에서 본 성경인물 분석 자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인물을 통해서 우리의 거울로 비치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통해서 상담학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심리학 관점에서 본 성경인물 분석 자료
1. 모세에 대한 새로운 이해
누구라도 어렸을 적에는 혹시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모세도 “물에서 데려온 ”입양아였다. 바로의 공주는 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을까? 이는 그 이름에서 이미 입양아 임을 공주가 밝히고 있고 장차 모세가 자신의 뿌리를 깨닫기가 쉽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그 아리를 발견하면서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출 2:6)라고 외친 것만 보아도 또 히브리인 유모를 구한 것도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의 의식 속에 자신을 낳아주고 또한 젖을 먹여준 생모 요게벳과 자신을 이집트 왕실에서 훌륭하게 키워준 양모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을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가 생모가 아닌 양모가 붙여준 이름으로 평생을 산 것을 보면 그에게 양모의 사랑이 적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준수하고 범상치 않게 생긴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로 젖을 먹이던 생모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하여 수없이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누구라도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이와 같이 양(兩)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모세는 자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민족에 대한 정체감 종교에 대한 정체감 그리고 자신이 왜 나일강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자랐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외면적으로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왕자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이집트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당당하게 살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도니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바로 자신의 동족임을 알고 갈등과 아울러 열등감을 느끼며 성장했을 것이다. 만약 이집트 왕실이 그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대권에 자리에 오를 수 없을 것이라는 “소수민족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것이요, 몰랐다면 그는 평생 동안 그는 그의 신분이 탄로 날까 두려워하며 보내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결국엔 히브리인의 아이덴티티를 택함으로 상황은 달라지게 되고 문제가 발생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십 세가 되어 그가 광야로 망명하여 갈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배경도 두 어머니, 두 민족, 두 종교, 두 문화 등의 갈등이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그가 히브리인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기로 결정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히브리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자라오는 중에 많이 억압됐을 것이다. 흔히 미국 이민 1.5세를 우리가 한국계-미국인으로 부르듯이 모세는 히브리계-이집트인이었던 것이다. 에릭 에리슨의 발달 심리학적 단계에서 본다면 출생 후 3개월은 여전히 부모와의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였다.
그때 아이가 받아야 했던 거절감과 버려짐은 평생 동안 모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유기감”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정신적 외상 경험”을 당하게 하였고 실제로 바로의 공주가 그것을 발견하였을 때 아이는 갈대상자 안에서 “울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무의식은 그를 주저함과 저돌성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민 12:3, 출 32:19-20, 민 20:1-13 참조, 출 32:32) 그리고 40년 광야의 방황은 그의 “기(氣)” 가 꺾인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그에게서 나타났던 편집증, 그리고 피해망상증의 행동유형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출 4:19)라고 하시며 모세의 심중을 헤아리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광야 40년의 삶 속에서 그는 꿈 좌절로 오는 무력감 그리고 상실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쉽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출 4:13) 오히려 자기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원망한다.(출 3:11)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를 치유하신다. 그래서 상처와 고통, 좌절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생을 마치게 하시는 것이다.
2. 평화주의자 이삭, 그리고 미식가
이삭은 성인아이였다고 보인다. 하나님이 이름을 직접 주어주신 이삭은 나름대로의 신적 소명이 그에게 각인되었다. 또한 외동아들이자 맏아들로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듬뿍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늦둥이로서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아브라함과 사라는 부모라는 이미지보다 엄격한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젊은 어머니에게서 얻을 수 있는 사랑을 그리워하며 자란 성인아이였다. 이러한 가정의 역기능과 아울러 발달단계에 어울리게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고 무거운 역사적인 사명감과 장남이자 외아들로서 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을 받으며 아이로서 늘 성인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 기억은 그가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던 모리아의 한 산에서 있었던 충격이었다. 그를 불시에 결박하고 죽이려 하였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린 아이로는 감당키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의학적 용어로는 정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불리는 증후군을 그는 아마도 그의 인생 여정에서 가끔씩 경험했을 것이다. 장작 단위에서 아버지로 받았던 유기감, 배신감, 충격감, 공포감, 절망감, 무력감, 분노감, 고독감은 그의 일생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로 인해 이삭은 일생을 자신 있게, 그리고 소신 있게 행동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의식하고 수동적인 행동을 주로 취하게 되는 성품으로 비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수동적인 이삭에게 시집온 리브가는 심히 아리따울 뿐만 아니라(창 24:16) 보다 적극적인 성품을 지닌 여인이었다. 리브가는 이삭과는 대조적으로 “자아의 분화”(Differentitation of Self)가 잘된 처녀였다. 리브가의 부모는 그녀를 적어도 그들과 함께 열흘 정도 더 머무르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그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서 “가겠노라”라고 대답할 정도로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적극적인 여인이었다.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기 전 이미 3년 전에 “주요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잃어버린 이삭으로서는 리브가가 엄청난 위로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창 24:67).
하지만 이렇듯 사랑하는 두 부부 사이에도 그토록 기다렸건만 약 이십 년간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없어도 이삭은 바람피울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 리브가의 파워 앞에 수동적인 성품의 이삭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삭은 일평생 후처가 없이 일부일처로 만족한다. 이삭은 자녀 갖기를 기도하였고 리브가가 잉태하는 축복을 받으면서 부부간의 갈등은 끝을 맺는다(창 25:21).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아이들은 쌍둥이였고 배가 불러오면서 어머니는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가운데 리브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태어난 쌍둥이는 여성적인 아들 야곱은 남성 성향의 어머니와 손을 잡고 남성 성향의 아들 에서는 여성 성향의 아버지와 손을 잡아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진정한 가정의 연합이 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그들 부부 사이에 올바른 의사소통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어스-브릭스 인성 유형들의 분류에 따르면 이삭의 인성 유형은 “내향적-직관적-감정적-인식적”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데,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할 정도로 흔치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열중하며 다른 것을 관심 두지 않고 평탄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삭은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갈등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종들이 판 우물을 포기하고 딴 우물을 팠고, 도 그 우물을 메우면 다른 우물을 팠다. 그는 무저항적인 평화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삭의 행동유형이 나타난 원인은 그의 소년 시절의 경험에서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3. 경쟁의 사람 야곱가(家)에 계속된 속임의 사건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초청 비자를 받아 풍요의 나라 애굽에 도착한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그의 삶을 표현했던 말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의미 있게 요약하고 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10) 야곱의 삶의 역사는 창세기 25장에서 마지막 장인 50장까지에 걸쳐서 나타날 정도로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출생,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챔, 외삼촌 집으로의 피난, 레아와 라헬과의 결혼, 귀향, 얍복 나루 근처의 레슬링, 그리고 에서와의 만남, 디나의 강간 사건, 요셉의 상실, 요셉과의 해후, 애굽에서의 죽음으로 도식화해볼 수 있다. 다른 성경 인물들에 비하여 그의 삶의 전반에 대한 언급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특징 지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competition, rivalry)을 맨 먼저 지적할 수 있겠다.
성경인물 중 유일하게 쌍둥이로 출생했던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태중의 아이들이 왜 싸우는지를 하나님께 물어볼 만큼 경쟁적인 삶을 살았다.(창 25:23) 배속에서도 경쟁하던 야곱은 형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간발의 차이로 동생이 되었고 이란성 쌍둥이인 이들 형제들은 평생을 경쟁하면서 살게 된다. 야곱은 어머니와 손잡고 있던 관계로 어머니의 기지로 형 에서와의 경쟁에서 결국 이기게 되는데 그 일로 그는 형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삼촌의 집에서 공교롭게도 레아와 라헬은 야곱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야곱은 네 명의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했다. 라헬이 한 말”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경쟁은 드러난다. 레아와 라헬 사이의 경쟁은 결국 그의 자녀세대에도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데 이는 그가 각기 다른 어머니로부터 많은 자식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야곱의 경쟁심리 밑에 깔린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에서의 “주어진” 권리와는 달리 야곱은 “획득하며” “노력해야 하며” 심지어 “속이기”까지 해야 얻을 수 있는 그의 차남 된 환경이 그를 경쟁의 심리로 이끌었을 것이며 그것이 또한 그의 성품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유형은 ‘지위 추구형’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대형교회 일등 교회의 경쟁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목사들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경쟁의 사람이었던 야곱은 일평생 이민자와 나그네로 살아야 했다. 형에서의 위협 앞에서 야곱은 어릴 적부터 사랑해주던 어머니 리브가를 떠나가야 했던 야곱은 일생을 어머니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사로 잡히게 했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라헬에 대한 에로스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살아나 칠 년간의 봉사를 수일 같이 여기게 하였을 것이다.
무려 21년간을 봉사하던 야곱이 결국 라반의 집을 떠나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 오지만 그의 진정한 자아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과거 미해결의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그를 얍복 나루터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붙들어 매었던 것이다.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하여 타인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어 왔던 야곱에게는 외부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하는 거짓된 자아(야곱)를 탈피하고 새로운 자아(이스라엘)를 발견하는 시점 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부르짖는 기도(창 32:9-10)는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얻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린 결과 그는 그는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도니다. 그리고 이방 신상과 의복을 새롭게 하는 결단을 나타낸다.(창 35:3) 그리고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뒤에도 그는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그가 뿌린 씨앗의 결과들이었다. 특히 요셉의 사건은 그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다. 특히 그는 라헬의 자식이었기에.
4. 일그러진 영웅 사울
사울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는 어는 누구도 예기치 못하였다. 사사시대가 막을 내리고 왕을 뽑아야 할 시기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 중에 제비뽑기를 통하여 사울을 얻게 된다. 사울은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이었다. 소수층이었던 관계로 그는 콤플렉스가 있었다(삼상 9:21).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사울이 왕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기하지 못했다. 사사 통치시대 혹은 신경 시대가 사무엘의 아들들의 방종함으로 막을 내리면서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막을 열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첫 왕으로 왕위에 오를 것인지에 대하여 흥분감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에서 어느 지파 출신이 첫 왕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역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지방 사람들이 여러모로 혜택을 입는 것을 보아왔다. 사울이 왕이 될 당시에도 각 지파에서는 자기 지파 출신이 왕위에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틀림없이 기대하였울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제비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던 사울에게로 돌아갔다.
물론 제비뽑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미 사울을 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셨지만, 제비뽑기 작업을 통하여 공적으로 인준을 받도록 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막내였고 따라서 베냐민 지파는 열두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미약하며 다른 지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소수층” (minority)이었다.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한 말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삼상 9:21)에서도 그의 정확한 자기 인식과 극치의 겸손의 태도와 아울러 베냐민 지파에 속한 그의 콤플렉스 가 아울러 드러나고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선택 방법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방법이었다.
사울은 폭군적인 리더였다.
리챠드 로어 (Richard Rohr)와 안드레아스 에버트 (Andreas Ebert)는 그들의 책 아홉 유형 그림을 발견하기 Discouering the Enneagram (New York;Crossroad, 1993)에서 사울의 인격 유형을 제8형(Type Eight)으로 분류하는데, 돈 리소 (Don Riso)는 제8형의 사람을 “리더”로 총칭하여 부르면서 “강력하며-확장적이며-폭군적이며-파괴적인 사람” (The Powerful-Expensive-Dictatorial-Destructive Person)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이 건강치 못한 쪽으로 발전하게 되면 어떤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려고 하며, 아주 잔인하며,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무자비한 사람이 된다고 리소는 말한다. 또한 그 사람은 전제 폭군적이 되고, 서서히 과대망상광(megalomania)이 되어 전능하다고 느끼며,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더 나아간 그는 점점 무모하게 되며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면 그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것을 잔혹하게 파괴시키게 된다. 제8형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병리성에 대한 리소의 묘사가 사울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놀랄 정도이다. 리챠드 로어는 다윗도 제8형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데, 다윗은 제8형의 건강하고 기능적인 면들을 갖춘 “훌륭한 리더”였던 반면에 사울은 “일그러져갔던 영웅”이었다.
5. 삼손의 ‘금지된 장난’ 이야기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인문들 중에는 삼손과 그의 초인간적인 능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그에게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났으며 만약 그가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올림픽에서 역도부 분과 레슬링 부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을 것이다. 삼손과 역으로 대조되는 인물을 신약에서 찾아본다면 거라사인의 귀신 들린 청년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는 군대 귀신의 통제로 인하여 초인적인 능력으로써 쇠고랑을 깨트리기까지 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삼손은 블레셋의 압정 하에서 살아가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던져준 사람이었으면 영웅으로 기억되었던 사람이었다.
나실인으로서 구분된 삶을 강요받은 삼손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의 통치 하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불행한 시기에 태어났다. 그는 독립국가의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없었으며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자율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특별한 기대감 속에서 단 지파에 속한 마노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랫동안 아기가 없던 차에 천사가 나타나 임신을 알리고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전달로 인한 평생을 부모의 기대 속에 자랐을 것이다. 마치 목회자의 자녀들이 “작은 목회자”처럼 기대감과 시선 속에 살아야 하듯이 말이다. 이로 인해 “어른애”로서 자라게 된 것이 후일 여성편력으로 나타났다고 보인다.
아홉 유형도에 따르면 삼손은 제8유형인 “리더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하여 모험을 좋아하며 도전을 좋아한다고 한다. 에릭 에리슨이 말한 “진취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탐욕으로 발전하여 파멸을 자초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삼손은 판단력이 흐려져 속임수에 넘어가 두 눈이 다 뽑히나 다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일군으로 일생을 마친다.
6. 쓰라린 상실감을 극복한 나오미
여느 가정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키우며 정착하고 살아가던 한 여인 나오미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쳐왔다. 떡집이라고 지칭되던 베들레헴에도 어김없이 흉년이 찾아왔다. 이로 말미암아 정든 고향을 버리고 모압으로 갔던 나오미는 그곳에서 두 아들을 장가보내게 된다. 그 지역의 이민자로서 소수민족으로 살던 그녀가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발생했으니 사랑하던 그의 두 아들이 자부들만 남겨두고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뿐 아니라 그의 두 아들은 손자도 낳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있는 두 며느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민간 지 약 10년 만에 본국으로 역이민을 돌아오는 나오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다행히 그녀의 며느리 중 하나인 모압 여인 룻의 동행으로 일말 위로는 되었겠지만 그녀가 가진 상실감을 무엇으로 메꿀 수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상실감을 이기고 새로운 가문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7. 분리불안을 경험했던 사무엘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할 때 여러 가지의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그 삶의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사건들이 그 사람에게 미친 영향들을 통하여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사무엘의 삶을 살펴본다면 첫째, 사건은 독특한 출생 방법과 둘째는 젖 뗀 후에 어머니와 헤어진 것이다. 다음에 실로에 있는 성소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은 것이고 그다음 사건은 자신을 키워준 엘리 제사장의 죽음과 그의 두 아들들의 죽음,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미스바의 회개 건, 두 아들들의 부정부패, 백성들이 왕을 구한 사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건, 사울의 타락, 그리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건을 중요한 삶의 사건들로 지적할 수 있다.
이 사건들이 사무엘에게 끼쳤던 영향들을 다 언급하지는 않고 주목할 만한 부분들만 보아도 이렇게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현대적인 가족이해의 관점에서 볼 때 사무엘은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배다른 형제자매들이 여럿이 있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고 아마도 아버지 엘가나는 후처로서 브닌나를 연상케 할 만큼 브닌나를 얻은 것 같다. 마치 아브라함의 가정의 하갈이 사라를 무시하던 모습을 연상케 할 만큼 브닌나는 한나를 격동케 하며 언어적 폭력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알력 속에서 어린 사무엘은 태어난다. 그러다가 젖뗄무렵 들어간 성소도 엘리라는 가정의 역기능이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사무엘을 분리불안을 겪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8. 서자 콤플렉스를 극복한 입다.
현대의 가정의 틀로 이해할 때 입다가 성장한 가정은 최소한 어머니가 둘이 있는 역기능적인 가정이었다. 입다의 아버지 길르앗은 지방의 이름을 딴 지방유지였던 것 같다. 길르앗은 일시적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지속적인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본처 외에 한 창녀와 성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입다가 아마도 원치 않게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입다는 창녀라는 기구한 삶의 역사를 가진 한 여성의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나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를 “역기능적인 성인아이”로 자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의 아픈 상처를 극복하였다.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9. 씨받이 여인 하갈의 상처
성경의 하갈은 이집트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아마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얻은 종인 것 같다. 그녀가 아브라함의 씨받이 된 것은 사라의 천거 때문이었다.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러던 그녀가 임신을 하자 라이벌 의식이 발생하고 결국은 사라의 미움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약간의 양식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가지고 갔던 것이 다 떨어지자 그는 울면서 흐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났고 그분에게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은 이처럼 상처뿐인 여인에게도 은총을 베푸셨다. 그녀가 약속의 자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외에도 한 많은 인생살이를 경험한 롯 그리고 관계중독으로 고통받은 수가성의 여인 또 대통령의 아들을 연상케 하는 왕의 아들 압살롬 등의 이야기는 실제 목회 일선에서 사람들을 다루어야 하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목회의 대상인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심리학적인 이해가 미흡한데 이관직 교수의 이러한 글은 사실 신선한 감을 넘어 많은 도전을 준다. 정말 이렇게 하면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겠구나를 넘어 우리가 목회를 너무 무지하게 하고 있구나를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심리학적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거라사의 광인은 흔히 우리가 귀신 들린 자로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은 자아능력을 상실하여 병리적인 현상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채로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주님은 이 청년도 치료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목회하면서 이렇듯 고통받는 한 마리의 양에게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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