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누가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예수님의 나병환자 치유 사건(눅 5:12-16)

기혼샘 2021. 5. 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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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예수님의 나병환자 치유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한 동네에 계시는 나병에 걸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리고 나병이 깨끗하게 고침 받은 것에 대해서 입증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나병과 같은 원죄의 병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주님은 보혈로 깨끗하게 씻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병 환자의 치유 사건을 통해서 나도 영적으로 이런 더러운 질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나병환자의 치유 사건(눅 5:12-16)

 

12절 카이 에게네토 엔 토 에이나이 아우톤 엔 미아 톤 폴레온 카이 이두 아네르 플레레스 레프라스 카이 이돈 톤 이에순 페손 에피 프로소폰 에데에데 아우투 레곤 퀴리에 에안 델레스 뒤나사이 메 카다리사이

눅 5: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5:12

온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 - 구약에서 문둥병은 오늘날 정확한 의학 용어로 '한센 씨 병'(Hansens Disease)이라 불리는 질병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인 피부병을 모두 포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13:1-59). 문둥병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에 문둥병자들은 육체적, 사회적 및 심리적으로 격리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레위기 13장에는 피부병의 일곱 가지 증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문둥병자들은 의식상(儀式上) 부정하였므로 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정하다' 소리쳐야 했고, 동리 밖에 격리되어 살아야 했다.

랍비들은 문둥병자가 치유받는 일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여겼다. 만일 문둥병자가 깨끗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희생 제물을 바친 후 정상적인 사회로 복귀되었다(14:1-32). 한편 '온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a man came along who was covered with leprosy, NIV)이라는 누가의 표현은 의사로서 병의 특성과 범위에 대하여 세심히 관찰하여 기록했음을 보여준다.

원하시면 - 이 문둥병자 역시 문둥병의 불치성(不治性)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더럽고 부정한 문둥병을 치료하실 의사(意思)가 있으실까'하고 다소 의구심을 지녔던 듯하다. 즉 이 문둥병자는 주께서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은 믿고 있었으나 병을 고칠 의사가 있는지를 몰라 의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문둥병자의 의심을 일순간에 종결시키신다.

13절 카이 에크테이나스 텐 케이라 헵사토 아우투 에이폰 델로 카다리스데티 카이 유데오스 헤 레프라 아펠덴 아프 아우투

눅 5: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5:13

손을 내밀어 - 문둥병자는 언제나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여 특별히 격리되어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예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댄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후에 예수께서는 관()을 만지기도 하셨는데(7:14) 이것 또한 의식적(式的)으로 금지된 행동이었다. 이처럼 예수께서 문둥병자를 손수 만지신 것은 단순한 관심의 차원을 넘어 고통받는 이의 추하고도 뼈아픈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시는 구세주의 크신 긍휼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여기서 또한 중요한 것은 사회와 격리되어 폐쇄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부정한 문둥병자와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인 예수 자신과의 사이에 막혀 있던 장벽을 예수께서 무너뜨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릇된 통념(通念)과 잘못된 전통들을 뒤엎어 그릇된 것을 바로 잡고 막힌 것을 허시고 끊어진 것을 이어 하나가 되게 하신다.

14절 카이 아우토스 파렝게일렌 아우토 메데니 에이페인 알라 아펠돈 데익손 세아우톤 토 히에레이 카이 프로세넹케 페리 투 카다리스무 수 카도스 프로세탁센 모세스 에이스 마르튀리온 아우토이스

눅 5: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5:14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 예수의 명령은 4:41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공식적으로 선포되기 전에 먼저 메시아로서 할 일을 하고 '희생적 고난'이라는 그의 기본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했다. 문둥병자들을 고치는 일은 감옥에서 세례 요한이 상기(想起) 받은 바도 있는(7:22) 메시아적 표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이 백성들 사이에 알려지는 것을 경계하신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예수의 이러한 기적적 행동들을 보고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내세우는 것을 방지하시기 위함인 것 같다.

제사장에게... 보이고 - 깨끗함을 받은 문둥병자가 자기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는 것은 레위기 4장에 규정된 의식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문둥병자를 치료한 예수의 메시아적 행동이 '저희에게 증거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처럼 명약 관화 한 메시아적 권능을 보고서도 예수를 영접하기는커녕 도리어 핍박함으로써, 그 완악 성을 그대로 드러내었던 것이다.

15절 디에르케토 데 말론 호 로고스 페리 아우투 카이 쉬네르콘토 오클로이 폴로이 아쿠에인 카이 데라퓨스다이 휘프 아우투 아포 톤 아스데네이온 아우톤

눅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 예수의 함구령이 복음서에 자주 나타나는 것과 함께 사람들이 그 함구령을 위반하는 사례도 자주 나타난다. 실로 문둥병은 완쾌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료를 포기하고 스스로 죽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그 질병이 치료되었다는 것은 만성 고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곧 복음이었다. 한편 누가는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몰려왔다고 강조한다. 마샬(Marshall)은 이것을 누가가 예수의 선포 활동을 치유 활동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16절 아우토스 데 엔 휘포코론 엔 타이스 에레모이스 카이 프로슈코메노스

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5:16

한적(閑寂)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 NIV는 이 구절의 문장 속에 '종종'(often)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기도하시러 가는 행동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원문의 '엔 휘포코론'('물러가시고 있었다')도 완곡한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되어 예수께서 귀찮아서 물러가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시기 위해 잠시 물러가셨다가 또다시 나오셔서 말씀도 가르치시고 병자도 치료하시는 사역을 계속해서 반복하셨음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종종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신 이유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게 됨으로 오는 폐단을 없애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즉 한 장소에 오래 머물게 되면 그 지역 사람들의 우상이 될 수도 있으며 예수 자신도 그곳에 안주하려 든다든지 아니면 그곳에 매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수는 그런 위험을 피하여 종종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셨던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그 교제 가운데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방향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예수의 삶의 주 원동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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