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원문 성경강해

[민수기 20장 히브리어 강해] 반석을 두 번 때린 모세 사건(민 20:10-13)

기혼샘 2021. 5. 1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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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20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반석을 두 번 때린 모세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의 반석을 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의 반석을 때리지 말고 명령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호렙산의 반석은 지반석으로서 추르 반석입니다. 이 반석은 발에 밟히는 반석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가데스의 반석은 고반석으로서 셀라 반석입니다. 이것은 높은 절벽처럼 솟아오른 반석을 말합니다. 이 반석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반석입니다. 초림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고 채찍에 맞아야 생수가 나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주님은 영광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십자가에 다시 매달리지 않습니다. 심판의 주로 오셔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세가 가데스의 셀라 반석을 명령하지 않고 때리게 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모세는 율법의 대표입니다. 율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구원을 못 받은 것은 아닙니다. 대표성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주의 신앙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반석을 두 번 때린 모세 사건(민 20:10-13)

 

10절 바야케힐루 모쎄 베아하론 에트 하카할 엘 페네 하살라 바요메르 라헴 쉬므우 나 하모림 하민 하셀라 하제 노치 라켐 마임

민 20: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20:10

패역한 너희여(함모림) -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할 수 있다.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이.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 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스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 '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지나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106:33). 따라서 이 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12절>.

모세와 아론은 이 문제의 처리를 온당치 못하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히 노하여, 그들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는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10-12절).



이것은 이 이야기 중 특이한 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교훈이 들어 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대단히 노하셨다. 그것은 당연했다. 하나님은 결코 이유 없이 노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신의 종이요, 자비를 받아 신실했고, 총애받는 자들이요, 지극히 영광을 받았던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불신앙의 이스라엘인들이 당했던 것처럼, 그들로 죽음의 수치와 곤욕을 당하게 하셨다. 즉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분명코 그 범죄는 그러한 처벌을 받을 만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나님이 분노하셔야 했는지 그 사연은 불확실하다. 그들의 잘못은 복잡하다.

11절 바야렘 모쎄 에트 야도 바야크 에트 하셀라 베마테후 파아마임 바예체우 마임 라빔 바테쉐트 하에다 우베이람

민 20: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20:11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 모세는 순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 두 번 내리쳤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이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10)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냄으로써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러운 처사라 할 수 있다(106:32, 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죄목이었다(12).

한편 구약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 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를 맞는 것으로 족했.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영생수를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이다.

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덧붙혀 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 가데스의 거역만 범하지 않았던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한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바를 온전히 이루셨다.

12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모쎄 베엘 아하론 야안 로 헤에마네템 비 레하케디셰니 레에네 베네 이스라엘 라켄 로 타비우 에트 하카할 하제 엘 하아레츠 아쎄르 나타티 라헴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0:12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28).

나를 믿지 아니하고 -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 하나님을 불신앙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교만히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을 두고 한 말이다. 어쩌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치 않는 것도 불신앙의 한 단면인지 모른다.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에게 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던 것이다.

너희는...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영예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다(28; 27:12-14; 32:48-52).

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 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17:3).

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율법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 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3:28).

율법은 단지 우리를 가나안(천국)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 선생에 불과할 뿐이다(3:20;3:24, 25).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 구속사의 대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석에게 명하라”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백성들에게” 말을 하고, “반석을 쳤다.” 이번에는 치라는 명령이 없었다. 그들은 말만으로는 안 될 줄로 알았다. 말씀의 권능을 불신하여 순수한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도 세속적 권능에 의지한다면, 여기서의 모세처럼 말로만 해야 할 때도 반석을 치는 격이다.

둘째, 그들은 이 기사의 영광을 지나치게 자기들이 차지하려 했다. “우리가 물을 내랴?” 그들은 자기들의 권능이나 자격 때문에 된 일처럼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비난을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12절). 즉 그들은 이 기적을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에 돌려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셋째, 불신앙은 중대한 죄악이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12절). 아니, 그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것이다(27:14). 명령은 반석에서 물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신으로 그 명령을 범했고, 그 명령의 실효성을 의심했다. 그들은 회의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물을 내랴?”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이처럼 패역한 세대들을 위해 물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신이 마음에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를 의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그 반석 앞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비딤에서는 그랬다(출 17:6). 

가시적 표적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용하려 하지 않았다. 라이트푸트 박사의 견해에 의하면, 그들의 불신은 이제 그 40년이 끝난 지금에 와서 자기들이 과연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또는 백성들의 원망 때문에 또다시 시련기를 갖도록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를 의심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반석이 열려 물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계속적인 체류의 지시로 혼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 백성들은 정해진 때에 가나안에 들어가는 반면,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된 것은 정당하다.

넷째, 그들은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그 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 106:33). 모세는 화가 나서 그들을 “패역한 너희”라고 했다. 그들이 패역한 자들인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모세는 나중에 정당한 견책으로(신 9:24) 그들을 그렇게 부르나 그것은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격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망령되이 터져 나온 발언이었다. 그것은 “라가” 또는 “미련한 놈”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마 5:22).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처음에 한 번 치고서는 물이 나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은 그가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온유한 마음으로 말하면 정당한 말도, 화가 나서 하면 심한 죄악이 될 수가 있다(약 1:20 참조).

다섯째, 죄악을 가장 크게 가중시킨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그들은 이들에게 희망과 신앙과 온유의 본을 보였어야 했다―불신앙을 보였다는 점이다. 모세는 다른 때에도 불신의 죄를 범한 것을 알 수 있다(11:22, 23).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견책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공공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그들에게 내려 주시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려는 백성들의 희망을 좌절시키고 있다는 듯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께 치욕을 돌린 사건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벌은 엄중 했다. 지위와 영예가 높은 자의 범죄는 그만큼 더 무서운 벌을 받는 법이다.

13절 헴마 메 메리바 아쎄르 라부 베네 이스라엘 에트 아도나이 바이카데쉬

민 20: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20:13

므리바 물 - '므리바''다투다', '싸우다'는 뜻의 '리브'에서 나온 말로서, '다툼'. '투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 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다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킨다(27:14;32:51).

따라서 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한 것과는 다르다(17:7). 그러나 물 때문에 마음이 상한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 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은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 사건 자체와 의미는 상호 밀접히 연관된다. 20:1-7 참조.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한 아론과 모세를 징벌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대로 물을 공급하사 불평을 일추시킴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증명하셨다(Keil). 문법이 수동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이 사건 전체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① 가장 선량한 인간, 가장 탁월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도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모세는 대단히 온유한 자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나타내는 죄를 지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22).

② 하나님의 재판은 사람의 재판과 다르다. 우리는 모세의 언동에는 별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당신께 중대한 모욕이 된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인간의 마음 바탕을 아시고, 그 기질을 아시며, 그들이 무엇을 꾀하는지를 아시며,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롬 2:2) 확신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때에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③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까지도 살피시고 분노하시며, 당신께 가까운 자일수록 더욱 노하신다(암 3:2). 시편 저자는 모세와 아론의 이 죄를 다음과 같이 말한 것 같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9:8). 많은 사람이 이 생애 속에서는 남김을 받으나 저 생에 가서는 심판을 받듯이, 이 생에서 벌 받은 많은 사람도 또한 저 생에 가서는 구원을 받기도 한다.

④ 우리의 마음에 화가 났을 때는, 혀로 범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때다.

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정직성과 기록에 있어서의 불편 부당성을 보여 준다. 즉 그는 자기의 잘못을 기록했다. 결코 은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다고 알았으므로 자기의 언행을 그대로 기록했다.

끝으로, 이리하여 그곳이 므리바로 불린다(13절). 다른 므리바와 구별하기 위해 므리바-가데스로 불리기도 한다(신 32:51). 그 뜻은 “다툼의 물”이다. 이 백성들의 죄와 모세의 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이름이다.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을 주시고 모세를 영예롭게 인정해 주신 자비의 기념비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으셨다. 

그분의 자비가 심판을 물리칠 때 이렇게 불리신다(호 11:9).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당연히 그랬어야 했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했다(12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스스로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당신의 영광에 침해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영화롭게 됨을 받고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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