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발람 산 하나님 말씀] 브올 산 הר פעור(하르 페오르)

기혼샘 2020. 12. 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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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발람 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브올 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브올 산은 발람과 연관이 있는 산입니다. 발락이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입술을 통해서 축복을 선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다른 사람이 저주하려고 해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브올 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브올 산 הר פעור(하르 페오르)

 

명제: 브올 산은 저주를 받을 산이 축복으로 바뀌는 산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의 저주로 인해 축복으로 바뀐 것이다.

 

브올 산은 발락과 발람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여리고 맞은편인 모압에 41번째 진을 치게 됩니다.

 

민22: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걸림돌들을 모두 부수어 주시고 이방 백성들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때 파죽지세로 아모리인들과 싸워서 승리했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듣고 모압의 왕인 십볼의 아들 발락이 겁이 났던 것입니다.

민22:2-3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을 쳐부수어 승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땅에 진을 친 것입니다. 이때에 발락이 심히 두려워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번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볼’ צפור(치포르 6834) 십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צפור(치포르 6833) 작은 새, 참새,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צפר(차파르 6852) 깡충깡충 뛰어다니다, 되돌아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발락의 아버지인 십볼은 참새와 같은 작은 새라는 의미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이 사람은 큰 인물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격 자체가 참새가 시끄럽게 지적이며 무의미하게 소리를 내는 것처럼 이 사람도 이와 같이 무의미한 말을 하여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자신이 좋은 일에는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어다니지만 인생의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다시 무의미한 존재로 되돌아오는 성격을 가진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십볼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의미한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새처럼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의미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는 이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가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참새와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지저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도자라면 정확하게 말을 전달하여 지식을 그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데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말만 하고 있고 서로 교통이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일만 마디 방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 마디를 하더라도 정확하게 상대가 인정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서 하나님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발락’ בלק(발라크 1111) 발락,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לק(발라크 1110) 비우다, 무효로 하다, 황폐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십볼의 아들인 발락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말씀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저주하는 것만 배운 것입니다. 또한 발락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모압의 왕으로서 백성들을 치리 하는데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의 예표가 누구입니까? 바로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같은 존재입니다. 교황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구원도 자신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 무효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교황을 따르는 자들은 사람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마지막은 모든 것이 헛되고 텅 빈 인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락은 이런 자들의 표상입니다. 많은 이단의 교주들도 현재 사람들의 육체와 영혼을 농락하여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은 교주를 섬기게 되고 교주의 말에 절대 충성하고 있습니다. 발락과 같은 자에게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며 죽이려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알고 복술가인 발람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합니다.

 

민22:5-6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발락은 자신의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브돌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발람의 복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된 말씀을 믿지 못하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말을 믿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믿을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인데 발락은 발람의 복술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발람이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하란에서 부르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시겠다고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과 저주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그런데 발락은 발람의 복술을 믿고 복과 저주가 인간에게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인간의 복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 בלעם(빌암 1109) 발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ל(발 1077)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לה(발라 1086) 쇠하다, 낡아지다, 소멸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עם(암 5971) 백성, 이라는 뜻의 합성어가 발람이라는 이름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발람이라는 인물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방 백성으로서 복술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발람과 같은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영혼을 쇠하게 만들어 죽게 하는 것입니다. 낡은 가죽부대에 담긴 포도주처럼 영혼을 죽이는 말씀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으니 이 말을 듣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며 영원히 구원의 자리가 소멸되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도 이런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영혼을 죽이고 있는 자들입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발람과 같은 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자들로부터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와 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람과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복술과 같은 말을 강단에서 쏟아내고 있다면 결국 발람과 같은 거짓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예언하고 있다면 이것 또한 발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발락이 처음에 발람을 초청했을 때에는 가지 않다가 두 번째 고관대작들을 대동하여 보내니 발락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명예심과 물질의 욕심 때문에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겠다고 했지만 속은 이미 발락에게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날 밤에 나타나셔서 발락이 보낸 고관대작들과 함께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물질과 명예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죽게 됩니다.

 

민31:7-8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에 미디안의 5명의 왕을 죽였고 또한 브올의 아들 발람도 칼로 죽였습니다. 거짓 예언자의 최후가 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백성의 표상입니다.

 

유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길에 행동하는 자들과 자신의 삯을 위하여 욕심을 부리고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는 자들과 고라의 패역을 따라가는 자들은 모두가 멸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저주하고 대항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자의 길에서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브돌’ פתור(페토르 6604) 브돌, 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은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성읍입니다. 발락은 자신의 고향에서 발람을 초청한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발람 선지자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פתר(파타르 6622) 해석하다, 설명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발람의 고향이 브돌입니다. 브돌의 뜻을 보니 해석하다, 설명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발람이 거짓 예언자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해석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발람은 자신의 고향에서 거짓된 예언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실 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만들고 행음하게 만들었던 주동자가 발람입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에 이런 발람의 교훈이 좋다고 따르는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발람의 교훈을 배척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도 발람의 교훈을 퍼뜨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교리를 들으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발락은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나가서 발람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고관대작들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람이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에 발락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민23: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에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7은 완전수입니다. 발람을 위하여 완전하게 드려진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부정한 곳에 드려진 숫양과 수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단의 제물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받을 저주를 수송아지와 숫양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하고 싶지만 저주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말을 입에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민23: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발람이 첫 번째 예언을 하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면서 발락 왕에게 돌아가서 하나님의 주신대로 말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말할지니라’ דבר(다바르 1696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명령하다, 허락하다, 선포하다, 라는 뜻입니다. 발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명령하여 발락에게 가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입에 넣어주셨고 발람은 그대로 발락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선포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저주하고 싶어도 저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엘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번의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포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예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자를 자신의 어떻게 저주하냐는 것입니다.

 

민23: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발람은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자를 자신이 어떻게 저주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꾸짖지 않은 자를 어떻게 꾸짖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발람이 이렇게 예언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수송아지와 숫양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곳에 주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고 이제는 축복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모든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고 이제는 축복만이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저주하며’ נקב(나카브 5344 동사, 칼,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찌르다, 모독하다, 구멍을 내다, 라는 뜻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자를 어떻게 자신이 모독하고 찔러서 구멍을 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람이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양손과 발에 못이 박혀 고난을 당하시고 구멍이 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며 가시관을 쓰시고 찔림 받았으며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셨습니다. 이런 저주가 수송아지와 숫양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고 영원한 죽음을 폐하여 주셨습니다.

 

발람은 첫 번째 예언부터 축복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거짓 선지자들도 들어 사용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포하게 하시고 버리시는 것입니다. 선택한 자들을 위하여 발람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도 하나님께서 잠시 사용하시고 버리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선택받은 나를 위해서 축복을 선포하고 버리시는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이 첫 번째 예언을 축복의 예언을 하자 화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발람을 이끌고 비스가 꼭대기로 가서 두 번째 저주를 하라고 시키게 됩니다.

 

민23:14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

 

발락은 발람을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서는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첫 번째와 같이 드리고 있습니다.

 

‘소빔’ צפים(초핌 6839) 소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צפה(차파 6822) 응시하다, 감시하다, 엿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발락이 발람을 소빔 들로 인도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발락은 호시탐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망을 보면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두 번째 저주를 하려고 소빔 들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소빔 들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감시하고 엿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가서 저주를 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존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항상 좋은 위치를 점령하여 망을 보고 지켜보면서 영혼을 죽이려고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이런 사탄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비스가’ פסגה(피스가 6449) 비스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סג(파싸그 6448) 깊이 생각하다, 잘게 썰다, 살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발락이 발람을 비스가 꼭대기로 인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발락의 생각은 발람이 저주하게 하여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원수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나무를 전기톱으로 잘게 썰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죽이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발락은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저주를 할 수 있는 지를 심사숙고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스가 꼭대기에서 수송아지와 숫양을 제단에 바치고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하지만 이미 제단에 바쳐진 제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저주를 대신 받았기 때문에 저주가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나도 예수님이 모든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저주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발락과 발람 같은 자들이 나에게 저주를 퍼부어도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 분노가 일어날 수는 있지만 이 저주가 임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예언했던 두 번째의 예언 중에 핵심이 무엇입니까?

 

민23: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도 않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허물을 보지’ נבט(나바트 5027 동사, 히필,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바라보다, 주시하다, 감찰하다, 라는 뜻입니다. 발람이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을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12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민족을 이룬 백성들의 죄를 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생을 주도면밀하게 주시하고 감찰하여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허물을 보지 않은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쳐다보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쳐다본즉’이라는 단어가 נבט(나바트)입니다. 불 뱀에 물려서 죽어가던 자들이 놋 뱀을 바라보았을 때에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원받은 인생들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허물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놋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본 자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찰하시고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더 이상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끝내신 것입니다. 히필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허물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ראה(라아 7200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보다, 살피다,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보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반역을 모세와 하나님께 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도 대표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피고 주목했는데도 이런 반역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주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단어는 거시적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도면밀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큰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불 뱀을 만들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시고 이 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 것이라고 할 때에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뱀을 보는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바라보던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주체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덮어주신 것입니다.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 인정한 것은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의 뜻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의 입에 축복을 선포하도록 강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번째 축복을 선포한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이 두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발람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여 저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민23:27-28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꼭대기에 이르니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훤히 보이는 브올 산꼭대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발락이 마지막으로 브올 산으로 발람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브올 산에 발락이 발람을 인도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브올’ פעור(페오르 6465) 브올,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ער(파아르 6473) 입을 벌리다, 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발락이 발람을 브올 산에 인도한 영적인 의미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포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저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람을 인도한 것입니다. 발락은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는 사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잡아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려 찾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브올 산은 바로 이와 같은 곳입니다. 사탄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여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브올 산에서 저주를 축복으로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제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단에 올려진 수송아지와 숫양을 통해 모든 저주와 부정이 옮겨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저주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부정과 저주를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브올 산에서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끝나고 축복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이 아무리 저주를 퍼부으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술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브올 산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무리들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저주를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저주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을 저주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축복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무리가 입을 크게 벌려 나를 삼키려고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무리들을 짓밟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브올 산을 통해 모든 저주가 사라졌고 축복만이 선포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브올 산의 제단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 성취가 되었습니까?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은 발람과 같은 비 복음의 말씀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의 말을 따라가면 반드시 죽음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매일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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