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상급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고 있다. 마지막 종말이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면 심판한다고 했다.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나에게 이런 일은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구원받은 자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 영적으로 부패한 인생을 살면 안 된다. 심판 때에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했다. 여기에서 해는 구원이 취소되는 해가 아니라 공적이 사라지는 해다. 상을 하나님께 받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믿은 성도가 구원은 받지만 거룩하게 살지 못했으므로 받을 상은 없다. 성도는 구원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 많은 상을 마지막 날에 받아야 한다.
신령한 자의 판단(고전 3:15)
서 론
인생이라는 것은 동물이 아니고 영물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가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신령해지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령한 것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하여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그 임자를 알지만 이스라엘은 모른다”라고 탄식했다. 사람이란 것은 그 자체 본질의 심령을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에 그 심령이라는 것은 신령한 것으로서만이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동물은 혼만 있기 때문에 거기는 신령이라는 것이 하등 필요가 없다. 예를 든다면 보석은 보석답게 써야 가치가 있고, 나무는 나무답게 써야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 생령의 사람은 신령하게 쓰여야만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자가 되어야 신령해 지느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아야만 될 것이다 (6)
인간 지혜의 지식이 날뛰면서 성령의 지혜 받은 스데반을 이단이라고 판정을 내려 돌로 치라고 했던 사도 바울은 회개하고 성령의 지혜를 받고 볼 적에 아무리 세상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그는 말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 타고난 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야 될 의무가 있고 받아야 될 책임이 있다. 다시 예를 든다면 육신의 자식이 부모의 교훈을 받음과 같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을 받아야만 된다. 성도가 영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2. 통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10-11)
통달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깊이 연구하고 무엇을 알려고 할 때 물체에 대한 이치는 통달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은 자 외에는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물체의 이치를 통달케 하는 것이 과학적 연구라면 영계에 관한 깊은 것을 통달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신학이라 할 것이다. 금일에 신학이라는 세계의 인간 지식이 결부된다는 것은 큰 위법 중에 위법이 될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도구이지 신학이 성경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다.
3.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는 일을 버리는 자 (13)
만일 어떤 종이 은혜를 받았다 하면서 인간 지혜 수단 방법이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은혜를 쏟을지언정 깊은 영계를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성령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어떤 선생이 있는데 그 선생을 무시하고 다른 선생의 말만 따른다면 그 선생의 마음을 분노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성령을 받은 자가 인간 지혜를 따라 일한다는 것은 성령을 괴롭히는 행동이 될 것이다.
4.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 (16)
우리의 신령이라는 것은 어떤 외형적인 이적이나 어떤 표적으로서가 아니다. 중심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 것이 신령자라 한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인 겸손, 온유, 진실, 사랑 이것이 있는 자라면 모든 일을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신령한 자라고 보게 될 것이다. 판단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 외에는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사 11:3-4).
결 론
우리는 속담에 ‘되지도 못하고 다 된 채 한다’라는 말과 같이 신령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남의 영계를 판단한다는 것은 멸망을 자취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 6:1-2과 같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신령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진리를 말씀의 칼로 바로 쪼개서 판단이 있게 설교하는 자가 마귀를 치는 권세의 종이 될 것이다. 기독교의 최고의 영계는 말씀의 칼을 들고 나가 말씀으로서 세계를 통일시키는 일로 끝을 맺을 것이다(계 11:3).
[기독교 교회사 인물] 모니카를 통한 어거스틴의 생애와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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