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기도자료

[교회 직분자 주일 헌신예배 찬송] 찬송가 372장 나 맡은 본분은

기혼샘 2022. 10. 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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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72장 나 맡은 본분은

 

<일하기 싫어하지 말라> 살후 3:6-15

 

서론 : 우리 사람들은 각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분이 있다.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마땅히 그 나름대로의 본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본 찬송가는 유명한 챨스·웨슬레가 지은 찬송인데 그는 레위기 8:35를 읽다가 큰 감명을 받았다.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성직을 맡은 바에는 본분을 잘 감당하여 충성할 것을 명한 말씀이다.

웨슬리는 이 찬송을 지어 그 자신의 찬송가집인 "성구에서 뽑아낸 짧은 찬송집"에 실어서 널리 보급하였다.

사람은 자기가 맡은 본분을 제대로 모르면 사람 구실을 못 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깊이 살펴 사명을 확인하고 잘 이행해야 한다.

 

1. 기독교는 근로의 종교다.

 

기독교는 부지런히 일해야 함을 잘 가르치는 근로의 종교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에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셨고, 네가 얼굴에 땀에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셨다(3:17,19). 그러므로 인생이 땀 흘리며 수고하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매 나도 일한다"라고 언명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창조의 일과 섭리의 일을 하시고, 예수님 자신이 봉사와 구속의 일을 하시는 근로자이심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주로 부지런한 노동자(어부들) 출신인 사람들을 불러서 사도를 삼으시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셨다.

특별히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삼은 말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교훈은 교회 내부적 신앙 문제보다는 현실적인 실제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잘못된 말세론에 따른 오해에 대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강조하신 교훈이시다.

그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뿐 아니라 기타 여러 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곧 온다는 긴박한 사상으로 인해 이를 선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재림이 임박했으니 땀 흘리며 농사를 짓거나, 양을 치거나, 장사할 것도 없고, 학생들이 공부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들은 경계하여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강경하게 권고한 것이다.

신자는 주님이 내일 오시더라도 오늘까지는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2000년 교회 역사 가운데 이런 일도 많이 있었거니와 우리 한국에서 만도 이런 잘못된 재림 사상으로 일제 치하에서도 소위 경북의 "박동기의 시온파" 운동이나, 6·25 후에 박태선의 천년 성(신앙촌 건설) 운동 등으로 자녀들의 취학을 거부하고 불신 남편과 이혼 소동을 벌이고, 심지어는 당국의 취재 대상이 되었던 일까지 있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어떤 구실을 붙여서든지 일하지 않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더욱 신자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2. 일하기 싫어하는 잘못된 인습

 

(1) 일하는 것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는 잘못된 사상이다.

역사적으로 외국에서도 이런 사상들이 있었지마는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재래의 유교 사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큰 병통이기도 하다. 놀고먹는 자(주로 양반계급을 말함)는 잘난 사람이요, 높은 사람,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은 낮은 사람, 못난 사람,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하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하는 데도 "요즈음 무엇을 합니까?" 하면, 보통 "그냥 놉니다"논다는 것을 크게 영광시 한다. 그러다 보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 가락이 생겨난 듯하다. 이러한 태만적인 사상, 놀고먹으려는 불로 계급의 부류들이 우리의 민족정신을 흐려놓았다. 그러나,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이런 그릇된 사상을 많이 고쳐 놓았다. 기독교는 사업이나 직업에 귀천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신앙에 거리끼는 일만을 금하고 주일 성수에 방해되지 않도록 힘쓰는 것뿐이다.

(2) 부모나 친지를 의지하려는 미련한 사상이다.

자기 자신이 수고하여 일하여 먹고살려고 아니하고 부모를 의뢰하고, 형님이나 부요한 친척들을 의뢰하고 살려는 미련한 생각이다. 그래서는 대학교 학자금도, 결혼비용도, 사업자금도, 몽땅 의지하려는 게으른 생각이니 이런 자들은 사회적으로 제대로 진출하지도 못하고 성공하기 매우 힘든 기식의 사람들이다. , 자립정신이 약한 자는 향상·발전이 없고 오히려 사회의 한 문제아 밖에 안 된다.

 

3. 일하기 싫어하지 말라는 3대 교훈

 

(1) 일하는 사람이라야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하지 않으려면 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자가 일하지 않고 먹으려는 것은 도적의 마음과 같은 것이요, 파렴치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도 이마에서 땀이 흐르도록 일해야 먹고살 것이라고 하였을뿐더러, 모든 동물까지도 다 노력하고야 먹고살게 하셨다. 그 노동이 정신적인 것이나 육체적인 것이나를 막론하고 일하지 않고 먹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위반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주의 자들도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고 하는 성경의 교훈은 옳다고 한다.

(2) 기쁨으로 일하라는 교훈이다.

일을 하기는 하되 죽지 못해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불가피적으로 하는 일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렇게 하면 일을 시키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고, 또 일한 결과도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되 기쁨으로 일할 것을 말함이니 이것은 일함으로 오는 결과가 귀한 까닭이다.

농사짓는 농부에게는 귀한 열매를 추수하는 기쁨이 따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정당한 이윤을 얻는 기쁨이 따르고, 열심히 공부(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명예와 출세의 기쁨이 따른다.

"게으른 자요,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6:9-11)고 하였다.

(3) 누구든지 다 일하라는 것이다.

빈곤하고 비천한 자만 일하는 것이 아니고, 부한 자, 귀한 자도 일하라는 말이다. 무식한 자와 약자들만 일하라는 것이 아니요, 유식자나 강자일수록 더욱 많이 일하라는 뜻이다.

빈자는 물론 일할 것이나 부자라도 더욱 열심히 일하여 남을 돕는 위치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만일 게으르면 점점 빈곤하게 되리라.

"앉아 있는 신사보다 서 있는 농부가 귀하다"는 격언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일할 수 없는 노부모님, 병약자, 불구자, 어린이들을 제외하고는 다 일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죄 되는 일이 아니라면 누구나 무슨 일이든지 다 일하여야 한다.

 

결론 : 잠  22:29"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다. , 10:4"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라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후에 주를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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