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느헤미야 2장 설교말씀 중에서 주님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것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다시 세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했더니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라는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열정을 낸다면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느 2:1-10)
느2: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 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느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2: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2: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에게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느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2: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느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가문이나 일신의 성공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나아간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는 큰 일로 기도하기 이전에 포로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백성 중 일부는 고레스 왕의 명을 따라 이미 돌아가 있었습니다. 돌아온 그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앞세우고 무너진 성전과 황폐한 성읍을 수축하려고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끊임없는 방해로 고레스 왕에서 아하수에로 왕으로, 또 아닥사스다 왕에 이르기까지 이 성전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 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 왕의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스 4:11-16).
이에 대하여 아닥사스다 왕은 단호하게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열왕을 거역하며 그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이제 너희는 명을 전하여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스 4:17-22).
그런데 이런 조서를 내린 장본인인 아닥사스다 왕에게 느헤미야는 다시 성전 건축과 성곽 수축을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내 건 믿음의 싸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에게 대적하는 행위임에 틀림없을 진 데 이럼 청원을 한다는 그 자체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1.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과 조국을 재건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성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계획하고 저지르며 달려가다가 비록 죽음에 이른다 할지라도 이를 더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죽어야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내는 자리로 부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하고 주님의 주권 앞에 굴복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2. 생활에 젖은 기도!
1) 기도로 사람을 움직이라!
어떤 일의 성공과 실패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이 인관관계의 성패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 또한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관계의 성공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늘 가까이 모시는 왕에게로 직접 나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도록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말의 씨도 먹힐 것 같지 않은 아닥사스다 왕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자가 사람을 고치지 못하실 리가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포기된 인생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하기 전에는 그 사람은 절대로 예수를 믿지 않으리라고 내어 놓았던 어른이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포기하였어도 큰 아들과 며느리는 포기하지 않고 눈물의 기도로 도전하였습니다. 결국 그 어르신이 수술실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번 명절에는 온 식구가 국민일보에 게재된 순서를 따라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격의 눈물바다가 된 예배 현장에서 담임목사에게 장거리 시외전화를 하시던 우리 집사님 내외분은 저와 아내에게는 목회의 큰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지금 성전건축의 대역사 앞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연은 바람을 거슬러 오르고, 노련한 사공은 바람을 이용하여 더 빨리 간답니다. 제가 믿기는 우리의 기도가 있는 한,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우리의 최상의 협조자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스를월(12월)에 성전 재건과 성곽 수축의 뜻을 세운 후에,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4월)에 왕 앞에 나아가 허락을 받기까지 느헤미야는 6개월 정도의 기다림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느 때나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처지이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허락하시기까지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 드디어 하나님의 때를 알리는 신호가 왔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는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왕의 눈이 느헤미야의 안색을 읽기에 이른 것입니다.
3) 기도가 삶의 방식이 되게 하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 2:3-4). 느헤미야는 기도의 응답에 대한 기쁨과 감격 때문에 흥분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그는 기도에 바른 예절과 상식의 선을 포함합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여야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수준 이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서 조차 곧바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즉 주저함이나 지체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는 것은 기도가 생활로 배어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3.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라!
왕이 나를 보내시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이르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느 2:6-8). 왕의 허락 앞에서 펼치는 일목요연한 느헤미야의 청사진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긴다고 하는 것이 무계획적이라거나 될 대로 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도란 하나님께 내미는 결재서류와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목과 대충대충 쓰인 내용의 결재서류에 싸인을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회사의 명예와 곧 사장의 명예가 걸려있는 일인데 말입니다.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는 철저하게 계획과 준비를 갖추어 주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결론
큰 일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에 따라 각기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게 보여도 하나님께는 큰 일이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일이라면 사람의 눈에 제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는 작은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는 자신과 가정이 얼마나 출세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요를 누리고 사느냐 하는 것은 작고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앉으나 서나 꿈에도 소원이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고, 성곽이 수축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큰 일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그가 얼마나 몰두하였는지 왕 앞에서 수종 드는 그 순간에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던 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큰 일을 꿈꾸면서 이 일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라야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큰 일을 기대했던 믿음의 사람 느헤미야! 저는 성전건축의 대역사를 시작하면서 실행위원, 건축위원, 기술위원과 함께 우리 모든 성도가 다 느헤미야와 같이 생명을 내걸고 하나님 앞에 큰 일을 기대하는 불타는 가슴으로 일어서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배에 오르던 날, 윌리엄 캐리는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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