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2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유력한 갑부였습니다. 고엘로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엘리멜렉은 가뭄에 베들레헴을 떠났지만 보아스는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도 영적 기근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육적 기근에도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때가 되매 보아스에게 복을 주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큰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 2:1-4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자가 친족으로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 명제 : 베들레헴에서 올라오는 보아스는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 목적 :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처럼 나도 예수님의 교회에 있는 것이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부터 두 과부가 살아가야 하는데 힘든 환경에 봉착했습니다. 과부의 삶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은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보아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의 남편과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엘리멜렉이 자녀가 없기 때문에 대를 이을 수 없습니다. 대를 이을 고엘로서 가까운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보아스는 룻의 신랑이 될 인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신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 시간 나도 세상에서 영적으로 남편도 없이 과부의 삶을 살았던 인생입니다. 어둠속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들어와서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룻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과부의 인생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아스와 같은 예수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자가 친족으로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성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자가 친족으로 있다고 말씀하면서 이 사람이 보아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도 명문가문으로서 신앙의 뼈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친족이 있지만 그들은 모압에서 돌아온 과부들을 도와줄 마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허락을 받은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나오미와 룻을 인정하여 돌보아 줄 사람은 보아스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친족으로: ידע야다 3045 인정하다, 허락하다, 돌보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며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줄 사람이 바로 보아스라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푸알 동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구속사의 대를 이어주는 사람이면서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주어야 하는 고엘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보아스가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고엘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이 확실하며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면서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셨고 선택받은 나의 고엘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보아스는 재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베들레헴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보아스: בעז보아즈 1162 민첩, 재빠름)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격을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조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어떠한 인물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해 줄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보아스가 가지고 있는 재력으로 룻을 도와주고 민첩하게 세상에서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의 히브리적 의미를 보면 엘리멜렉의 혈통적 관계로서 대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세상에서도 나오미의 무기가 되어주고 앞으로 일에 통찰력 있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가 구원받은 나에게 적용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의 무기가 되어주시고 혈통적 가족관계가 되어 안식을 주시며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통찰력 있게 보여주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보아스는 능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도 이와 같이 힘과 능력과 모든 인격과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신부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모압 여인 룻은 나오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밭으로 가서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다. 과부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라는 부정함 때문에 아무 밭이나 들어가서 이삭을 줍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누구의 은혜를 입으면 충분히 이삭을 줍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누구의 밭으로 가든지 나가서 추수하는 곳에서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있습니다. 열심히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고 섬기기 위하여 열심히 밭으로 가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밭으로 가서: ילך얄라크 321 가다, 섬기다, 순종하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오미를 섬기기 위해서 이삭을 줍기 위하여 갑니다. 그것도 나오미가 시켜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자발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연장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스스로 밖에 나가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다. (이삭을 줍겠나이다: לקט라카트 3950 줍다, 거두다) 이삭을 거두어 어머니를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이삭을 줍기 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모압 여인이 베들레헴에서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모욕을 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가야 됩니다. 또한 아무 밭에서 이삭을 줍지 못하게 합니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이삭을 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나 과부를 위해 이삭을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베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떨어진 이삭을 줍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하여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이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삭을 남겨두지도 않고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때가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모퉁이 법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만들어주신 법입니다. 이삭이나 모퉁이의 이삭을 남겨 놓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주워서 먹고살 수 있도록 했던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퉁이: פאה페아 6285) 모퉁이. פאה파아 6284) 흩날리다, 흩다 라는 뜻에서 유래) 씨가 흩어져 날라 가듯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삭들이 흩어져 살아갈 수 있도록 했던 법이 바로 ‘페아’ 법입니다.
마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먹었던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복음을 외칠 때 먹었던 음식입니다. 그런데 광야에는 풀이나 꽃이 피지 않기 때문에 메뚜기가 존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히브리인들은 언어의 유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메뚜기는 חגב(하가브 2284)이고 쥐엄나무는 חרוב(하루브)입니다. (חרב하라브 2717 마르다, 황폐하다, 죽이다 라는 뜻에서 유래) 유대인들은 가뭄이 들어 황폐해져 먹을 것이 없을 때에 쥐엄나무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 나무가 바로 메뚜기 나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석청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광야에 꽃이 없어서 벌이 존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꿀을 먹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석청은 תמר(타마르 8558) 종려나무, 대추야자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종려나무의 열매인 대추야자를 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꿀처럼 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석청은 바위에 떨어진 대추야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페아’법에 의하여 떨어진 것은 주인이 줍지를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놔둡니다. 그럼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가난한 자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와 종려나무 열매를 먹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지만 오직 십자가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룻은 모압 여인으로 어렵게 이삭을 줍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주인들이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으면 이삭을 줍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엘형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룻이 돌아다닐 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이삭을 줍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룻이 추수하는 자의 뒤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룻은 열심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하여 열심히 이삭을 주워야 합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줍는데 예기치 않게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우연히: מקרה미크레 4745 예기치 않은 기회, 뜻밖의 기회. קרה카라 7136 만나다, 당하다, 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 룻에게는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무도 룻에게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는데 보아스의 밭에서는 추수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밭의 주인인 보아스까지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편에서 보면 우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연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도 보아스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과부의 삶에서 더 이상 가난한 자의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이 이삭을 줍고 있을 때에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떡집에서 올라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영원한 굶주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헤롯 왕 때에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고 베들레헴에서 별이 멈춘 것을 보고 메시아가 탄생한 것을 보았습니다.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룻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보아스처럼 힘이 있고 권세가 있으신 예수그리스도가 신부인 나에게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밭에 있는 룻을 만나러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러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와서 룻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처럼 예수님이 나에게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룻이 보아스의 밭에 우연히 간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필연 속에서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통치하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룻이 다른 밭에서 쫓겨남을 받았지만 보아스의 밭에서는 쫓겨남을 받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룻은 보아스의 보호함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교회에서 영원히 보호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나를 인도하여 주셔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셔서 영원한 굶주림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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