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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성경 공부 자료] 민수기 내용 구조와 주제별 내용

기혼샘 2024. 1.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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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성경 공부 자료 중에서 오늘은 민수기 내용 구조와 주제별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하면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민수기의 구조와 주제를 배우면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주신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내용 구조와 주제별 내용

 

민수기의 내용 구조

I. 민수기의 구조

민수기의 사건별 내용이 그 배경에 따라서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처음 인구의 계수를 시작한 시내 산에서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1-9장까지 첫 무대와, 모압으로 향해 하는 동안의 사건을 그리고 있는 10:11절에서 21:4절까지의 두 번째 무대, 또한 그 이후 모압에서의 세 번째 무대로 나누어진다. 민수기의 전체 구조를 이 세 배경을 근거로 하여 장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 도표와 같다.

II. 민수기의 주제별 내용

1. 인구 조사(1-4, 26)

민수기의 인구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서 실시되었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인구 조사가 아니고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가 싸울 수 있는 전투 능력을 가진 자들로서 계수되었다. 이 계수를 위해서 각 지파의 두령이 모세와 함께 해당 지파의 인원을 가족과 종족을 따라 조사하게 되었다. 첫 번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12개월째 접어드는 때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성막을 만든 지 일 년째 되는 해였다. 두 번째 인구 계수는 모압 평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도 역시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전투 능력이 있는 자들로 계수되었다. 이때의 인구 계수에 들었던 자들은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로서 40여 년 동안의 광야 생활 중에서 성장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첫 번 인구 계수와 두 번째 계수와의 비교는 어느 지파의 인구가 증감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각 지파별 인구의 변동 사항은 다음 도표와 같다.

2. 여행을 위한 최종적 교훈(5:1-10:10).

민수기 1장에서 4장까지는 행군을 위한 기본적이며 조직적인 성격의 준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1장에서는 가나안 정복과 여행 시의 전투에 대비한 군대 편성을 위해서 인구 계수가 이루어지고 2장에서는 각 지파들이 행군 시 지켜야 할 진의 위치가 지정되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을 돌봐야 할 레위인들에 대한 계수가 이루어지고 4장은 레위 지파의 세 종족이 진행 시 담당해야 할 성막의 부분을 규정한다. 이러한 것들은 거의 250만에 이르는 엄청난 인구가 움직이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들이었으나 이런 조직적인 것만으로 여행의 준비가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여행 경로 중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대한 개인적이며 종교적인 지침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말씀과 준비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이미 이전에 주어진 율법 규정들이었으나 다시 한번 간략하게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나누어진다.

행군 중에 전염병이나 피부 질환 등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부정한 것들을 다 진 밖으로 추방시켜야 한다(참조, 5:1-4).

행진할 동안에 생기는 이웃과의 문제에 대해서 그 해결 기준을 제시한다. 즉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는 그 오분의 일을 더해서 보상해야 하며 아내의 부정에 대한 의심으로 가정의 불화가 생겼을 때는 '의심의 소제'를 드려 판단해야 한다(참조, 5:5-31).

자신을 성결케 하는 '나실인의 서원'을 했을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되며 자신의 머리를 잘라서도 안 되고 시체에 의해 부정을 타서도 안 되며 그 기간이 끝나면 지정된 재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참조, 6:1-27).

성막과 모든 기구가 하나님께 성별 된 후 백성들은 그것들을 운반할 수 있도록 운반차를 드리고 제단 봉헌의 예물을 드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막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참조, 7:1-88).

성막에 대한 실제적인 준비와 아울러 그곳에서 일할 레위인들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다. 앞에서는 단지 그들에 대한 인원 계수와 직무만이 주어졌으나 이제는 그들이 실질적으로 성막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성결 예식이 실행되었다. , 레위인의 정화 예식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은 이미 지정되었던 그들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참조, 7:89, 8:26).

유월절을 이미 주어진 규정에 따라 지킴으로써 앞으로도 계속 이 절기가 규정대로 준수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참조, 9:14).

시내광야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을 인도하였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에 대한 것을 다시 반복하여 서술함으로써 이제 시작되는 그들의 행진이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야 함을 알게 한다. 즉 성막의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은 각자의 장막을 거두고 그 구름을 따라 진행하다가 구름이 멈추면 그 아래 성막을 치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진을 이루어야 했다(참조, 9:15-23).

행진 시의 신속한 명령 하달을 위해서 나팔 신호를 사용하는데 나팔 소리의 차이에 따라서 회중이 성막에 모이기도 하고 진행 시의 진의 이동과 전투 시 비상에 대비케 했다(참조, 10:1-10).

3. 밀정의 보고와 백성들의 불신(참조, 12:16-13:33)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이제 그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에 대한 정탐을 실시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밀정을 뽑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마지막 시험으로서 이 상황을 사용하신 것이었다. 비록 이때까지의 여러 가지 불만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최종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약속의 땅을 상속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정탐꾼들의 보고는 실로 두려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광야의 생활에 지치고 제대로 전투 능력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견고한 성읍을 가지고 윤택한 생활을 해 온 가나안 사람들은, 더구나 체격적으로도 거구인 그들은 도저히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가능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신 자신의 약속에 대한 궁극적 신앙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시기 원하신 것이다.

12명의 밀정 중에 단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신앙에 의지한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러나 다른 10명의 밀정들은 절망적이며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보고를 믿게 되었다. 그들은 과거의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현재의 10명의 밀정의 보고에 더 큰 신뢰를 둠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약속을 불신했다. 뿐만 아니라 차라리 다른 지도자를 선출하여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결국 그런 불신앙을 가진,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 되었던 모든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하다가 죽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선고를 받게 되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40년의 방랑이 끝나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4. 사막에서의 방황(15:1-19:22)

가나안 정탐 이후의 38년에 걸친 기간은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광야 여행은 출애굽 때부터 총 40년에 걸친 기간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방랑의 기간은 약 38년 동안이었다. 민수기의 기록에는 이 전환점이 되는 기간 동안의 역사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율법적 규정만이 재삼 강조되고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슬픈 기간은 회피의 기간이었다. 가나안에 대한 소망을 잊어버린 구세대들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대적으로 인해 광야의 시련과 연단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약속의 땅을 상속받을 새 세대가 광야 40년의 기간 동안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광야의 유랑은 이스라엘의 옛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는 전환기가 되는 기간이었다.

1) 지리적 위치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후퇴도 전진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가데스와 홍해 사이의 사막 주변을 목적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허송하며 방황하였다(참조, 민14:25). 그들이 이 기간 동안에 방랑하며 진을 쳤던 장소들은 민 33:19-36 사이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간이 거의 끝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가데스로 돌아왔으며(참조, 20:1) 이때부터 서서히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2) 인구의 변동

이 기간 동안에 중요한 인구의 변동이 일어났다. 처음 애굽을 나와서 실시한 첫 번 인구 계수 때 20세 이상 되었던 장년 남자들 60만 명이 이 기간 동안에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어떤 이는 염병으로, 어떤 이들은 칼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죽어서 광야에 묻히게 되었다(16:49; 2:14, 15). 반면에 20살 이하의 어린이와 소년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하여 광야의 유랑 종국에는 아브라함의 ''인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게 되었다.

3) 영적인 상황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시대는 소망의 새로운 씨앗이 뿌려진 때였다. 이들의 성장과 함께 처음의 하나님의 약속이 재확인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의 입성을 위한 준비가 새로이 진행되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한 그들의 지도적 위치에 대한 확인이 다시금 이루어졌고 레위인에 대한 직무가 재차 강조되었다.

5. 약속의 땅 관문에서(22:2-36: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약속의 땅 관문에 이르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그 관문은 민 22:1에서 "모압 평지,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의 시기가 찰 때까지 그들의 진행은 저지되었다. 그것은 가나안 입성이란 중요한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되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들을 저지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문제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깨닫게 되었다(참조, 22:2-25:18).

이제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점령을 위한 구체적 준비 작업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가나안 진입을 위한 군사의 재편성을 위한 제2차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인구 조사에는 제1차 때 계수되었던 구세대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못하였고 새로운 세대들로 구성된 새로운 군대 조직이었다. 군대의 편성과 아울러 요단강을 건너가기 위한 전략과 그 땅을 정복한 후의 땅의 분포도가 정해졌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되풀이되어서 가나안 점령 이후에도 준수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세의 뒤를 이어 그들을 인도할 새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의 후계자로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지정해 주심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모든 준비는 일단락되었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나자 모세는 그의 최후 전에 이미 시내산에서 주어졌던 여러 가지 율법의 제 규정을 다시 반복한다. 이것은 곧바로 신명기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실한 지도자며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모세는 신 광야 가데스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는 일에 그만 혈기를 부림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의 모든 책임을 완수하고 새로운 세대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인계하고 그의 생을 마치게 되었다. 완악하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그는 신명기의 기록과 같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의 사람으로서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때의 이스라엘의 위치는 여리고 근처 요단 강가 모압 평지였었다(참조, 36:13).

III. 민수기의 중심 내용 요약

민수기의 내용은 크게 두 세대의 비교로써 구성된다. 한 세대는 시내산에서 새로운 행진을 위해 실시되었던 인구 계수 시에 20세 이상 되었던 자들로서 광야의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불신앙으로 광야를 유리하다가 멸망하고 마는 '구세대'들이며, 또한 세대는 첫 번 인구 계수시에 20세 이하였던 자들로서 광야의 시련 속에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들이다. 이 두 세대의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된 땅은 오직 순종과 믿음을 통해서만이 주어짐을 민수기의 전체 내용은 보여 주고 있다.

IV. 이스라엘의 정지 시와 행진 시의 진 배치

1. 정지 시의 진 배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행을 멈추어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정하신 배치에 따라서 진을 쳐야 했다. 가운데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서 성막 사면에 레위 지파와 모세와 아론의 자손들이 먼저 진을 쳐서 성막을 보호하고 외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열두 지파가 그 주변을 둘러서 진을 치는데 특별히 유다 지파가 동방 해 돋는 편에 진을 침으로써 다른 모든 지파보다 위치적인 수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야곱의 유언적 예언에 있어서의 그 비중과 메시아의 선조로서의 위치 때문이었다(참조, 49:10). 남쪽에는 르우벤 지파가 그 선두에 진을 가지고 배치되고 서쪽은 에브라임 지파가, 북쪽에는 단 지파가 각각 선두에 진을 치게 된다.

2. 행진 시의 진 배치도

성막에서 구름이 떠오르는 신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거두고 전진하게 되는데 이때의 배열 순서는 제일 앞에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 중에서 나온 자들이 법궤를 메고 진행하고, 그 뒤로 우편에 기를 든 유다 지파와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선두에 진행한다. 바로 그 뒤를 성막의 휘장과 덮개 등의 부품을 레위 지파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운반하고 그 뒤에 르우벤과 시므온, 갓 지파가 따르게 된다. 그 뒤로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성막의 기구들인 제단, 물두멍, 향단, 진설상, 촛대 등을 운반하고 나머지 여섯 지파가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V. 오경과 민수기의 내용 비교

모세 오경은 따로따로 별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내용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비록 여러 곳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들을 동시에 다르고 있긴 하지만 그 주된 줄거리는 완벽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오경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전체적인 내용의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다음의 도표는 오경의 전체적 흐름과 서로의 상관성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 준다.

민수기의 제() 문제

I. 계수(計數)의 숫자에 대한 문제

 

이성적 방법만을 신학의 연구에 사용하는 비평학자들은 민수기에 나타난 통계 수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산정된 통계'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수기의 인원 계수에서 나타난 그러한 통계들은 후대의 제사장들에 의해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보통 상식의 것'아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불가능한 것들을 달리 해석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한낱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억측을 만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이러한 몇 가지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을 나타내는 <엘레프>는 단순히 '씨족이나 가족'을 나타낼 뿐이다.

이들 자유주의 학자들은 민수기에 나타난 수자<엘레프>를 ''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가족이나 씨족이란 단어로 해석하려고 한다. , 1:21의 르우벤 지파의 경우를 46,500명으로 보지 않고 46 가족으로 보려는 것이다. 물론 구약에서 '엘레프'가 가족이나 씨족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음은 사실이다. 삿 6:15를 보면 기드온이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라는 말을 하는데 이때의 ''이란 말이 '엘레프'로서 가족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인구 계수에 사용된 '엘레프'는 수가 1,000을 의미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 이유는 1,000보다 적은 숫자의 단위인 <메오트> (100을 나타내는 숫자)가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과 같이 '엘리프'를 가족 단위를 나타낸다고 할 때 한 가족에서 군 복무가 가능한 수자를 넷이나 다섯으로 본다고 하면 100을 나타내는 숫자 '메오트'는 그보다 훨씬 작은 수자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되는데 이러한 생각은 본문의 문맥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억측에 불과하게 된다. 즉 민 1:46의 이스라엘 군대의 총계를 603,550명이 아닌 603 가족이라면 한 가족을 5명씩 계산해서 3,015명에 불과한데 이런 작은 인원에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숫자가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고 우려를 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참조, 1:9). 다른 고대의 기록을 보면 애굽 18대 왕조 때의 하 이집트(Lower Egypt)의 인구가 7백만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엄청난 인구가 삼천여 명의 인구에 근심을 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발상이다.

2. 250만여 명 대인구가 광야에서 생존해 나갈 수가 없다.

민수기에 기록된 통계에 의하면 군에 복역할 수 있는 연령의 사람들만 약 60만이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해서 약 250만여 명의 인구가 출애굽 해서 나온 셈이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광야에서 생활해 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평적인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민수기의 인구 통계는 처음부터 그릇된 기록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출애굽 사건에 기록된 전체 이스라엘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가능한 것임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러나 모세의 역사를 기록한 오경이나 후기의 히브리 문헌들이 증거 하듯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과 광야 여행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음식은 하나님께서 보낸 만나였으며, 그들이 마신 물은 반석에서 나온 신기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성경의 다른 기적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것일 뿐 다른 어떤 이성적 설명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적적인 사건을 인간의 이성에 맞지 않는다고 수정을 가하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II. 문서 비평에 대한 문제

한때 다른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민수기는 모세에 의해 저작된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문서 비평이 대두하게 되면서부터 모세 저작설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문서 비평의 극단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민수기의 모든 역사상까지도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은 민수기가 문학적 통일성을 가진 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잡다한 자료들이 어설프게 설정된 연대기적 구조 속에 끼어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민수기를 포함한 오경의 현재의 모습은 모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 역사의 마지막 시기인 에스라 때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네 가지의 독립된 문서들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은 여호와(Jehovah), 혹은 유다(Judah)를 나타내는 B.C. 850년경의 J문서와 엘로힘(Elohim), 혹은 에브라임(Ephraim)을 나타내는 B.C. 750년경의 E문서, 신명기를 나타내는 B.C. 621년경의 D문서, 그리고 제사 직을 나타내는 B.C. 444년경의 문서들로서 후대에 와서 JE문서가 결합되고 그다음으로D문서가 덧붙여지고 마지막으로 P문서가 JED문서 안에 편집되어 들어가서 전체적으로 모세 오경을 율법적이고 제의적인 성격을 띠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수기서도 이러한 문서들의 혼합에 의한 여러 가지 자료가 섞여서 구성되어 내려오다가 후대의 개정과 가필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민수기의 율법적인 규례를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그것과 상이한 것을 지적하는데 예를 들면 레 4:2-12의 내용과 민 15:22-31은 같은 율법 규례를 다루고 있으나 민수기에는 레위기에 없는 소제가 첨가되어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변형된 제사법이 반영된 것이며 민 21:14'여호와의 전쟁기'에 대한 기록은 후대의 편집자가 그 정확한 전투 장소를 전달하기 위해서 후기의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민 32:34-42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가나안 정착 시대의 것임으로 후에 가필 된 것이라 한다. 특별히 박람의 예언시는 B.C. 13, 12세기의 히브리 문체로 되어 있으므로 민수기가 모세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신앙 자세에 입각한 것이 아니며, 또한 모세 오경이 모세에 의해 쓰였다고 하는 정통적 주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서 지적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한 비평적인 학자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논리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민수기의 역사성과 모세 저작설을 부인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불합리한 주장이 될 뿐이다. 민수기의 모든 내용이 모세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역사성을 가진 사실적 기록이란 정통적인 주장은 유명한 구약 학자 에드워드 J 영의 '오경이 모세의 저자이란 말의 정의'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필연적으로 한마디도 빠짐없이 스스로 썼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은 불합리한 것일 뿐이다. 하무라비(Hammurabi)는 그의 유명한 법전의 저자였으나 그 자신의 손으로 그 돌비를 새긴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산상 수훈의 저자시지만 친히 주님께서 그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다. 밀턴 역시도 '실낙원'의 저자지만 그것을 그가 다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룩한 성경의 증거는 우리로 하여금 오경의 근본적, 실제적인 저자가 모세임을 믿게 해 준다. 오경에 있어서도 아스트뤽(Astruc)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미 기존에 있던 문서의 어떤 부분을 사용한 것만은 사실이며, 또한 후대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다소의 가필과 개정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은 본질적으로 모세의 창작인 것이다." 보수주의 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윌슨(Willson)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오경은 지금 그대로 역사적인 것이며 모세 시대의 것이다. 후세의 편집자들에 의하여 개정되고 평정되었다 해도 그 가필 역시 영감 된 것으로 다른 부분과 같이 참된 것이다.

[민수기 26장 설교말씀]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 조사(민 26:1-65)

 

[민수기 26장 설교말씀]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 조사(민 26:1-65)

민수기 26장 설교 말씀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두 번째 인구 조사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전쟁에 나갈 만한 자의 숫자를 계수하라고 했는데 20세 이상으로 했습니다. 모압 평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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