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16장 성경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여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울이 왕이 된 이후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제사도 자신이 직접 드리게 되고 아말렉을 멸하라고 했는데 멸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셨는데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찾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그때 사무엘은 다윗의 형들을 보고 하나님이 선택한 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용모를 보지 않고 중심인 마음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다윗입니다. 우리도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학력과 학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성도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삼상 16:6-13, 행 13:16-23
요절: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2)
주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배를 소중히 여겨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자
바울 사도께서 바나바 사역자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두 분은 열심히 목회를 하였는데, 그들이 금식할 때 성령님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전도의 현장으로 파송받았던 것입니다(행 13:2-3). 두 사람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제일 먼저 간 곳이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Cyprus)였습니다. 수도인 바보(Paphos)에서 바예수(Barjesus)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엘루마)를 만나 괴롬을 당했습니다. 이 박수는 총독과 함께 있었는데, 총독 이름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입니다. 총독은 지혜 있는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는데, 이 박수가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복음을 믿지 못하게 애를 썼습니다. 이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subtlety)와 악행(mischief)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였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겼습니다.(astonished at the doctrine of the Lord, 행 13:10-12)
여기에 나오는 바예수라 하는 엘루마(박수)는 유대인 가운데서 단 지파(Dan tribe)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 지파 후예들이 헬라 세계로 많이 들어가 헬레니즘(Hellenism)을 만들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습니다. 카발라(Kabbalah)라는 유대 신비교인 ‘밀의 종교’(密儀宗敎, Mystery religion)를 만들어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바예수가 전형적인 단 지파 자손의 모습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임종 직전에 이를 내다보고 예언하기를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심판은 하나님만 하시는데, 하나님 자리에 앉는다는 뜻).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창 3:15에 의하면 뱀의 후손이 단 지파를 통해 역사함)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창 49:16-17) 하였습니다. 이 예언을 하고서 야곱 자신이 한탄하면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창 49:18)고 할 정도입니다. 먼 훗날 단지파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동족을 해치며 악의 두목 역할을 할 것을 미리 내다본 야곱은 그러나 ‘여호와의 구원’ 즉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바예수 엘루마도 성령님의 권능으로 즉시 눈이 어두워져 버립니다.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악의 역사보다 훨씬 강함을 볼 수 있습니다.
구브로(Cyrus) 총독 전도에 성공한 바울 일행은 이제 소아시아로 건너갔습니다. 버가(Perga)에 도착했을 때 요한은 밝혀진 이유 없이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훗날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 사도회의(공의회)에 참석차 왔던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안디옥 교회에 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차 전도여행까지 함께 출발하여 구브로 선교에 참여했는데, 소아시아 버가에서 두 선교사와 상의 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나중에 마가 요한은 이를 후회하여 두 선교사가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할 때 다시 합류하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용서하고 데리고 가자는 의견을 내었고, 바울은 또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전도대를 떠나면 어떡하느냐고 데리고 가지 말자는 의견으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지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행 15:37-39). 결국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다시 갔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소아시아지방으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순교하기 전 로마 옥중에 계실 때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한 말씀에 보니 그를 용서하였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 출발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 앉았는데 율법과 예언서 글이 낭독된 후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바울에게 권면의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기 시작한 것이 저 유명한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복음 설교”입니다. 설교학에서 이 본문 말씀은 설교의 원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케류그마(Kerygma)란 말은 ‘선포’라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선포하는 설교가 바로 케류그마 설교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6절- 41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입니다. 모든 설교의 중심은 항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바울 설교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 오심의 준비, 그리스도의 사역, 회개 및 그리스도 영접(결단촉구)입니다. 이 복음적인 설교가 가장 힘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들어도 다함이 없습니다. 예수님 오심을 가장 성실히 준비한 다윗의 믿음을 오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 - 가나안 정착 -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Kish)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며 사역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I have found David the son of Jesse, a man after mine own heart, which shall fulfil all my will.)”(행 13:22)는 것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대상 11:9)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었습니까 ?
첫째로 그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이름 뜻 자체가 ‘사랑하는 자’ ‘사랑받는 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쉐마를 그대로 실천한 인물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성품(목숨)을 다하고, 네 힘(최고의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 6:4-5)를 실천한 인물입니다. 사랑하는 척하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한 자였습니다. 사울 왕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로 하여금 이새의 집에 심방하게 하여 그 아들 중 하나에게 차기 왕으로 기름 붓도록 하셨습니다. 큰 아들 엘리압이 먼저 나오는데 사무엘이 마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하여 사무엘은 여호와의 중심에 합한 자를 찾았습니다. 일곱 아들이 다 지나도록 마음에 감동이 없어서, 양을 치고 있던 여덟 번째 (말째) 다윗을 불러오라 하니 그를 데려오는데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삼상 16:12) 우리 인간은 외모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은 그 중심에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얼굴에도 이런 마음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모습 (he was ruddy, and withal of a beautiful countenance, and goodly to look to). 그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성령님)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어진 일에 충성했는가에 대해서는 골리앗과 대결하러 나가겠다고 자청했을 때 사울 왕 앞에 나아가 설득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삼상 17: 34-37) 이 말을 듣고 있던 사울 왕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다윗에게 가서 골리앗과 싸우기를 허락했습니다. 다윗이 생명을 바쳐 양들을 보호하는 태도는 평소 그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였기에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한 짐승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며 주님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36절에 보니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장 28절에 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행 13:22)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3번). 뒤돌아보지 않겠네.” 복음송가 가사처럼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지시하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우리가 되십시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게 해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참된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고 그다음은 내가 하기 싫어도 그 뜻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하라고 하면 무엇을 달라고만 요청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실천하는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면 생명을 내놓고도 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4:15) 하십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열매로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시매 심히 앓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아이의 회복을 위하여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밤을 새웠습니다. 음식을 전폐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직언하자 그들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 후 궁으로 돌아와서 명령하여 음식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신하들이 상당히 궁금하여 왕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왕이여 아이가 살아서 고통할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아마 저희들 생각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왕이 들으면 기절이라도 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이에 왕은 대답하기를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16-23)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안 순간 그대로 따랐습니다. 고집을 피우지 아니했고 저항하지 아니했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죽어갈 때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용서하시고 다시 살려달라고 간청했으나,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 가신 순간 일단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정상생활을 회복하였습니다. 이 아이를 잃고 밧세바와 동침하여 솔로몬을 나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아이 이름을 여디디야(즉 사랑을 받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삼하 12:24-25)
셋째, 다윗은 찬양을 사랑하였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은 찬양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그를 영적인 장자로 삼았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9:26). 그의 형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셨습니다(창 9:27). 셈의 후손인 유다(Judah)는 그의 11형제들 가운데서 영적인 장자가 되어 유다 왕들의 조상이 됩니다. 그의 이름 뜻이 ‘찬양 praise’입니다(창 29:35).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태어나서 그의 형들 7명 가운데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본래 루시퍼가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였는데 교만의 영이 들어가 타락해서 세속 음악을 지금까지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윗은 양 떼를 칠 때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을 다닐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시편의 2/3 이상 다윗이 노래한 것입니다. 이 시편이 예배의 찬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배 장소인 성전을 짓고 싶은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Ark of Covenant)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시자 그는 자기 아들이 성전을 짓도록 모든 준비를 다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배의 질서를 세우면서 찬양대를 임명하고 예배를 수반하는 모든 이들의 조직을 하였습니다. 4000명씩 세 찬양대를 조직하여 연습시켜 하나님의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다윗의 평생소원은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는 것이었습니다(시 23:6).
다윗의 대표적인 시편 23편은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시편은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 시제가 다 있습니다. 미래는 ‘1절 부족함이 없으리이다’ (I shall not want.); 4절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I will fear no evil.) 6절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Surely goodness and mercy sha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과거 시제는 5절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He anointed my head with oil.)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으면 과거형은 이곳만 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제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아직 왕으로 취임하기 전에 지은 시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다윗은 자신은 목동이기에 너무도 실감 나게 적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이 갈 길을 앞서 가면서 그 길이 위험한지 양들이 넘어지지나 않는지 발을 다치지 않는지를 살피면서 갑니다. 또 양들이 먹을 풀을 미리 맛보고 마실 물을 미리 마셔보면서 독이 없는지 양들이 먹어서 건강에 좋은지 영양가 있는지 배탈 나지는 않을는지를 미리 점검해 봅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위험한 짐승과 싸우며, 지팡이로 갈 길을 지시하고, 낭떠러지에 떨어진 양을 구합니다. 그러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유명한 구약학자 프리드먼(David Noel Freedman, 미시건대 교수, 올브라이트 교수의 제자) 박사는 이 시편의 시제를 모두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으로 읽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이 시편 23편을 아침에는 미래형으로, 낮에는 현재형으로, 저녁 혹 밤에는 과거형으로 읽으며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아침 기도> 미래형으로 기도드리며 묵상하고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주님은 오늘도 저의 목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 제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푸른 초장에 누이실 것이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의 영혼을 순간순간 새롭게 하시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저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실 줄 믿습니다. 주께서 제 원수 앞에서 제게 승리의 상을 베푸실 것은 기름으로 제 머리에 바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잔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저를 따르리니 평생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저의 소원은 여호와의 품에 영원히 거하고 싶습니다. 아멘”
<낮 기도> 현재형으로 읽고 묵상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주님은 저의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저의 영혼을 순간순간 새롭게 하시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저와 함께 계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제 원수 앞에서 제게 승리의 상을 베푸십니다. 기름으로 제 머리에 바르셨습니다. 그래서 제 잔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저를 따르니 평생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저의 소원은 여호와의 품에 영원히 거하고 싶습니다. 아멘“
<저녁 기도> 과거형으로 읽고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주님은 오늘 하루도 저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제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푸른 초장에 뉘어 주셨으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의 영혼을 순간순간 새롭게 하셨으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주께서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였습니다. 주께서 제 원수 앞에서 제게 승리의 상을 베푸셨음은 기름으로 제 머리에 바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잔이 넘쳐 났습니다. 오늘 하루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저를 따랐습니다. 이렇게 평생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저의 소원은 여호와의 품에 영원히 거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밤도 온전히 주님의 품에 맡기옵고 사랑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어느 산 입구에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사장은 힘들어도 견디지만 직원은 힘들면 사표 낸다.
연인은 불쾌하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불쾌해도 참고 산다.
원인은 한 가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압력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수영장 바꾼다고 해결 안 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직장을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되며,
건강을 모르는 사람은 비싼 약을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바꾼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내 자신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하는게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내가 빛이 나면, 내 인생은 화려하고, 내가 사랑하면, 내 인생은 행복이 넘치며,
내가 유쾌하면, 내 인생엔 웃음꽃이 필 것이다.
매일 똑같이 원망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면, 내 인생은 지옥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 인생이 있고, 내 행복이 있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하루”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를!
부정 대신에 긍정을! 절망 대신에 희망을!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
예, 문제는 내 자신입니다. 오늘 내 자신이 변화되는 멋있는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가 되셔서 주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시편 23편의 신앙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으셔서 적어도 하루 세 번씩 이 시편을 묵상하며 주님의 사랑을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데 힘써서 평생 찬미의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만 저의 목자로 삼아, 저는 평생 주님의 어린양으로 살며 매일 행복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시기를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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