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산 하나님 말씀 중에서 모레 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레 산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배우는 산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산입니다. 우리가 모레 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배워야 합니다.
모레 산 הר מורה(하르 모레)
♣명제: 모레 산은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산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모레 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가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지만 사사가 죽고 난 후에는 곧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악행을 저지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악행을 저지르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 족속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삿6: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이때는 아무리 미디안 족속들을 이기려고 해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짓는 좋은 평야를 빼앗기고 산에서 웅덩이와 굴을 파놓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궁핍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눈에 악행을 저지르면 하나님께서는 외부의 환경을 통하여 고통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의 우상을 따라가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이 이들의 손에 넘겨지게 하여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삿6:3-4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파종을 할 때가 되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이 아말렉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10월이 되면 우기가 시작됩니다. 이때가 되면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에 미디안 족속들이 쳐들어와서 토지소산을 멸하여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이나 소나 나귀인 가축들도 모두 끌어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족속들에게 약탈을 당해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손에 붙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해결해 보려고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까? 먹을 양식이 모두 떨어졌을 때에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을 때에 부르짖고 있습니다.
삿6: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으로 인하여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되고 궁핍함이 너무 심하여 고통을 당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궁핍함이 심한지라’ דלל(달랄 1809 와우계속, 동사, 닢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가련하게 되다, 쇠하다, 어렵다, 줄어들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족속들에 의하여 해마다 농사를 짓지만 모든 곡식들을 약탈당하여 식량이 줄어들게 되고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점점 생활이 곤핍하여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재미가 없고 인생의 낙을 누리지 못하며 육적으로는 점점 쇠퇴하여 가련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눈에 악행을 저지르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육으로 쇠약하여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생활을 탈피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올 한 해 농사를 망쳤다면 다음 해에 될 수 있겠구나!라는 소망도 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에 힘이 들었는데 다음 해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임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었더라’ זעק(자아크 2199 와우계속,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부르짖다, 슬피 울다, 애곡하다, 통곡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생활을 하다 보니 기력이 모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소망도 없고 살아갈 희망조차 없을 그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통곡하며 슬피 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고통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복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주님 앞에 나오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들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경의 어려움이 오기 전에 주님을 배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누리고 있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주님 앞에 감사함이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렵고 힘든 고통이 오자 부르짖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았을 때에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부르짖지 않다가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미디안 족속들의 괴롭힘이 심해지니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와우계속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울면서 고통을 호소하니 하나님은 들으시고 선지자를 하나 보내시게 됩니다. 그가 기드온입니다.
삿6:12-14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큰 용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드온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 גדעון(기드온 1439) 기드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דע(가다 1438) 끊다, 자르다, 찍다, 깨뜨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에게 고난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이들을 완전히 찍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그때 당시는 농업사회이기 때문에 타작마당에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세워서 농업의 신을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농사의 신인 바알과 아세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고 깨뜨리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사들을 보내시는데 기드온은 바알의 주상과 아세라의 목상을 깨뜨리고 찍어버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삿6:25-26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난 그날 밤에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너의 아버지가 섬기고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성 꼭대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한 제단을 쌓고 아세라 우상의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바알과 같은 우상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섬기는 것들을 모두 깨뜨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 복음의 것들을 모두 타파시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 말씀만을 선포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을 쌓아 주님만 선포되는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의 주상과 아세라의 신을 깨버리고 찍어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미디안 족속들을 물리칠 때가 되었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죽이기 위하여 쳐들어왔던 것입니다.
삿7: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알과 싸우게 하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모든 백성들을 모아서 하롯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미디안의 진영은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롯 샘’ עין חרד(엔 하로드 5878) 하롯 샘,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ין(아인 5869) 눈, 샘물, 이라는 뜻과 חרד(하라드 2729) 떨다, 전율하다, 두렵게 하다, 쫓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롯 샘 곁에 진을 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족속들의 연맹 군에 비하여 너무나 미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기싸움에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족속들에게 지고 들어갑니다. 그 이유가 계속해서 미디안 족속들에게 압제를 7년 동안 받아왔기 때문에 기가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롯 샘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이게 하시고 이곳에서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압제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붙여주셨기 때문에 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는 적지만 미디안 족속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기를 죽여 놓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용사가 되어 싸워주실 때에 미디안 연맹 군들의 마음은 두려워 떨게 되며 두려움 때문에 온몸이 전율을 느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이미 이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롯 샘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드온은 믿고 나가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력한 군대인 미디안 족속들을 완전하게 이스라엘 땅 밖으로 몰아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엄청난 큰 문제를 놓고 두려워서 떨릴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내 앞에 놓여있을 때가 있습니다. 미디안과 같은 문제가 있을 때에 하나님은 나를 하롯 샘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들을 보고 두려워 떨지 못하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주님이 용사가 되어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적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눈 안에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눈에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전에는 죄인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인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두려워 떨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라보시고 나의 문제의 적들을 모두 소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미디안의 진영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레 산을 통하여 무엇을 깨닫게 해주시고 있습니까?
‘모레’ מורה(모레 4176) 모레,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רה(야라 3384) 가르치다, 교훈하다, 알게 하다, 교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레 산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하여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모레 산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많은 미디안 족속들을 보면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들을 물리쳐서 반드시 하나님이 너희를 보호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깨닫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고 교훈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미디안 족속들을 물리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삿7:2-3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족속들과 싸울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싸우면 자신들이 잘나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를 자랑할까봐! 두려워 떠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돌아간 사람들이 이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가 만 명이 남았습니다.
‘스스로 자랑하기를’ פאר(파아르 6286 동사, 히트파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영화롭게 하다, 영광을 나타내다, 스스로 자랑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많이 참여하여 승리하게 되면 자신들 스스로 자랑하기 때문에 두려운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아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다가 조금 승리하게 되면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을 드러내어 영광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영화롭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사람들을 빼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면 계속해서 자기들 자신에게 자랑거리로 만들 것입니다. 자신을 우상화시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적은 숫자로 미디안 족속들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히트파엘형과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또 시험을 하시고 있습니다. 물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구분하여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처럼 물을 핥아 먹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물을 개처럼 핥아 먹은 자들이 300명입니다.
삿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물을 핥아 먹은’ לקק(라카크 3952 동사, 피엘, 분사능동, 남성, 복수) 핥다, 핥아먹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용사로 뽑힌 삼백 명들은 물을 먹는데 개처럼 혀로 핥아 먹었습니다. 이들은 주위를 살피면서 물을 핥아 먹은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 주위를 살피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의 갈증만을 채우려고 하는 자들은 용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진 깊이 들어갔을 때에도 아무리 목이 말라도 갈증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천방지축 대지 않고 조심스럽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형 분사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백 명은 정예부대로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욕심에 빠져 있다면 결국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월남전에 파병을 했을 때에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에 있는 시계나 보석들을 취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전쟁보다는 이런 육적인 욕심에 있다 보니 적군들이 부비트랩을 시체에 설치해 놓고 철수한 것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운 자들은 주위를 살피지 않고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여 시체에 있는 시계나 보석들을 탈취하려고 하다가 적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현재 똑같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용사 삼백 명 이외에는 모두가 부주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경거망동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위력 있게 적진을 살필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되며 기드온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적진에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영적 지도자인 교회의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에 순종하고 사탄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용사로 300명을 뽑으신 이유에 대하여 숫자적인 의미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300은 3 곱하기 100입니다. 3은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는 의미입니다. 100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 300명을 사용하셔서 미디안 족속들을 물리치시는데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숫자가 있어야 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적은 무리들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레 산을 통하여 가르치고 싶으신 것이 이것입니다. 적은 무리들로도 얼마든지 미디안 족속들을 물리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가지고 갔던 무기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나팔과 횃불을 가지고 갔습니다.
삿7:19-20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기드온의 삼백 명의 용사들은 나팔을 들고 한 손에는 횃불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항아리를 깨고 나팔을 불고 횃불을 밝혔습니다.
‘나팔’ שופר(쇼파르 7782) 수양의 뿔 나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פר(샤파르 8231) 빛나게 되다, 아름답게 되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나팔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나팔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빛이 나게 하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이 드높여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본다면 복음의 십자가 나팔을 힘차게 불어서 사탄의 무리들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나팔을 크게 불었을 때에 무너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나팔이 율법주의자들의 무리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주님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자들의 모든 지식과 이론들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의 나팔을 가지고 미디안 족속들과 같은 무리들에게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들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횃불’ לפיד(랍피드 3940) 횃불, 재앙, 번개,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לפד(라파드) 빛나다, 비추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드온 삼백 용사들이 횃불을 준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디안 족속들에게 재앙을 내릴 것을 믿음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번개와 같은 엄청난 재앙으로 서로 싸우게 만들어 파멸시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을 나타내어 어둠의 자손들을 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 되신 진리를 소유하고 어둠의 자손들과 싸우러 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에 있는 자들이 이 빛을 보고 두려워 떨게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통하여 어둠의 권세가 무너져 내리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이제는 문화적 배경을 통하여 보겠습니다. 어떻게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횃불과 나팔을 가지고 승리했는지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은 사막에 거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낙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낙타를 타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기려고 해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삿7: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숫자와 같고 낙타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해변의 모래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기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낙타는 소리와 빛에 민감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가면 밤에 시내 산을 올라가는데 낙타 눈에 후레쉬를 쏘이지 말라고 가이드가 주의를 줍니다. 만약 빛이 낙타에게 쏘이게 되면 낙타가 발광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횃불과 나팔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나팔 소리와 횃불에 낙타들이 발광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완전히 소리에 미쳐서 날뛰게 되었으며 그 많은 모래의 숫자와 같은 낙타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게 되었으며 미디안 족속들은 서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틈을 타고 삼백 명이 들어가 칼로 도륙했던 것입니다.
삿7:21-22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기드온의 용사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들끼리 칼로 쳐서 죽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때에 낙타들도 미쳐서 서로 날뛰게 되었고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때에 삼백 명은 하나님의 용사들로서 작전을 수행하는데 적진 속으로 들어가 칼로 미디안 족속들을 모두 죽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모레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모레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큰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자신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교만해지고 자신을 자랑할까봐! 하나님은 적은 무리들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모레 산에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주님을 의지하여 나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나팔과 진리의 빛을 소유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이 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레 산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세상에서 재력과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의지하여 영적인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권세 자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할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적은 무리로 미디안 족속의 엄청난 무리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현재 우리들도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면 주님의 능력으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모레 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사탄의 무리들과 악한 영들과 싸우는 자들의 되어야 합니다.
'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인물 성경말씀] 에노스 אנוש(에노쉬) (0) | 2020.12.22 |
---|---|
[룻기 2장 성경 말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기다(룻 2:17-19) (0) | 2020.12.21 |
[성경인물 하나님 말씀] 라헬 - 라헬에 대한 예언 (0) | 2020.12.18 |
[성경 족보 하나님 말씀] 셋 שת(셰트) (0) | 2020.12.18 |
[성경 족보 하나님 말씀] 아담 אדם(아담) (0) | 2020.12.17 |
[룻기 2장 하나님 말씀] 보아스가 룻에게 떡을 떼어주다(룻 2:14-16) (0) | 2020.12.16 |
[성경족보 하나님 말씀] 라멕 למך(레메크) (0) | 2020.12.16 |
[다볼 산 하나님 말씀] 다볼 산 הר תבור(하르 타보르) (0) | 2020.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