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장에서는 사마리아인들이 유다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유대인들을 고소하였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방해꾼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소당한 유대인(스 4:6-16)
고레스 왕은 꾸준히 유대인의 이익을 도모했으며, 그 자신이 손수 하사품을 주어 돕기도 했다. 유대인의 이익을 방해하는 어떤 제안도 그에게는 소용없었다. 그가 행한 것은 선한 원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통치한 것은 모두 30년이었지만, 그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유대인을 석방하라는 조서를 낸 후의 통치 기간은 단 3년 혹은 7년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죽었거나 또는 통치자의 생활을 끝내고 “아닥사스다”라고도 불리는(7절) 아하수에로스(6절)가 즉위했다. 그런데 이 아닥사스다는 이교도들의 작품 속에서 “캠비세스” 라 불리는 자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그는 초라한 유대인들을 선왕만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조상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어,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려줄 것을 청했다. 그들은 그들의 뜻을 이루어 줄 왕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도 지체하려 하지 아니하고, 그가 즉위하자 곧 그러한 청을 올렸던 것이다. 교회의 적들은 교회에 재앙을 내릴 기회를 찾는 데 얼마나 민첩한가를 보라. 교회의 친구들은 교회를 돕는 데에 결코 방심하지 말자.
Ⅰ. 그들이 왕에게 이 문제를 고하기 위해 보낸 편지의 일반적인 취지를 보자. 그것은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는” 것이라고 했다(6절). 마귀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다(계 12:10). 마귀는 항상 그들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욥에게 행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다 그들을 고소할 뿐만 아니라, 자기 부하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줌으로써 재판장들과 왕들에게 그들을 고소케 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하고, 또 유력한 자들의 혐오를 받게 만든다. 성실하고 경건한 자들을 헐뜯기 위해 아직도 그런 수법이 이용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Ⅱ. 이 편지를 쓰는 일에 관여한 자들을 보자. 그것을 계획한 자들의(7절) 이름과 그것을 문서화한 자들과(8절) 그러한 주장에 협력하고 동조한 서기관들의 이름(9절)이 열거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허위의 진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관원들은” 자기 동료들과 함께 “여호와와” 그의 전을 “대적하여 모사를 꾸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단한 열의와 증오를 품고 그것을 대적했다. 아마 그렇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모든 이방의 신들이 쇠진케 되고, 멸하게 될 것을 예언한 때문이었을 것이다(습 2:1; 렘 10:11).
2. 어떻게 백성들은 그들과 동조하여 이 헛된 일을 꾀했는가를 보자. 그들은 이 고소를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고 함께 외쳤다. 이 주민들이 사는 모든 성읍에서 대표가 파견되었다(9개 이주민 도성이 열거되어 있다). 그들은 앗수르, 갈대아, 바사 등지에서 온 자들이었다. 아마도 10지파에 속한 유대인들이 돌아오자, 유대인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그들은 그 후로부터 유대인의 재산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자 시기를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돌아온 유대인들에 대해 그들은 몹시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Ⅲ. 에스라는 바사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을 여기에 기록해 놓고 있다.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선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선한 계획을 방해하려는 수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그 나라에 대해 매우 충성스럽고 또한 그 나라의 영예와 이익을 위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했다. 그리하여 그 왕은 나라 안 전체에서도 자기들처럼 충성스럽고 왕에 대한 의무를 철저히 행하는 신하를 또다시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다(14절). 우리는 궁전의 소금이 쳐져있는 고로(난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즉 “우리는 왕궁으로부터 녹을 받고 있으며, 우리의 몸이 소금 없이는 보존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녹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또는 다니엘 1장 5절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궁에서 교육을 받고 왕의 식탁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이다. 이들은 그가 등용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식물(食物)에서 먹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일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왕의 수치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겠나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분명 왕을 수치스럽게 만들 그 성전의 건축을 중지해 줄 것을 왕에게 간청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은밀한 적의가 흔히 가이사와 그의 권력을 애호한다는 미명 아래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를 증오했다. 그러나 태도를 바꾸어 돌연 “우리에게는 가이사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 왕에게 의지하여 사는 자들이 이렇듯 감사한 마음으로 국왕의 권익을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건한 관심을 지녀야 더욱 당연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양식을 얻고 있으며, 그의 소금을 먹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의 섭리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치당함을 보고도 분개하지 않고 “참고 본다면 합당치” 않다.
2. 그들은 이렇게 고발했다. 즉 유대인들은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위험한 존재이므로, 예루살렘은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며(12절)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15절).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시 48:2) 예루살렘이 여기에서는 온 세상의 수치로써 크게 비난받고 있다는 것을 보라. 교회의 적들은 제일 먼저 교회에다 악한 이름을 붙이고 나서 비로소 자기들이 꾸민 악한 계획을 밀고 나간다. 예루살렘은 의로운 왕들에게는 충성스러운 성읍이 되어 왔으며 그곳의 현주민들은 각 도에 사는 자들처럼 왕과 그의 나라에 호의를 품고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다니엘도 근래에 그 왕에게 매우 충성스러웠으므로, 가장 악한 대적들은 다니엘에게서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단 6:4). 그러나 엘리야는 가장 부당하게도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았고, 사도들은 “세상을 소란케 한다”고 비난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자신에게도 “민족을 타락시키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라고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므로 똑같은 장난이 지금 되풀이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1) 그들의 지나간 역사는 불쾌한 것이었다. 즉 “그 성읍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이 행해졌고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었다”는(15절) 것이었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믿음의 일과 지금 중건하고 있는 성전을 가까이했었더라면, 그들은 결코 바벨론 왕의 속박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① 그들 자신과 조상들과 방백들이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들이 맹세를 위반하지 않는 한 (왜냐하면 나로서는 위반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의로운 방법을 택하고 제일 먼저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그것은 또한 성공할 수 있다.
② 비록 유대인들과 그들의 방백들이 반역하는 일을 범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영원히 “반역하고 패역한 성읍”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붙이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들이 사로잡아간 유대인들은 사려 있는 자들로서 선한 행실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 남의 비난을 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사로잡혀간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는(렘 29:7)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가르침을 준수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조상의 죄를 자손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은, 희귀한 일은 아닐지라도 매우 온당치 못한 처사다.
(2)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일에 대한 저들의 정보는 사실상 대단히 그릇된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곽을 중건하고” 아니 “필역했으며”(난외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지대를 수축하였다”(12절)는 사실을 왕에게 고하기에 매우 열심이었으나, 이것은 사실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고레스의 명에 의해 그 성전을 건축했을 뿐이었으며, 성곽을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성곽을 중건할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성곽들은 수년 후에도 여전히 훼파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느 1:3).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 할꼬?” 너는 이 거짓 펜보다도 더욱 나쁘도다.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로다”(시 120:3, 4). 만일 그들이 모든 덕과 영예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웃사람들이 모두 거짓된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것을 왕에게 써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왕이 그 사실을 곧이 들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감히 그렇게 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잠 29:12 참조).
그들이 예측한 사실들은 모두 근거 없고 어리석은 것이었다. 만일 이 성읍이 중건되면 유대인들은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할”(13절) 뿐만 아니라 (큰 거짓말도 작은 거짓말과 같이 쉽게 말해지기 때문이다), 왕은 강 서편에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도 아무런 것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16절) 사실과, 유브라데 강 이편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연이어 반역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을 매우 확신하고 있었고, 또 왕도 그들의 말을 믿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왕이 이런 사실을 묵인하게 되면, 왕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후계자들에게 해가 된다고 말했다.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 편지의 내용이 줄줄이 얼마나 교묘하며, 늙은 뱀처럼 독기를 품고 있는가를 보라.
[이사야 1장 강해설교말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사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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