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19장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엘리야는 죽을 보지도 않고 열심히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많은 기적과 이적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죽고 나서도 무덤에 시체를 던졌더니 죽은 사람이 살아날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왕상 19:15-21)
왕상 19: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왕상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상 19: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왕상 19: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왕상 19: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오늘날의 학문 중 가장 많은 인기가 있는 학문은 "미래학"입니다. 미래학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엘빈 토플러라는 학자는 "미래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이 책들의 주제는 변화입니다. "예견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가"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리는데 그것은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지만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큰 힘을 가지게 된 비결은 교육에 있습니다.
요즘에도 이스라엘 TV를 보면 오후 다섯 시에서 열 시까지의 황금시간대에 뉴스 외에는 방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어린아이들은 모두 모세오경이라 탈무드를 공부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그러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이스라엘 어린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지능지수가 여섯 배나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날 노벨상을 받은 사람 중에 30%가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산자가 죽은 자보다 우월하듯이 교육받은 사람은 교육받지 않은 사람보다 우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톤 역시 "어떻게 교육받았느냐에 따라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능력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는 극도로 불신앙적인 요소가 팽배한 시대였습니다.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의 결과로 윤리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이 악한 시대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보여준 삶을 보면서 우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의 신앙 정신이 어떻게 엘리사에게 교육되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사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밭을 가는 엘리사에게 그의 겉옷을 던지면서 그를 따르라고 합니다. 엘리사는 그가 몰던 소 한 마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로 그 고기를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습니다.
이 말씀 중에 "수종 들었다"라고 하는 말은 귀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삶을 함께 하면서 영적인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고 엘리사는 순종함으로 이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받아 가지게 된 신앙, 그리고 엘리야의 삶을 통해 엘리사가 살게 된 삶의 모습을 세 가지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1. 정의로운 삶입니다.
얼마 전 서울대 교수 한 분이 우리나라 이만 칠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국민이 어느 나라 국민인가?" 하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 중 73%가 "일본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정직한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73%가 "우리나라는 정직해서는 살 수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자의 80%가 청소년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우리 사회의 정의가 젊은이의 세계에까지 상당한 부분에서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정의가 힘을 지배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정의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장 9절 말씀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정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믿음을 소유한 정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생명을 노리는 위험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엘리야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으로부터 은 두 달란트를 받은 게하시를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나"하고 꾸짖은 엘리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 업자가 빵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시골 낙농업자에게서 날마다 버터를 사서 빵을 사용했는데 한 파운드 짜리의 버터가 항상 양이 모자랐습니다. 괘씸하게 생각한 제과 업자가 낙농업자를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경찰이 낙농업자에게 "당신은 왜 버터의 양을 속여서 팔았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낙농업자는 "저는 저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빵가게 주인에게서 한 파운드짜리 빵을 사서 그 빵의 무게만큼의 버터를 잘라서 팔았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속여서 팔았기 때문에 자신이 모자란 버터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의롭지 못하게 사는 사람은 그 불의한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인 크리토가 탈옥을 권고하자 "나는 탈옥하면서까지 내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정직한 삶이 가장 중요한 삶의 요건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D.L. 무디 부흥사는 "교회가 사회의 타락을 막지 못하면 그 사회가 교회를 타락시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타락상이 한국 교회에 얼마나 강하게 침투해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정의로 사회를 정의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2. 용기를 가지는 삶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숨어 살다가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자 두려워하지 않고 아합에게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네냐"하고 아합이 말하자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오"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또 엘리야는 혼자 450명의 바알 제사장들과 갈멜산 선상에서 영적 투쟁을 하는 용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엘리야의 용기를 엘리사도 배웠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왕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이스라엘 임금은 옷을 찢으면서 "이는 우리와 전쟁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하고 국가적인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포위했을 때도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희와 함께한 자보다 많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강단에서 서서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다른 신으로 정절을 빼앗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일본 신사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드리리이다. 드리리이다. 이 목숨을 주님께 드리리이다"하는 용감한 고백을 했습니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믿음의 용기가 한국 교회를 오늘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를 한국 교회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사 역시 수넴 여인의 외아들이 죽자 그 시체 위에 엎드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싶어도 사랑의 마음이 중심으로 생기지 않으면 나라를 위해 민족과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사랑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그만큼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새로운 교육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정의로운 생활을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용기와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교육이 참다운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의 용기와 정의와 사랑의 밑바탕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스승과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분들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진정한 신앙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후세대들에게 용기와 정의와 사랑의 마음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수기 2장 주일설교문] 성막 중심의 삶(민 2:1-34) (0) | 2021.02.03 |
---|---|
[레위기 7장 주일예배설교] 깨끗한 자만이(레 7:19-21) (0) | 2021.02.03 |
[사사기 14장 주일예배설교문] 삼손의 힘과 성령의 역사(삿 14:1-7) (0) | 2021.02.01 |
[출애굽기 3장 하나님말씀] 영적 지도자가 되는 길(출 2:1-15, 3:1-8) (0) | 2021.02.01 |
[여호수아 1장 주일설교문]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수 1:1-9) (0) | 2021.01.29 |
[새해 신년 주일설교] 일하는 새해(신명기 5:12-15) (0) | 2021.01.28 |
[성경지명 하나님말씀] 가나안 Canaan - 가나안으로 가려면(창12:1-7) (0) | 2021.01.24 |
[창세기 1장 설교말씀] 인생의 복된 생활(창 1:26-31, 2:18-19) (0) | 2021.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