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7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앗수르 민족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망하게 하셨습니다. 앗수르 왕이 이방 땅에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백성을 징계하셔서 회개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악의 길로 가면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는 아들은 사생자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징계를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생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상 백성들을 앗수르 왕이 함께 놓았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따르면 결국 영혼이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복음인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구다의 풍조를 경계하자(왕하 17:24-26)
왕하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왕하17: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왕하17: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오늘날만큼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신앙도 많은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토착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혼재되어 무엇이 참된 신앙인지에 대한 분별도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뒤 '구다'를 비롯한 메소보다미아 지역의 여러 민족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네르갈을 비롯한 우상들을 이스라엘 땅에 옮겼습니다. 사마리아가 혼합 종교의 중심지로 전락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런 종교 혼합주의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기서는 잘못된 신앙이 무엇인지, 또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그들은 우상숭배 풍조에 빠져 있었습니다
1) 우주 천체를 숭배함
'구다'는 수메르어로' 네르갈 신(神)의 자리'란 뜻입니다. '네르갈'은 메소보다미아 지역 사람들이 믿던 신으로, 우주 천체를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구다'라는 지명이 '네르갈 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구다 사람들의 우상숭배가 어떠했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다인(人)들은 우주 천체를 숭배하고 자연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것도 당신의 형상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구다인들은 우주 천체를 숭배함으로써 스스로의 지위를 격하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영광 돌려야 할 사명을 저버리고 우상을 철저하게 숭배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변에 이런 어리석은 우상숭배자들이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미신에 빠져 있음
앗수르 왕의 이주 정책에 따라 사마리아로 이주한 구다인은 사자들의 잦은 출몰로 큰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왕하 17:26). 그리고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들이 가져온 우상의 전각을 짓고 우상을 더 열심히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삶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 주권자임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이런 미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점을 치고, 사주 관상을 보고, 무당을 찾아갑니다. 불행한 것은 성도들 가운데 30퍼센트 정도가 이런 미신에 빠져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생활 구석구석에 침투한 미신적 요소를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올바른 믿음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 풍조를 만들었습니다
1) 하나님과 우상을 동일시함
사마리아로 이주한 구다인들과 여러 메소보다미아 사람들은 사마리아에서 자기들의 신전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우상도 섬기고,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왕하 17:33). 말하자면 이들은 여호와를 세상의 많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요즘에도 하나님을 많은 신 중 하나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무엇이든지 다 인격 수양에 유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거니와 기독교는 인격 수양을 위한 종교도 아니요, 더구나 주님은 윤리나 도덕 교사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神)이라 말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세상에는 다른 신이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출 20:3).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는 자는 제일 먼저 이 '유일신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자기 손으로 제사장을 세움
당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여 제사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이주한 구다인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적당한 사람을 택하여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왕하 17:32). 구다인은 자기들 마음대로 산당을 짓고 자기들의 기분에 맞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장 직분은 레위 지파에 속한 아론 반열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다인은 하나님의 법도와 상관없이 자기들의 편리성에 따라 성직자를 세우는 불의를 범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좋은 대로 성직자를 임명하는 부당한 행동은 이미 신앙이 타락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근거가 됩니다.
3. 오늘날도 구다의 풍조가 교회를 위협합니다
1) 혼합 풍조가 만연해짐
사마리아의 종교는 구다인과 메소보다미아 사람들로 인해 완전히 혼합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종교가 여호와 종교와 우상 종교가 혼합된 사이비 종교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이 처음 들어가는 곳에는 이런 위험스러운 현상들이 심심찮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교는 혼합 종교가 아니라 여호와 유일 신앙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왕상 18:21).
2) 혼합 풍속을 배격해야 함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들어온 로마의 풍속들을 엄히 경계하면서 이런 이방 풍속은 썩지 않을 하나님의 형상을 썩을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는 무서운 죄악이라 하였습니다(롬 1:23). 사마리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로 이주한 구다인들의 이방 풍속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세상 풍속, 세상 유행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귀는 세상 풍속과 유행을 입고 하나님의 교회에 침투하여 그 거룩성을 훼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구다인들은 사마리아에 이주해서 여호와 신앙을 가졌지만, 순수한 신앙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혼합 종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위험성은 요즘도 상존합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율례대로 믿는 것이지 세상 방식, 자기 방식으로 믿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신앙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크리스천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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