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 20장에서는 우매자의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고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술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독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술, 잠, 말(잠 20:1-30)
1-4절, 술, 왕의 진노, 다툼, 게으름
[1절]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성경시대에 술은 주로 ‘포도주’(야인)이다. 물론 ‘독주’(쉐카르)도 있었다. 본문은 포도주나 독주가 사람을 거만케 하고 떠들게 하는 유익이 없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거만케 하는 것’이라는 원어(레츠)는 ‘scorner 경멸케 하는 것(BDB), mocker 조소케 하는 것(NASB, NIV)’이라는 뜻이다. 술은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며 남을 경멸하고 조소케 하고 허풍과 허세를 부리게 만든다.
술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가 없다. ‘미혹되는 자’(솨가)라는 원어는 ‘취하는 자(NASB), 곁길로 가는 자(NIV)’라는 뜻이다(BDB). 성경이 술을 한두 잔 마시는 것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고 술 취하는 것을 정죄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술 취하면 이성과 양심의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실수하고 범죄하게 되기 때문에 술을 경계하는 것이다.
의인 노아는 술 취함으로 그 장막에서 벌거벗는 실수를 하였고(창 9:20-27), 의로운 롯도 술 취함으로 근친상간의 부끄러운 죄를 범하였다(창 19:30-38). 실상, 술은 유익이 별로 없다. 술은 사람으로 실수하며 범죄케 하고 자기 몸에 해를 주며 개인과 가정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교훈하였고(엡 5:18), 감독과 집사의 자격으로 ‘술을 즐기지 않음’과 ‘술에 인박이지 않음’을 들었고(딤전 3:3, 8; 딛 1:7), 늙은 여자들에게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딛 2:3). 또 그는 술 취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하였다(고전 6:9-10; 갈 5:19-21).
[2절]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으르렁거림]과 같다. 왕은 한 나라의 주권자요 우두머리이다. ‘진노’라는 원어(에마)는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왕은 두려운 자이다. 그가 진노하면 백성이 두려워할 것이다. 왕이 언제 진노하는가? 백성이나 신하들이 악을 행하거나 거짓되이 행할 때, 특히 반역을 꾀할 때 그러할 것이다. 동물의 왕인 사자의 부르짖음이 짐승들과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을 주듯이, 왕이 진노하면 특히 악하고 거짓된 자들과 반역자들은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본문은 또,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잃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질서를 명하셨다. 자녀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특히, 왕은 칼을 가진 자이다. 그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왕을 대적하고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잃게 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대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 노하시면 어떠하겠는가. 나훔 1:2, 6은,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라고 말하였다. 로마서 1:18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진노하신다.
[3절]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사람은 교만 때문에 다툰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또, 사람은 욕심 때문에, 즉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육신적 사랑의 욕심 때문에 다툰다. 잠언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야고보서 4:1-2,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또, 사람은 미움 때문에 다툰다.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이상과 같이, 인간적, 세상적 동기들에서 나온 다툼들은 아무 유익이 없다.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킨다.
본문은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온유와 겸손의 덕을 가질 때, 또 세상적 욕심을 버릴 때, 또 이웃에 대한 참 사랑을 가질 때 다툼을 멀리할 수 있다. 참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 성도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의 지혜요 그의 영광이다. 모세는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자이었다(민 12:3). 예수께서는 온유하시다. 그는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성령의 인도하심의 열매는 사랑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함이다(갈 5:22-23). 교회의 직분자는 온유하고 다투지 말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3:3, (장로의 자격)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2: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4절]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가을에’라는 원어(메코레프)는, ‘추위 때문에’(KJV)라는 뜻보다, ‘가을이 지난 후’(NASB) 혹은 ‘추수가 지난 후’(BDB)라는 뜻이다. 유대 땅에는 가을에, 씨를 뿌리기에 적합한 이른비가 내리고 그런 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밭을 가는 것은 땀을 흘리는 수고로운 일이다. 게으른 자는 일해야 할 시기에 일하지 않는다. 잠언 10:5는,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9:24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말하였다.
본문은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심은 것이 없으니 거둘 것도 없으며, 수고한 것이 없으니 기쁜 날도 없을 것이다. 세상일은 무슨 일이든지 부지런하게 행해야 유익하고 소득도 생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언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나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영적인 일도 비슷하다.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사람이 경건의 훈련에 힘쓰고 성경 읽고 기도하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을 행하면 인격이 변화되고 덕을 세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하였다(딤전 4:8).
우리는 술을 즐기지 말고 술취하지 말자. 완전 금주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좋은 전통이다. 우리는 깨어 근신하며 살자.
우리는 세상의 통치자들도 공경하고 그들에게 복종하자. 우리는 특히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그에게 절대 복종하자.
우리는 교만, 욕심, 미움을 버리고 다툼을 멀리하자. 우리는 주님을 본받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온유와 겸손과 사랑의 열매를 맺자.
우리는 세상 일에 부지런하자. 손으로 땀 흘리며 일하기를 힘쓰자. 또 우리는 영적인 일에도 부지런하자.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선을 행하자.
5-8절, 모략, 충성, 의인, 왕의 눈
[5절]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모략’이라는 원어(에차)는 ‘의논’ 혹은 ‘계획’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계획을 세우고 행한다. 지혜로운 자는 계획을 잘 세워 일을 성취시킨다. 잠언 11:14, “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언 15:22,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언 20:18,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잠언 24:6,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계획은 깊은 물과 같다. 그것은 감추어 있어 쉽게 생각해내기 어렵다. 잠언 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깊은 물을 길으려면 두레박과 긴 줄과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본문은,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고 말한다. 명철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와 총명을 얻은 자이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지혜와 명철을 주신다. 성령께서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에차)의 영이시다. 이사야 11:2,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며 의와 선과 거룩의 길을 행할 때 더욱 총명을 얻는다. 명철한 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좋은 계획을 생각해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맑은 정신, 깨닫는 지혜, 바른 판단력, 지혜롭고 사려 깊은 생각들을 주셔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었던 요셉과 다니엘이 그러하였다(창 41:38; 단 4:9; 5:11).
[6절]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남에게 선을 베풀고 구제하고 긍휼과 사랑을 베푸는 것을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기의 선함과 인자함을 자랑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선함과 구제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 선(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외식적 선행을 경계하셨다. 마태복음 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주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과 위선(僞善)을 책망하셨다(마 23장).
본문은 또,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충성된 자’는 생각과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자, 참된 믿음이 있고 또 믿을 만한 자를 가리킨다.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는 충성이다(갈 5:22).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과 생각과 뜻을 같이해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은 충성된 일꾼이었다(빌 2:20, 30).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권면하였다(요일 3:18). 그러나 선한 행위로 자신을 증거하는 충성된 성도와 일꾼은 드문 것 같다.
[7절]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완전히’라는 원어(베숨모)는 ‘그의 완전함에’라는 의미이다. 구약에서 ‘완전함’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심으로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 도덕적으로 큰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완전함에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자이다. 그는 십계명을 힘써 지킨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바르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산다. 노아는 의인이었고(창 6:9) 욥도 그러하였고(욥 1:1), 다니엘도 그러하였다(겔 14:14, 20). 또 그런 사람은 범죄하였을 때 즉시 회개한다. 구약시대에는 그가 회개할 때 번제와 화목제와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는다.
본문은,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부모의 신앙과 선행은 자신들에게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복이 된다. 출애굽기 20:5-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워하고 그의 계명을 어기는 자에게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죄를 갚으시지만,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신명기 28:4, 18도 하나님께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자녀에게 복을 주실 것이나, 그의 계명을 어기는 자에게는 자녀에게 화를 내리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시편 37:25-26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말했다.
[8절]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옛날에 왕은 심판 자리에 앉은 자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하였다(왕상 3:9). 왕은 재판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다윗 같은 경건하고 의로운 왕은 백성들 가운데서 공의를 세웠다. 사무엘하 8: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公)과 의(義)를 행할새.”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한다. ‘그의 눈으로’라는 말은 ‘그의 의로운 관찰과 통찰과 판단의 눈으로, 고의적인 악을 분별하고 미워하는 눈으로’라는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로운 재판장은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분별하고 모든 악을 징벌하며 흩어지게 한다. 악은 그 앞에 설 수 없고 다 흩어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왕들 중의 왕이시며 공의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통치자이시며 온 세상의 재판장이시다. 시편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왕으로 오셨다. 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요한계시록 19:11,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사람이 악을 버려야 할 이유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인을 다 엄히, 즉 그의 엄격한 공의로 징벌하시고 멸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며 바르고 거룩하고 선하게 행함으로 명철한 자가 되어, 무슨 일을 할 때 좋은 계획을 세우는 자가 되자.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거나 자랑하려고 선을 행하지 말고 은밀히 선을 행하고 남을 구제하고 또 범사에 충성된 자, 믿을 만한 자가 되자.
우리는 완전함에 행하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를 떠나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도 복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자. 한 나라의 재판관들도 두려워해야 하지만, 특히 온 세상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자.
9-12절, 정결, 정직, 행동, 귀와 눈
[9절]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다. 마음이 완전히 깨끗한 자는 없고 죄에서 완전히 떠나 있는 자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과 연약성을 가지고 있고 실수와 연약함이 있다. 인간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무능력해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고(렘 17:9), 또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렘 13:23). 또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51:5).
사람은 중생하고 구원받은 후에도 본성의 연약성을 가지고 있다. 로마서 7:18-19, 25,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義)이시다. 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만 죄악성을 이길 수 있다. 로마서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0절]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큰 통]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원문을 직역하면, “돌과 돌, 에바와 에바, 이 둘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라.” 옛날에는 돌을 저울추로 사용했던 것 같다. 에바는 큰 통이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며,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쓰던 말보다 좀더 큰 단위이다. 1말(10되)은 약 18리터이다. ‘돌과 돌, 에바와 에바’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저울추와 말을 뜻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저울추를 속이고 말을 속이는 것, 즉 공정치 않은 상거래를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우리가 공정한 상거래를 할 것을 명하셨다. 레위기 19:35-36,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신명기 25:13-15,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잠언도 이 진리를 강조한다. 잠언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6:11,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20:23,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그러나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사회에는 정직하지 않게 장사하는 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모스 8:5, “[그들이]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미가 6:10, “악인의 집에 오히려 . . .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에스겔 45:10,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11절]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자신의 행위의 정직과 깨끗함을 드러내며 자신이 잘못이 없고 거짓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린아이에게도 양심과 도덕적 분별력이 있고 이성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가정에서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격이 비뚤어져서 말과 행실이 나쁘고 부모에게 또 사회에 대해 반항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 특히 믿음의 자녀들 속에는 상당한 도덕적 관념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도덕성이 있고 자신의 정결함과 정직함을 나타냄을 볼 수 있다면, 하물며 성인인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씻음과 새 생명을 받은 성도인 우리는 얼마나 더 도덕적인 삶, 얼마나 더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어린아이들, 즉 인격적 미성년자, 미성숙자도 그러하다면, 우리의 책임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지만, 타락한 인간 본성 속에는 죄악된 성질이 있고 그 죄악성의 중심은 욕심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5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욕심은 육신의 정욕, 물질적 탐욕 즉 돈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보다 위에 서려는 명예욕을 포함한다. 이런 욕심에서 미움, 시기, 질투, 속임,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등의 온갖 죄악이 나온다. 사회의 죄악은 대개 아이들의 탓이 아니고 어른들의 탓이다. 성인들은 도덕적 책임을 가지지만, 그 책임을 저버리고 온갖 죄를 범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어른들조차도 아이들에게 도덕적 모범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2절]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우리의 시력과 청력 지켜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마음의 눈과 귀도 주셨다. 주께서는 무리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마 13:9). 그것은 마음의 귀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의 눈과 귀를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했다(엡 1:17-19).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의 눈과 귀를 항상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눈과 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우리는 이 기관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눈은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책이나 유익한 책들은 보아야 하지만, 허탄하거나 우리의 심령을 더럽히는 죄악된 그림이나 글들은 보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의 귀는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 성경적 설교, 유익한 말들은 들어야 하지만, 이단사설, 거짓말, 헛소문, 죄악되고 허탄한 잡담은 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의 모든 부분을 다 보시고 다 들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편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를 보시고 들으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그는 우리의 선행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복 주시며, 또한 우리의 악행을 보시고 슬퍼하시고 벌 주신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만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만 구하자.
우리는 상거래에서뿐 아니라, 말과 행실과 돈 거래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거짓과 불의를 버리고 진실과 정직을 따라 행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도 경건하고 바르고 선한 인격자가 되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우리의 자녀들도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게 키우자.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시고 들으심을 알고, 우리의 눈과 귀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며, 또 그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하게만 사용하자.
13-16절, 잠, 거짓, 지혜로운 입술, 보증
[13절]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
잠은 사람의 휴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잠에는 피로 회복의 비밀이 있다. 몸 건강의 한 중요한 방법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다. 수면 시간은 사람의 체질과 건강상태에 따라 또 하루의 일의 성격과 양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최소 5시간 이상 8시간 미만일 것이다. 수면 부족은 병의 원인이 되므로 잠은 충분히 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잠자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은 게으름의 표가 된다. 게으른 자는 잠자기를 좋아하고 그 결과로 가난해진다. 사업도, 직장도, 집안 일도, 공부도 사람은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잠을 줄이고 자기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잠언 6:6-11,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성도는 영적인 잠을 자서는 안 된다. 성도가 돈과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영적인 잠을 자면 신앙 성장이 없고 심령의 쇠약함이 찾아온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을 아끼고 주의 뜻을 분별하고 행해야 한다(엡 5:15-17).
[14절] 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고 말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지적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어떤 물건을 살 때 물건값을 깎아 보려고 그 물건이 좋지 못하다고 거짓말을 쉽게 하고 나중에 자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거짓말을 잘 한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성도는 물질 중심적이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는 안 좋은 것은 안 좋다고 말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해야 한다. 물건을 파는 자도 정직하고 진실하게 팔고, 물건을 사는 자도 그것을 진실하게 평가하고 말하며 사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행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범사에 진실하게 행해야 하고 또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했다(엡 4:25).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의 성격에 대해 교훈하였다. 그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했다(고전 13:5-6). 우리는 진실하게 행하고 또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한다.
[15절]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페니님)[산호](BDB, KB)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시프세 다아스)[지식의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지혜로운 입술’은 ‘지식의 입술’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입술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결국 지식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지식의 가치는 금과 진주나 산호보다 더 귀하다. 바른 지식은 참으로 보배이다. 그러므로 잠언 8:10은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고 말한다.
바른 지식이 무엇인가? 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말한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고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그의 창조 세계에 대한 지식이며, 범죄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지식이며, 신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으로 오신 것과 그의 기적 행하심과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 사역과 그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과,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남과, 성화와, 죽은 자들의 부활, 천국과 영생,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연합인 교회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경건하고 겸손하고 바르고 선하고 덕스럽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 등에 관한 지식이다. 즉 교리와 윤리의 지식이다. 그것이 성경의 내용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 지식과 경건과 이 지식에 따른 인격성과 도덕성의 가치는 금과 보석의 물질적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16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
잠언 27:13도 동일한 말씀이다. ‘타인’이라는 원어(자르)는 ‘낯선 자’라는 뜻이다. ‘외인들’이라는 원어(노크리얌)는 히브리어 전통(마소라)본문에 ‘낯선 자들’(노크림)(Syr, Vg, NASB)이라고 쓰여 있으나(케팁) ‘낯선 여자, 즉 음녀’(노크리야)(Targ, KJV, NIV)라고 읽기도 한다(케레). 본문은 낯선 자를 위해 보증이 되면, 그 옷도 빼앗기고 그 몸도 종이 된다는 뜻이라고 본다. 즉 사람은 잘못된 보증을 서면 큰 손실과 낭패를 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제할 마음과 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남의 보증이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갚을 힘이나 마음이 없으면서 남의 보증이 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잠언 6:1-5,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잠언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언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잠언 22:26-27,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남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지혜자는 그런 재정 보증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일, 즉 직업의 일에도 충실해야 한다. 또 우리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또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물질적 유익만 생각하며 거짓말하지 말자. 그것은 성도다운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 세상 중심, 물질 중심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바르게, 선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지식의 가치를 깨닫고, 금은 보화의 물질적 부요를 구하지 말고 참된 지식을 구하자. 그것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고 우주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그의 창조 세계, 그의 심판과 구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승천,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천국, 영생, 그리고 세상에서의 경건하고 겸손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삶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남을 위해 재정 보증을 하지 말자.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할 수는 있어도,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받기 위해 단순히 빌려주는 것이나, 남을 위해,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자를 위해 또 자신이 갚을 힘도 없으면서 재정 보증을 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7-20절, 속임, 의논, 한담, 불효
[17절]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본문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다”고 말한다. ‘속이고 취한 식물’이라는 원어(레켐 솨케르)는 ‘거짓의 떡’이라는 뜻이다. 거짓의 떡이란, 온갖 부당하고 불의한 소득, 예를 들어, 사기를 쳐서 번 돈, 점원이 물건이나 돈을 훔치는 것, 공금 횡령, 공적인 물건을 사적으로 쓰는 것, 돈을 빌리고 안 갚는 것, 헌금을 훔치는 것 등을 가리킨다. 그것은 더러운 이익, 불의하고 거짓된 이익이다.
성경은 장로의 자격을 가르치면서 “더러운 이[이익]를 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하고(딛 1:7), 또 집사의 자격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한다(딤전 3:8). 사도 베드로도 장로들에게 교훈하기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고 말하였다(벧전 5:2).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다. 더러운 이익, 불의한 이익은 당장에는 이익이 되는 듯하다. 그런 돈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사고 좋은 차와 집을 그러할 것이다. 잠언 9:17은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본문은 말한다. ‘후에는’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징벌의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얼마 동안 참으신다. 그 기간은 사람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기간이다. 그러나 얼마 후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될 것이다. ‘모래’라는 원어(카차츠)는 ‘자갈’이라는 뜻이다(BDB, KJV, NASB, NIV). 이 말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나타낸다. 사람이 의와 선을 행하면 평강을 누릴 것이지만, 불의와 거짓과 악을 행하면 재앙을 당할 것이다.
[18절]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경영’은 어떤 일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의논함’은 어떤 일의 목표와 진행 과정에 대해, 또 주의할 점들에 대해 그 방면에 지식과 경험이 있거나 지혜와 선한 판단력이 있는 자들의 의견과 조언을 듣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먼저 그것을 구상하고 계획해야 하며, 또 그것을 위해 지혜로운 의견들과 조언들이 필요하다. 지혜롭고 좋은 조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고 이성적 판단과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가리킨다. 진학이나 취직, 결혼 등의 개인의 진로와 가정의 일과 사업의 일 같은 세상일이나 교회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잠언 15:22는,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말하고, 또 잠언 11:14는, “도략[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고 말한다.
특히 전쟁을 할 때 그러하다. 전쟁은 단지 군사력의 싸움이 아니고 무엇보다 머리 싸움이다. 그래서 본문은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고 말한다. ‘모략을 베풀고’라는 원어(비사크불로스)는 ‘[좋은] 조언을 받아서’라는 뜻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지혜와 경험이 있는 참모들의 좋은 조언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잠언 24:6,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고 말한다.
영적 전쟁인 성도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도는 좋은 조언들이 필요하다. 그 조언들은 성경책에 있다. 또 그들의 실제의 삶 속에서 성경의 조언들을 시험하고 확인한 경건한 성도들의 간증들도 좋은 조언들이 된다.
[19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각 사람은 자기 일에 충실해야지 남의 집에 두루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한담하는 자’는 말을 많이 하는 자, 말쟁이, 수다쟁이를 가리킨다. 사람이 남의 집에 두루 다니며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남을 비방하며 남의 험담이나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되기 쉽다. 그런 사람은 입이 가벼운 자이며 인격적 결함을 가진 자이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게 된다. 남의 비밀이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를 원치 않는 일,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 수치스런 일 등을 가리킨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입이 가벼우므로 남의 비밀을 누설하게 된다. 그것은 남의 인격과 명예를 해치는 나쁜 일이다. 사람은 교만한 마음이 있을 때 또 사랑과 화목의 마음이 없거나 부족할 때 그런 잘못을 범한다.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화목]하라.”
그러므로 본문은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입술을 벌린 자’는 수다쟁이를 가리킨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을 자제하는 자가 되라고 교훈한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성도가 수다쟁이와 사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첫째, 자기 자신도 나쁜 영향을 받아 입이 가볍고 결함 있는 인격이 되기 쉽기 때문이며, 둘째, 자신도 남을 비난하는 죄에 동참하기 쉽기 때문이며, 셋째, 어느 날 자신의 숨겨진 약점들도 그에 의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20절]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어두움]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5계명에서 부모 공경을 명하셨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바울도 부모 순종에 대해 교훈했다. 에베소서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러므로 부모를 무시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이며 큰 죄를 범하는 자이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어두움 중에 꺼짐을 당할 것이다. ‘등불’은 번영과 형통, 곧 행복을 가리킨다. 제5계명의 말씀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이지만, 부모를 거역하고 저주하는 자는 그 행복을 빼앗길 것이다. 악인의 등불은 꺼질 것이다. 잠언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잠언 24: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불효는 악한 일이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며, 부모를 저주하거나 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출애굽기 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또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그 책망을 듣지 않는 완악하고 술취하며 방탕한 사람을 성문 앞에 성읍 장로들 앞으로 끌어내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모세를 통해 신명기 21장에서 명령하셨다(신 21:18-21). 또 잠언 30:17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했다.
속이고 취한 음식은 후에 그의 입에 자갈이 가득하게 된다. 우리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번 돈으로 살아야 한다.
바르고 좋은 조언들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다. 우리는 세상의 일을 하기 전에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경말씀의 교훈과 경건한 성도들의 조언과 지혜자들과 경험자들의 좋은 조언들을 받는 것이 좋다.
우리는 말이 많고 입이 가벼운 자와 친근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각자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저주하여 불행해지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21-24절, 기업, 보복, 진실, 걸음
[21절]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처음에’라는 말은 그 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때를 가리킨다. ‘속히 잡은’이라는 원어(메보켈렛)는 전통적 히브리어 본문에 쓰여진 대로는 ‘탐욕으로 얻은’(BDB)이라는 뜻이다. ‘처음에 탐욕으로 얻은 산업’이란, 처음부터 성실히 노력하여 이룬 산업이 아니고 탐욕을 가지고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산업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을 보관하고 연구하고 필사(筆寫)했던 전통적 히브리 서기관들(이들을 마소라 학자들이라고 부름)은 이 단어를 ‘성급히 얻은’이라는 말(메보헬렛)로 읽으라고 제안하였다. 그것이 고대 역본들(LXX, Syr, Targ, Vg)의 본문의 뜻이다. 주요 영어성경들(KJV, NASB, NIV)과 한글개역성경도 그렇게 읽었다. ‘처음에 성급히 얻은 산업’이란, 처음부터 차근히 수고하며 이룬 산업이 아니고, 크게 수고하지 않고 우연하게, 쉽게 얻은 산업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처음부터 탐욕으로 얻은 산업 혹은 처음부터 우연히 쉽게 얻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작은 그가 무엇을 얻은 것 같았으나, 결말이 복이 되지 않다는 뜻이다. 본문의 뜻이 어느 쪽이든지 다 뜻이 통한다. 처음부터 탐욕으로 얻은, 불의하게 얻은 산업은 결말이 복되지 않을 것이다. 잠언 10: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잠언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자갈]가 가득하게 되리라.” 혹은, 우연히 쉽게 얻은 산업이라도 역시 결말이 복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땀 흘려 얻은 산업이라야 복되다. 그런 산업은 잘 보존되고 관리될 것이다.
[22절]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본문은 개인적 보복을 금한다. 주 예수께서도,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마 5:39, 44).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교훈하였고(롬 12:17), 사도 베드로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교훈하였다(벧전 3:9).
우리는 하나님만 기다리며 바라고 의지해야 한다. 원수를 우리에게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만 유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악한 계획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로 이기게 하실 것이다. 신명기 32:3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수(報酬)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교훈하였다(롬 12:19). 경건한 다니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자이었다(단 6:26-27).
물론, 우리는 교회적 권징의 원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교회적 권징과 절교(絶交)가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마 18:15-19). 사도 바울도, 악을 행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교회에서 제명시키고, 사도적 교훈을 순종치 않고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명하였다(고전 5:11-13; 살전 3:6, 14-15).
[23절]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장사하는 사람이 주머니나 상 밑에 감추어둔 서로 다른 저울추를 가리킨다. 그것은 속이는 저울에 사용될 것이다.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속이는 저울은 불의와 부정직과 속임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악한 것이다.
사람은 왜 불의하고 부정직하며 속이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신적, 세상적 욕심에서 나오고 또 미움과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은 욕심과 미움 때문에 악을 행하고 속인다.
하나님의 명하시는 바는 의와 정직함이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이다(신 6:25).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에게 의로운 삶을 원하신다. 미가 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과 판단, 말과 행동이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공의롭고 진실해야 한다.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러해야 한다. 그는 자기 이해관계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24절]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사람의 걸음은 사람의 행위와 삶을 가리킨다. 사람의 걸음이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는 말은 사람의 행위와 삶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되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와 간섭과 도우심 속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라고 본다. 잠언 16:9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자기의 길’은 자신의 현재의 삶의 과정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과정도 가리킨다. 사람은 특히 자신의 앞길, 자신의 미래가 평안할지, 잘되고 형통할지, 아니면 고통과 고난이 있을지, 재앙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잠언 16:1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말한다.
야곱은 자기 아내들 곧 외삼촌 라반의 딸들에게,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도다”라고 말하였다(창 31:6-7).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았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제들과 친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신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와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다고 말하였다(창 45:3-8).
에스더서에 보면, 파사 왕 아하수에로의 가장 높은 신하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고 유다 민족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살리시고 하만을 죽게 하셨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 혹은 탐욕으로 얻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당하게, 땀 흘리며 돈을 벌어야 한다. 또 우리는 무슨 일을 책임 맡기 전에 그 일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구원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불의와 불법, 부정직과 거짓을 다 버려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의 걸음은 하나님께로서 말미암는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25-27절, 성급한 서원, 지혜로운 왕, 영혼
[25절] 함부로[성급히]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올무]이 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거룩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거나 하나님께 무엇을 서원하기 전에 먼저 그것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고 살피고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잠언 29:20은,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했고, 잠언 15:28은,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서원 혹은 서약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도 지켜야 한다. 성경은 자신에게 해로운 서원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시편 15:4, “[하나님의 성산(聖山)에 거할 자는]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전도서 5:4-6,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 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맹세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지 못하였다. 그 일을 인해 이스라엘 회중은 족장들을 원망하기도 하였다(수 9:14-15, 18). 사사 입다는 암몬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그의 집 문에서 나와 그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약한 대로 자기 외동딸을 번제로 드렸다(삿 11:31-35).
[26절] 지혜로운 왕은 악인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로 그 위에 굴리느니라.
‘지혜로운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직무를 잘 수행하는 왕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와 선을 실천하며 백성을 다스린다. 그는 그의 나라에서 악한 자들을 키질하고 타작하는 바퀴로 그들 위에 굴린다. ‘키질한다’는 말은 의인과 악인을 나눈다는 뜻이다. 타작하는 바퀴로 악인들 위에 굴리는 것도, 농부가 타작할 때 바퀴로 곡식 껍질을 부수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듯이, 악인들의 악함을 응징하고 그들을 의인들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세속 국가는 의와 선이 시행됨으로 견고해진다. 의는 나라를 견고케 하고 영화롭게 한다. 잠언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잠언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또 의의 내용이 사랑이므로, 선과 인자함의 실천도 나라를 견고하게 만든다.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位)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잠언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원통함을 풀어주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러므로 악이 제거될 때 왕국이 평안하고 견고해진다. 잠언 25: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모습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불의와 미움이 있을 때 분쟁하지만, 의와 사랑이 있을 때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다. 지혜로운 왕이 나라 안에서 악인들을 분리시키고 제거하듯이, 지혜로운 목사와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회개치 않는 악인들을 부지런히 권면하고 책망하며 징벌한다. 그럴 때 교회는 든든히 설 것이다.
[27절]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영혼’이라는 원어(네솨마)는 ‘호흡’이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생명의 호흡인 ‘영’을 가리켰다고 본다(BDB, KJV, NASB). 사람의 영 혹은 심령은 하나님의 등불이다. ‘등불’은 지식의 빛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의 영은 마음의 눈이라고 불린다. 마태복음 6:23,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에베소서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사람의 영은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핀다. 고린도전서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육신의 눈은 사람의 겉만 볼 수 있다. 눈이 좋으면 잘 볼 수 있고 눈이 나쁘면 잘 보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깊은 마음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사람의 깊은 생각과 감정과 의향은 그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잘 알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영이 그것을 살핀다.
사람은 영의 눈이 밝아야 한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 영의 눈이 어두워지고 회개하면 밝아진다. 사도행전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요한계시록 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우리는 평소에 말할 때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 특히 서원할 때 성급히 하지 말고 신중히 해야 한다. 또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로운 왕이시다. 그는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악인을 제하시고 의로 나라를 굳게 세우신다. 우리는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으로만 살고, 또 거룩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우리는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영의 눈의 시력이 밝기를 기도하자. 또 우리가 바른 생각과 감정과 의향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속을 살피자.
28-30절, 왕위, 사람의 영화, 매
[28절] 왕은 인자(仁慈)와 진리[진실]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位)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왕은 백성의 인도자와 치리자로서 백성을 잘 인도하고 다스리는 것이 그 임무이다. 또 부수적으로 그는 외세(外勢)의 침입을 잘 막아야 한다. 인자(仁慈, 헤세드)는 남에게 선을 베풀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특히 약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울함을 당하는 자를 돌아보는 것이다. 또 진실(에메트)은 겉과 속이 같고 언행(言行)이 일치하고 시종일관하고 믿을 만한 것을 가리킨다.
왕의 인자와 진실은 자신을 보호하고 또 그의 왕위를 견고케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백성도 그 왕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를 복종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잠언 16:12는,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고 말한다.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하나님의 계명은,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요약하면 사랑이므로(마 22:36-39), 결국 이 구절도 본문과 같은 뜻이다.
이상적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다. 교회의 치리자된 목사와 장로들도, 그리고 모든 성도들도 그러해야 한다. 잠언 3:3-4,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부패한 이스라엘 사회에는 인애와 진실이 없었고 거짓과 강포가 충만하였다(호 4: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인자를 요구하셨다(호 6:6; 미 6: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롬 13:8)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엡 5:9).
[29절]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과 체력이다. 군대의 젊은 병사들의 체력은 그 나라의 군사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또 젊은 운동선수들의 체력는 그 나라의 자랑이다. 그러므로 올림픽 경기는 국가들 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경기이지만, 어떤 경기에서 이길 때 그 나라 전체의 기쁨과 자랑이 되며 영광이 된다. 축구, 야구, 태권도, 역도, 마라톤 등이 다 그러하다. 또 건설현장 등에서 볼 수 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체력은 그들의 영광이다. 사람은 체력이 있어야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또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낼 수 있다.
본문은 또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라고 말한다. 흰 머리털은 인생을 오래 살았다는 표시이다. 그것은 인생의 고난을 많이 경험했다는 인생 경륜의 표시이다. 그것은 또 영광의 천국에 가까웠다는 표이기도 하다. 노인들의 백발은 검은 물을 들여 감출 만큼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할 것이 아니다. 백발은 노인의 영광이다. 잠언 16:31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말했다.
장수(長壽)는 하나님의 복 중의 하나이다. 신명기 4: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신명기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잠언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장수(長壽)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며, 백발은 장수에 수반되는 영광스러운 표이다.
[30절]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엄한 징계와 체벌은 효과가 있다. 사람을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한다.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잠언 22:15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하였다. 어린아이라도 타고난 죄성과 미련함이 있기 때문에, 징계의 채찍을 통해서 그 죄성과 미련함이 제거될 것이다. 또 잠언 23:13-14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 징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징계의 매는 자녀 교육에 꼭 필요하고 유익하다. 사랑에 수반되는 엄한 매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도 사람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매우 유익하다. 사람은 징계의 채찍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어 나간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간증하였고(시 119:67), 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119:71).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교훈하기를,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연단을 받은]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였다(히 12:10-11). 징계는 유익하다.
왕의 인자(仁慈)와 진실은 그의 왕위를 견고케 한다. 우리는 다 인자(仁慈)함과 진실함의 덕과 인품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교회의 치리자인 목사와 장로들과 또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이 덕과 인품을 가져야 한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그의 백발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선한 일 많이 할 수 있도록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우자. 또 우리는 노년기의 백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뻐하자.
우리는 바른 자녀 교육에서 징계의 매의 중요성을 알자. 징계의 매는 우리의 자녀에게 유익하여 그에게서 악을 없이할 것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싫어하지 말고 또 낙심하지도 말고, 그것을 달게 받자.
[출애굽기 24장 성경 좋은 말씀] 시내산 언약서(출 2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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