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5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담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신앙을 전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수 있도록 했던 인물들을 말합니다. 에녹은 선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녹은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전파한 인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전하여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신앙을 전수한 인물을 상징합니다. 므두셀라는 주님의 심판을 예고했던 인물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게으르게 하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원하여 복음을 전수한 사람입니다. 라멕은 힘의 권능 자이신 예수님을 전파한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권능 있는 분입니다. 노아는 심판 이후에 안식을 선포한 인물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면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담의 족보에 들어간 인물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창 5:21-32)
21절 바예히 하노크 하메쉬 베쉬쉼 솨나 바욜레드 에트 메투솰라흐
창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1절
므두셀라 - '창 던지는 자'란 뜻.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물을 인간의 식물로 주신 때는 노아 홍수 이후이니(9:3) 므두셀라가 창을 사용한 용도는 짐승의 모피(毛皮)를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수자인데 이는 그가 들판을 쏘다니며 사냥하는 동안 체력이 단련된 탓도 있겠지만 원천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강을 허락하셨기 때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으로서 그분께선 당신의 뜻대로 생명을 취하실 수도(눅 12:20), 연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사 38:5).
이는 ‘성인 남자’ (34:30 ; 신 2:34)를 가리키는 ‘마트’와 ‘병기’(대하 23:10 ; 느 4:17), ‘칼’ (욥 63:18;36:12)로 번역되는 ‘쉘라흐’가 결합된 이름으로서 ‘병기의 사람’ 혹은 ‘창의 사람’ (Gesenius)이란 뜻을 지닌다. 이로 보아 므두셀라는 짐승을 사냥한 활달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추측은 므두셀라가 969세를 삶으로써 (27절) 성경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최고로 장수한 자란 점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
한편 므두셀라를 비롯하여 인류 역사 초기에 살았던 인물들이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은 단지 성경의 기록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 민족의 전설이나 신화에서도 그들의 선조들이 오랜 기간을 살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과거 인류가 장수하였다는 사실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처럼 초기 인류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지구 환경이 오늘날과 많이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즉 이 세상이 패괴하여지자 이를 심판하기 위하여 온 지구를 물로 뒤덮은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는 지구 대기에 물층(궁창 위의 물 1:7) 이 있어 우주로부터 오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각종 유해한 우주선(宇富線)을 차단시킴으로 지구의 모든 생물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당시 지구는 과도한 추위나 더위가 없는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였을 것이다.
그리고 홍수와 가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각종 질병들도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 니라 영양가 있는 식물이 풍부하여서 영양 결핍이 없었으며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고대 화석 가운데 3m 길이의 바다거북 60cm 길이의 날개를 가진 잠자리 화석 등이 발견되는 것에서도 홍수 이전의 자연환경은 인간이 현재의 수명보다 10 배 이상 오래 살 수 있는 쾌적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노아 홍수가 있은 후 궁창 위의 물이 없어지고 쾌적한 자연환경이 파괴됨으로 인하여 지구의 생물들은 이러한 자연의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으며 생명 또한 현저히 단축되었을 것이다.
또한 초기 인류가 오래 산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자로 하여금 조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수받도록 하기 위한 구속사적인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하셨던 것이고 그 가운데 가장 장수한 자는 바로 므두셀라였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창이 날아왔는데 바로 홍수 심판이다.
22절 바이트할레크 하노크 에트 하엘로힘 아하레 홀리도 에트 메투쎌라흐 쉘로쉬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절 바예히 콜 예메 하노크 하메쉬 베쉬쉼 솨나 우쉘로쉬 메오트 솨나
창 5: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 5:22-23절
동행하며 - 원어 '할라크'의 문자적 뜻은 '걷다'(레 11:42), '산책하다'(삼하 11:2)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미 6:8). 이처럼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뜻을 좇아 산 자로는 또한 노아가 있는데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칭함받았다(6:9).
한편 ‘동행하다(할라크)’는 ‘걷다’ 란 기본 뜻을 가지며 ‘삶의 방식을 따르다’ (시 26:3 ; 잠 20:7)란 뜻도 있고 특히 본문처럼 전치사 ‘에트’와 함께 쓰일 때는 ‘성관계를 갖다’(욥 34:8 ; 잠 13:20)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원리에 따라 마치 한 몸을 이룬 부부처럼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게 교제했음을 의미한다.
아마 에녹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에 가까웠을 것이다. 본문의 ‘할라크’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는 하나님과 보조를 같이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빨리 가기를 원하실 때는 빨리 가고 천천히 가기를 원하실 때는 천천히 가는 것과 같은 삶을 계속 유지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가 히트파엘 동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 하나님과 동행함 이외에 경건이란 무엇이겠는가? 불경하고 세속적인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지내는 자요 오히려 하나님과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한다. 이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하지 못하고야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암 3:3). 뿐만 아니라 이는 경건하고 의롭고 근실한 생활의 온갖 요소와 모범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 앞에 하나님을 세우는 일이며, 언제나 그의 감찰 하에 있는 자답게 행동하는 일이다.
그것은 의식(儀式)이나 계율로써 하나님과 교통 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규율로 삼고 그의 영광을 모든 행동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것은 만사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어느 모로나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염려하고 노력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계획하신 바에 부합하고, 그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엡 5:1).
24절 바이트할레크 하노크 에트 하엘로힘 베에네누 키 라카흐 오토 엘로힘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4절
데려가시므로 - 원어 '라카흐'는 '취하다', '받아들이다', '택하다'는 뜻이다. 엘리야의 승천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말로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낙원(눅 23:43)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히 11:5).
본문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와 ‘붙들다’ (3:22 ; 시 18:17), ‘이끌다’(8:20 ; 신 4:20). ‘보호하다’ (사 49 : 16 ; 73:24) 등 다양한 뜻이 있는 ‘라카흐’가 결합하여 에녹이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한 까닭이 하나님께서 친히 에녹을 붙들어 옮기셨기 때문임을 보여 준다. 특히 ‘라카흐’는 에녹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천(昇天)한 사람이었던 엘리야의 승천을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다(왕하 2:3, 5, 9, 10).
한편 에녹의 승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랍은 죽음의 권세에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따라서 성도들은 비록 에녹과 같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을 때 에녹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에는 동참할 수 있음을 깨닫고 영생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 10).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직역하면 '그리고서 그가 없어졌다', '없어졌다'의 기본 어근은 '아웬'으로 '헛됨', '무'란 뜻이긴 하나(사 58:9; 슥 10:2) 여기서는 '에녹이 죽었다'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에녹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공동번역)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25절 바예히 메투쎌라흐 쎄바 우쉐모님 솨나 우메아트 솨나 바욜레드 에트 라메크
창 5: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절 바예히 메투쎌라흐 아하레 홀리도 에트 레메크 쉐타임 우쉐모님 솨나 우쉐바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절 바이헤이우 콜 예메 메투쎌라흐 테샤 베쉬쉼 솨나 우테샤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5:25절-27절
인류 역사상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산 자인 므두셀라의 계보이다. 비록 그가 죽음을 면치 못하였긴 하나 100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장차 회복될 인간의 영원한 생명(딛 1:2)을 기대케 해준다. 한편 그의 아들 라멕은 경건치 못한 가인의 후예 라멕(4:19,23)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대조적인 인물이다.
어떤 이는 그의 아버지 에녹이 예언자였으므로 그의 이름에는 예언적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는다”, “가시가 있다”, 또는 “내뿜다”를 의미한다. 곧 므두셀라가 죽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대홍수를 뜻하는 것이다. 만일 그의 이름에 진정 그런 뜻이 있다면, 그렇게 설명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심판이 오기 훨씬 이전에 부주의한 세상에 대한 분명한 경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지금껏 가장 장수한 사람인 므두셀라의 이름이 죽음을 뜻하는 말을 지니고 있고, 비록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지만 분명히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케 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나이. 지금까지 보아 온 사람들 중에서도 이 땅 위에서 가장 오래 산 그는, 969년을 살기는 했지만 역시 죽었다. 가장 장수하는 자라도 종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그 같은 전쟁에서 헤어날 길이 없으니, 이는 그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장수로 생명에 도전할 수 없으며, 죽음의 속박에 항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므두셀라는 홍수가 있기 전에 죽었다고 하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인데, 유대 저작자들은 창세기 7장 10절을 참조하여 “7일 전”이라고 하고, 또한 다가올 악을 피하여 그를 데려가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장에 언급된 모든 족장들은 거룩하고도 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나는 굳이 이와 상반되는 어떤 추론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 기록되어 있는 유대의 모든 역대 왕들이 대부분 드러나게 거룩하거나 선한 자들은 아니었음에 비해서, 이들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조상들 중에 기록되어 있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에 이들이 경건하거나 선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므두셀라의 경건과 선함이 의심스럽다면, 아마 그도 홍수 때 익사했을 것이다. 그는 홍수가 난 바로 그해에 죽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라멕 - 4 : 18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과 동명 이언이다. 이 이름은 ‘강한 자’, ‘젊은 사람’, ‘난폭한 사람’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나온 가인의 후손 라멕은 성경 기록 최초로 두 아내를 취하여 창조 질서를 깨뜨렸으며 폭력을 숭상하는 자로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겼으나 본문의 라멕은 그 아들 노아로 인하여 명예로운 자가 되었다.
29절 예나하메누 미마아세누 우메이츠본 야데누 민 하아다마 아쎄르 에르라흐 아도나이
창 5:29 이름을 노아라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절 바예히 레메크 아하레 홀리도 에트 노아흐 하메쉬 베티쉐임 솨나 바하메쉬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바님 우바노트
창 5: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절 바예히 콜 예메 레메크 쎄바 베쉬브임 솨나 우쉐바 메오트 솨나 바야모트
창 5: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5:29-31절
땅(아다마) - '아담'(붉다)에서 파생된 말로 땅의 견고성을 강조하는 '에레츠'와는 달리 땅이 붉은색을 띠고 있음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에레츠'가 '온 세상'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임에 반해(2:1) 이는 주로 '토지'를 가리키는 단어이다(3:23; 출23:19; 잠12:11).
저주하시므로(에르라) - '아라르'(심히 저주하다'의 강의형(强意形)동사로 하나님께서 한번 내리신 저주는 그분께서 스스로 철회하시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 효력이 발휘됨을 강조해 준다.
수고로이 일하는 - 직역하면 '우리 손의 일과 노고로부터', 이는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후 인간이 그것을 경작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고거리가 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3:17).
안위하리라 - 원어(나함)의 기본 뜻은 '한숨 쉬다', 여기서부터 '동정하다', '위로하다'(37:35; 룻2:13; 나 3:7). '후회하다'(6:7; 렘 20:16)는 뜻이 파생되었다.
이러한 라멕의 기구(祈求)를 통해 우리는 (1) 당시 족장들의 극심했었던 생활고와 (2) 그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원망치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한 라멕의 순전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노아에 관한 기사를 처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에 관한 기사는 다음 장에서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의 이름과 그 이름이 주어진 이유. 노아는 “휴식”이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으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했으니, 이 이름은 그의 자손들에 대한 일상적인 축복 이상의 것을 바라면서 그의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다.
인간의 삶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 라멕의 불평이 있다. 죄가 들어오고 죄로 인해 저주가 임함으로써 우리의 상태는 매우 비참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 생애를 노동으로 소비한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되는 수고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으므로 염려와 고생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라멕은 마치 이 생의 일에 피로하고 염증을 느끼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훌륭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사고력과 귀중한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소비되는 것을 라멕은 안타깝게 여겼다.
이 아들의 출생이 위안을 주리라는 소망. “이 아들이 우리를 위안하리라” 했으니, 이는 일반적으로 자녀들에 대해 지니는 어버이들의 소망과 기대뿐만 아니라(즉 그들이 장성한 후에는 때로, 그렇지 않은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 어버이에 대해서는 위안이 되고 어버이가 하는 일을 돕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후손들에게 지극히 유용한 사람이 되리라는 예언이 이미 있었음이 거의 틀림없다. 그리하여 그는 약속의 씨로 이해되고 단정되었다. 즉 메시아가 그에게서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그의 오심을 기대하는 믿음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그리고 흔히 불평을 삼고 있는 현세에서의 수고와 괴로움에 대한 가장 좋고 확실한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인가? 하늘은 우리의 것인가? 이 아들이 우리를 안위하리라.”
그의 자녀 셈과 함과 야벳. 노아가 500세 되었을 때 (맏이를) 낳았던 것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을 보면(우리 성경과는 다름-역주) 야벳이 장자임이 분명한데, 셈이 먼저 기록된 것은 창세기 9장 26절에 나타난 대로 계약이 그에게 상속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리고 있다. 아마 그에게 장자권도 부여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로부터 머리인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계승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셈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이름”이란 뜻이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진 자가 그에게서 태어날 때까지, 그 자손들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셈을 맨 앞에 세움으로써 만물 중에 현저하게 드러나야 하는 그리스도를 사실상 맨 앞에 세우게 되는 것이다.
32절 바예히 노아흐 벤 하메쉬 메오트 솨나 바욜레드 노아흐 에트 솀 에트 함 베에트 야페트
창 5: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5:32절
셋을 시조(始祖)로 한 족보(6-31절)는 일단락되고 노아의 세 아들이 새로운 족속의 시조로 역사 전면에 등장, 향후 전개될 구속사를 이끌어 가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구절이다.
셈 - '명성'이란 뜻. 이름에 걸맞게 그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적 축복을 누린다(눅 3:23-36).
함 - '검다', '뜨겁다'는 뜻. 그는 부도덕한 태도로 인해 노아의 저주(9:22-25)를 받았는데 그 결과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아라비아, 북동 아프리카 등과 같은 열대 지방에 흩어져 살면서 주로 타민족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 민족이 되었다.
야벳 - '아름다움' 또는 '확장'이란 뜻. 그는 노아로부터 자손 창대의 축복을 받았는데(9:27) 실제로 팔레스틴 서쪽의 스페인, 러시아 남단, 소아시아, 지중해, 남유럽 등과 같은 광대한 지역에 두루 분포된 아리안족(Aryan)의 원조(元祖)가 되었다.
[로마서 14장 주일설교말씀] “예수님을 위해 삽시다”(롬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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