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추수감사절 주일예배설교] 항상 하나님께 감사(데살로니가후서 1:1-12)

기혼샘 2021. 9. 3. 14:46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추수감사절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목: “항상 하나님께 감사” (살후 1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1-12

 

요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살후 1:3-4)

주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로서 더욱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인내하자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가 어느 때보다 다릅니다. 하박국 대언자는 고백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7-19) 올해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제한을 받고, 경조사 모임도 최소한하며, 직장생활도 힘들고, 소상인들이 문을 닫고,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해외 출장이 불가능해지고, 마스크 끼고 출입해야 하고, 늘 손을 청결해야 하고, 스포츠나 오락행사도 축소되는 등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박국처럼 극심한 흉년 중에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을 주심을 기뻐하는” 감사를 드립시다. 코로나로 인한 감사의 제목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현재 자신을 반성하며 앞으로 갈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이곳저곳 다니는 대신에 비교적 조용한 시간을 많이 가지며 자숙하고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재앙의 때에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시 17:8-9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31:19-20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시 143:9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사 26: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요셉은 종살이, 감옥살이 13년을 하고 나서 곡식을 사러온 형제들을 만나 고백하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곳(이집트)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형들 앞에서 다시 고백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하며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욥도 사탄의 시기를 받아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드렸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재물이 없어지고 10자녀가 재앙을 당하여 죽은 날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여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0-22). 그러니 사탄이 다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그의 건강에 손을 대어 온몸에 창상(악창)이 나서 괴로울 때 아내의 불평에 맞서 아내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 2:10)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Covid 19 pandemic ‘질병의 전염’)을 만나 욥이라면 어떤 감사를 했을까요?

 

올해는 청교도들이 미국 대륙으로 이민간 지 4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620년 9월 중순에 출발한 102명 순례자들(pilgrims)이 12월 성탄절 이브에 메사추세쯔주 플리머스(Plymouth, MA)에 도착한지 400주년을 맞이하며 내년은 미국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시작한지 400주년이 됩니다.

 

세계적인 문호인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는 백작 집안에서 자란 부자로 <전쟁과 평화>라는 대작을 썼습니다. 1879년에 산상수훈을 읽고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결심한 후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남은 생애를 <참회록>(1879년)을 쓰는 심정으로 살아갔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습니다. 1899년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톨스토이는 8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전 생애에서 겪은 역경과 고난을 오로지 긍정적인 관점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긍정적인 관점은 감사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결과를 이끌어 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영국의 청교도인 메튜 헨리(Matthew Henry,1662-1714)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귀가 중이던 강도를 만나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당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았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답니다. “① 하나님 제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②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③ 저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실낙원(Lost Paradise)>의 작가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소경이 된 수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할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답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전남 여수에 가면 애양원이 있습니다. 소록도가 생기기 전 손양원(孫良源)목사님 (1902~1950년 9월 28일)께서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던 곳입니다. 1909년 4월 3일 몸을 돌보지 않고 선교 활동에 전념하던 오웬 선교사는 급성 폐렴으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오웬의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목포에서 활동 중이던 포사이드는 급히 광주로 오게 되는데 포사이드는 광주로 오던 중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포사이드 선교사가 길에 쓰러진 나환자를 치료한데에서 애양원의 설립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애양원 교회(예장 통합)의 제2대 담임목사인 손양원 목사님은 1939년 7월 14일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했으며, 1939년 일제에 항거한 ‘원탁회 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와 장로들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애양원에 가면 손 목사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봉투 하나가 유리함 속에 들어 있습니다. 바로 감사헌금 봉투입니다. 두 아들(동인, 동신)이 공산당 청년(안재선)에게 총살로 순교를 당한 직후 장례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바쳤던 감사헌금 봉투입니다. 그 봉투의 겉면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하며 1만원. 손양원.” 적혀있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의 와중에 순천사범학교를 다니던 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교하게 됩니다.

 

당시 손 목사님은 애양원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두 아들의 순교 소식을 접하고도 모든 예배를 정상으로 인도한 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뜻이 계셔서 제 두 아들을 불러 가신 것으로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 두 아들을 죽인 사람, 그의 생명을 보존해주십시오. 제가 전도하겠습니다. 그가 그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손 목사님이 한 인사말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장례예배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은 슬퍼하기보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하고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장례식 후에 감사헌금 1만 원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당시 손 목사님의 한 달 사례비는 80원이었습니다. 1만원은 목사님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손재선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고, 나중에 목회자로 키워내는 사랑의 기적을 이룹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과 영화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세계에서도 읽히고 있습니다. 그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사랑하는 아내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옥중서신인데, 병든 아내를 향해서도 감사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손 목사님도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시는데 동인, 동신 두 아들의 하관식을 하며 자신이 죽으면 이 자리에 묻으라고 하신 유언대로 세 부자가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입구에 걸린 기도문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늘 감동을 줍니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도록 틀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떨어지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 하고, 아내가 미워지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짐스러워질 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무를 느끼게 하고, 때로는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잘못하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히브리어 “토다 Todah”라는 말은 “인정하다”는 뜻이랍니다. 시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임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지금 겪는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구름 뒤에 햇빛이 있음같이 또 새 날, 새벽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메시지가 반드시 밤은 지나가고 낮은 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처럼 새벽을 깨우는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합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I myself will awake early.” (시 57:8)

 

오늘 데살로니가 후서 1장을 강해합니다. 본문의 주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현상 중 하나가 “감사하지 아니하며”(딤후 3:2)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의 저작 연대는 데살로니가전서와 비슷한 시기인 AD 51년경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 나타난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태가 비슷하고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있었던 것(살후 1:1) 등을 고려할 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쓴 후 몇 달 지나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같이, 데살로니가후서도 바울의 종말 서신으로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재림에 대해 많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은 재림의 엄위성, 2장은 재림의 징조, 3장 재림 신앙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사도의 기원과 감사인사(살후 1:1~4)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래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1-2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두절의 내용이 데살로니가전서 1:1에서는 한 절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를 두 절로 나누고 있습니다. ‘실루아노 Silvanus’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실라’입니다(행 15:22). ‘디모데 Timotheus’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만난 제자로서 그 후 바울의 평생 동역자가 되었습니다(행 17:14; 18:5; 19:22; 20:4).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유럽에서 빌립보교회에 이어 두 번째 설립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자의 의미입니다. 사 64:8, “여호와여, 주님은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둘째는 구원자의 의미입니다. 신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사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약 1:18, “그가 그 조물(造物)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셋째는 보호자, 양육자, 공급자라는 의미입니다.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여기에 성도 상호 간의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한 가족이며 식구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주로 예수님께 사용된 ‘주 Kyrios’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의미로 667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의 ‘여호와 Jehovah/Yahweh’라는 명칭은 헬라어 70인 역(LXX)에서 ‘주’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주’라는 단어는 온 세상의 주인, 왕, 통치자, 주관자, 즉 하나님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크신 하나님’(딛 2:10), ‘참 하나님’이십니다(요일 5:20).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표현한 것은 구원이 연합의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구원은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킵니다. 은혜(은총 charis)와 평강(평화 shalom)은 바울서신의 전형적인 인사로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사랑을 가리키며 ‘평강’은 죄 사함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비롯하여,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및 환경적 평안까지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당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입니다. ‘더욱 자란다’는 원어(휘페르아욱사네이 ὑπεραυξάνει hyperauxanei)는 ‘크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모든 교인들의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인 동시에 성경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아서(마 13장) 땅에 심긴 씨는 싹을 내고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받은 말씀과 믿음도 자라야 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전 3:6-7). 두 번째 감사 이유는 그들의 사랑의 풍성함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을 풍성하게 실천했습니다. 사랑은 수고를 동반합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행 2:44-45).

 

4절 “그래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많은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하나님의 교회들 가운데서 그들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핍박받을 것도 각오해야 합니다(딤후 3:12). 환난의 때에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합니다(고후 4:17, 계 13:10; 14:2).

 

2. 재림과 심판(살후 1:5-9)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불로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님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5절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과 환난 중에서 참은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또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6-9절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로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님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사람들의 의와 선에 대해 상주시고 불의와 악에 대해 보복하실 것입니다(롬 2:6-8). 특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핍박한 자들에게 그것에 상응하는 고통으로 갚으시고 고통받은 성도들에게는 위로와 안식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다스리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들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지금 하늘의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막 16:19; 눅 24:51). 주님께서 거기로부터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주의 재림을 나타내는 두 단어는 ‘강림’(파루시아 parousia)과 ‘나타나심’(아포칼륍시스 apokalypsis)인데, 본절에서는 ‘나타나심’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불꽃 중에 in flaming fire’라는 말은 ‘형벌을 주시리니 vengeance’라는 어귀에 연결시키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악인들에게는 심판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주 예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불로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지막 불의 심판에 대해,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합니다(벧후 3:6-7). 바울은 “이런 자들이 주님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Who sha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glory of his power.”라고 합니다. ‘떠나’라는 원어(아포 apo)는 근원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얼굴과 심판의 능력과 영광으로 악인들을 향하실 것이며, 또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리침을 받고 성도들을 부활시킬 그의 힘의 영광을 체험치 못할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은 지옥 형벌을 가리킵니다. 지옥은 악인들을 위한 마지막 형벌의 장소입니다. 마 25:41, 46,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3. 재림과 영광(살후 1:10-12)

 

10 그 날에 그분께서 강림하사 그분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시는 날에 그분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또 그는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었던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의 실상을 볼 때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며, 더욱이, 재림의 주님께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우실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의 이 증거의 내용은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엡 2:8-9).

 

11절의 ‘이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5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 전체를 요약합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공의의 심판이 되어 그런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성도들에게 재림의 주님을 영광과 찬송과 놀라움 가운데 영접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런 일들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과 목적을 몇 가지로 증거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하여 성도의 표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떤 이에게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가 있음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곧 구원받은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일을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모든 선을 기뻐함’은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기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시작하신 이 구원을 능력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적으로는 선한 것에 대한 그들의 모든 소원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하심입니다. ‘믿음의 일’은 믿음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살아서 활동하는 믿음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그들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큰 구원이며(히 2:3) 완전한 구원이며(히 10:14) 영광스러운 구원입니다(롬 8:30). 이 구원은 주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우리의 영, 혼, 육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종말신앙을 유지하면서 주님 재림 때 이뤄질 구원의 완성을 감사하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감사의 제일 첫 번 제목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이 좋은 복음의 소식을 세상 끝까지 끝 날까지 전파하십시다. 오늘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구원과 천국에 대한 복음을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합시다.

[데살로니가전서 강해설교말씀] 모범적인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1:1-10)

 

[데살로니가전서 강해설교말씀] 모범적인 데살로니가 교회(살전 1:1-10)

안녕하세요.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모범적인 데살로니가 교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