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2장 설교말씀 중에서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의 강림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에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믿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각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방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술에 취한 것처럼 서로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말씀을 듣고 회개의 영이 임하게 했습니다.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들을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복음을 들어야만이 회개하고 성령 세례를 받게 됩니다. 회개의 영이 임할 때 속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도 십자가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의 강림(행 2:1-47)
1-36절, 성령께서 강림하심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방언들]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무교절 주간에 처음 추수한 보리 곡식단을 안식일 후 첫날 곧 1월 16일에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보리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오순절은 일요일이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은 1:13에 언급한 ‘저희 유하는 다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고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의 강림은 이와 같이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였다. 성령께서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동반하면서 내려오셨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을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이요 표시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바와(욜 2:28-29), 주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에게 교훈하실 때 약속하신 바가(요 14-16장) 이루어진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약속대로 오셨다. 또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일 즉 그들을 중생(重生)시키고 성화(聖化)시키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시대이다. 신약교회 시대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시대이다. 성령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복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영원히 거하셔서 그들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가 되신다. 또 성령께서는 성도의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를 도우시고 특히 전도를 위해 능력을 공급해주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성(罪性)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한다.
[5-13절]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방언들]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방언들]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그들이] 다 우리의 각 방언[방언들]으로 하나님의 큰 일[일들]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 성령 강림의 독특한 한 표시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롯사)는 ‘언어’라는 뜻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방언들, 즉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다. 본문은 무리들이 사는 15개의 지역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것은 제자들이 적어도 약 15개의 언어들로 말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약성경의 방언은 이와 같이 언어를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 배워본 적이 없는 외국어이었다고 보인다.
이미 믿은 자들은 성령께서 그들 속에 거하시는 표로 방언을 말할 필요는 없다. 방언은 성령 강림의 표시이었다. 그러나 이미 믿은 자에게는 방언보다 인격적 신앙생활, 즉 바른 지식과 믿음과 사랑의 인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4:19,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복음화의 일을 이루게 될 것도 암시하는 것 같다. 세계복음화의 한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일 것이다. 인류는 본래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창 11:1). 그러나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연합을 도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인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14-21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여러 나라 말들로 방언을 말할 때 그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모여든 많은 무리들이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서서 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말했다.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이었다. 그것은 원고를 준비한 설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성령의 감동과 힘에 이끌리어 한 설교이었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우선 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당시 시각이 제3시 즉 오전 9시이니 제자들이 술취한 것이 아니고, 선지자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성령을 받은 현상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부어지면 사람들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예언은 구약 백성이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풍성한 임하심을 약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이루어졌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강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 그는 먼저 예수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증거한다. 그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나사렛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음을 증거한다. 그는 물질적 몸을 가진 인간이셨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그의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증거된다. 그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셨다. 그것은 인간으로는 하기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역사상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 있었으며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인 일이 있었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사람을 살린 일이 있었는가? 이 모든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풍성히 증거하였다. 또 이 기적들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셨다.
[23-24절]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의 십자가는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고 믿을 만한 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대적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 할 뿐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셨다. 그는 예수님을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셨다.
[25-32절]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KJV)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지옥](KJV)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는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편에 예언된 바임을 증거했다. 거기에서 다윗은 주께서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고 또 그로 하여금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때까지 그들 중에 있었다. 그의 육체는 다 썩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시편에서의 그의 고백은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편은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이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33-36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도 시편 110편을 들어 성경의 예언대로 되었음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셨다. 또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통치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들은 사탄과 악령들과 사탄의 종들이다. 그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며 허물고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 멸하실 것이다. 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오셨다. 그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속(救贖)을 성령께서 그 택자들에게 적용하여 중생(重生)시키시고 회개하고 믿게 하시는 것이다. 또 그는 구원받은 우리들의 성화(聖化)를 이루신다. 그는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또 위로 격려하시고 도우신다. 그는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
둘째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표로 방언을 하였다. 성령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내려오실 때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셨다. 그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과 함께 제자들에게 내려오셔서 그들이 방언들을 말하게 하셨다. 그들이 말한 방언들은 외국어이었다. 그들은 약 15개 지역의 언어들로 말하였다. 방언을 포함하여 사도 시대에 주신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한 사도들의 표이었다(행 2:43; 5:12; 고후 12:12). 또한, 제자들이 방언들을 말한 것은 세계복음화의 암시이었다고 본다. 그들은 온 세계에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했다. 오늘 우리는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과 방언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바른 지식과 온전한 사랑의 인격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였다. 성령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자들에게 전도할 능력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겠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일어나 소리를 높여 담대히 전도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들을 행하셨음을 증거하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과 3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셨음을 증거하였고 또 승천하신 주께서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우리가 전할 내용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복음서들에 기록된 복음의 내용이며 복음서들이 증거하고자 하는 바이다(요 20:30-31).
37-47절, 초기 예루살렘 교회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오순절에 모인 무리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사도 베드로의 전도 설교는 효력이 있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마음이 굳어 찔림을 받지 못한다. 말씀의 화살이 그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고 믿을 준비가 되었다. 그들은 구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다’는 원어(메타노에오)는 ‘생각을 바꾸다’는 뜻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 없이 사는 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데로, 죄의 낙을 누리던 데서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데로, 예수님을 부정하던 데서 예수님을 믿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회개는 생각을 바꿈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십자가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으라는 뜻이라고 본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인간에게 죄씻음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죄 때문에 세상에 죽음과 불행이 왔으나 죄씻음으로 의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이 온다. 세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세례는 예수님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씻음 받음을 표시한다.
사람이 죄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 가며 거룩하여지며 또 하나님을 힘 있게 섬기며 전도할 수 있게 된다.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이름으로 세례받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또 성령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 곧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먼데 사람’ 곧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졌다. 이 약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시며 부르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 부르심으로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는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전도는 진리의 선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확증과 권면’도 필요하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 말로 복음을 확증하며 권면하였다. 성경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자들은 다 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과의 구별도 가져온다. 이 세상은 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패역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목이 곧고 완악하다. 사람이 이 세상의 풍습대로 살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41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원문) 3천이나 더하더라.
사도 베드로의 전도와 확증과 권면은 결실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성령의 역사이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약 3천명이나 더했다. 그들은 다 예수께 복종한 제자들이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무리에 3천명의 신입교인이 더하여졌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기쁜 사건이었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그들은 네 가지 일에 힘썼다. 이것은 후시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일들이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교리적 내용과 윤리적 내용을 다 포함한다. 설교자나 주일학교 교사는 바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가르침이 혼란하면 교회가 혼란해진다. 요즘 교회들은 가르침이 혼란하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교회연합운동, 은사운동, 여성 안수, 열린 예배 등 별별 풍조들이 교회들 안에 들어왔다.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단들이 포용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창조와 진화를 절충시키려 한다.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 교단 안에 머물러 있으며 자유주의자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천주교회까지 포용하려 한다. 그것은 참된 복음주의가 아니다. 참된 기독교는 그런 오류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타협적 복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확고히 서야 한다.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사상이 바르고 부교역자들의 사상이 바르고 교사들과 권찰들의 사상이 바를 때, 교회는 바로 세워질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그것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교제이다. 그것은 서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교제이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해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오래 참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친절하고 진실을 말하며 상대방에게 선을 행하는 교제이다. 그들은 또 성찬식을 행했고, 또 성도들 간의 식탁 교제도 힘썼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 곧 성화를 위해, 전도와 영혼 구원을 위해, 참된 교회들의 건립을 위해, 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힘의 통로이다.
[43-45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사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한 까닭은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단지 몇 가지의 기적들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구원의 진리들을 확증하셨다(히 2:3-4). 기독교는 기적들로 확증된 종교이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였다. ‘다 함께 있어’라는 말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상적 교회의 모습이다. 또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공동 소유로 생각하고 사용하도록 내어놓았다. 그것은 그 물건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또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형제자매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이런 지식과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로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제는 구제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물론, 성경은 자기 손으로 성실히 일하여 먹고살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성도들에게 일하는 본을 보여주었다(행 20:34-35). 또 그는 손으로 일하며 살라고 가르쳤다(엡 4:28).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하였다(살후 3:10). 그러나 재산이 넉넉히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이다. 돈은 구제 같은 선한 일에 쓰는 데 가치가 있다.
[46-47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카트 오이콘)[각 집에서, 각 집을 돌아가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또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드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거룩한 집 곧 성전(聖殿)이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힘써 모여야 한다(히 10:25).
또 그들은 각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이것은 성찬식과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이다. 성찬은 성도들의 엄숙한 교제의 표시이며 식탁 교제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의 사랑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했다. 서로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사랑의 식탁 교제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인들의 사랑은 진실하였다.
그들은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찬양은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하심이었다(엡 1장).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들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건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구제를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칭송할 것이다. 참된 신자는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그 교회에](전통본문) 더하게 하셨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은 기회 있는 대로 전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보다 성도들의 행실의 본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주께서는 날마다 그 교회에 구원 얻는 자들을 더하게 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그는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다른 이들을 구원하신다. 수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었다.
전통 본문에 의하면, 본절에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교회’는 어떤 인간적 조직이나 외형적 건물이 아니고 믿는 이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중요하다. 그들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순종하며 서로 교제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주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또 교회는 바른 말씀의 교훈과 그 교훈을 믿고 실천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회개는 사람이 자신의 죄들을 깨닫고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고 믿었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둘째로, 사도들은 오순절 때에 구원의 큰 결실을 보았다. 오순절은 맥추절과 같은 절기이었다. 그것은 밀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것은 사람의 거듭남(중생 重生)과 구원을 상징한다. 그날 누룩 넣은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구원받을 죄인들, 특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곡식 추수는 대체로 오순절 기간에 그친다. 가을에는 나무 열매, 포도주, 기름 등을 거두어 저장한다. 추수감사절인 오순절에 약 3천명이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그 교회에 더하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오순절의 곡식 제물과 같다.
셋째로,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후대 교회의 본이 된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 바른 말씀의 교훈을 받았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책을 읽고 모일 때마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을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둘째, 그들은 서로 교제하였다.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또 각 집에서 모여 성찬을 나누었고 식탁 교제를 하였고 모든 물건을 함께 사용하였고 어려운 교우들을 구제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서로 교제하며 병든 교우들을 방문하며 궁핍한 교우들을 돌아보며 구제하자.
셋째, 그들은 기도하기를 힘썼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 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도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자. 우리가 성화하는 길은 기도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도할 힘을 얻는 길도 기도뿐이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힘썼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여호수아 히브리어 강해] 여호수아의 탄식과 하나님께 간구(수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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