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출애굽기 20장 십계명 설교말씀] 탐내지 말라(출 20:17, 신 5:21)

기혼샘 2021. 7. 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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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20장 십계명 설교말씀 중에서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말씀을 주시면서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윗 같은 경우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서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였습니다. 많은 여인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밧세바를 취하기에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네 이웃의 여인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윗도 부하 장수의 여인을 탐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욕심이 많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의 그 하나를 탐하여 빼앗으려고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면서 감사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목: “탐내지 말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출 20:17, 신 5:21, 골 3:1-5

요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 20:17)

주제: 이웃의 소유에 대해 탐내지 말고 모든 탐심을 버리자.

 

오늘은 십계명(Ten Commandments, Ten Words) 10 계명을 강해합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house,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wife, nor his manservant, nor his maidservant, nor his ox, nor his ass, nor any thing that is thy neighbour's.” (출 20:17). 모압 언약이 기록된 신명기 5장 21절에서는 네 이웃의 아내가 먼저 나오고 집이 그다음에 나옵니다. 나머지는 꼭 같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제10 계명은 “탐내지 말지니라”가 두 번 나올 만큼 탐심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탐심으로 인류는 불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에 탐심을 금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탐심’ 때문에 불순종하게 되고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 (창 3:6). 탐심을 가지고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더욱 보암직하고 먹음직합니다. 탐심 때문에 간음하게 됩니다. 탐심 때문에 우상 숭배하게 됩니다. 탐심 때문에 도둑질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탐심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골 3:5). 하나님께서는 탐심을 처벌하십니다.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미 2:1-2)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합 2:9)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에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79. 제10 계명은 무엇인가?

◇ 제10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이나 아내나 노비나 소나 나귀나 네 이웃에게 있는 것을 탐내지 말라 하신 것이다.

◆ 80. 제10 계명에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 제 10 계명에 명하는 것은 우리 처지를 만족히 여기며 이웃과 그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의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라 하는 것이다.

◆ 81. 제10 계명에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 제 10 계명에 금하는 것은 우리의 처지를 부족히 여기거나 이웃의 행복을 시기하거나 한하거나 이웃에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한 불의한 행동과 감정이다.

열 번째 계명은 아예 탐심을 가지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집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나 그의 종이나 가축들이나 그의 모든 소유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탐심과 욕심은 모든 죄악들의 뿌리입니다. 야고보서 1:15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탐심은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이 돈을 탐하면 돈이 그에게 우상이며, 그가 육체의 쾌락을 탐하면 육체의 쾌락이 그에게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모든 죄악의 뿌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무서운 악, 곧 우상숭배의 악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6) 하시고 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해 주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마음에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혼(my soul)에게 이르되 혼아(soul)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7~21)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삶이 비참해집니다.

 

아합 왕과 아내 이세벨이 이스르엘 사람 나봇(Naboth the Jezreelite)의 포도원을 탐내었습니다(왕상 21:1-7).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 팔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은 두 깡패를 시켜 나봇을 죽게 하고 그 포도원을 아합이 취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어 곧 아합이 죽어 그들의 피를 개들이 먹게 하리라고 예고한 대로 그들이 아람 군대에 패하여 전사했습니다. 사마리아에 장사될 때 사마리아 못에서 씻었는데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습니다(왕상 22:38). 아합의 탐욕은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재물에 대한 탐심 때문에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는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입니다(요 12:1). 죽은 지 나흘 된 오라버니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일에 감사하여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과 일행들을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a pound of ointment of spikenard)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이에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 이러라(요 12:2-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녀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요 12:7-8). 결국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 30세겔 받고 겟세마네 동산(=올리벳 Olivet)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시던 곳까지 로마 군병들을 안내했습니다(마 26:14-16, 요 13:2).

 

사도 바울도 탐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 7:7-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8-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아람(오늘날 시리아)왕의 군대장관 나아만(Naaman)이 문둥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잡혀온 작은 여종이 나아만의 아내의 도우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왕하 5:1-2). 어느 날 여종이 여주인에게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 계신 엘리사 대언자를 소개했더니 나아만 장군이 아람 왕에게 속국 이스라엘 방문 허가를 받고 출발하였습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선물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바로 엘리사에게로 나가지 않고 사마리아 왕궁을 찾아가니 여호람 왕은 종주국 아람 왕의 친서를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참모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이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엘리사가 이 소식을 듣고 종을 보내어 왕에게 부탁하기를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 보내어 사람을 저가 이스라엘 중에 대언자가 있음을 알게 하리라고 전했더니 왕이 나아만 장군 일행을 엘리사에게로 보냈습니다(왕하 5:3-8).

 

나아만 장군 일행이 엘리사의 집 문에 섰는데, 엘리사가 종을 그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장군은 가셔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세요. 당신의 살이 본래대로 깨끗하겠습니다” (상하 5:10) 나아만은 화가 나서 물러가며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현재 나아르 바라다 Nahr Barada강)와 바르발(다메섹 도시 남쪽 강, 현재 나아르 엘 아와이강)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려고 했습니다(왕하 5:9-12). 그도 그럴 것이 엘리사가 환영은커녕 밖에 나와 영접도 하지 않고 종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 하니 푸대접에 장군은 화가 난 것입니다. 이때 참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 아버지여, 대언자가 장군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장군께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니까?” 하니 나아만 장군을 마음을 고쳐먹고 내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갗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치유가 되었습니다(왕하 5:13-14). 나아만 장군은 날아가듯이 기뻤고 일행들도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엘리야 선생님 댁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정중하게 전했습니다. 장군이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부탁드리는데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이에 엘리사는 사양하면서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왕하 5:15-16).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돈이나 선물을 요구하나 하나님께서는 돈이 필요 없으십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태도를 보고 더욱 감탄합니다. 세상에 이런 하나님도 계시냐고. 금은보화 의복의 선물도 사양하는 하나님께 존경을 합니다. 그래서 장군은 이런 멋진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면 부탁드리는데 노새 두 바리(mules)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아람 왕]께서 림몬(Rimmon, 아람의 신. 폭풍과 비, 번개의 신 하닷임,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과 동일한 풍요의 신)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제 손을 의지하시매 제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제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종주국의 군대장관이 전도함을 받고 진심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니 엘리사도 기뻐하며 평화의 작별을 하니 나아만 장군 일행은 아람으로 출발했습니다(왕하 5:17-19).

 

그런데 엘리사의 종 게하시(Gehazi)가 탐심이 생겼습니다. 감사의 사례로 가지고 온 좋은 선물과 돈을 사양하는 선생님과는 달리 게하시는 장군의 일행을 뒤로 쫓아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 주인께서 저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대언자의 신학생 중에 두 사람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부탁하오니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은 의외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줄 때 받지 이제 와서 금품을 달라고 하니 당신이 믿는 하나님도 별 것 아님을 속으로 생각하며 게하시에게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고 옷 두 벌도 두 사환에게 지우게 하고는 떠나갔습니다. 그러니 아람의 선교 기회가 수포로 되었습니다. 게하시의 탐심은 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왕하 5:20-23).

 

(1) 대언자 엘리사의 이름에 먹칠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죄를 지었습니다.

(2) 종주국 아람 나라에 여호와의 신앙이 전파될 기회를 막았습니다.

(3) 재물에 탐이 나서 자신을 속이고 나라의 이익을 빼앗은 결과를 낳습니다.

(4) 대언자를 속이며 거짓말까지 합니다.

 

집으로 가는 언덕에 이르러 게하시는 그 물건을 두 종들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엘리사는 영감으로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종은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꾸짖기를 “그 사람(나아만 장군)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습니다(왕하 5:24-27).

 

탐심의 결과 불치병 문둥병자가 되는 무서운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 82세)는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야나(Yasnaya Polyana, 모스크바에서 200km 떨어짐)에서 명문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란 그는 1847년, 카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합니다. 하지만 대학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자퇴했습니다. 그의 삶은 세상적이고 육신의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1851년에 캅카스군에 입대하고, 이듬해 첫 소설인 『유년시대(Detstvo)』(1852)를 발표했습니다. 군 복무 중에 집필활동을 계속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862년(34세)에는 궁정 의사의 딸 소피야와 결혼하고, 1869년에는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Voina i mir)』를 발표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행복과 평화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소작 농가를 방문했다가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밝은 미소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검소하게 살았고 진실된 신앙생활에 감화를 받고, 톨스토이는 즉시 귀족의 옷을 벗어버리고 평범한 농사꾼 옷을 갈아입고, 기독교의 본질인 자비, 비폭력, 금욕, 청빈의 삶을 실천합니다.

 

예수님처럼 수염도 기릅니다. 51세였던 1879년에 이런 정신을 반영한 <고백론>을 발표했습니다. 산상보훈의 삶을 추구하며 청교도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1885년에 <바보 이반>을 발표하고, 58세 때 발표한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 1885년>에서 탐욕의 비극을 발표했습니다. 거듭난 신앙인으로 1899년에는 장편 소설 『부활(Voskresenie)』을 발표했고 1910년 11월 20일, 여행 중에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히 산상보훈을 통해 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청교도적 삶으로 전환했습니다. 자기의 삶을 사랑한 그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 나서 청교도적 설교자로 거듭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농민들, 가난한 자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소자들을 사랑하며(마태 25:40) 말씀을 실천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이 톨스토이를 매우 좋아해서 일본 기독교가 전 국민의 0.8%지만 예수님 닮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안창호, 함석헌, 안병욱, 장기려, 김형석 선생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땅이 필요한가?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에서 평범한 농부인 바흠(Pahom)은 농사를 지을 토지를 원했지만 그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자기에게 충분한 토지만 있으면 악마(Devil)가 무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바흠은 바스키르라는 곳에서 촌장을 만나니 그가 일 천 루불(RUB) 만 내면 해가 뜰 때 출발하여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는 땅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단, 해질 녁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는 단서가 달렸습니다.

 

바흠은 이 계약을 승낙하고 다음날 일찍 괭이를 들고 땅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바흠이 계획했던 충분한 땅에 도달해서 돌아가려고 생각해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차츰차츰 더 멀리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생각보다 먼 거리를 온 바흠은 제시간에 돌아가기 위해 괭이로 땅에 표시를 해두고,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출발지점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해가 저물기 직전에 도착했지만 그는 그만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 촌장의 발 앞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촌장의 하인이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를 정확히 재니 그에게 필요한 땅은 그가 묻힐 단 "6피트(약 180센티미터)의 땅" 이었습니다. 탐욕의 마지막은 죽음이요 허무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6피트, 그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의 전부였다”

 

오늘날 현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부동산을 위해, 성공을 위해, 인기를 위해, 명예를 위해, 더 많은 부요를 위해, 물질을 위해, 진급을 위해 계속 달리지만 탐욕을 제어하지 아니하면 마침내 불행해집니다. 바흠처럼 현상인 토지를 쫓다가 본질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자신이 묻힐 1평도 안 되는 땅을 향해 달려가는 것뿐입니다. 검소하고 소박하며, 겸손하고 정직하게, 욕심을 버리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가지는 욕망보다는 나누는 사랑을 택하며, 소유형(to have) 보다는 존재형(to be)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숙하며, 시간이 몇 시인지를 깨달아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Erich Fromm의 <소유나 존재냐 To Have or To Be>].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값을 치르며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엡 5:15-16). 타이밍,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면 불행의 구렁이에 떨어져 버립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살아도 1원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인생, 땅 1평도 가지고 가지 못하여, 금 한 조각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흙으로 되돌아가는 인생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삶은 구원받은 성도처럼 모든 욕심 내려놓고, 탐욕과 탐심의 노예에서 벗어납시다.

나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땅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돈 일 원이라도 더 가지려고, 한 계급 더 진급하려고 더 차지하려고, 칭찬 더 듣기 위해 몸부림치며, 정력과 시간을 소비해 버린 삶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탐욕을 버립시다. 내 속 사람을 관리하고 내면의 자아가 건강한지에 더 치중하여 진정 예수님을 얼마나 닮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 11:9~10)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the 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7~8)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속에는 무서운 탐심과 탐욕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 집, 소유물, 인기, 명예, 지위에 대한 탐심이 있어 모든 죄를 유발합니다. 이런 탐심의 노예에서 속히 자유함을 얻읍시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더 가지려는 욕망을 억제합시다. 내가 필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 생각하고,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내가 묻힐 한 평 땅이면 만족하고 내 시신을 화장하거나 수목장 하면 한 평 미만의 공간만 필요하며, 나머지 땅과 소유는 모두 이웃을 위해 공유하고 나눔과 섬김의 땅과 소유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까지 십계명을 하나씩 살펴보며 은혜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십계명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인도하옵소서. 열 번째 계명대로 이웃의 아내, 남편, 집, 동물, 소유물, 재물, 부동산, 보석, 액세서리, 가구 등에 대해 탐내지 말도록 해주시고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하며 검소하게 하시고, 나의 가진 것 나누어주며 도와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님 닮는 생활이 천국 갈 때까지 계속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산 소망으로 거듭납시다(벧전 1:1~25)

 

[베드로전서 1장 강해설교말씀] 산 소망으로 거듭납시다(벧전 1:1~25)

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1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산 소망으로 거듭납시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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