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우상 제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느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제물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상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불결할 뿐입니다. 음식에 문제는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보았을 때나 믿음이 약한 자들이 보고 시험에 걸려 넘어진다면 우상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상 제물에 대하여(고전 8:1-13)
사도 바울은 8장부터 10장까지에서 우상 제물에 대해 교훈하였다.
[1-3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우상 제물에 대하여는 초대교회 안에 이미 충분한 지식이 있었던 것 같다. 신앙생활에 지식은 꼭 필요하지만, 지식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그러므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식과 사랑을 함께 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된 자로 그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다. 지식은 사랑으로 온전케 된다.
[4-6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마치]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있는 것 같으나](원문, KJV, NASB, NIV)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신적 존재나 초인간적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이다. 세상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편 115:4-5,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옛날부터 사람들은 참된 신이 아닌 많은 거짓 신들을 상상해내었다. 사람들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신격화하였고 또 땅의 나무들이나 돌이나 짐승들을 신격화하였다. 종교들의 역사와 현상만 본다면 세상에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 그는 온 우주의 아버지이시며 만물은 그에게서 나왔다. 세상의 물질 세계나 영들의 세계는 다 그에게서 나왔고 우리 인생도 그에게서 나왔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의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다. 예레미야 10:10-11,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다(요 1:3; 골 1:16). 특히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것은 주인, 대주재,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7-8절]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우상의 생각을 가지고](전통본문)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지느니라. 그러나]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우상숭배는 우상을 초인간적, 신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 참 경건에서 떠나게 하는 사상이며 마귀가 주는 헛되고 거짓된 사상이다.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을 때 우상숭배하는 죄가 된다. 그것은 사람의 양심을 더럽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상 음식과 신앙생활은 별개의 문제이다. 음식을 먹어서 믿음이 자라고 견고해지는 것은 없다. 음식은 먹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다. 헛된 우상제물도 그러하다.
[9-11절]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자유함’이라는 원어(엑수시아)는 ‘권리’라는 의미이다. 본문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먹을 권리가 성도에게 있을지라도, 그 행위가 약한 자들에게 거리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아직도 우상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우상의 제물이 복을 가져올 것처럼 생각하는 연약한 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지식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서 먹는 것을 보고 양심이 잘못된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우상의 제물로 생각하며 먹음으로 범죄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지식 있는 자의 행위는 그 연약한 자들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식을 가진 자의 행위가 약한 형제로 범죄케 하여 그를 멸망케 한다면, 그것은 결코 선한 행동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멸망케 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도 그를 위하는 자가 되어야지 그를 멸망케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12-13절]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예수님의 속죄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는 그의 몸된 교회의 지체이므로 그에게 잘못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잘못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서로 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께서 고난 당하시고 피흘려 사신 형제를 나도 사랑하고 그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힘쓰겠다는 마음은 바르고 선한 결심이다. 이것을 술과 담배 문제에 적용해보자. 만일 교회 직분자가 술과 담배를 함으로 초신자가 술취하는 자나 애연가가 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또 이것을 오늘날 교회의 교제 문제에 적용해보자. 만일 어떤 목사가 자신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으면서 성경을 부인하는 목사들과 신학자들을 포용하는 교단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도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3)는 말씀을 실천하기는커녕 진리의 싸움을 싸우기 싫어하며 침묵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 목사의 행동 때문에 많은 성도가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에 빠지고 젊은이들이나 신학생들이 자유주의의 악 영향을 받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목사들은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교단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밝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둘째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의 생각을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으면 양심이 더러워진다. 그것은 우상을 신적 존재로 인정한 것이므로 우상숭배가 된다. 셋째로, 우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약한 형제를 범죄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죄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식으로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이것은 술과 담배의 문제에도 적용되고, 또한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포용하는 교단에 머무는 태도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금주, 금연해야 하며 성경을 믿는 목사와 성도들은 자유주의적, 포용주의적 교단에서 나와야 한다.
[열왕기하 7장 성경 좋은 말씀] 아람 군대를 물러가게 하심(왕하 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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