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시편 3편 주석성경 좋은 말씀] 하나님께 대한 믿음(시 3:4-8)

기혼샘 2022. 12. 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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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에서 다윗은 적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원수들이 일어나 대적하고 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원수들이 일어나 대적하면서 다윗을 괴롭히는데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답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며 일어나서 도와달라고 한다. 성도도 원수들이 일어나 고통을 줄 때가 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께 있다. 세상에서 의지할 분은 예수님이다. 우리가 환란에서 구원받고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수님 안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로 달려가자. 

 

하나님께 대한 믿음(시 3:4-8)

 

다윗은 그의 대적들의 자극으로 인해 더욱 분발해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으로서 굳게 신봉했고, 주위를 둘러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그를 낙담시키는 것뿐일 때에도 위를 바라봄으로써 위로를 얻었다. 여기에서 그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인해 얻었던 유익함을 기쁜 마음으로 회고하고 있으며, 그가 지금 처한 어두운 섭리에 곧 매우 찬란하고 행복한 결과가 오리라는 즐거운 기대로 앞을 내다보고 있다.

 

Ⅰ.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었던 것에 대해, 그리고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예전에 얻었던, 또는 지금까지 얻었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매우 즐겁게 회고하고 있다. 다윗은 많은 환난을 겪었고, 자주 핍박을 당했으며, 매우 비참한 상태에 처해지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모든 것을 풍족케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는 지금 즐겁게 다음과 같은 것을 회상하고 있다.

1. 그의 환난은 항상 그를 하나님의 무릎으로 데리고 왔으며, 그의 모든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의 소리도 하나님께 올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이는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위로의 회고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걱정과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간구하게 만들고 진지한 자로서 하나님께 말할 뿐만 아니라 부르짖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고 오히려 유익하다. “음성은 들리지 아니할”(삼상 1:13) 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의 언어를 이해하시며, “저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사 58:4) 자들의 위선적인, 즉 “소리뿐”인 기도를 중히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목소리의 진지함이 마음의 열정에서 우러나왔다면 우리가 우리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소중히 여겨진다.

 

2.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인 하늘에서, 그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가 응답하시던 그 시온산에 있는 궤에서 응답하신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그 궤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에 의해 성산으로부터 화평의 대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서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가라”라고 명했다(삼하 15:25).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은총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없으며, 그의 은총과 우리 믿음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이 될 수도 없다. 언약의 궤는 시온산에 있었고, 우리 기도에 대한 모든 응답은 그 언약의 약속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는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워진 왕”이었고(2:6), 그를 통해 아버지는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3. 그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언제나 매우 안전했고 평온했다(5절). “내가 누워 자고, 즉 평온하며 조용하고, 새로 원기를 회복하여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1) 이것은 매일 밤 주어지는 일반적인 자비에 적용된다. 우리는 이런 자비를 아침마다 혼자서,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감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 둘 곳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한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감히 눕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온하게 우리 스스로를 눕힐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눕더라도 잠들지 못하고서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의 번민, 또는 밤의 두려움 속에 있는 끊임없는 놀라움으로 인해 새벽녘까지 뒤척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을지라도 누우면 편히 잠든다.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잠드나 다시 깨어나지 못하며, 애굽 사람들의 장자처럼 죽음의 잠을 잔다. 그러나 우리는 누워 자고 또 다른 날의 광명과 즐거움을 맞기 위해 다시 깨어난다. 이런 것이 가능한 까닭은 주께서 음식과 함께 잠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의 보호 아래 안전한 상태에 있어왔고, 그의 선한 섭리의 팔 아래 편히 있어왔다.

 

(2) 이는 여기에서 위험 가운데서도 다윗의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고 평온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도로써 그 자신과 그의 주장을 하나님께 의탁했고 그의 보호를 확신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는 편안했다. 그의 아들의 불효, 신하들의 불충, 많은 친구들의 배신, 그의 신상의 위험, 피곤한 행진, 그리고 그 사건의 불명확성 등도 결코 그에게서 한 시간의 잠도 빼앗을 수 없었고, 그의 안식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의 은총과 성령의 위로로써 강력하게 그를 붙들어주시어 그를 편케 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먹고 잠잘 때에 결코 두려움과 놀람으로 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된다면 그것은 큰 은혜다.

 

(3) 어떤 고대학자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적용시키고 있다. 고통 가운데서도 그는 위를 향해 강하게 부르짖었고, 그것은 상달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누워서 사망의 잠을 잤다 할지라도 3일째 되는 날 깨어나셨다. 여호와께서 그가 썩음을 당하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 세우셨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은 흔히 그의 대적들의 힘을 깨뜨리시며 그들의 악의를 속박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뺨을 치시며”(7절), 그들을 잠잠케 하시고 그들의 발언을 방해하신다. 또한 그들을 더럽히시고 수치스럽게 하시며, 힐책하시면서 그들의 뺨을 치시고 그들이 계획했던 재앙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 즉, 그는 그들의 이를 부러뜨리셨다. 때로 그를 삼키려고 노리던 사울과 블레셋 사람들도 그들이 의도했던 것을 효과적으로 행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해 갈려지거나 날카롭게 된 이는 부러질 것이다. 교회의 대적들의 힘이 위협적으로 보일 때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그것을 부러뜨리셨는가를 기억함이 좋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팔이 짧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손을 묶으실 수 있다.

 

Ⅱ. 위험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가를 보라. 그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고, 또 자주 그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1. 그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6절). 그는 얼마나 거룩한 용기를 갖고 그의 대적들의 무능한 위협과 시도에 도전하고 있는가! “외부의 침입이나 내란으로 천만 인이 나를 둘러 또는 진을 펴고 치려 해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 누구도 덜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그의 대적들은 “천만 인”이나 되었다. 그들은 악의에 차 있었고 또 단호했다. “그들이 나를 치려 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크게 우세해 그들의 목적을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사방에서 1 대 수천의 비율로 나를 둘러치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나를 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나를 놀라게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나의 보존을 위해 내가 아무리 신중한 방법을 취한다 하더라도 나는 평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드디어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하면서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도로 메어가라고 명했을 때 그는 현재의 환난의 결과에 대해 의심스럽게 말했고, 겸손한 회개자처럼 “내가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삼하 15:26) 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제 강한 믿음을 지닌 자처럼, 그는 확신 있게 말하고 있고, 그 사건에 대해아무 두려움도 갖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 즐겁게 복종하는 것은 즐거운 만족과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얻는 길이다.

 

2. 그의 기도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격려되었다(7절). 그는 하나님이 그의 구세주이심을 믿었다. 그러나 기도했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의 약속은 그것을 구하는 우리의 간청을 찬탈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한다. 그는 이에 대한 문의를 받으실 것이다.

3. 그의 믿음은 승리를 얻게 되었다. 그는 그의 대적들의 힘과 악의를 호소하는 것으로써 이 시를 시작했으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그의 환호로써 끝맺고 있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기보다는 자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8절). 그가 여기에서 그의 확신을 세우고 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음 두 가지의 큰 진리 때문이었다.

 

(1) “그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그는 아무리 그 위험이 크더라도 구원할 능력을 갖고 계신다. 모든 도움과 구조가 실패했을 때 구원하시는 것이 그의 특권이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이며, 그의 자산이다. 또한 그것은 그의 것이 된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방침대로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구원을 확신한다. 그들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2) 그의 축복은 그의 백성들에게 임한다. 그는 그들을 구원할 능력을 갖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한 그의 친절하고 은혜로운 뜻을 그들로 하여금 확신케 해주신다. 그는 그의 말씀 속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축복에 대한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임함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들로부터 책망과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을 실지로 축복하시고 복을 명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의해 확실히 축복받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우리 자신을 의탁함에서 얻는 만족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을 계속 바라고 조용히 기다리도록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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