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가나에 가셔서 두 번째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처음에는 물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고 두 번째는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신하의 아들 치유 이적(요 4:46-54)
성 경: [요4:46] 엘덴 운 호 이에수스 팔린 에이스 텐 카나 테스 갈릴라이아스 호푸 에포이에센 토 휘도르 오이논 카이 엔 티스 바실리코스 후 호 휘오스 에스데네이 엔 카페르나움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왕의 신하"는 헤롯 안디바의 신하를 말함이다. 여기 "그 아들"이란 말의 헬라 원어에 관사(冠詞)가 있음을 보아 "외아들"을 의미한다(Grosheide). "가버나움"은, 수리아에서 애굽으로 갈 때에 지나게 되는 도시로서 거기 관리들과 세리들이 많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성 경: [요4:47] 후토스 아쿠사스 호티 이에수스 에케이 에크 테스 이우다이아스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아펠덴 프로스 아우톤 카이 에로타 아우톤 히나 카타베 카이 이아세타이 아우투 톤 휘온 에멜렌 가르 아포드네스케인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 왕의 신하로서 사환을 보내지 않고 친히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보니, 예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이 컸다.
성 경: [요4:48] 에이펜 운 호 이에수스 프로스 아우톤 에안 메 세메이아 카이 테라타 이데테 우 메 피스튜세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이적 행하실 것은 믿었으나,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 자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기서 저 사람의 불신앙을 간접적으로 꾸짖으신다. 예수님의 말씀(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의 인격을 믿는 것이 건전한 신앙이다.
성 경: [요4:49] 레게이 프로스 아우톤 호 바실리코스 퀴리에 카타베디 프린 아포다네인 토 파이디온 무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 - 왕의 신하의 신앙은 저렇게 약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이, (1) 거리나 시간에 제재를 받을 듯이 생각하였으며, (2) 죽은 다음에는 못 고칠 듯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리어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맡아 취급하신다.
성 경: [요4:50] 레게이 아우토 호 이에수스 포류우 호 휘오스 수 제 카이 에피스튜센 호 안드로포스 토 로고 호 에이펜 아우토 이에수스 카이 에포류에토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 예수님은, 그 사람과 같이 가시지도 않고 그의 아들을 고쳐 주셨다. 그는 아무 방법도 사용하시지 않고, 먼 거리에서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한 마디 말씀만 하시므로 고쳐 주셨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신 증거를 보여 주심이다. 여기 "살았다"란 말의 헬라 원어는 현재동사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현재에 바로 살아난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 "살아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의 생명이 살아남을 가리킨 것일까? 그것은, 여기서 질병을 고침 받음에 관하여 사용된 말이니 만큼, 물론 육신의 생명이 살아남을 가리킨다. 그러면, "살아난다"는 말이 요한복음에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영생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 말이 예외의 의미(곧, 육신적 생명의 뜻)를 가진다는 말인가? 질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 물론 육신적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 구원도 마침내 영생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것이니 만큼, 그것이 도외시(度外視)될 것은 아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도 육신적 생명과 관계된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으로써 영생에 관한 설교(11:25-26)의 기회를 삼으신 것이다. 스밀데(E.Smilde)는 말하기를, "우리는 이렇게 보는 것이 당연하다. 곧, 4:46-53의 말씀은, 5장에 있는 영생의 생명 주시는 (영생은 몸을 제외하지 않음) 그리스도 복음에 관한 말씀의 예비적 계단이다. 요한복음에 있는 '생명'이란 말씀(살린다는 말씀) 구절들을 영화(靈化)하여 버리는 해석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Leven in de Johanneische Geschriften, P.36).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에 부딪혀 믿음을 얻었으니, 그것이 과연 건전한 신앙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의 심령의 병을 고치고 믿음을 주셨으니, 그것이 그의 아들의 육신의 병을 고친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의 질병도 고치시지만 심령의 병(불신앙 병)을 고치시는 것을 위주한다.
성 경: [요4:51] 에데 데 아우투 카타바이논토스 호이 둘로이 아우투 아펜테산 아우토 카이 아펭게일란 레곤테스 호티 호 파이스 수 제
성 경: [요4:52] 에퓌데토 운 파르 아우톤 텐 호란 엔 헤 콤프소테론 에스켄 카이 에이폰 아우토 호티 크데스 호란 헤브도멘 아페켄 아우톤 호 퓌레토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 이 말씀은,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신앙으로 상고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그 아이가 어느 시간에 나았는지 상고해 보므로 그 낫기 시작한 시간이 예수님의 말씀하시던 그 시간과 일치한 줄 알게 되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의 능력의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신앙은 한층 더 굳세어졌다. "제 칠 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한 시 경이다.
성 경: [요4:53] 에그노 운 호 파테르 호티 엔 에케이네 테 호라 엔 헤 에이펜 아우토 호 이에수스 호티 호 휘오스 수 제 카이 에피스튜센 아우토스 카이 헤 오이키아 아우투 홀레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 아비가 예수님을 믿음에 따라 그의 온 가족이 믿음은, 계약 원리(契約原理)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실현이다.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그 집의 대표자인 만큼,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그 온 집을 축복하신다. 창 17:7; 시 105:8-10 참조.
성 경: [요4:54] 투토 팔린 듀테론 세메이온 에포이에센 호 이에수스 엘돈 에크 테스 이우다이아스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 "표적"이란 말의 의미에 대하여는 2:11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 만드신 표적으로써, 예수님은 자연계의 주님이신 사실을 나타내셨다. 여기 "두 번째 표적"은, 예수님께서 거리(距離)를 초월하셔서 권능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거리 관계로 못하시는 법이 없다.
[시편 3편 주석성경 좋은 말씀] 하나님께 대한 믿음(시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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