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마태복음 산상수훈 설교말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방법(마 6:16-18)

기혼샘 2021. 7. 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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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방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금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금식할 때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금식을 할 때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을 위해서 하는 금식은 이미 사람들에게 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받을 상은 없습니다. 너희는 금식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금식을 하는지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금식을 하는데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해야 하겠습니다.

 

제목: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방법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태 6:16-18

 

요절: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18)

주 제: 모든 결박을 푸는 금식의 정신을 살려 하나님께 열납 되는 금식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자

 

6월 달을 호국의 달로 지킵니다. 지난주일은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초대교회의 탄생 때처럼 성령 충만을 받으며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185장),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191장) 찬송 부르며 지냈습니다. 계속 성령 충만한 생활을 이어갑시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Trinity Lord’s Day)로 지킵니다. 21세기 새 찬송가 성시교독 마지막이 좀 전에 교독한대로 “삼위일체” (137번)입니다. 성령강림주일 다음을 삼위일체 주일로 지킵니다.

 

성공회와 루터교와 일부 장로교에서 반드시 지키나 모든 교회가 이번 주일을 삼위일신 주일로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일년에 한번 정도는 삼위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드립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유일신 Monotheism)이십니다. 삼신론은 잘못된 개념입니다. 성부님, 성자님, 성령님의 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Trinity(초대교부 터툴리언이 처음 사용)을 삼위일체(三位一體)란 번역보다는 삼위일신(三位一神)이 오해를 없애는 용어입니다. 니케아 신조(AD 325년)는 삼위일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칼케돈 신조(AD 451년)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를 정리 요약하고 있습니다.

 

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1881년 영어 개역이 나오기 전 성경들)에서 요일 5:7-8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7.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는 셋이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신이시라. 이 셋은 한 분이시라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8. 땅에서 증거하시는 셋인데, 영과 물과 피라, 이 셋은 곧 한분이시라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많은 성경에서 대문자 Spirit으로 되어 있는데, United Bible Society에서 출판된 King James Bible에서 소문자 the spirit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맞다. 그래야 하늘의 증거하는 이와 땅의 증거하는 이가 짝이 맞다. 키아즘구조),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성경의 번역이 바르게 되어있는가 확인할 때 이 두 절을 확인하면 됩니다. 삼위일신 하나님에 대해서 명쾌하게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버님-말씀님-성신님(Holy Ghost)이, 영-물-피로 아름다운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토록 공존하시는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나 한분 하나님이십니다(민 6:24-26, 신 6:4). 하나님의 명칭속에 세 인격체가 있습니다. 엘로힘은 남성복수형입니다(창 1:1).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합니다(창 1:26-27; 3:22; 11:7; 이사야 6:8). “엘로힘”과 “우리”는 의심할 것도 없이 둘 이상을 가르킵니다. 이사야 48:16 과 61:1(눅 4:14-19)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언급합니다.

 

또 다른 많은 구절들도 삼위일체의 세 인격을 구별합니다. 구약에서 “주님 (LORD)”은 “주 (Lord)” 와 구별됩니다 (창세기 19:24; 호세아 1:4). 전자의 주님은 “아들”을 지칭합니다 (시편 2:7, 12; 잠언 30:2-4). 영도 또한 “주님 (LORD, 민수기 27:18)”과 “하나님 (God, 시편 51: 10-12)” 으로부터 구별됩니다. 성자 예수님도 천부 아버지 (시편45:6-7; 히브리서 1:8-9)와 구별됩니다. 신약 요한복음 14:16-17에서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하나님 아버지를 따로 언급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나 성령님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따로 언급한 또 다른 구절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삼위일체 가운데 계시는 다른 인격체-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의 각 인격체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요 6:27; 롬 1:7; 벧전 1:2). 아들도 하나님이십니다 (요 1:1, 14; 롬 9:5; 골 2:9; 히 1:8; 요일 5:20).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행 5:3-4; 고전 3:16). 삼위일체 내 상호 종속, 의존: 성경에서 보여지듯이 성령님은 아버지께 속하고, 그리고 아들도 아버지께 속합니다. 이 삼위일체 내의 관계는 각 인격의 독립된 신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성입니다. 아들에 관해서는 눅 22:42; 요 5;36; 20:21; 요일 4:14, 그리고 성령님에 관하여는 요 14:16; 14:26; 15:26; 16:7 그리고 특히 요 16:13-14에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은 가) 우주 (고전 8:6; 요계 4:11); 나) 계시 (요계 1:1); 3) 구원 (요 3:16-17); 4)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과업 (요 5:17; 14:10)의 시작이 되십니다.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서 가) 천지 창조와 우주 경영 (고전 8:6; 요 1:3; 골 1:16-17). 나) 계시 (요 1:1, 16:12-15; 마 11:27; 요계 1:1). 다) 구원 (고후 5:19; 마 1:21; 요 4:42). 아버지는 이 모든 일들을 그의 매개체로 일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는 가) 천지창조와 우주 경영 (창세기 1:2; 욥 26:13; 시편 104:30). 나) 계시 (요 16:12-15; 엡 3:5; 벧후 1:21). 다) 구원 (요 3:6; 딛 3:5; 벧전 1:2). 라) 예수님의 사역 (사 61:1; 행 10:38). 이렇게 아버지께서 이 모든 일들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십니다.

 

이렇게 삼위의 인격은 기능과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서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협력하시는 한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도 현재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고 앞으로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시며 역사하십니다. 사람도 3분법(영, 혼, 육, 살전 5:23, 히 4:12)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2분법(영, 육)은 헬라신학과 영지주의신학입니다. 한국과 히브리의 전통 가락에 3분박이 있습니다. 3은 완전수이며 조화의 수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The LORD our God is one LORD:[삼위일체]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with all thine heart [성부하나님], 성품을 다하고 with all thy soul [성령하나님] 힘을 다하여 with all thy might [성자하나님]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the righteousness of God[삼위일체]가 나타나서 믿음으로from faith [초보의 믿음]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to faith [완성의 믿음]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by faith[과정의 믿음]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이는 만물이 주님에게서 나오고 of him[성부하나님], 주님으로 말미암고 through him[성자하나님] 주님께로 돌아감이라 to him[성령하나님]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to whom be glory for ever. Amen.[삼위일체]” (롬 11:36)

우리의 영과 혼과 몸your whole spirit and soul and body이 한 인격이듯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And the very God of peace sanctify you wholly; and I pray God your whole spirit and soul and body be preserved blameless unto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살전 5:23)

이사야는 성전예배에서 천사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And one cried unto another, and said, Holy, holy, holy, is the LORD of hosts: the whole earth is full of his glory.” (사 6:3)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성자하나님]와 하나님의 사랑[성부하나님]과 성령의 교통하심이[성령하나님]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예수님께서 나아와 선포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시리즈로 산상수훈 중 마 6:16-18에 은밀한 중에 하는 금식기도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금식기도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금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굶는다거나 끼니를 거르는 것 이상으로 맑은 정신으로 기도와 말씀에 몰입하여 나의 영혼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금식>이란 단어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춘다” 즉 죄를 회개하며 자신의 모든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여 순종을 다짐한다는 의미입니다. 대개 기간을 정하여 합니다. 하루 금식, 삼일 금식, 일주일 금식, 보름 금식, 석 주 금식(21일, 다니엘 금식), 한 달 금식, 40일 금식. 그런데 40일 이상 금식을 추천하지 않음은 성경에 40일까지 금식 기도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금식에도 두 가지를 구분하는데 음식을 먹지 않고 몇 일 동안 작정하고 하는 것을 흔히 말하는 금식기도(fasting prayer)라 말합니다. 그러나 물까지 마시지 않는 것을 단식이라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덕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 34:28) 모세의 인격이 하나님의 임재와 온전히 합하여 지내다 보니 40일이 지난 것입니다. 금식기도의 모습이 이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님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사일 일을 밤낮으로 금식기도 하셨습니다(마 4:1-2). 모세나 예수님의 기도가 단식기도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도착하여 하룻길을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하였더니 (욘 3: 4) 백성들이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왕에게 까지 전해지니 왕이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욘 3: 7-8) 하며 단식기도를 선포하여 회개를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계략을 듣고 결심하기를 왕이 부르지도 않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왕궁에 들어가 왕에게 주청을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때 궁궐 문에서 금식하며 통곡하고 있는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 부탁하기를 “당신은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 4:16) 하며 3일 후에 왕에게 나아가니 왕이 금홀(golden scepter) 을 왕후에게 내어 밀어 왕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금식기도의 권능입니다. 다니엘도 민족을 위하여 21일간 금식 기도를 하니, 하나님의 응답이 미가엘 천사를 통하여 전해졌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자원하여 이르기를...” (단 9:3)

 

참된 금식기도는 구체적인 영적인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 음식을 금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런 기도 정신을 가지고 이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58장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당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사 58:3-9)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을 드려야 합니다. 곧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금식을 시키면서 말씀을 제공하여 많은 분들이 영적 자유함을 받고 치유되며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태 17:21에 개역, 개역개정, 현대역에는 “없음”으로 나오는데 신약성경 사본 5740개(전체 99.5%)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악령(demon)은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에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첫 성경번역 구역(1911년 간행)에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개역성경은 일제 강점기 때에 조선총독부가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 내선일체(內鮮一體)를 하기 위해 1938년도에 강제적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구역(선교사들 언더우드, 아펜젤러, 게일, 레이놀즈와 한국 초대 교회지도자들과 함께 번역한 바른 번역)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막 9:29에는 “금식”을 개역과 개역개정 그리고 현대역에서는 삭제하고 있습니다. 개혁자들의 성경에는 “이르시되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만큼 금식이 중요한데 가톨릭과 뉴에이지 영향을 받은 현대역에서는 금식을 삭제하고 있는데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잘못된 금식을 지적하시면서 이르시되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랑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마 6:16)고 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진정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는 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사람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고만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머리도 빚지 않고 얼굴도 씻지 않고 슬픈 기색을 하며 추한 모습을 하여 굉장한 고행을 하는 것을 보여 사람들로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합니다. ‘나는 이렇게 굶으면서 기도에 열중하오. 여러분 나를 봐 주시오’라는 태도는 참된 금식기도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들은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내용이 없습니다. 초췌한 얼굴, 엉클어진 머리, 비실비실한 거동으로 혼자 잘 믿는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집회 광고나 명함에 “40일 금식 기도를 세 번한 신령한 강사” 라든가 “40일 금식기도를 수시로 하는 목사”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간증을 통해서라도 이런 표현을 하면 안 됩니다. 어디 모세 선생님이나 예수님께서 한 번이라도 이런 금식 기도를 자랑하시든가요? 바울 사도가 기도 생활을 자랑하든가요? 함께 금식 기도하자고 촉구를 할지언정 자신의 그런 경건생활을 자랑하는 순간 이미 하나님으로부터의 상급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는 일은 1년에 속죄일 하루였습니다. 속죄일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 금식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하고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되었을 때 정기적으로 이날을 기억하며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 기도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는데 목요일은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간 날이고 월요일은 하신한 날입니다. 모세를 본받겠다고 그렇게 두 번씩 금식 기도하였답니다. 한 바리새인은 기도하기를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2)하고 자랑스럽게 보고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냄으로 영적인 자존심을 내세우는데 자기만족을 하는 생활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금식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금식 기간 중 용모를 단정히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청결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별 표시를 내지 말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과 단독자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주변의 가까운 분들 몇 명에게만 필요시 이야기하면 됩니다. 금식 기도하기 전에 목회자와 상담하고 기도를 받고 하면 목회자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도와 드립니다.

 

다음 같은 경우에 금식 기도를 권합니다.

첫째, 죄를 회개할 때입니다. 민족적인 죄를 회개할 때 공동체 금식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둘째,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위기를 만날 때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다니엘과 에스더, 사무엘과 다윗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님은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온 성도들이 함께 금식하는 모본을 보였습니다. 이 금식을 통해 그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주님의 뜻을 물을 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 누구를 파송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금식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2-3)

넷째, 마귀를 쫓아낼 때입니다. 마귀 들려 간질로 고생하던 아이를 고치시면서 주님께서 교훈하시기를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니라.”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 하십니다,(마 17:21)

다섯째, 경건의 훈련을 받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27:9에 보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되어 있는데 경건 훈련을 위해 금식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금식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했는데(마 16:24)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으로 금식을 권장합니다.

여섯째,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입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진로를 결정하기 전, 자녀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행을 떠나기 전, 집을 정하거나 이사를 하기 전, 환우의 건강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등입니다.

금식하는 기간에 세상과 거리를 두고 온전히 주님과 합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자기 육체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배고픔과 목마름을 극복하고 대신 하늘의 만나와 영생수로 채움을 받고 평소 고마움을 모른 공기의 맛을 새삼 느끼며 기도, 찬양, 말씀, 전도, 구제, 봉사, 사랑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그 속에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을 살아갑시다. 금식하면 우리의 육신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며 우리 영혼의 창이 맑아집니다. 이 맑은 창 속에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 능력이 채워져 밥을 먹을 때보다 신령한 힘이 넘쳐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해서 거룩한 창이 열리고, 이웃을 향해서 사랑의 창이 열리며, 자신을 향하여 소망의 창이 열려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들포도를 맺은 유다 백성(사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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