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히브리서 5장 설교말씀] 예수님은 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심(히 5:1~14)

기혼샘 2021. 7. 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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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5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심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일시적이라면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십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자 범죄를 해결하는 제사장이었다면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원죄를 해결하는 제사장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동물의 피로 속죄를 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속죄를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속죄를 했다면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단 번의 속죄로 끝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원죄가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구원받고 난 이후에 자 범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회개함으로 주님께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자 범죄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짓기 때문에 회개하고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죄는 주님의 피로 단 번에 속죄함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제목: “예수님은 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심” (히 5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히 5:1~14

 

요절: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 무궁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 5:6)

주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이심

 

5월의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 성수합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Children’s Day)로 지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육하며 전수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주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말씀을 전수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녀 이삭의 출생을 약속하시면서 믿음의 가정으로 복을 주시면서 신앙의 교육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집안(household)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way)를 지켜 바른 길과 바른 판단(justice and judgment)을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 18:18~19). 우리도 선물로 주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쉐마를 낭송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훈계하며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4~6) “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②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③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④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7~9).

제일 좋기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쉐마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복입니다. 또 비록 자녀들이 장성해도 항상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쉐마 말씀이 가장 좋은 결혼 선물이 되며, 유언이 되고, 중요한 행사 시 빼놓지 않는 선물이 되면 좋습니다. 저도 자녀들을 쉐마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부모님의 청교도 신앙을 이어받아 아침, 저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자녀들이 학교 가기 전에 “오늘 하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자 Let us love the LORD 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ght.”라고 축복합니다. 저녁에 예배드리면서 오늘 하루 그렇게 살았느냐고 묻고, 어떻게 마음을 다하여, 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느냐고 묻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같은 질문을 던지기만 해도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부는 임마누엘의 가정입니다. 맏아들 요셉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는 열매를 받습니다. 이런 쉐마 교육을 지금은 제 손자들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역 때문에 한국에 있지만 미국에 갈 때마다 온 가족이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며 쉐마 교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정 행전이라고 부르는 시 112:1~3에 보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신앙교육을 받아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효도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잠 6:20~23)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선물을 오늘뿐 아니라 항상 제공하는 부모가 됩시다.

♥ 중요감의 필요 : 넌 중요하단다. 천국의 보배이다.

♥ 안정감의 필요 : 안심하렴, 주님께서 선하신 목자이시다.

♥ 수용감의 필요 : 너의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어. 주님께서 안아 주신다.

♥ 사랑받을 필요 :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셔. ‘Jesus loves me.’

♥ 사랑을 배울 필요 : 너도 가정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라

♥ 칭찬의 필요 : 넌 참 훌륭한 아이로구나! 너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 훈육의 필요 : 오직 말씀 가운데 올바로 자라나렴. 형통한 복을 받을거야.

♥ 하나님에 대한 필요 : 너에겐 항상 주님이 필요하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오늘은 히브리서 5장을 강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사보다 우월하시며, 모세보다 우월하시며, 참된 안식을 주시며, 우리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시는 영원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아니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십니다.

 

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히 5:1-10)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니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신을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분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분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1~3절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됩니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은 아론의 후손으로 한번 임명되면 종신제였습니다. 에스라 7:1~5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오경을 편집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일을 기록하면서 그분은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이며 사독의 5대 손으로 대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토렌스에 위치한 코헨대학교의 명예총장으로 계시는 게리 코헨(Gary Cohen,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Holy Land 기획하신 분, New King James Bible 번역 책임감수, 요한계시록 번역) 박사님은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 가문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19세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신 후 유대교 가정에서 파문되신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 MJ)이십니다. 주경신학자로 과학적인 변증으로 진화론에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레위지파로 태어나지 않으시고 육신의 족보상 유다지파인 요셉의 족보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레위지파에 속합니다. 주님은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18-20) 이에 대해 히 7~9장에 자세히 설명이 나옵니다.

 

천사가 대제사장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 역할을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대제사장을 사람들 중에서 택하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을 위해 속죄제물을 드릴 때 무식하고 미혹에 빠진 자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도 인간의 연약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들을 위해서도 속죄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서신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영원무궁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4-6절에서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대제사장은 스스로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아론처럼 불러 주셔야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대제사장의 존귀와 영광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분을 높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을 종으로 묘사하십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관해 ‘너는 내 아들이라’(시 2:7)고 말씀하셨고 또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시 110:4)고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서를 요약하면 시편 110편이며, 히브리서는 시편 110편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는 말에서 ‘반차’라는 원어(탁시스taxis)는 ‘반열’ 혹은 ‘특질’이라는 뜻이며, 시편 본문에 나오는 원어(디브라ה󰙜󰔮󰕑)는 ‘모습, 모양’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는 말은 ‘멜기세덱의 특질 혹은 모습을 좇는 제사장’ 즉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7절에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신을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분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에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의 신비를 증거합니다. ‘육체에 계실 때’라는 말은 ‘세상에 계실 때’라는 뜻인데 그분은 부활, 승천하신 지금도 사람으로서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눅 22:41-44)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셨고 그분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분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과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다는 말씀이나, 그분께서 하나님을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는 말씀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연합된 것은 신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성경이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십니다.

 

8-10절 “그분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신을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며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빌 2:8). 그분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은 특히 그의 인성(人性)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신성(神性)은 본래 완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완전함이 증거 되셨습니다. 그분의 순종과 의는 완전해졌고 그분의 속죄 사역은 십자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과 구주와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렇게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며 온전케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믿음은 마음의 순종입니다(롬 6:17-18). 비록 믿는 이들의 순종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믿고 실제로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 곧 한번 받으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히 5장 1~10절까지의 내용은 요약합니다. 첫째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림과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하실 수 있는 사람이신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둘째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스스로 대제사장의 존귀를 취하신 것이 아니고,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모습을 좇는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을 우리를 위한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복된 대제사장이십니다.

 

셋째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해 들으심을 얻었으며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전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놀라운 대제사장이신 구주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합시다! 우리는 확실히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확신합시다! 또한 우리는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세상에서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믿고 순종합시다.

 

2. 영적 미성숙(히 5:11-14)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여러분들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12 이는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계속 실천함으로 인해 지각이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즉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시 110:4).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싸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맞으며 축복했던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창 14:18-19).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창 14:20). 살렘 왕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며 그의 이름에는 깊은 예표적인 뜻입니다. 본문은 그에 대해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7:1-3), 지금은 듣는 자들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본 서신 수신자들이 듣는데 둔한 까닭은 그들의 영적인 미성숙 때문이었습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점점 더 경건해지고 의로운 인격이 되며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의 지식이 많아지고 그 뜻의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그러나 서신의 수신자들은 아직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듣는 이들의 영적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데 설교나 성경 강해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12절에 “이는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 멜기세덱에 대해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영적 미성숙 때문이었습니다. 본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은 믿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영적으로 성장하여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선생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신자는 믿은 지 여러 해가 되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말해, 성도는 복음 진리를 듣고 중생(重生)하여 믿고 회개함으로 새 생활이 시작되고, 성경말씀으로 양육되어 점점 성화(聖化)되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들을 성경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유나 마시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입니다. 전자는 엄마의 젖이나 우유만 먹는 어린아이들과 같고, 후자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성장한 자들과 같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 즉 성경의 기본적 진리들만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교인들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즉 성경의 모든 교리와 모든 생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교인들입니다. 세례 대상자들을 위한 학습반 공부의 내용들은 전자를 위한 것이지만, 신구약 성경의 자세한 강해나 조직신학이나 현대교회 문제의 강의 등은 후자를 위한 것입니다.

 

13-14절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계속 실천함으로 인해 지각이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서신의 수신자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영적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말씀의 내용과 목적은 의(義)입니다. 그것은, 의가 없었던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은혜의 복음과 또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할 교훈들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 실제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부족했습니다. 영적 성장은 단지 이론적 지식으로 되지 않고 계속적 실천을 통해 우리의 지각이 연단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됨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적 성장은 성도가 실제로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또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자람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만을 이해하고 어려운 말씀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마치 밥을 먹지 못하고 우유나 젖만을 찾는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아직 남을 가르치거나 돌볼 힘이 없고 진리를 위해 싸울 힘도 없습니다.

 

또한 교회에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의를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에 머물지 말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워야 하며 또 의의 말씀을 계속 실천함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힘을 배양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어린이 주일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 어리고 나약한 주님의 양일 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양육받아 천국 시민으로 자라게 하옵소서,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고 말씀으로 양육하여 주님께 바치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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