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민수기 33장 설교말씀] “엘림 – 베레스”(민33:9, 마1:3)

기혼샘 2020. 10. 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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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33장 하나님말씀 중에서 엘림과 베레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엘림 – 베레스”(민 33:9, 마1:3)

 

명제: 엘림은 힘의 권능 자이시며 번성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목적: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통하여 번성의 복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라로 인도하였습니다. 마라에 도착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뜨거운 태양 아래에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목마름이 최고에 다다랐을 때에 마라에 있는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이 물이 너무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앙도 뒤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마실 물이 없어도 하나님과 주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라와 같은 장소에서 고침을 받고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었던 인생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나무 아래에 오게 되니 영혼이 숨을 쉬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라에서 진을 이동시키게 됩니다. 마라를 떠나서 엘림으로 진을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림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엘림과 같은 환경과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33:9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으므로 거기에 진을 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진을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샘물 12개가 있다는 것은 광야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광야에 물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엘림에는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종려나무 70그루가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 12지파와 이스라엘의 핵심인 장로 70명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보호해 주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엘림과 같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생수가 넘쳐나고 종려나무와 같은 많은 달콤한 축복의 열매들이 열릴 수 있도록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엘림’ אילם(엘림 362) 엘림, 이라는 뜻이며 איל(아일 352) 수양, 기둥, 지도자, 상수리나무,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엘림 지역은 마라에서 10Km 떨어진 지역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엘림까지 10Km 정도 걸어서 온 것입니다. 성경에서 상수리나무는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자이시며 신앙의 기둥이 되시고 거룩한 수양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 이유가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상수리나무에서 거주하였습니다.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때에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고 이 땅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도자가 되시고 영적인 스승이 되어주셔서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에 임하시는 주님을 매일같이 만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창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또한 아브라함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상수리나무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상수리나무는 권세 있는 하나님을 상징해주는 나무입니다.

 

겔6:13 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또한 고대 근동의 많은 사람들이 상수리나무는 힘이 있고 기품이 있으며 위로 뻗어 있기 때문에 푸른 잎사귀와 같이 풍요와 번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타락하자 우상의 제단을 쌓아놓고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분향을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권세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권세 있고 능력 있는 하나님을 버리게 됨으로 상수리나무에서 우상에게 제단을 쌓아 우상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엘림과 같은 곳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나의 원죄를 씻어내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엘림과 같다고 하면서도 상수리나무에서 우상의 제단을 쌓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강단에서 거짓 복음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말씀이 나올 것이며 인간을 높이고 사탄을 찬양하는 말만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상수리나무와 같은 힘 있고 권세가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엘림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유입니다.

 

출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 이르렀을 때에 이미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샘’ עין(아인 5869) 눈, 샘물, 샘, 이라는 뜻입니다. 엘림에는 이미 12개의 샘물이 있습니다. 이 샘물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엘림은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런 장소에 샘물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원한 생수이신 주님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뜨거운 광야에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럼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있는 광야처럼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생수를 먹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목말라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11: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내려주신 만나가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과 양식이 있어야 광야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진주와 같은이라는 단어에서 같은이라는 단어가 עין(아인)입니다. 이것은 샘물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엘림의 열두 개의 샘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만나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만나는 진주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수가 만나로 하늘에서 계속해서 내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흘러나오리라’ נהר(나하르 5102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흘러가거나 들어가다, 빛나다, 빛을 발하다, 비추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생명의 복음의 만나를 먹고 속에서부터 생수의 빛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속에서부터 빛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먼저는 나 자신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먼저 내가 변화가 되고 세상으로 빛이 발산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이 비치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만나를 계속해서 공급받으면 빛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가 이와 같이 강단에서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생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면 성도들은 이 말씀을 먹고 살아나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세상으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계속해서 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려나무’ תמר(타마르 8558) 종려나무, 대추야자, 라는 뜻입니다. 엘림에는 이미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종려나무는 풍요와 다산과 번성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종려나무에 달린 대추야자가 많이 열리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엘림에 종려나무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요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와 외치고 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승리와 풍요와 번성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살아난 선택받은 자들이 종려나무를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계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요한계시록에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았습니다. 이것을 믿는 구원받은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엘림에 있는 종려나무 70그루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서 번성시키신 주님을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엘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원한 생수를 먹게 되고 종려나무 열매인 대추야자와 같은 달콤한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엘림과 연관되는 마태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은 베레스입니다. 베레스는 육적으로는 동생입니다. 먼저 나온 자는 손이 먼저 나온 세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레스를 선택하셔서 영적 장자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족보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창38: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하나님은 베레스가 탄생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라의 손이 먼저 나왔지만 제대로 탄생이 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홍색 실을 묶어서 다시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동생인 베레스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베레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베레스’ פרץ(페레츠 6557) 베레스, 라는 뜻이며 פרץ(파라츠 6555) 깨뜨리다, 돌파하다, 파괴하다, 터뜨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베레스는 형보다 먼저 터뜨리고 이 세상에 나온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베레스는 엘림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뜨거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공급해 주는 자를 의미합니다. 엘림에는 이미 12개의 샘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레스와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파괴가 되고 깨뜨려져 고통받고 있는 많은 영혼들에게 영적인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하셔서 살아나게 하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베레스와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원죄로 죽어있던 곳에서 터뜨리고 나온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온 것을 말합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해서 알 속에 있으면 병아리는 죽습니다.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죄 가운데 있으면 주님의 거룩한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천국의 삶이 무엇인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베레스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함으로 원죄에서 터뜨리고 거룩한 천국의 삶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엘림과 베레스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습니다. 엘림에서 이미 권능 자 되시는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수와 먹을 수 있는 대추야자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믿고 세상 밖으로 터뜨리고 나오면 영원한 생수가 준비되어 있고 대추야자처럼 달콤한 복음의 만나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뜨거운 고통과 고난에도 고민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도 오아시스 옆의 종려나무들은 걱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 옆에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곁에 있으면 영원히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시고 엘림에 거주하고 계시는 권세 있는 하나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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