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민수기 33장 설교말씀] “홍해가 – 헤스론”(민33:10, 마1:3)

기혼샘 2020. 10. 11. 16:22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수기 33장 하나님말씀 중에서 홍해가와 헤스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홍해가 – 헤스론”(민 33:10, 마 1:3)

 

명제: 홍해 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마치고 종말을 성취하시는 주님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목적: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 도착하여 보니 오아시스 12개가 있었습니다. 또한 종려나무 70그루까지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기가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엘림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서 평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서 원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만나 죄악의 고난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엘림의 권세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십자가 복음을 마음껏 먹게 된 것입니다. 엘림과 같은 교회는 항상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과 같이 십자가 생수가 끊어지지 않는 교회입니다. 또한 맛있는 종려나무 열매가 있는 것처럼 달콤한 주님의 복음의 말씀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림에서 계속해서 머무르게 하지 않으시고 이곳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외형적인 조건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를 떠난다는 것은 한 발짝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큰 축복을 받아 물질이 많고, 좋은 집과, 자동차와, 사업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가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홍해 가에 역사하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곳 홍해 가는 신 광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실제로 광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시작점입니다. 광야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교회로 들어가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원죄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상의 것을 정리하고 교회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 시작점이 바로 홍해 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현재 나의 신앙 상태가 이 시점에 있다면 나는 홍해 가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서 진정한 교회로 들어와야 합니다.

 

민33:10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림에 놔두지 않으시고 홍해 가로 인도하여 진을 치게 하고 있습니다.

 

‘홍해 가’ על ים סוף(알 얌 수프 5488) 갈대, 홍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סוף(수프 5486) 끝나다, 성취하다, 진멸하다, 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가에 진을 쳤다고 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곳을 말씀하지 않고 건너뛰고 있습니다.

 

출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고만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홍해 가는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를 들어가는 통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홍해 가를 통해서 영적으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마지막 날에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애굽의 노예근성들을 모두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을 홍해 가에서 버리고 신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원죄에 빠져 율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버려야 함을 말씀합니다. 율법의 노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죄악의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는 절대 교회에 들어갈 수가 없고 또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의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내가 홍해 가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온전한 주님의 십자가의 의만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생활을 할 때에 불평만 하게 됩니다.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목사님을 원망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런 삶이 율법적인 삶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불에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쭉정이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35:3-4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우리가 야곱의 신앙을 보면서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숙곳에 진을 쳤다가 다시 세겜 성읍에 진을 치게 됨으로 인하여 가정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것으로 인하여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살인하게 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는 명령을 받고 벧엘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때에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야곱의 가족들의 신앙 결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섬겼던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밑에 묻고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권세가 있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천국을 상징해 주는 장소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려는 야곱은 세겜에 있었던 모든 우상들을 처분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우상들을 십자가 밑에 묻어야 합니다. 주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들을 처분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만을 믿는 신앙만 가지고 벧엘과 같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종말을 사는 우리들의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홍해 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가지고 왔던 애굽의 더러운 우상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홍해 가에 파묻고 신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완전하게 버리지 못하고 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가 신 광야에 들어갔을 때에 먹을 양식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들은 홍해 가로 인도하신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처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원죄에 빠져 살았던 인생이었는데 십자가의 주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후에 교회에 들어왔지만 원죄에 빠졌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시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파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고집, 나의 괴팍한 성격, 아니면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세상의 세속적인 생활, 아니면 방탕한 신앙생활들입니까? 그럼 곧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억하시면서 홍해 가가 나의 무덤이라고 생각하시고 나의 거짓되고 추악했던 생활들을 이제는 완전히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새롭게 부활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기에서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들어가 육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반드시 불평불만을 교회에서 토로하게 될 것입니다.

 

롬6:5-6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들은 홍해 가와 같은 장소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어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원죄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고 이제는 우리가 죄에게 종의 노예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종말의 날에도 우리는 절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원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두 청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의 원죄가 홍해 가에서 영원히 청산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홍해 가에서 나의 욕심들을 청산하여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하지만 구원의 확신도 없이 교회만 다니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실상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나의 죄악 된 삶을 버리고 거룩한 주님의 삶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 구원입니다. 이 성화 구원을 통하여 우리는 홍해 가에서 나의 원죄의 추악했던 모든 삶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파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홍해 가와 연관이 되는 마태복음의 구속사 인물은 헤스론입니다. 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인물입니다.

 

창46: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헤스론은 유다의 후손으로서 베레스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헤스론과 하물이 있는데 헤스론을 구속사의 인물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는 길로 뽑아주신 것입니다.

 

‘헤스론’ חצרון(헤츠론 2696) 헤스론, 이라는 뜻이며 חצר(하체르 2691) 안뜰, 마을, 이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이 단어는 חצר(하차르 2690) 나팔을 불다, 벽으로 봉쇄하다, 둘러싸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헤스론은 마지막 날에 천사들이 나팔을 불 때에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에 선택받은 자들을 데리러 오시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시러 오시는 분입니다. 그럼 홍해 가에서 모든 거짓된 우상을 버리고 신앙생활했던 자들은 안락한 마을과 같은 주님의 품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보호함을 받고 거짓된 율법의 삶을 십자가 밑에 파묻은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더니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나팔을 불 때에 구름 타고 오시면서 나를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 가와 마태복음의 족보에 올라온 헤스론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홍해 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친 것을 통하여 영적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우상을 섬기는 신앙들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밑에 파묻고 오직 주님만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 광야로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천국에서 영원히 원망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 의지하고 거짓된 복음을 버리고 주님만을 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신 광야와 같은 교회에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고 주님의 이름만을 높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장소가 홍해 가라고 생각하시고 마지막 종말에 재림하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나의 육적인 욕구의 삶을 살았다면 십자가 밑에 파묻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8장 주일설교말씀] “셋째와 넷째 나팔 재앙”(계8:10-13)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8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셋째와 넷째 나팔 재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셋째와 넷째 나팔 재앙”(계 8:10-13) ♣명제: 셋째와 넷째 나팔을 불 때에 이단들이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