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사도행전 17장 강해설교말씀] 제2차 세계선교 여행(2)(행 17:1~34)

기혼샘 2023. 3. 3. 16:08
반응형

사도행전 17장에서는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덴에서 바울이 사역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열심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오직 십자가 예수님만 전파했습니다. 바울의 삶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모든 것을 예수님께 올인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올인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선교 여행(2)(행 17:1~34)

                         

본문: 사도행전 17:1~34

요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그들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6-27)

오늘은 6월 네 번째 주일로 6.25 한국전쟁 회상주일로 지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한국전쟁(Korean War)은 3년 1개월 동안 지속되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停戰, 전쟁을 잠시 멈춤, Truce)협정으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 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즉각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상임과 비상임이사국 11개 회원국 중 2개 회원국의 기권과 9개 회원국의 찬성으로 안보리 결의 제82호를 의결하고, 다시 유엔의 군사 지원을 촉구하는 83호, 유엔군 파병의 84호를 통과시키며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한다. 만약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남한의 북침이 맞다면 유엔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겠습니까? 또 어떻게 3일 만에 남한의 수도 서울이 북한의 손에 접수되겠습니까? 북한의 주장은 억지며 거짓입니다. 1950년 7월 7일 유엔군이 창설되고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사령관이며 일본 주둔 미국 극동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가 유엔군 사령관이 되어 7월 18일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작전 지휘권을 받았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6개 나라입니다[총 2,778,905 병력]. 저는 1984년부터 시작하여 이들 나라를 다 순방하면서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 교육선교를 하였습니다. 최다 병력을 파송하며 가장 많은 희생을 한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 가운데 있는 National Mall의 서쪽 끝에 있는 Lincoln Memorial 앞에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Th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 휴전 42주년 되던 날인 1995년 7월 27일에 세워짐)에 한국전 3년 동안 참전한 580만명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36,940명이 전사하고, 3,737명이 실종, 4,439명이 포로가 되며, 103,28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전 희생된 군인들은 대부분 알링턴 국립묘지에 모시고 있습니다. 미국 명문대(Ivy League) 출신의 젊은 군인들이 한국전에서 많이 전사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 유펜, 콜롬비아 등 출신이 전사한 것을 각 대학의 기념관(Memorial Hall)에서 추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 일행의 제2차 세계선교 여행을 계속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통해 소아시아 지방과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 지방 선교를 살폈고, 오늘은 마게도니아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와 옆의 도시인 베뢰아 및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아테네 선교를 살펴보겠습니다.

1.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행 17:1-9)

(1)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경유하여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2) 바울이 그의 습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말하기를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이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 하니(4)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면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5)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시장에서 활동하는 어떤 포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란스럽게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6)발견하지 못하니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말하기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니(7)야손이 빠졌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령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8)군중들과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석방되었다.

1절. 바울 일행(선교단)은 암비볼리(Amphipolis, “도시국가의 둘레”라는 뜻.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Sterimon강 유역에 있으며 에게해부터는 약 4.8㎞ 지점이다.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지방도로에 있던 이곳은 마게도냐 첫번째 지방의 수도였음)와 아볼로니아(Apollonia, 에그나티아 지방도로로 암비볼리로부터 서쪽으로 48㎞, 데살로니가로부터 61㎞ 정도 떨어져 있는 볼레(Borle) 호수 남쪽에 위치)를 경유하여 데살로니가(Thessalonica, 현재 지명은 ‘데살로니키 Thessaloniki’)에 도착했습니다. 그리스에서 아테네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자라고 활동한 곳이 가까이에 있고, B.C. 315년경 마게도냐의 왕 카산드로스가 터마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26개 마을 주민을 이주시켜 정착시킨 뒤 아내이며 필립 왕의 딸이며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도시로 고대부터 유명한 도시입니다. 현재 지명은 1913년 이래 다시 그리스 영토가 되어 ‘데살로니키’로 불리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상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회당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 후 온 세계에 흩어졌고 각 곳에서 회당을 세웠습니다. 유대인의 회당들은 신약시대에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죄악과 국가적 멸망이 세계복음화를 위한 발판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그의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유대인의 회당예배에서는 손님으로 오신 분에게 강론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시간을 활용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도시에 가든지 회당을 먼저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2절. 바울은 자기의 습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 연속해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회당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바울의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오늘날 온 가족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교회의 모든 공적 집회에 힘써 참석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방식입니다. 바울은 회당 집회를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전도할 때 성경을 가지고 전합니다. 성경은 전도와 설교의 근거자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하나님의 말씀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 3:16). 성경은 유익한 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진리와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읽는 모든 이에게 큰 유익을 주는 책입니다. 성경에 익숙한 자는 하나님의 모든 좋은 말씀을 언제든지 기억하며 확인하며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익숙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유익한 책을 열심히 읽고 연구함으로써 그 모든 말씀에 익숙한 자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유익을 받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세 안식일에 강론하였습니다. ‘강론하다’는 원어(디아레고마이 dialegomai)는 ‘변론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때때로 변론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세 안식일에 계속 강론하였습니다. 그는 한 번의 전도로 부족을 느꼈던 것 같고 세 번 연속하여 복음 진리를 확실하게 전하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증거 해야 합니다.

3절. 바울은 성경의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며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이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낳게 됩니다.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짐승 제물의 죽음, 피흘림, 불태움과, 이사야서와 시편의 구절들에 근거한 설명입니다(사 53:5-6; 시 16:10). 의로우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구약에 예언된 분이심이 증거 되셨습니다.

4절.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습니다. ‘귀부인들’은 사회적 신분과 재산이 있는 자들의 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권함을 받았다’는 원어는 ‘믿었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는 큰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다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믿었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5-9절.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시장 바닥에서 활동하는 어떤 사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란케 하여 바울 일행이 머물고 있었던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자,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말했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니 야손이 이 가르침에 빠졌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保, 보석금)를 받고 놓았습니다. 분쟁들 중에는, 죄악된 분쟁이 있고 불가피한 분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전파될 때 일어나는 분쟁은 불가피한 분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 10:34).

2. 베뢰아(Berea)에서의 전도(행 17:10-15)

(10)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2)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3)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란케 하거늘(14)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15)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0절. 데살로니가에서 바울 일행이 더 이상 유숙할 수 없는 환경이 오자 밤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 및 디모데를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남서쪽으로 80km에 위치한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도피하는 긴 여행을 하여야 했습니다. 당시의 밤의 여행은 불편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도자의 길입니다. 그들은 베뢰아에 와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은 전도하기 위한 첫 발판과 같았지만,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들어가기 싫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도하기 위해 직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훗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전 9:16-17).

11-12절.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유게네스 eugenes, “마음이 고상하여서”) 간절한 마음으로(메타 파세스 프로뒤미아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편견이나 선입견, 좁은 마음, 닫힌 마음, 부정적인 마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박한 마음, 열린 마음, 모든 준비된 마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사악하고 비뚤어져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마음이 비뚤어지고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을 ‘사곡한 종류’라고 표현하였다(신 32:5). 바울도 세상을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표현하였습니다(빌 2:12-15).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비뚤어지고 부정적인 마음이 변하여 고상한 마음,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즐거움으로 말씀을 받을 만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뢰아에서 바울에게 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믿었고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거기서 특히 많은 결실을 얻은 것은 베뢰아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마음이 고상하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단순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또 날마다 성경을 연구함으로 들은 내용을 확인할 때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을 통해 생깁니다(롬 10:17).

13-14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란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힘 있게 이루어질 때 사탄의 방해도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열심도 컸지만, 악한 자들의 열심도 대단하였습니다. 교회 사역은 영적 전쟁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은 곧 바울 혼자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였습니다. 베뢰아에서 많은 결신자들을 얻었다고 기뻐한 것은 잠깐이었고 바울은 또다시 피신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라고 하셨습니다(마 10:23). 유럽 지역의 선교가 아시아만큼 어려웠고 가는 곳마다 박해와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5절.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아테네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났습니다. 바울은 누가만 데리고 출발한 것 같습니다. 베뢰아에서 아테네까지는 바닷길로 400~500킬로미터 가야 했습니다. 바닷길은 항상 풍랑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은 많은 고난과 위험을 경험한 과정이었습니다(고후 11:23-27).

3. 아테네(Athens)에서 설교하다(행 17:16-34).

(16)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17)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시장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18)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님과 또 몸의 부활 전하였기 때문이라. (19)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 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21)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22)바울이 아레오바고(the Areopagus)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27)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자녀라 하니(29) 이와 같이 신의 자녀가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32)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33)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6절.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노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선한 분노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을 보고도 우리의 마음에 분노가 없다면 우리는 그 영과 혼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전도는 죄로 멸망할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는 것입니다. 헛된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절실히 필요하였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이런 분노와 열심이 있었습니다. 

17-22절. 사도 바울은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시장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어떤 에비구레오(에피큐러스 Epicureans, 쾌락주의)와 스도이고(스토아 Stoicks, 금욕주의자)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때 혹은 말하기를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혹은 말하기를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몸의 부활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유대인 회당의 경건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또 심지어 당시의 에피큐러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변론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그러한 관심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붙들어 가지고 당시 변론의 장소로 많이 사용한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로운 종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그것은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아테네 사람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철학적 토론을 좋아했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쓸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와 철학의 문제들은 때때로 비현실적이고 사치스러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간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인간은 깊은 신비에 싸여 있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주와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선(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겪는 고난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은 옛날부터 종교와 철학의 주제이었습니다. 돈을 벌고 먹고살기에 급급하여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시대보다는 이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를 가진 시대와 사회가 더 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아테네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어떻게 전해야 할는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3절. 바울은 또 말합니다. “제가 두루 다니며 여러분들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TO THE UNKNOWN GOD)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게 하리라.” 아테네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지만,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만든 것은 자신들의 무지를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 지혜의 집합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최선의 지혜로 참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느끼지만, 그분이 누구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접촉점으로 삼아 그들에게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이방종교들과 철학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독교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모든 종교적, 철학적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입니다.

24-25절. 바울은 계속 설교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바울이 전한 내용은 무엇보다 우선 참 하나님의 지존하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참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자이심을 강조합니다. 창조주이신 그분께서 피조세계에 제한되지 않는 초월자이십니다. 그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않고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시고 아무런 부족이 없으십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피조물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섬기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분의 초월성과 완전성과 충족성을 알지 못하는 신 개념과 그분을 섬기는 방식은 잘못입니다.

26-29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그분 안에서 살며 기동 하며 있느니라. 여러분의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자녀가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와 거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실상 하나님 안에 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세계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비현실적이거나 사치스러운 무엇이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생의 삶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30절.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라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는 복음의 중심 내용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무지와 불경건,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며 살았던 모든 죄악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의롭고 선하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생명과 회복의 길입니다.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자신의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회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입니다.

31절. “왜냐하면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라”라고 설교를 마칩니다. 심판은 인생이 회개해야 할 이유입니다. 심판은 매우 두려운 사실입니다. 인간 사회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그들의 행위에 대해 공의의 보응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습니다. 또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시며 마지막 심판자이심을 증거 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것은 또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32-34절.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자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었습니다. 그중에 아레오바고 관원(the Areopagite) 디오누시오(Dionysius)와 다마리(Damaris)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전도의 결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증거대로 단지 몇 사람이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전도의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어떤 때는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나, 어떤 때는 적은 사람들만 주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전도를 받고 믿는 자들이 많든 지 적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요, 우리는 그 수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한 명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6). 결과적으로 평가한다면 아테네에서는 교회가 세워지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의 아레바고 설교가 바른 하나님의 신앙을 강조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한 것은 좋았는데 십자가의 신앙이 결여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훗날 고린도 전서를 쓸 때 십자가의 도를 열심히 전했노라고 반성합니다(고전 1:18-25, 갈 6: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대히 전합시다.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 운동을 전개합시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를 쉬는 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고 무관심한 죄,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죄, 선인 것을 알고도 하지 않는 죄 등을 회개합시다.

[데살로니가후서 설교말씀] 규모 없는 자들에 대한 경고(살후 3:6-15)

 

[데살로니가후서 설교말씀] 규모없는 자들에 대한 경고(살후 3:6-15)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육적으로 게으름 피우면 안 된다. 이런 자들은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운다. 성도는 영육으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서 하

kihonsam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