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야고보서 3장 성경말씀] 위로부터 온 지혜(약 3:13-18)

기혼샘 2023. 2. 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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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하늘로부터 임하게 된다. 세상 지식은 땅에서 습득하지만 예수님을 깨닫는 지혜는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이 세상 정욕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늘의 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다.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정욕을 더 좋아하게 된다. 예수님을 깨닫고 구원받아 천국을 사모해야 한다.

 

위로부터 온 지혜(약 3:13-18)

 

이미 전 구절에서 정죄한 죄들이 남보다 더 현명한 체하며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총명한 듯이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이 구절에서 스스로 지혜 있는 자인 체하는 사람과 진실로 현명한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며, 또한 아래에서(이 세상과 지옥) 생겨진 지혜와 위에서부터 온 지혜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Ⅰ. 우리는 그 특이한 표식과 열매로써 참 지혜를 분간해 낼 수도 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사물을 바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는 충분한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현명하다는 평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지식을 올바르게 적용하며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단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가치 있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참 지혜의 진위를 결정하는데 꼭 같이 필요한 요소이다. 누가 지혜로우며, 또한 지식을 부여받았는가? 다행히도 이 두 가지가 더 구비되어 있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1. 선행.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지혜롭다면, 우리의 행실에서 거칠고 허탈함이 보이지 않고, 선함이 보임으로써 그 지혜가 증명되어야 한다. 남에게 알려 주며 화해시키고, 선을 행하는 말들을 지혜의 표지가 되고,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나 또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위대하게 보이면서 해독을 끼치며, 악의 기회가 되는 말들은 지혜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다.

2.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행"의 의미는 단순히 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선행으로 네 하는 일을 나타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된 지혜는 선한 개념이나 환상 속에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선하고 유익한 행위로 나타난다. 만일 선하게 행동하며 선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성서가 의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3.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우리들 자신의 진노를 조심스럽게 재갈먹이며,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 또한 지혜는 온유함으로 자신을 증명하듯이, 온유함은 지혜의 둘도 없는 벗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격정이야말로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하는데 필요한 공정한 사고력과 엄격한 판단, 그리고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유하고 마음이 고요할 때 사건의 이유에 대해서 가장 잘 들을 수 있고, 또 그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을 지혜를 더해 준다.

Ⅱ. 우리는 여기에 언급된 것에 상반되는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지혜는 그들의 자만함과 행실에서 그 성격이 밝혀진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14절). 만일 네가 사랑과 화평케 하는 생활을 그만두고 시기와 다툼으로 일삼는다면, 이것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현명한 체 행세하는 네 자랑을 즉시 중단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만일 네게 진리와 정통적인 것에 대한 열심히 있으며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지라도 이것들을 남을 미워하는 데 사용하거나 네 마음을 원한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데 사용한다면, 이는 너의 기독자로서의 신앙 고백에 부끄러움이 되며, 기독교에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을 유의해 보자.

1. 시기와 다툼은 지혜의 온유함에 반대된다. 우리 마음은 이 두 가지가 다 거처할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시기와 지혜가 한 마음속에 함께 거하지 못한다. 거룩한 열심과 격심한 질투는 천사들의 거룩한 화염과 지옥의 불길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상이한 것이다.

2. 시기와 다툼에도 순서가 있다. 시기심이 먼저 발생하고 이것이 다툼을 일으킨다. 다툼은 헛된 자랑과 거짓말로 자신을 변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뒤따라 일어나게 된다(16절). 악함과 시기와 자만과 혼란 가운데 사는 사람은 모든 악한 일을 행하도록 자극받고 서두르게 되기 쉽다. 그러한 무질서는 많은 유혹을 일으키며, 그 유혹을 점점 더 거세게 만들어서 마침내는 인간들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죄를 짓게 한다. 하나의 죄는 또다른 죄를 낳으며, 그 악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는 결코 상상할 수 없으며 많은 죄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며 이 거짓 지혜가 정직한 지혜인 체 속이지 않고서야 이 지혜가 자랑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을 명심해야 한다.

3. 이런 지혜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이 땅에서 생겨난 것으로써 더 분명히 말한다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이다(15절)" 그것은 이 세상적인 원칙에서 생겨나서 세상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고, 세상적인 목적에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이 지혜는 정욕적이고 육의 쾌락을 도모하며 육신의 번뇌와 욕망을 성취시키려고 준비한다. 또한 원어인 ‘프쉬키케’(5591)라는 단어의 뜻은 영적인 것에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동물 또는 인간으로서 어떤 초자연적인 빛의 도움이 없는, 전적으로 본성의 욕구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히 악마적인 것으로써 이 지혜는 마귀의 지혜이며(불만을 조성하고 해를 입히며), 마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마귀의 꾀임은 교만이며(딤전 3:6), 성서의 다른 부분들을 이 마귀가 내뿜는 분노와 형제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악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마귀가 받을 심판을 함께 받아야 한다.

Ⅲ. 우리는 이 땅에서 생겨난 마귀의 지혜와 반대되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충만한 지혜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즉,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17절) 참된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은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지혜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인간과 더불어 사귀는 가운데 얻거나 세상 지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지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구성된다.

1. 이 지혜는 그 가치를 떨어뜨리게 될 다른 교훈이나 목적과 뒤섞이지 않은 채 성결하며, 또한 불의와 더러움과 상관이 없고 죄라고 알려진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마음과 생활에 거룩함을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2. 하늘로부터 오는 이 지혜는 화평하다. 평화는 성결함의 뒤를 따르며 성결함에 의존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평화를 보존할 수 있는 일을 하므로 평화가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또한 그들은 평화를 이룩하는 일을 하므로 평화가 상실된 곳에 평화가 다시 회복되게 된다. 국가와 가정과 교외와 모든 사회 안에, 그리고 모든 회담과 계약에서,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인간을 화평케 만든다.

3. 위로부터 이 지혜는 관대하여서 재산 문제에서 과격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하여 그 의로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을 맹렬히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과 대화할 때 무례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또 성격이 거칠거나 무정하지 않다. 이와 같이 관용함은 이 모든 것에 반대된다.

4. 하늘에서부터 온 지혜는 양순하다. 여기서 양순하다는 말은 ‘유페이케스’ 매우 쉽게 권고될 수 있다는 뜻으로써 선한 일을 권하거나 악을 떠나라고 권하는 말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연약하고 그릇된 양순함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권고하는 바와, 우리의 동료들의 모든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언과 요청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은 비난받을 양순함이 아니다. 이 양순함은 논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또 그 논쟁을 통해서 선한 결과가 오게 될 때는 논쟁도 포기하지 않는 양순함이다.

5. 하늘에서 온 지혜는 구제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구제하며, 죄를 범했을지라도 용서를 구하는 자를 용서해 주는 등 친절하고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 그러한 기회가 생겼을 때는 그 기회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 차 있다.

6. 하늘에서 온 지혜는 편파적이 아니다. 원어인 ‘아디아크리토스’(87)는 여러 사람 중에서 특별히 한 사람을 지목하여 의심하거나 판단 또는 엉뚱하게 그릇된 추측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난외의 주에 의하면 이 말의 뜻은 분파적인 행동이나 자기 파의 유익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 주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7.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는 거짓 없다. 이 지혜는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또 이 지혜는 교활하고 간사하며,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말하는 술책에 빠져들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신실하고 개방적이고 꾸준하고 변동되지 않으며 그 지혜 자체와 항상 일치된 길을 걷는다. 당신과 내가 다 같이 이와 같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로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말하는 것은 육신의 지혜를 따름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단순함과 경건한 신실성으로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참된 지혜는 계속하여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둠으로써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룰 것이다(18절). 평화로 심은 것은 기쁨의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경쟁에서 얻은 열매를 수확하도록 하자. 그들은 거기서 자신의 유익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화평으로 의의 씨를 계속 뿌리도록 하자. 우리가 이 수고를 계속하는 한 그 수고한 대가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빛은 의로운 자들에게 비추어졌고, 기쁨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의가 하는 일은 화평을 이루는 일이고, 그 결과는 마음의 평온과 영원에 대한 보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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