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사무엘상 한나 주일설교문]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삼상 1:1-20)

기혼샘 2021. 2. 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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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한나 주일 설교문 중에서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오도록 하십니다. 한나도 아이가 없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기 위해서 한나를 기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어떤 뜻을 두고 있습니다. 그 뜻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도해서 그 뜻을 찾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가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갈 뿐입니다. 오늘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와 함께 하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삼상 1:1-20)

 

삼상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삼상 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삼상 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1: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삼상 1: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삼상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삼상 1: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삼상 1: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삼상 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 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삼상 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상 1: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 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어떤 임금님이 역사 가이드를 불러서 인류의 역사를 기록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서너 달이 지난 후 역사가들이 역사책을 기록해왔으나 너무 길어서 다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좀 더 짧게 기록해 오라고 말했,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한 결과 이 역사가들은 인류 역사를 단 한 글자로 표현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괴로울 자였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고통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좋은 예화입니다.

사람들은 음지보다 양지를 좋아하듯이 고통스러운 삶보다는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편안한 생각을 갖고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사야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8-9)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고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인간은 고통을 괴롭게 받아들이지만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맛보는 고통을 괴로운 시각으로만은 보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맛보는 고통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괴로운 것 같지만 그 고통의 이면에는 놀라운 축복의 산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구라파의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을 두고서 이러한 격언이 있습니다.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이는 9-11세기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세력을 넓힌 바이킹의 모험과 진취적 기상은 바로 이 스칸디나비아의 북풍이 탄생시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북풍과 같은 고통의 바람이 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킹과 같이 북풍을 대항하여 싸워 나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결단코 무익한 아픔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욥기서에서는 인생에 대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났나니 불티가 날음 같으니라"(5:7)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고통의 필연성과 고통의 대중성을 우리에게 암시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고통은 어떠한 특정한 한두 사람에게만 찾아와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찾아오는 고통을 어떻게 소화하며, 떻게 그 고통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대처방법의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조개가 고통을 참고 영롱한 진주를 탄생시키듯이 , 평소에는 다듬어지지 않던 우리의 인격이 고통의 길을 통해서 참된 인격과 참된 신앙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다윗은 이것을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브라임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엘가나는 사람과 결혼한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랑의 경쟁자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울부짖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이런 고통 중에서 좌절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맛보게 되는 불행이 변해서 행복이 되는 변화의 삶을 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 말씀은 고난 주간을 맞이한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고통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한나의 고통은 얼핏 살펴보면 우연히 찾아온 것처럼 생각됩니. 남편이 어쩌다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내를 잠깐 버리고 외도해서 그 결과 우연히 당하는 고통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닌나라고 하는 애정의 적대자와 갈등 때문에 생긴 돌발적인 고통인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결단코 우연의 결과도 아니요, 돌발적인 사건 때문에 생긴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한나를 연단하셔서 더 큰 축복을 주시며 그의 신앙을 강하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밀한 계획 속에 그에게 허락하신 예정된 고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고통을 당하든 여러분이 맛보거 있는 경제적인 고통, 가정적인 고통, 육신의 병마의 고통, 모든 고통은 우연히 잘못되어서 오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57절에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평안을 창조하여 어떤 사람의 가정에는 평안을 주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환란과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평안도 창조하고 환란도 창조하는 주권적인 역사로 한나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고통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된 일이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의 독립시키려 하다가 그만 잘못되어서 우연히 맛보게 된 고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맛보신 십자가 고통은 결단코 우연의 고통이 아니라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창세전에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준비해두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두고 고백하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어도 고통은 하나의 예정된 수순처럼 다가옵니다. 그럴대에 "형통할 때 찬송하고 곤고할 때 생각하라"는 말씀처럼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예정하시고 주시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고통은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예수님을 고통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 마음이 죽게 된 그런 괴로운 순간에서도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국 고통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그 겟세마네의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의 한나도 고통이 없었더라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남편의 위로나 더 풍족한 물질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있었기에 실로의 제단에 찾아가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고, 길이 있고,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바로 행복의 문이요. 성공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서 고통이라는 방법을 수단으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한나는 기도할 줄 몰랐지만 고통을 당하므로 비로소 아버지를 찾아가서 11절에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주의 종을 생각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나이다"라고 서원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고통은 한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깊이 찾게 하는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고통 중에 하나님을 간절히 기도를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고통을 기도로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한나는 기도한 후에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다시 슬픈 기색을 띄는 것은 그 고통을 다시 짊어지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또한 축복을 주십니다.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생각해 주시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생각하시므로 그를 위해 잉태케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19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해놓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 엘가나와 동침했던 것입니다. 이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라고 말씀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더라도 기도에 뒷받침할만한 생활이 없으면 하나님의 생각이 그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에는 기도는 하지만 아직 세상의 유혹을 끊지 못하고 이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각이 이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 20절을 보면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감정을 갖고 관심을 가지시며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매"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과 생활에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을 괴로워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해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고난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인도해 가심으로 축복을 주시고자 함임을 깨닫고 기도하므로 주님의 때를 기다려 축복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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