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어버이주일 설교말씀] 룻의 효도와 신앙(룻 1:1-18)

기혼샘 2023. 2. 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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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장에서는 룻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룻은 모압 땅에 들어온 나오미의 아들인 말론과 결혼을 한 후에 말론이 죽었습니다. 시아버지 엘리멜렉도 죽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와 오르바와 함께 살다가 모압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베들레헴으로 떠날 때 함께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들어왔습니다. 룻의 효심과 신앙을 통해서 어버이 주일에 우리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룻의 효도와 신앙(룻 1:1-18)

 

창세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담의 돕는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였고, 이들을 통하여 가정의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축복의 장소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고, 그 가정생활을 통하여 행복을 누릴 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를 가리켜 변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시대가 흘러오면서 이 가정 역시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이 대가족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게 3대가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핵가족이라고 하여 그런 가정은 점점 보기가 어렵습니다. 신세대들은 점점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노인들만 사는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노인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제도가 변한다 할지라도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철칙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사람이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옛 어른들은 충신은 효자의 가문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세상적으로는 이미 어버이날이 지나갔지만, 회에서는 항상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계시면서도 소홀히 여기기 쉬운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자녀로서 그분들을 잘 공경하였는가 반성하고 다시 한번 효도를 다짐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는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였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간혹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룻기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룻은 엘리멜렉의 가문에 시집을 온 모압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이방의 여인이었지만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끝까지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던 효부 중의 효부였습니다. 오늘은 이 룻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이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가? 또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게 될 때에 어떠한 축복을 받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때는 B.C 1,150년경 사사들이 치리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지도자 여호수아는 죽었고, 특별한 지도자도 없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던 대내외적으로 아주 어수선한 시대였습니다. 가끔 기근이 온 땅을 휩쓸고 갈 때에는 어디를 가나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베들레헴을 중심 한 가장 비옥한 지역조차도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즈음에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기근을 피하기 위하여 가까운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

그 당시 모압 땅에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곳곳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리멜렉은 이러한 모압의 역사와 종교를 모를 리가 없었지만, 자기 신앙만 투철하면 어느 곳에 살 든 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기근을 피하여 조금만 살다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모압 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가자마자 죽었고, 그의 두 아들은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나오미의 가정은 별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지냈는데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나오미의 두 아들이 모압에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머나먼 이방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의 슬픈 가슴을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곁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젊은 두 자부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마음은 아마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세 과부의 처량한 모습,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아마도 나오미는 이렇게 외치면서 통곡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신 것이다. 그까짓 기근을 참지 못하여 우상숭배하는 모압 땅에 오다니... 내가 이곳에서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고, 이제는 가지고 있던 재산도 다 없어졌으니 난 실패하였다. 상복을 입고 눈물만 흘리면서 마주 앉아 있는 세 과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량하기만 하였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두 자부들을 데리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귀향하기로 결심하고 이 사실을 자부들에게 알립니다. 오르바와 룻도 시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하였고, 세 과부는 세간을 정리하여 귀향길에 오르게 됩니다. 처음 모압 땅에 올 때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절망가운데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한참 길을 가다가 나오미는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내가 왜 아무런 생활 대책도 없으면서 젊은 과부들을 고향에 데리고 가는 것일까? 자부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재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생각하고 두 자부들에게 말합니다. 본문 8-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나오미의 말과 행동은 현대적인 사고를 가진 여인상을 연상케 합니. 수절하면서 늙은 자기를 봉양하느니 차라리 좋은 남자를 만나서 재혼하여 앞길을 개척하라는 사려 깊은 시어머니의 제안입니다.

이에 자부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0) 나오미가 자부들에게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합니다. 11-13절 말씀을 읽습니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당시의 관례에 의하면 만약 나오미가 재혼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이 장성하여 형수 곧 오르바와 룻의 남편이 되어 씨를 남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자부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늙어 재혼을 할 수도 없고, 설사 재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할 경우 어떻게 그 아들이 장성하도록 기다리겠느냐는 말입니다. 참으로 두 자부들을 향한 시어머니의 염려와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이쯤 되자 큰 자부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모압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둘째 자부 룻은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나오미가 룻에게 간곡하게 말합니다.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참으로 슬픈 장면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나오미의 심정도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자신의 결심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16-1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어쩌면 이것은 룻의 확고한 결심이자 그녀의 신앙고백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룻의 결심을 꺾지 못하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르바와 룻의 행동을 보면서 무조건 흑백논리로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어머니를 떠난 큰 자부 오르바는 몹쓸 여자이,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른 룻은 효부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룻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르바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시어머니의 뜻에 따라 자기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요 효도하는 길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시어머니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한편 룻의 입장에서 보면 의지할 데 없는 시어머니를 떠나는 것은 도리가 아니며, 자신이 수절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관점의 차이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의 가정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틀림없이 오르바와 같은 여성이 나타날 것이고, 룻과 같은 여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유교적인 윤리가 지배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십중팔구는 룻과 같은 여자를 효부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나 룻의 위대성은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간데 있는 것은 아닙니. 그렇다고 고독하고 슬픔에 빠져있는 늙은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자기의 젊음, 재혼의 기회를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정신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룻의 위대성은 늙은 시어머니를 섬기며 봉양하겠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그녀의 신앙고백에 있는 것입니다.

본래 룻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의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집을 오게 되었고, 시집에 온 이후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이 없는 낯선 땅 모압에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은 후에 나오미는 두 아들과 자부들에게 신앙을 가르쳤을 것이고,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지난 10년을 버텨왔던 것입니다. 러한 신앙의 분위기 가운데 이방 여인 룻은 여호와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이며 특권인가를 깨달았기에 그녀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하는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분명히 오르바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압 자기 백성과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신에게로 돌아갔지만, 룻은 이미 체험하고 누린 특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시어머니를 따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게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룻의 위대성입니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요 이새의 아비인 오벳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다윗의 직계 조상이 되었고, 그녀의 후손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 다섯 사람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룻입니다. 부계를 중요 시 하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족보에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베들레헴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말하면서 룻을 칭찬합니다. 여러분! 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은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한 자라고 했으니 룻이 얼마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봉양하고 공경하였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을 통하여 가문의 대를 이어갔으니 노년의 나오미가 얼마나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아마도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량하게 지내는 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의 존재는 크나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도덕과 우상 숭배와 전쟁으로 특징 지워지는 사사시대, 누구나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무법천지의 시대에 있었던 룻의 이야기는 자식이 부모를 공격하고 심지어 재산 때문에 부모를 살인하는 패역무도한 오늘 우리의 시대에 많은 교훈과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부간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 가정에 있어서 과연 룻과 같은 여인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룻을 칭찬하였으니 아마 지금 이 시대에 룻이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장한 효부상을 탔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오미와 룻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먼저 룻을 통하여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길을 갈 것인가? 저 길을 갈 것인가?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할 것인가? 혹 믿지 않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가? 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가?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러나 우리는 먼저 과연 어느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인 내가 가야 할 길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분명히 도덕과 윤리를 초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명령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비록 룻은 자신의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지만, 그녀는 시어머니 보다 더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무엇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하였고, 그 뜻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룻의 신앙적 결단은 결과적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룻의 모습은 우리에게 올바른 부모 공경의 예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오미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행함으로써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깨닫고 체험한 진리,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할지라도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절대적 신앙,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특권인가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는 부모님 여러분! 자녀들에게 효도와 공경을 받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 앞에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이 우리의 자녀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때에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성도 여러분의 각 가정에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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