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구약설교말씀

[열왕기상 19장 설교말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자는 엘리야(왕상 19:1-21)

기혼샘 2023. 11. 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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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9장 설교말씀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난 후에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여 엘리야는 광야로 들어가서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자기의 생명을 가져가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엘리야가 잠을 잤습니다. 그때 천사가 엘리야를 깨우면서 구운 떡을 주었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자는 엘리야(왕상 19:1-21)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이 듦(1-4)

19:1-4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아합왕은 엘리야가 행한 일과 바알의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자기 아내인 이세벨에게 고했다. 이세벨은 이방 시돈 왕의 딸로 아합왕의 아내가 되었는데 그가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이스라엘 나라에 들여와 온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 하였다. 그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고했다.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고 한 것은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기로 비상한 결심을 한 것을 가리킨다. 그때 즉시 엘리야를 체포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어 선고한 것은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 때에 엘리야는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도망쳐 브엘세바로 가서 거기에 사환을 머물게 하고 홀로 광야로 하룻길쯤 들어갔다. 엘리야가 잡히면 죽겠기 때문에 이세벨의 군대가 추격하여도 잡히지 않으리 만큼 도망친 것이다. 거기서 엘리야는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다

로뎀나무는 사막의 물 마른 골짜기에 있으며 높이는 3.5m 정도의 나무라고 한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기도이다.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자기는 연약하고 부족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제는 살 필요가 없으니 죽여 달라고 한 것이다. 엘리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낙망 가운데 빠져서 죽고 싶은 마음으로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것은 육신이 피로하여 잠이 들었지만 영적으로는 신앙이 잠든 것을 가리킨다. 위대한 선지자라도 일시 신앙이 잠든 때가 있다. 성군(聖君) 다윗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 범죄했으며(삼하12:2-5), 선지자 요나는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 다시스로 도망치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며(욘1장), 세례 요한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의심하였다(마11:3). 전에는 갈멜산에서 거짓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또 많은 백성들 앞에서 담대히 호령하던 엘리야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앙이 잠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아무 힘과 분별력이 없어진다.

엘리야가 왜 신앙의 잠이 들었는가? 첫째는 외부적인 큰일을 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쫓겨가는 신세가 되자 낙망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거짓 선지자 850명을 숙청했을 때는 백성들이 자기에게 돌아왔으므로 성공한 줄 알았는데 그 이튿날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하고 백성들은 침묵하고 있으므로 낙망한 것이다.

둘째는 환난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세벨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하므로 두려워서 도망치다가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진 것이다. 베드로도 물결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다가 물에 빠졌다. 엘리야가 아무리 큰 환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담대히 나갔어야 되겠는데 그만 환난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낙망하여 쓰러졌다.

셋째는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심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3절에 그 생명을 위하여라고 했고, 10절과 14절에는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육신의 생명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진 것이다. 아예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죽이면 죽자 하고 나가야 되겠는데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있기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육신의 생명이 위태하므로 이제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죽기를 구한 것이다.

넷째는 조급한 생각 때문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에 하나님께 돌리려고 하다가 그 일이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낙망하여 쓰러진 것이다.

다섯째는 제가 하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고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제가 하겠다는 것이 다 잘 못된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성취하실 것인데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낙망한 것이다.

일곱째는 하나님이 친히 하실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반드시 하실 것인데 왜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가 하겠다고 하다가 안되니까 낙망하고 쓰러졌다.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낙망하는 가운데 빠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기 때문이다. 시편 118:6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했고, 요한복음 16:32에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따르던 무리들이 다 흩어질 때에도 낙망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깨어 호렙산으로 감(5-8)

19:5-6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로뎀나무 아래 낙망하여 쓰러져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신앙이 떨어져 있는 엘리야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려고 천사를 보냈다.

어루만진 것은 심신이 피곤한 것을 위로해 주고 북돋아준 것이다. 또 떡과 물을 주신 것은 엘리야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베풀어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19:7-8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째로 와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했다. 그러자 엘리야가 먹고 밤낮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나님은 어떤 면으로든지 권고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신다. 천사나 까마귀를 통해서도 먹을 것을 주신다.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는 까마귀를 통해서 떡과 고기를 먹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천사를 통해 떡과 물을 먹게 하셨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떡은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고 물은 성령의 역사를 가리킨다(요7:37-39). 그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산에 가는 것이 이만큼 힘이 들고 고난이 많다. 사십은 고난의 수이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였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다. 성도는 그 고난의 수가 다 차기까지 고난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영적 시온산을 향해서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호렙산에서 여호와가 나타나심(9-11)

19:9-10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아가 호렙산 굴에 이르니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했다. 이에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자는 오직 자기뿐인데 그들이 자기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서는 로뎀나무 아래서보다 좀 나은 기도를 했으나 아직 바른 기도는 못 된다. 이것은 야곱이 얍복 강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 기도이다. 아직도 엘리야가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한 손에 이스라엘 백성을 붙들고 자기가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엘리야가 굴에서 나가 여호와 앞에 섰을 때에 여호와 앞에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세 가지 역사가 나타났다. 이 세 가지는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특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여호와 앞에서 나타났고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이 세 가지 특수 역사가 있다.

첫째,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다. “은 큰 세력을 가리키는데 이교(異敎)사상(불교 사상, 유교 사상, 마호멧교 사상, 민족 사상, 문벌 사상)등이 기독 특수 운동(基督特殊運動) 앞에 깨어져 나가는 것이다. “바위는 단단하고 완강한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완고한 세력과 사상과 마음들이 기독 특수 운동 앞에 다 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지진이 있었다. 지진은 진동하는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독교 특수 운동이 일어날 때 전국이 흔들흔들하고 전국 교회가 동요되는 때가 있다. 과거에 박재봉 목사의 특수 운동 때에 전국적으로 큰 동요가 있었다.

세미한 소리를 들음(12-14)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셋째, 불이 있었다. 불은 뜨겁고 맹렬한 역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역사가 강하고 맹렬하고 힘있게 퍼져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기독교 특수 역사도 이렇게 맹렬하고 뜨겁게 전파된다. 오늘날 신비주의나 감정주의가 이에 해당된다. 그런 역사가 여호와 앞에서 지나갔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독교 내에서 일어나는 특수운동이다. 즉 신비주의나 감정주의가 뜨겁고 맹렬하고 역사가 크지만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참된 생명운동은 아니다.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그것이 여호와께 하시는 생명 역사는 아니다.

 

[열왕기하 4장 강해설교말씀] 선지자 엘리사의 5가지 이적(왕하 4:1-44)

열왕기하 4장에서는 선지자 엘리사가 5가지의 기적을 베풀게 된다. 생도의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었고 수넴 여인에게 자녀가 생길 것을 예언했으며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살려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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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런 방법으로 일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과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것으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 알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를 들면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에 먼지와 바람이 일어나는데 그 바람과 먼지 가운데서 아버지를 찾으려는 것과 같다.

참된 기독교는 외부적 운동이 아니라 내적 생명의 역사에 있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역사가 다 지나간 다음에 고요하고 은밀한 가운데서 세미한 소리가 들렸다.

세미한 소리는 은밀하고 고요한 가운데에서야 들을 수 있다. 뒤숭숭하고 복잡하고 떠들썩한 곳에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 이 세미한 소리는 가늘고 미세한 영적 감동으로서 심령 속 깊은 곳에 들려 온다.

영적 감동도 두 가지이다.

외부적인 감동이다. 이것은 떠들썩하고 열광적이며 감동을 받는 것 같으나 심령 깊은 곳은 움직이지도 않고 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심령 속 깊은 곳은 공허한 가운데 있다.

내적인 감동이다. 이것은 심령 속 깊은 곳에 작게 감동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감동, 열광적인 것, 제가 하겠다는 것이 다 지나가고 자기가 죽어지고 고요해져야 내적 감동이 오고 하나님의 진리가 깨달아진다. 그것을 붙들어야 영이 점점 자라나고 강해지는 것이다. 세미한 감동으로 깨달아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요 또 우리의 영이 자라나는 신앙이다. 요한복음 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신비주의자들의 외부적인 감정운동은 영의 운동 같지만 감정 운동이기 때문에 영이 자라나지 못한다. 감정 운동은 육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다 사라지고 만다.

19:13-14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갔다. 얼굴을 가리운 것은 감히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할 때 전과 같이 여호와를 위한 열심과 자기 생활 문제를 위해서 답변했다. 엘리야가 아직도 생명을 하나님께 맡겨 놓지 않고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 무능한 자인 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엘리야의 사명(15-18)

19:15-16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셨다.

첫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아람 왕으로 세우라고 했다. 아람은 이방 나라로서 이방 나라에 대하여 하여야 될 일을 하라 는 것이다. 이방관(異邦觀)을 바로 갖고 관계를 바로 가지고 심부름을 바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라는 것은 세상 국가에 대해서 해야 할 의무를 바로 감당하라는 것이다.

둘째,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고 했다.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겼으며(왕하10:29), 715일 절기를 815일로 고치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워 놓았다. 북 이스라엘은 타락된 교회를 가리킨다. 타락된 교회에 대해서 바로 볼 줄 알아야 하며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며 바른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엘리야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했다. 이것은 후계자를 세워 참교회를 세워 나가라는 것이다. 참 교회를 세워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비취게 하라는 것이다. 등불을 비추어야 어두운 일들이 다 밝히 드러난다. 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은 엘리사를 참된 일꾼으로 세워서 후계자를 삼아 엘리야가 하던 구원운동을 후대까지 계승시키라는 것이다.

19: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사엘이 나가서 부정한 것을 다 정결케 해 나가고 그래도 못한 것은 예후가 하고, 예후가 하지 못한 것은 엘리사가 하게 된다. 예후가 왕이 되어서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선지자를 다 잡아 죽였다.

처음에는 불신 세상에서도 정의파가 나와서 어느 정도 정화를 시키고, 그 다음에는 타락된 교회가 좀 더 정화시키고, 마지막에는 참 교회가 성경대로 정화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

하사엘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 섬기는 일을 제거하지 못하고 세상 법으로 이치에 합당치 않는 것만 다스리는 것이다. 예후는 타락된 북 이스라엘 왕이지만 성경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바알신 섬기는 사람 즉 우상 섬기는 사람을 잡아 죽인 것이다. 엘리사는 성경 말씀을 가감 없이 믿고 나아가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죄로 규명하여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정화시켜 나갔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성경대로 된 것이다.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가 자기는 혼자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칠천 인을 남겨 두었다고 했다. 칠 천 인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숨어서 믿는 사람이다.

믿음을 지키는 성도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숨어서 신앙을 지켜 나가는 성도이다. 이런 성도들은 신앙을 못 지키는 사람보다는 낫다. 또 하나는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도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며 빛을 비추어 나가는 성도이다. 이런 성도는 숨어서 믿는 천 명보다 낫다. 이런 성도는 빛을 먼 지방까지 비추어 나간다.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일해 나가신다.

엘리사를 부름(19-21)

19: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 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낙심하고 절망에 빠졌던 엘리야가 세미한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일어나 말씀을 순종하려고 나서니 곧 엘리사를 만났다. 회개하고 재출발하는 자에게 이와 같은 좋은 수종자를 만나게 해 주신다

열 두 겨리 소 한 저리는 두 마리이므로 24마리이다. 이렇게 12겨리로 밭을 간 것과 종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엘리사 가정은 부자인 것 같다.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하나님의 권능을 엘리사에게 주는 것을 가리킨다(왕하2:8,14).

19: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가서 부모를 작별하고 오겠다고 할 때에 엘리야가 허락했다. 누가복음 9장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가족을 작별하고 오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이 허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가족을 첫째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믿는 일을 첫째로 하고 가서 가족을 작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다.

19: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지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엘리사가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잡아 베풀어 놓고 부모와 동네 사람을 다 데려다가 잔치를 하며 사업과 세상일과 대인 관계를 정리하여 미련을 끊고 일어나서 엘리야를 좇아갔다.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다 버리고 전적으로 몸을 바쳐서 엘리야를 따라 수종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우리도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예수님을 힘써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열왕기상 5장 설교 말씀] 솔로몬의 성전 건축 준비(왕상 5:1-18)

열왕기상 5장에서는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기록되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을 짓게 된다. 솔로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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