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샘 신약설교말씀

[요한계시록 21장 설교말씀]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계21:19-27)

기혼샘 2020. 10. 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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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21장 하나님말씀 중에서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계 21:19-27)

 

명제: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은 무형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목적: 무형의 교회에 들어가는 자는 구원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요한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지 못했어도 부인할 수 없도록 이미 요한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없다고 우겨도 새 예루살렘은 반드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과 어떤 자들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장소입니다. 너무나 거룩한 장소이면서 항상 하나님과 예수님의 빛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들어가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19-20)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새 예루살렘의 성의 둘레는 각종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기초 석은 열두 개의 화려한 보석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것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 신약에서는 열두 제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열두 진주 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고 기초 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석으로’ τιμιος(티미오스 5093) 값비싼, 귀중한, 존경받는, 이라는 뜻입니다. 보석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값이 비싸고 귀중한 돌입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 돌은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돌 제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유대인들은 돌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생각했고 신성하게 생각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존경받으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무형의 교회입니다. 완전히 구원받은 백성들이 들어가는 교회입니다. 성곽의 열두 기초 석은 완전히 구원받은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루어진 곳이며 선택된 백성들이 모여진 곳이 교회입니다.

 

‘꾸몄는데’ חפץ(하페츠 2655)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사랑하다, 좋아하다, 라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의 둘레를 보석으로 꾸몄는데 여기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보석으로 꾸며 놓으시고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담 이후로 죄악 가운데 인간들이 멸망당하고 죽었지만 새 예루살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히 회복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한 자들만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자들만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새 예루살렘 성의 둘레는 열두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고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문은’ שער(샤아르 8179) 문, 성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ער(샤아르 8176) 쪼개다, 떼어놓다, 평가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문은 값비싼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샤아르의 히브리적 의미는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진리의 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를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새롭게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산자가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문을 통과하는 자는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문을 통과한 자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평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합격점을 받고 따로 쪼개서 분리시킨 자들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위로 재력으로 권력으로 열두 진주 문중에 하나로 들어가려고 하면 철저하게 평가하여 떨어뜨려 불 못으로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나도 십자가의 공로의 예복을 입지 않으면 절대 이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사도 요한이 성 안에 들어갔지만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2:20-21)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헤롯 성전이 지어진 것을 보시고 사십육 년 동안 지은 성전이 무너지고 삼일 동안에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성전에서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성전에서 영원한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성전이심이라’ ειμι(에이미 1510) 존재하다, 있다, 라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존재하고 있는 한 성전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부터 영원한 성전에서 속죄함 받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의 피로 구속함을 받으려고 한 자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실체 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전이라는 사실이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현재에도 계속 우리에게 남아 있는 분입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인데도 현재시제를 쓰고 있는 것은 지금 성전 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물적인 교회로는 절대 속죄함 받지 못합니다. 성전 되시는 예수님이 나에게 직접 들어오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발적으로 많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임하시게 됩니다. 한 분 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많은 백성들에게 성전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오늘 나에게도 임하셔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새 예루살렘 성은 해나 달의 빛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등불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해나 달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빛이 더 밝기 때문에 다른 빛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진리의 빛이 영원히 빛나는 곳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영광이 비치고’ אור(오르 215) 빛나다, 비추다, 영화롭다, 광채 나다, 라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만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 비치어질 때에 내 영혼이 광채가 나며 나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없다면 흑암만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새 예루살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진리의 빛을 받으면 이 세상에서도 새 예루살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게 되며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σωζω(소조 4982) 구원하다, 해 받지 않게 하다, 보존하다, 라는 뜻입니다. 번역된 성경에는 없지만 빛과 가운데로 라는 단어 중간에 이 단어가 있습니다. 결국 구원받은 백성들이 예수님의 빛 가운데로 다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받아 영원히 해를 받지 않고 생명이 보존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다니고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린 자들이며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자들입니다. 바로 지금 현재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지금 당장 예수님과 함께 하면 됩니다. 구원은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아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כבוד(카보드 3519) 영광, 존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בד(카바드 3513) 풍부하다, 높임을 받다, 영광을 얻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열심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재력으로 봉사한 것들이 기념 책에 기록되어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불 못으로 던져진 자들은 자기의 영광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얻지 못하고 높임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산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면서 봉사하고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힘쓴 사람들은 자기의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많은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구원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삶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1:25-26)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이 성은 낮에 성문들을 닫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죽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밤은 어둠입니다. 어둠이 내 안에 임하면 나는 죽는 것입니다. 낮은 빛입니다. 빛이 내 안에 임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죽음이 없고 생명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진리의 빛이 영혼에 임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어둠에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자신들의 상급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께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상급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많이 받게 될 것이며 구원만 받고 헌신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산 사람은 받을 상급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헌신한 것을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아버리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신의 행동을 나타내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제하는 것도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면 이미 이 사람은 자기 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의 영광을 가지고 들어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헌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면서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에 속된 것과 가증한 일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절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속된 것은 더러운 것과 부정한 것을 말합니다. 바로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신부의 예복이 없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증한 일은 아주 혐오스럽고 가증한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더럽고 추한 가증스러운 행동을 하여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혐오스러운 행동을 한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우상을 섬긴 자들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의 신랑을 섬긴 자들입니다. 이 자들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 한 자들인데 이들은 사기를 치고 남을 속여 실망케 한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영혼을 사기 친 자들입니다. 이단의 교리를 전파하여 많은 영혼을 실족하게 만들어 인생을 망치게 한 자들입니다. 이들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오직 주님의 피로 인하여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기록된’ γραφω(그라포 1125) 기록하다, 쓰다, 라는 뜻입니다. 생명 책에 이름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을 생명책에 이름을 써 놓았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써 놓은 것은 자신의 행위가 좋아서 써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써놓으셨습니다. 이 생명책에 나의 이름이 이미 기록된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생명 책에 이름을 기록해 놓으시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너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형의 교회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는데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나에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미 나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부터 새 예루살렘의 삶이 시작되었고 내 심령 안에는 성전 되시는 예수님이 임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국을 너무나 먼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지금 사는 이 자체도 천국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의 삶을 살아가시고 늘 신랑 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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